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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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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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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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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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2)

DUMMY

※※※



사천 서주(叙州).


의빈(宜宾)이라는 도시로부터 서남으로 조금 내려간 자리에 위치한 평원이었다. 아미산이 자리잡은 가정(嘉定)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장강(長江) 본류가 거쳐가는 땅이기도 했다. 중경까지 배 한척으로 오갈 수 있었는데, 거꾸로 말하면 본디 수적이 횡행하는 영역이란 소리기도 했다.


때문에 황량했다.


장강 이남은 곧장 귀주와 운남인데, 수라궁을 비롯한 남녘 외도의 강자들이 군주로 행세하는 인외마경이다. 서편에 홀로 우뚝 선 점창을 제외하면 민초를 살필 이들이 없는 장소. 장강을 따라 물길을 오가는 이들이 아니라면 이곳에 버티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장강 이남에서 쳐들어오는 사마외도를 물리치기 위한 거점으로 삼는게 아닌 이상에야.


“그런 까닭이네. 작금 중원의 세태에 이곳 서주가 사도 무문을 막아서는 장성(長城)이 된 것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곳이 뚫리면 장강은 물론이고 아미산이 고립되며, 성도가 무너지고 중원 서편의 삼분지 일이 몽땅 사마외도의 땅이 된다는 소리지.”


어느 야트막한 언덕에 납작 엎드린 중년인의 이야기였다. 곁에서 조용히 뭔가를 적고 있는 여인 둘과 함께였다.


그들은 다름아닌 의빈에 자리잡은 화영루(花影樓)의 루주와 기녀들이었다. 또 동시에 하오문 천라방의 방도이기도 한 사람들.


본래라면 천라방에서도 그리 지위가 높지 않은 자리다. 하오문 천라방의 정보망은 전 중원을 그물처럼 연결하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장소들이 존재한다. 구파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나, 천하 북경같은 장소들.


의빈은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화영루주는 평범한 천라방도였고, 그저 주루를 운영하는것에 충실한 중년일 뿐이었다. 청해 옥수의 루주가 곤륜파의 득세로 중요한 인물로 급부상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런 일이 본인에게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천이 뚫리고 당가와 수라궁의 일전이 벌어진 이후부터 화영루주는 단숨에 천라방 정보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매일매일 온갖 정보와 질문이 산더미처럼 쏟아질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사천의 장성......어찌 결정날지 모르겠군. 여기가 뚫리면 우리도 당장 짐을 싸 도망가거나 아니면 적들에게 고개 숙이며 투항하거나 둘 중 하나일세. 살길은 도모해야지.”


나직한 중얼거림에 묵묵히 듣고 있던 여인들 중, 흰 옷을 입은 기녀가 물었다.


“그런데 장성은 뚫리지 않았어요? 북방 기마군세 일부가 성을 넘어 북경을 유린하려다 악가주 일신의 무위에 저지당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도 곧 뚫릴거라는......”


화영루주가 미간을 좁히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말이 그렇다는걸세. 거참 불길한 소리는 좀 하지를 마.”

“한데 이곳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이곳에 더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는 건가요? 적어도 무당 장문이나 소림 방장이 이곳에 강림하면......”


이번에는 검은 옷을 입은 기녀였다.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화영루주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쓸모있는 질문이군. 자네들은 마교(魔敎)가 어찌하여 중원을 침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중원 정파의 세가 강대하기 때문 아닌가요? 일전에 마교가 중원을 건드렸을 적에 삼호법이 전부 패퇴하고 교주마저 막혔었는데. 당시의 선극, 신승, 검왕, 그리고 검제와 전대 화산 장문인들 개개인이 전부 초월에 이른 무인인 까닭에,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허면 어찌하여 지금 사도 육진은 득세하고 있나?”


입매를 끌어올린 화영루주가 이야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네. 선극과 신승이 힘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 삼호법의 힘이나 다른 이들이 그에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다 중요하나 결정적인 것은 역시 교주 본인이야. 그는 똑같은 일격에는 두번 당하지 않네.”

“......예?”

“아는 이가 적은 소문이지만 거의 확실한 사실이야. 그는 한번 본 무공을 모조리 파훼할 수 있네. 때문에 선극과 신승, 그중에서도 특히 신승이 본신의 전력을 극도로 드러내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네.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최근 오십여년간 발동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


흑백의 기녀들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일세. 소림의 전력은 교주를 격살하기 위한 최후의 절초. 선극도 비슷한 것을 하나쯤은 준비해뒀을 것이네. 그렇기에 그들의 지원은 기대해서도, 와서도 아니되네.”


