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 주세요
이른 아침 가랑비는
금새 그치겠지 하던 바램과 달리
하루를 멈추게 합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빗소리도
천천히 귀를 사로잡아
창 밖에 그려지는 모습에
사로잡힙니다
바닥을 채우는 한 방울 한 방울
제멋대로 스며들지만
부서지고 깨지며 다시 만나
고임이 되고 물줄기가 되어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구름에 가린 햇살의
적당한 볕이 오히려
그치지 않는 가랑비에
빠져들게 합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간절함도 외로움도
순간마다 밀려오는
그리움도 설레임도
불쑥 찾아온 가랑비의 속삭임에
조금씩 누그러지며 잠이 듭니다
잠시 찾아드는 무색무취의 고요
제가 이래도 될까요
잠깐이지만 내려 놓아도 될까요
이 적막 안에서 쉬어도 될까요
숨결이 되어버린,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버린,
널 망각한 채 하루를 온전히
무념무상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번만 용서해 주세요
내 안의 네가 깨어나기 전까지만
이대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해주세요
이런 날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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