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16
연재수 :
364 회
조회수 :
1,818,956
추천수 :
36,000
글자수 :
2,695,046

작성
24.05.11 18:10
조회
2,170
추천
63
글자
18쪽

권마(拳魔)(4)

DUMMY

※※※



백연은 머나먼 격전지를 감각했다.


이 순간.


자령안을 거둔 소년의 기감은 저 멀리까지 뻗어있었다. 천독과 검선이 궁주를 상대로 맞서 싸우고 있는 영역까지 전부.


족히 삼백여장은 넘는 거리임에도 닿는다. 자령안으로 압축시키지 않은 소년의 감각은 어느새 전장 전체를 관조할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로 화해 있었다.


처음부터 유달리 뛰어났던 감각은 그의 무공 성장 수위보다도 훨씬 예민하게 강해지는 듯 했고, 이제는 그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때문이었다. 소년이 보기 전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인 존재감.


찰나지간 뇌리에 때려박는 듯한 섬뜩한 살기(殺氣)가 뭉클 피어오른다. 일전 천독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욱 강렬한 존재감이 그의 모든 감각을 끌어당기고 압도한다.


그 속에서 백연은 커다란 분노를 읽었고.


[잡것들이.]


씹어뱉는 듯한 음성이 뒤늦게 발치를 따라 지천을 울렸다.


직후였다.


“......온다!”


백연이 번쩍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였다.


한순간 대기가 뭉개졌다. 저편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일어난 길쭉한 경공 여파가 한줄기 잿빛 선을 그렸고, 백연의 시선이 전장을 향한 순간 그것은 허공에 떠 있었다.


십척에 달하는 거인.


경공 여파를 추진력 삼아 한달음에 도약했는데, 그 형세가 마치 떨어지는 별과 다름없다. 그가 지나치는 대기마저 순간 잿빛으로 물들이는 거한이 양 주먹을 쥐고 무망탈백진의 한가운데로 낙하했고.


일권(一拳)이 작렬했다.


“......!”


콰아아아아아앙!


그가 떨어진 자리에서 벽력탄 같은 소음이 일었다. 직후 하얀 독안개로 덮여있던 전장의 한 가운데가 별안간 훅 찢어지며 갈라졌다. 그 가운데 선 거한이 두번째 주먹을 대지에 때려박는 동작이 무지막지했다.


주먹이 떨어짐과 함께 그의 앞에 있는 대지가 쩍쩍 갈라진다. 그와 함께 땅거죽이 쿠궁-소리와 함께 반뼘 정도 내려앉는다. 강대한 권격 여파가 뒤늦게 불러일으킨 돌풍이 거칠게 후욱 불어나오며 사방의 독안개를 흩어버리는 것이 찰나.


“어떻게......?”


공손령이 경악섞인 목소리로 내뱉는다.


그만큼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단 한움큼의 진기도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순수한 육신의 힘으로 내려앉은 수라궁주. 두번의 주먹질로 진법을 부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찢어지는 하얀 독무 속에서 우뚝 선 거한의 눈빛이 형형했다.


그것이 이쪽을 정확히 향한다 느끼는 것도 잠깐.


[놈들을 죽여라. 저 여인의 목을 취해야겠다.]


동굴같이 낮은 울림이 대지를 따라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동시였다.


“------!”


하얀 안개에 갇혀있던 압도적인 수의 수라궁도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며 괴성을 뱉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눈동자와 함께 그들의 기세가 돌연 일변(一變).


인해(人海)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흉포한 기세에 당가 무인들이 비도를 날렸으나, 통하지 않았다.


파바바바박!


핏물이 튀어오름에도 무시하고 직진한다. 압도적인 숫자의 진격. 그 중 대다수가 이쪽을 향한다는 것을 알아챈 백연이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


공손령이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안다.”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십시오. 붙잡히지 않을 정도로는 지연시킬겁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공손령의 시선이 문득 움직였다. 백연의 곁에 있는 당소하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그러나 당소하는 공손령을 보고 있지 않았다.


“뒈지기 딱 좋은 날이군.”


휘릭.


묵색 비도를 손가락 사이에서 휙 돌린 당소하가 입매를 비틀었다.


“백연. 온다.”


태연한 경고. 잠시간 당소하를 응시하던 공손령은 이내 대지를 박차며 뒤로 몸을 날렸다. 표홀한 보신경의 기파가 길쭉하게 이어지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손령은 이대로 협곡까지 도망갈 터.


이제부터는 목숨을 건 유인의 연속이었다.


“거리 조심해. 권역 안에 들어가면 위험해. 너희 모두.”

“알아. 백연 너도 조심하고.”


유성의 말에 백연이 흐린 미소를 지었다.


“노력해볼게.”