화영루주가 단언했다.


시선을 저편으로 돌리면서였다.


드넓은 전장.


언덕 너머 수십리를 따라 검창이 번뜩이고, 핏물이 터져나오는 대지였다. 지금 이 순간도 이른 아침의 햇살 아래 천하 무문의 신공절학들이 마구잡이로 펼쳐지는 광경이다.


그 모든 일련의 광경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화영루주는 숨을 들이쉬었다.


“내 이곳 전장을 기록할테니, 전해져온 정보를 알려주게. 며칠간 정리한 것까지 전부.”


그의 말에 기녀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품에서 길다란 종이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난 며칠간 천라방에서 이곳으로 전해져 온 정보와, 다시 이곳에서 그쪽으로 보낼 정보들의 총합이었다.


一. 수라궁주와 천독의 전투가 교착 상태로 이어짐. 결판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전장은 단독 격전지로 화(化)함. 인근 십리(十里:4km)의 영역에는 보통의 무인은 접근이 불가(不可).


二. 당가 무인의 절반이 사망. 수라궁의 무인이 수백 이상 죽은것으로 추정되나, 그 전력은 아직 셈이 불가할 정도로 많음.


三. 당가모 공손령이 금안나찰의 뒤를 이은 새로운 사냥개 대붕신수(大鵬神手)를 격살. 그 여파로 공손령 본인은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확인.


四. 이틀 전 서주에 도달한 무림맹의 별동대가 전장에 가세(加勢). 그 여파로 점차 밀리던 저지선을 재확보. 수라궁의 영역을 오리(五里) 이상 밀어냄. 그와 함께 도착한 무당검선(武當劍仙) 현궁(玄宮)은 천독의 결전에 힘을 보태어 수라궁주를 상대.


五. 별개로 칠룡과 백화(白花)의 활약이 압도적인 것으로 확인. 그들의 무공 수준과 공적을 보았을때, 이제는 후기지수가 아닌 백청적흑자의 다섯 기준 중, 적어도 적(赤)급 이상의 무인으로 취급해야 옳음.


六. 무림맹이 호북에 있는 신주흑림을 격파. 섬서 서안에 종남과 화산의 검들이 현현. 성화방주와 함께 서안을 포위하던 군세를 괴멸시킴.


七. 팽가주가 복귀. 신창과 함께 북방 군세의 저지선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사료됨.


“그리고 첨언(添言)된 정보. 섬서 인근에서부터 일어나, 사천으로 밤낮없이 이어지던 은빛 경공질주가 돌연 사라진 것으로 확인. 은성(銀星)이라는 이명으로 칭해지던 무인은 최소 흑(黑)급으로 추정되며, 별안간 행적이 모호해졌으니 경계 대상으로 취급해야......”

“......은빛 경공질주요?”


백의 여인이 말하던 도중이었다. 흑의 여인이 별안간 손을 뻗어 한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런거 말인가요?”


맑은 목소리에 세 쌍의 눈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지평선이었다. 북녘 하늘의 반절은 불그스름한 조하(朝霞)로 물들고 있었고, 나머지 반절은 아직 검푸른 밤하늘 아래 흐릿하게 일렁이는 별조각들이 그 빛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 아래였다.


지평 저편에서부터 문득 이어지는 길쭉한 선이 있었다. 시리도록 밝은 은빛 광채였는데, 하늘의 별조각 하나가 지상에 떨어져 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을 본 화영루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은성? 왜 이곳에. 아니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받아 쓰게나. 사라졌던 은성이 갑자기 서주 전장의 인근에 현현. 그 이유는......”

“어라? 저거......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백의 여인이 말했고, 화영루주는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번뜩이는 은빛 광채가 점차로 큼직하게 커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도저히 경공 질주의 속도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에 안법을 극한까지 돋운 화영루주가 미간을 좁히며 그것을 응시했다. 광채에 휩싸인 물체는 시시각각 커지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커졌을때쯤 화영루주의 눈에도 그 형태가 흐릿하게나마 들어왔고.


“......쌍극(雙戟)?”


