십우도(메시아의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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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장
작품등록일 :
2023.04.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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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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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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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DUMMY

제1장 세상을 떠나가다.


원로 목사 박영기가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끌었던 기독교의 거장이 운명한 것이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기독교계에서 박영기 목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소천'이라고 부른다.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종교적 언어가 바로 '소천'이다.


75만 명이 넘는 최대 규모의 교회를 이끌었던 박영기 목사의 역량은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운 기독교에서의 최대 기적이었다.


하지만 박영기 목사의 인생은 결코 탄탄하지 않았다. 살아있을 때 가족들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벌어진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그의 인생 이력에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자식들에게 천 억 원이 넘는 돈이 흘러들어 갔는데, 이 돈은 교회 신자들이 각종 헌금으로 낸 돈이었다.


그의 자식들은 일반 사람이면 평생을 일해도 만지지 못할 거액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로부터 빼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과연 그들은 아버지인 박영기 목사 모르게 그 돈을 빼 낼 수 있는가 이다. 몇 명의 장로들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박영기 목사에게 해명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으나 막강한 힘을 가진 박영기 목사는 이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장로를 교회를 음해하는 세력으로 몰아 교회에서 제명 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아무튼 이 모든 안 좋은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박영기 목사는 그들 말로 소위 '소천'하였다.


박영기 목사가 사라진 그 교회는 그 후에도 기세가 전혀 꺽이지 않았다. 후계자로 담임 목사가 된 황영웅 목사는 철저한 박영기파로 박영기가 애초부터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 한 자였다.


그러나 황영웅이 담임 목사로 낙점 된 데에는 박영기가 아닌 박영기의 부인 한성애의 힘이 더 영향력을 끼쳤다. 한성애는 할렐루야 아줌마로 유명한 김주실의 딸로 사실 박영기가 이룬 교회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교회에서 세운 대학의 총장을 맡기도 했으며, 영성기도원의 원장도 역임한 바 있었다. 수 천 억 원의 돈이 선교라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송금되었는데 나중에 어느 방송에서 이 돈의 쓰임에 대해 확인을 하였는데 그 돈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튼 소천했다는 박영기의 돈 관리는 도무지 어떤 기준이 정해지지 않고 무질서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교회에서 벌인 많은 선행도 있었다. 장학금으로 수 백억의 돈이 쓰여졌고, 무주택 자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과가 있다고 한다. 공이 몇 퍼센트냐, 과는 또 몇 퍼센트냐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의 평가에서도 이 잣대는 들이대었는데, 아직은 과보다는 공이 더 많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과 과의 격차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에 자칫하다가는 과가 공을 넘을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박영기 목사에 대한 공은 차고도 넘치었으나, 그것은 어디 까지나 교회에 특히 박영기 목사가 세운 '순수복음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평가였다.


박영기 목사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박희성, 둘째 아들 박민호, 세째 아들 박승민이 그들이다. 특이한 것은 그들 중에 목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지 박영기 목사는 평소에 교회 세습에 그 어떤 욕심도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박영기 목사에게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아들이 있었다. 바로 세째 아들인 박승민이었다. 목사인 박영기가 국내의 부흥회에 또는 해외의 부흥회에 바쁘게 돌아다닐 때 박승민은 홀로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어머니인 한성애 역시 교회의 부흥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많은 일을 해야 했기에 박승민은 어릴 적부터 외톨이로 자라야 했다. 두 형과의 나이 차이도 많아서 형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기에 더욱 외톨이가 되어야 했다.


박승민은 주위의 환경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성적으로 바뀌어 갔다. 혼자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아 어느 때는 누가 곁에 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아들을 보는 박영기 목사의 마음은 항상 무거웠다. 두 형과는 판이하게 다른 막내는 박영기에게는 어쩔 수 없는 근심 거리였다.


부인 한성애에게 막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한성애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 인지라 대답은 그렇게 한다 고는 했지만 막내에 대한 관심을 특별히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박승민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승민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일이 터진 것이다.


승민의 가출로 인해 미국에서 부흥회를 이끌었던 박영기 목사가 일정을 앞당겨 일찍 귀국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나도 박승민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 일로 박영기 목사와 부인 한성애는 며칠 동안 교회 일을 손에서 놓고 아이를 찾는 데에만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던 중 박승민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어이없게도 박승민은 부산의 유명한 절 범어사에서 발견되었다. 템플스테이로 등록한 후 열흘 동안 불교의 전통문화와 수행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박영기 목사는 자신의 아들이 범어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이가 없다며 탄식을 했다. 기독교에서는 불상을 우상으로 보고 있는데 거기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박영기 목사는 범어사로 사람을 보내어 아들을 강제로 올라오게 하였는데 승민은 아무 저항도 없이 순순히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박영기 목사의 막내 아들이 절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하였기에 그 후에 그 일이 뉴스 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너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기에 절에 갈 수가 있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절에 가서 불상에 절을 하면 그게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박 목사의 둘째 아들인 민호가 집으로 돌아온 동생에게 기가 차다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대해 승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 최대의 교회 당회장인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음을 본인 자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제일보는 순수복음교회에서 설립한 언론사인데 그 곳의 대표가 바로 둘째인 박민호였다. 37세에 언론사 대표에 오른 민호는 미국 노드롭대 경영학과와 서던캘리포니아칼리지 신학과를 나온 인재였다.


"아버지가 네가 부산 범어사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아냐? 또 그런 일을 벌이면 이번엔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형도 가만히 안 있을 걸."


승민이 잠시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눈빛은 자신을 경멸하는 형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 아니었다. 승민의 눈 빛은 그 어느 때보다 잔잔해 보였다. 범어사에 들어가서 정신 수양을 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눈 빛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 잔잔함 그 자체였다. 아무런 대꾸가 없자 민호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승민의 방을 나갔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치었다.