제각기 기파를 갈무리한 소년 소녀들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쩌억.


대기가 일그러졌다. 어느 순간 악예린의 코앞에 서 있는 것은 잿빛 거인이었다. 그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올랐다가 이내 잿빛으로 사그라들었는데, 경공 여파로 인해 압축된 공기가 육신을 타고 흐르는 것이었다.


“......!”


눈을 부릅뜬 악예린이 즉각 후퇴보법을 밟았고, 동시에 당소하의 손에서 여섯개의 비도가 발출되었다. 그러나 궁주는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고 손을 크게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정!


직후 허공에서 여섯개의 파문이 불티와 함께 피어오르다 잿빛 권역에 휩싸여 색을 잃었다.


그와 동시였다.


“......”


그는 인지하기도 전에 백연의 앞에 서 있었다. 공간을 격하고 이동하는 듯 보일 정도였는데, 정작 백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확인한다.


천천히.


사령귀의 갈라진 시체에 손을 댄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전부 죽었군.”


뇌까리는 음성이 짙었다. 한없이 낮아 땅속으로 꺼져버릴 듯한 울림이 사방을 타고 흩어진다. 잿빛 강철로 이루어진 것만 같은 육신 위에서 일렁이는 적안(赤眼)이 핏빛으로 타올랐다.


“만금장주. 이리 희생을 치뤘음에도 약속한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득.


단순히 주먹을 움켜쥐는 동작에 대기가 찌그러진다.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물결처럼 퍼진다. 그 앞에 선 백연이 눈을 크게 떴다.


찰나.


온몸이 굳어든다. 압박감에 호흡이 틀어막히는 듯한 감각.


“다음은 네놈의 목이다.”


그러나 온몸에 느껴지는 압박감보다도, 귀에 들리는 내용이 놀라웠다.


그 속에서 백연은 빠르게 생각했다.


‘만금장주? 무슨 대가를......’


정보였다. 만금장이 사도 육진을 조종하고 있다는 심증은 있었으나 확신은 없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귀에 틀어박히는 내용은 그것이었다.


삽시간에 머리가 회전한다. 뇌리에서 사도육진의 이름이 재빠르게 스친다.


‘신주흑림, 수라궁은 확실히 만금장과 같이 행동. 패흑련은......?’


알아봐야 할 일이었다. 어떻게 만금장이 사도 육진을 손에 쥐고 흔드는지.


‘여기서 살아나가는게 우선이지만.’


생각과 동시였다. 움켜쥔 주먹이 움직이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함께 백연은 그대로 땅을 박찼다. 발바닥 용천혈을 따라 켜켜이 쌓인 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며 소년의 신형을 가속시켰다.


그 순간 섬뜩한 기운과 함께 거대한 주먹이 방금전까지 백연이 있던 자리를 스쳤다.


파아아아앙!


스쳐지나간 주먹에서 압도적인 풍압이 일어났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백연의 몸이 주욱 떠밀릴 정도의 힘.


순간적으로 몸을 뒤집어 균형을 되찾은 백연이 착지하는 순간, 그의 옆으로 거대한 신형이 가속했다.


그를 더 공격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몸놀림.


“남평과 금안나찰의 몫은 잠시 미루지.”


귓가에 와닿는 궁주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그와 함께 잿빛 신형이 한줄기 선율로 가속했다. 육중한 거체가 진각을 내딛은것 만으로 대지가 쩌억 갈라지며 신음한다.


이대로 놔두면 공손령은 단번에 따라잡힌다.


‘지연을 시켜야......!’


그것을 인지한 백연이 몸을 회전시키며 발검(拔劍). 뇌인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고.”


키잉-


시야 위편에서 흑백의 진기가 물결치며 회전했다. 직후 거대한 태극문양의 검기가 낙하. 그대로 거인의 머리 위에 떨어지며 그의 신형을 집어삼킨다.


허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쿠웅.


걸음을 내딛던 수라궁주가 자세를 살풋 뒤틀어 위를 향해 권격을 올려쳤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태극모양의 검기와 잿빛 권역이 맞닿는것도 잠시.


쩌어어어어엉!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난 검기 조각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시야를 수놓는 흑백의 경파 조각이 이내 권역에 닿으며 잿빛으로 녹아내린다.


그럼에도 백연의 옆에 장포를 펄럭이며 착지한 검선의 얼굴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아직 노부와 싸울 시간이 많이 남았거늘.”


궁주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뒤틀며 주먹을 내쳤다. 허공을 향해 내뻗는 일격이 재빨랐다.


직후였다.


쩌저정!


별안간 나타난 세줄기의 흑색 선율이 주먹과 맞닿으며 거대한 파문을 형성. 하나하나에 실린 힘이 백연에게 던졌던 비선유성표보다도 배는 무거웠다. 그로 인해 일어난 여파에 머리칼이 줄기줄기 흩날린다.