의아한 목소리로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서주 전장의 한복판에 돌연 길쭉한 뇌광(雷光)을 휘감은 창이 벼락처럼 내리꽂혔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벽력탄 같은 뇌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일발의 벼락이 전장에 떨어지며 대지를 붕괴시킨다. 창에 깃든 막대한 진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땅거죽을 뒤흔들고, 그 아래 놓인 수라궁도들의 육신을 짓이겼다.


그야말로 모두의 시선을 일순간 앗아가는 일격이었는데, 시선을 빼앗긴 것은 언덕 위에 숨어 바라보던 화영루주도 마찬가지였다.


창격의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힘은 강력했지만, 실제로 전장에 끼친 피해는 크다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장에 우뚝 솟아난 쌍극의 생김새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위에 꽂혀있는 머리통이 기괴하게 비틀린 창의 주인인 까닭이었다.


“나찰극마......? 부궁주가 죽었다고?”


화영루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화아아악-


온몸에 기파를 휘감은 인영이 길쭉한 경공 기파를 이끌고 쌍극의 위에서 나타났다. 흐린 검격에 삽시간에 빛살같은 뇌광이 깃들었다. 전장을 저릿하게 휘감는 태청신공의 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끝의 머리통을 지지대마냥 가볍게 밟으며 도약한 소년이 그대로 지상을 향해 검격을 내리그었고.


콰르르르르르릉-!


천둥같은 울림이 사방을 따라 퍼져나갔다. 벼락으로 엮어낸 검격이 일순 지상을 가르며 거대한 일격으로 화한다. 비무제전 결승에서 나타났던 검법이었다.


전장에 난입한 소년을 보며 화영루주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받아쓰게. 급보(急報)일세. 은성의 정체는 암화(暗火) 백연으로 확인. 돌연 서주 전장에 현현한 그의 무공 성취는 짧은 기간에 더욱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며......동시에 청성산을 공격하러 갔던 부궁주 나찰극마를, 암화 본인이 격살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흑백의 여인들이 손을 바쁘게 놀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주 전장의 인근 언덕에서 왠 새떼가 푸드덕-날아올랐다. 곧 전 무림에 전해질 소식을 발목에 매달고서였다.



※※※



“창에도 재능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어느새 전투는 소강상태에 이른 시점. 백연을 비롯한 무인들은 전장에서 물러나 구축된 진(陣)에 모여 있었다.


수라궁의 공세 또한 주춤한 까닭이다. 전장이라 하여도 밤낮없이 싸움이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진을 치고 공방을 반복하며 싸움을 거듭해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이런 대규모 전장의 방식.


한쪽이 방어태세에 이미 들어간 덕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곳 서주와 의빈의 길목을 틀어막고 지키면 그만일 뿐이었으니까.


“언제고 제게 창을 배워볼 생각은......?”


반갑게 다가온 악예린의 말에 백연이 피식 웃었다.


“그냥 예린의 움직임을 따라해봤을 뿐입니다. 일전 안휘에서 보여줬던 투창술이 인상깊어서.”

“......그때는 많이 미숙했는데 잊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언제 헤어졌다 다시 만났냐는 듯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치는 당소하의 손짓도 가벼웠다.


“그 사이에 강해졌군. 이건 정말로 심한데.”

“친우가 강해지면 좋은 일 아니야?”

“넌 너무 빠르다. 재수없게.”

“아하하핫.”

“농이고, 잘 돌아왔다.”


모여든 무인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 우뚝 서서 당가 무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설향도 백연을 보고 눈짓으로 인사한다.


“사저는 잘 적응했나보네?”

“......저 사람도 성장하는 속도가 지극히 괴물인지라. 나는 가끔 궁금하군. 곤륜산에는 수맥이라도 있나? 그곳에서 자고먹고 하면 괴물이 된다던가.”

“궁금하면 와서 살면 되지.”

“내가 살아봤는데, 수맥이 있는 것 같아.”


그새 쑥 끼어든 유성이 거들었다. 백연을 향해 생긋 웃는 투명한 미소가 짙었다.


“나도 그곳에서 실력이 많이 늘었거든.”

“흐음.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겠다.”

“그럼 저도 한번 청해로......”


진지하게 언제쯤 곤륜산을 방문할지 논의하는 악예린과 당소하를 보며 백연이 머리를 짚었다. 그에 쿡쿡 웃음을 흘린 유성이 다가와 옆에 앉았다.


“새로운 무공? 깃든 기운의 형태가 달라졌네.”

“......기연을 만나서.”