배에 탄 사람이 비록 마음이 좁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배에 사람이 없으므로 성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소리를 쳤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저어 가라고 할 것이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칠 것이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치면서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전에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화를 내는 것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부딪치는 배에 사람이 없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았을 것이고 화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승민은 범어사에서 큰스님에게 장자의 '빈 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깨닫는 것이 많았다. 나의 마음을 비운다면 그 누가 나를 화내게 해도 나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이 승민의 마음을 온통 휘저어 놨다.


승민은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외톨이로 성장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성격이 내성적으로 성격이 변해갔기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위의 두 형과는 다른 인생의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일까? 철저한 이방인으로 성장한 승민은 기독교보다는 불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승민은 우선 교회에 출석하는 것에 많은 심적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당회장이라 어쩔 수 없이 교회 예배에 참석을 하였지만 예배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신처럼 떠 받드는 교인의 모습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생기곤 했다. 교회에서의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수 십만의 교인들이 모여있는 교회는 어찌보며 하나의 독립된 나라였고 그 나라의 왕은 단연 자신의 아버지 박영기 당회장이었다.


승민에게는 더 참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방언 기도라는 것인데 그 것이 의미하는 것을 승민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기도라는 것인데 웃긴 것은 또 그 방언을 해석하는 교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은밀함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승민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방언이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로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박영기 목사는 이 방언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라며 모든 교인들이 모두 방언의 은사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까 순수복음교회에서는 방언을 못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방언을 은총을 받았다는 증거로 여기기에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방언을 하기 위해 많은 기도를 하였고, 실재로 이렇게 하여 많은 교인들이 방언을 할 수 있었다.


승민은 이 방언에 대하여 나름 많은 조사를 하였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의 방언은 성경에 나오는 방언과 판이하게 달랐다. 방언은 본 뜻은 다른 나라의 말을 뜻한다. 성경에는 방언에 대한 다양한 글귀가 기록되어 있는데 본래의 기능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한시적 기적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었다.


그랬던 방언이 언제부터 인가 신과의 비밀 적인 대화라는 주장이 대두 되면서 오순절의 기적처럼 불같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방언의 은사라는 것은 확실히 한시적 기적이었기에 현대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임을 승민은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경 곳곳에 쓰여있는 방언에 대한 많은 글귀는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고, 저렇게 해석하면 또 저렇게 되는 것이기에 어떤 것이 맞다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승민은 아버지가 요구하는 대로 몇 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며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돈 문제는 승민으로 하여금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종교란 신을 간판으로 세우고 장사를 하는 장사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아버지의 묵인 하에 두 형의 교회 돈 횡령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할 무렵 승민은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때가 승민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박영기 목사는 아들이 또 행방불명이 되자 전국의 모든 사원에 사람들을 보내어 승민을 찾기 시작했으나 그 어디서도 승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삼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몇 년이 지나도 끝내 승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승민의 아버지 박영기 목사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박영기 목사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집을 나간 승민을 생각하며 제대로 두 눈을 감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신의 은총을 입은 박영기 목사도 죽을 때는 한낱 한 아들의 아버지였을 뿐이었다.


박영기 목사가 이 땅을 떠난 후 순수복음교회는 더 많은 부흥을 이루어 갔다. 후임인 황영웅 목사의 열성 적인 설교와 전도로 인하여 더 많은 강남의 부유층 사람들이 새로운 신자로 속속히 등록을 하였다. 하지만 다른 교회에 다니는 신도를 순수복음교회로 옮기게 하는 수준이었지 원래부터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갈수록 거대해 지는 순수복음교회의 발전에 많은 교회에서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곤 했다. 어는 한 교회가 독식을 하면 다른 교회는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 하며 때로는 순수복음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강남의 부유한 사람들 특히 소위 사모님이라는 여자들은 어떤 하나의 특권이라도 가졌다는 듯 순수복음교회에 열성 적이었다. 그들은 이 땅에서도 부유하게 살고 죽어서 하늘에 가서도 부유하게 살려는 듯 정말로 교회에 열성 적이었다.


박승민은 끝내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박영기 목사의 사망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른다.


제2장 기도원에서의 생활


강원도 오지에 자리 잡은 한얼기도원, 이 곳에는 많은 노인들이 감옥이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 양로원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런 곳이었다. 부모가 늙어 치매가 심하면 어디에 보내야 하는데 바로 이 곳이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치매가 심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딱 맞는 곳이 바로 이곳 양노원을 가장한 한얼기도원이었다.


"원장님 큰 일 났습니다."


간호 조무사 한 명이 다급하게 원장실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조무사의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황석보가 고개를 돌려 그 녀를 바라보았다.


"뭔 일인데 그래."

"지금 서울에서 양사장님이 온다고 합니다. 어쩌죠?"


조무사의 말에 황석보의 인상이 일순 찌그러졌다.


"그 노인네 지금 상태가 어떠지?"

"어제 독방에 넣어 놨는데 자해를 해서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얼굴이며 온 몸이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조무사의 말에 황석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조무사에게 고개를 저으며 앞장서라고 했다.


"아이 왜 그 새끼는 꼭 이럴 때에 오고 난리야. 그 노인네가 스스로 자해한 것을 우리가 그랬다고 할 것 아냐. 젠장 더럽게 일이 꼬이게 생겼네. 노인네 정신은 어떠해 보이지."


황석보의 말에 조무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똥을 벽에 칠하는 것이 상태가 최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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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어나는 음모 24.09.17 9 0 1쪽
2 기도원에서의 생활 +1 23.04.19 63 0 15쪽
» 서론 23.04.14 88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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