“내 목을 원한다더니.”


타닥.


바닥에 내려앉는 암녹빛 장포가 진했다. 표홀히 나타난 천독이 메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것을 노리는군.”


그 음성에 무언가 더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백연이 눈을 살풋 치켜떴다.


‘......진심인가?’


한순간, 소년은 천독이 공손령의 생사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느꼈다.


‘거짓? 진짜?’


간파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외려 그의 백회혈은 저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걱정인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생사에 분명히 신경을 쓰고 있다. 어쩌면 저건 진실을 섞어 잘 꾸며낸 기만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순간, 궁주가 느낀것이 백연과 같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잿빛 거한의 입매가 뒤틀렸다.


“궁금하군. 내가 저년에게 닿는것을 네놈이 막을 수 있을지.”

“......”


천독은 답하지 않았고.


“날뛰어 봐라, 천독.”


궁주는 걸음을 내딛었다. 그때부터였다.


쩌억.


대지가 갈라지며 거한의 경공 기파가 길쭉하게 늘어났고.


키이잉-


동시에 기묘한 바람소리와 함께 여러 무인들의 신형이 희끗한 궤적으로 화했다. 모두가 급박한 기색을 띈 몸놀림이었다.


쿠구구구궁! 쩌저정!


대지를 따라 내려찍히는 자욱이 강렬했다. 한순간에 공손령의 자취를 뒤따라 이어지는 잿빛 선율. 그 바로 뒤를 따라 세 줄기의 신형이 바람처럼 따라붙었고, 다섯 궤적이 앞뒤를 다투며 희끗한 빛살마냥 전진했다.


아홉에 달하는 궤적이 얽혔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대지를 따라 내달렸다. 장강을 넘어서는 것이 순식간이었는데, 공손령이 지나친 자취를 따라 전진하는 이들의 속도가 한없이 쾌속했다.


그 한참 뒤를 따라서 물결처럼 일어난 수라궁도들이 지천을 울리며 전진하기 시작했고, 당가와 아미파를 비롯한 여러 무인이 수라궁의 파도에 섞여들어 그들이 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막고자 들었다.


가장 앞서는 것은 단연코 수라궁주였다.


허나 그는 결코 멀리 앞서가지 못했다. 순간순간 공간을 격하듯 나타나는 천독 때문이었다. 당가주의 경공 여파는 전혀 눈에 보이지가 않았는데, 별안간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궁주의 옆에서 표홀히 솟아올라 수시로 일격을 날린다.


두 초월자가 잿빛 권역의 잔영과 묵빛 비도의 선율을 늘어뜨리며 쉴새없이 교차하는 광경. 한번한번의 충돌 여파가 뒤에 물결처럼 번져왔는데, 그것을 회피하며 내달리는 것 만으로도 숨이 벅차오를 지경이었다.


그 사이 번뜩이며 간간히 나타나는 것은 길쭉한 구름결같은 제운종 기파를 끌고 떨어지는 검선의 태극검이었다.


그 광경들을 눈에 담으며 백연은 기파를 그러모아 입을 열었다.


[진입하면 부탁해.]


가장 앞서나가는 백연의 전음이 뒤편에 따라오던 나머지 다섯의 무인들에게 전해졌다. 직후 그의 머릿속에 화답하는 부드러운 음성이 파고든다.


[신경쓰지 말고 먼저 가도 좋아요. 뒤는 맡겨주세요.]


악예린의 답을 듣는 것과 동시에 백연은 다시금 진기를 그러모았다. 그와 동시에 소년의 발치를 타고 시린 뇌광이 튀어올랐고.


콰르르르르릉!


비룡축전의 굉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흐릿한 백광으로 화했다. 한달음에 제운종을 펼치던 검선의 옆까지 따라붙는 움직임. 뇌리에 살풋 놀란듯한 노검객의 음성이 틀어박힌다.


[내력은 괜찮은가? 자네......]


그의 축기량을 걱정하는 목소리. 그에 백연은 흐린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사령귀를 격살하기 위해 여뢰를 펼치고, 이어지는 전투에서 힘을 크게 소모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시점만 정확히 맞춰 주시지요.]

[알겠네. 그렇잖아도 준비하고 있으니.]


우웅-


흩어지는 제운종 기파의 뒤로 옅은 기운이 일렁인다. 찰나지간 검선의 몸을 따라 흐릿한 태극의 형상이 둥실 떠오른다. 곧이어 그것이 압축되어 송문고검에 켜켜이 쌓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쌓이는 중이었다. 일검에 협곡을 가를 힘이.