백연의 답에 유성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네가 기연이라고 표현할 정도라고? 대체 무슨 일을 겪은거야?”

“나중에 알려줄게.”


천마의 이름을 함부로 꺼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흐린 웃음으로 대답을 갈음한 백연을 보고 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을 겪고 왔기에 이렇게 된건지.”

“뭐, 별다른건 없었어.”

“부궁주를 격살한게 별다른 일이 아니야?”

“음.”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 혼자 죽인건 아니니까.”

“청성산이 위험하다고는 들었어. 그래서 우리 측에서도 전력을 일부 뽑아 지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거야?”

“전부 물리쳤어. 이제 청성은 안전해.”


백연이 답했다.


“조만간 청성파의 무인들이 무당산에서 복귀하면, 곧장 이곳으로 지원을 오겠지.”


그때였다.


“그거 듣던 중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화악.


사방을 휘감는 거대한 기운이 맥동하며 주변에 내려앉았다. 즉시 고개를 쳐든 백연의 시야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걸어오는 노검객이 보였다. 무당파의 새하얀 도복이 바람에 물결처럼 흩날리는데, 그의 등 뒤를 따라 어렴풋하게 허공을 일그러뜨리는 중인 거대한 태극(太極)의 잔영이 엿보였다.


직전까지 펼치고 있던 무공의 여파인 모양.


“잘 돌아왔네. 심지어 부궁주 격살이라는 전공이라니......자네의 오성에 감탄을 금할수가 없군 그래.”


기쁜듯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는 현궁진인의 얼굴에 주름진 미소가 새겨졌다.


“그 검끝이 또다시 노부를 놀라게 할것이라 믿고 있네.”


그에 백연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네 소식을 들었다. 비무제전의 결승에서 새 검(劍)의 완성에 닿았다고.”


여전히 말라비틀어진 어조였다. 세상 무엇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을 듯한 메마른 음성이, 거대한 압박감으로 화해 이 순간 주변의 모두를 짓누른다. 초췌한 얼굴 속에 무감한 시선이 칼날같은 기세를 품고 백연을 똑바로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 전장에.”


화아아아아악-


음성에 깃든 진기 여파가 사람들의 머리칼과 옷자락을 마구잡이로 흩어내었다. 숨결 한마디에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일어난다. 단순히 걸어오는 존재감만으로도 압도적인 압박감을 일으킨다.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한두발 물러서며 그의 주변으로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다.


“베이지 않는 것이 있다.”


툭 던지듯 내뱉은 말. 어느새 한발 비켜선 현궁진인의 너머로, 큰 키의 당가주가 백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벨 수 있겠더냐.”


백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가주를 올려다보며 답하는 소년의 눈동자가 물결치는 자색으로 일렁였다.


“확인해 보시지요.”


그 말에 백연을 내려다보는 당가주의 입꼬리가 슬며시 움직였다 느낀것도 찰나.


키이이이잉-


막대한 공력이 휘몰아치며 백연의 코앞에 거대한 나선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동시에 소년의 인지가 수천으로 쪼개지며 사방의 시간이 얼어붙었다. 어느새 허공에 현현한 여휘가 하나의 벼락 줄기로 화하는 것이 숨쉬듯 자연스러웠다.


그와 함께 소년의 몸 주변을 따라 거대한 진기가 파도처럼 일렁이며 휘어들었고, 극히 찰나의 순간 검신에 막대한 진기가 켜켜이 쌓이며 별빛같은 섬광으로 화했다.


눌어붙은 시간 속에서 소년이 하나의 검법을 엮어낸 순간.


묵빛 비도는 인지를 뛰어넘어 백연의 앞에 돌연 현현했다. 사방을 쓸어버릴듯한 막대한 진기를 휘감은채였다. 그 속에서 백연은 여휘를 휘둘렀고.


다음 순간.


쩌어어어어어엉!


청명하게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펴졌다. 풍령이 깨지는 듯한 투명한 소리와 함께 산뜻한 바람이 원형으로 사방을 휩쓸었다.


모든 사람의 시야에 새겨진 것은 단 한줄기의 뇌광이었다. 뒤이어 바닥에 옅은 소리와 함께 정확히 두 조각으로 잘려나간 비도가 떨어져 내렸다.


잠시간의 적막이 스쳤고.


“네 검은 들겠다.”


천독이 무심히 말했다.


“놈의 육신에.”


작가의말

5월 4일 토요일은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재입니다. 5월 6일 월요일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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