그 순간이었다. 별안간 천독의 신형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눈에 담자마자 검선이 한걸음을 더 내딛었고, 흰 장포를 펄럭이며 궁주의 왼쪽 등허리를 점한 노검객의 손이 크게 움직였다.


후욱-!


무당파 면장의 기파가 뒤틀리며 주름진 손아귀에 갈무리된다. 권역 내에서 접촉하기 위함인가. 바깥으로 흘리는 진기 한터럭 없이 온전히 체내에 기운을 담은채로 검선이 장법을 내질렀다.


“헛짓을.”


찰나에 몸을 뒤집은 수라궁주가 그대로 손을 휘저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잿빛 손바닥이 노검객의 손을 휘어잡을듯 크게 움직이더니, 한순간 두 무인의 손이 흐릿한 잔영으로 화했다.


파바바박!


일합에 수십번의 수가 교환되었다. 직후 인상을 크게 찌푸린 검선의 소맷자락이 주욱 뜯겨져 나갔고, 노검객의 팔마저 아작나기 직전.


쩌어어어어엉!


비도 한자루가 그 사이에 끼어들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일련의 교전이 전부 찰나에 일어났다.


그런 도중에도 수라궁주의 질주는 크게 느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충돌의 여파마저 보신경 기파로 갈무리해 추진력을 더하는데, 십척에 달하는 거구임에도 압도적인 속도였다.


한합 한합이 전부 간극을 수백으로 쪼갠 찰나에 스친다. 초월자들의 영역.


자령안을 극성으로 일으킨 상태에서도 흐릿한 폭풍에 가깝게 보이는 초식들의 교환이었다.


이 순간.


희끄무레하게 일그러지는 주변의 풍경이 꿈결처럼 스친다. 인지를 넘어선 질주 속에서 소년의 감각이 수축하며 몇개의 점으로 수렴했다.


저 앞에서 협곡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옅은 기척부터, 그의 주변에서 질주하는 두명의 초월자와 검선까지.


육신이 바람이 된것 마냥 내달리던 소년의 시야 한켠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이유이기도 했다.


“......!”


백연이 문득 시선을 쳐들었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커다란 절벽의 그림자가 시야의 양 옆을 뒤덮는다.


우뚝 선 벽은 깎아지른 듯이 험준했고, 칼날처럼 치솟은 절벽 사이로 흘러드는 장강의 물결이 고고했다.


그 사이.


그들보다 한발 앞서 협곡에 진입한 인영이 백연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내달리고 있던 공손령의 모습이었다.


‘이러다 따라잡히는......!’


그 순간이었다. 별안간 퉁-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수라궁주가 사라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천독의 신형도 눈앞에서 소멸.


“......!”


직후였다. 질주하던 공손령의 옷자락이 돌연 잿빛으로 물들었고,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팔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콰드드득!


한순간 허공으로 치솟은 핏물이 삽시간에 색을 잃어버린다. 공손령의 한 팔을 통째로 뜯어버린 수라궁주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려던 순간, 천독이 궁주의 손아귀 앞에서 공간을 격하며 솟아올랐고.


쩌엉!


굉음과 함께 거대한 파문이 허공을 물들였다.


허나 짧은 충돌은 수라궁주에게 더 유리한 일합이었다. 권역 안에 진입한 천독의 비도를 짓누른 수라궁주가 각법을 올려침과 동시에 천독의 신형이 크게 뒤로 물러났다. 초췌한 사내의 입가에서 울컥 흘러나오는 핏물이 백연의 눈에도 들어왔다.


“흐음.”


뇌까리는 것과 동시에 떨어지는 거대한 손바닥.


그 순간이었다. 백연은 생각하기도 이전에 걸음을 내딛었고, 시린 뇌광으로 화한 소년의 신형은 찰나지간 천독의 곁에서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키잉-


여휘의 검신이 바르르 떨리며 기묘한 화음을 내었다. 검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뇌리에 없었다.


천독의 곁에 뚝 떨어진 소년의 일검이 흐릿한 빛살로 화한다.


유려한 발검의 속도는 한순간 전장에 있는 누구보다도 쾌속한 일격.


콰르르르르릉-!


번뜩이는 검광과 함께 우렛소리가 터져나왔다.


발검식(拔劍式). 뇌인(雷印).


평소와 같은 뇌광의 파문은 없었다. 검신 안에 기운을 전부 갈무리한 탓이었다.


그 일격이 정확히 수라궁주의 손을 스쳤고.


푸확!


핏물이 터져나왔다. 한순간 궁주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지했다.’


단 한번의 합으로 백연의 검법에 깃든 공능을 깨달은 듯 했다. 동시에 지금 자신이 함정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사실마저 알아채는 듯한 눈길.


그러나 그들은 이미 협곡 안에 진입해 있었다.


“......네놈들이.”


그 순간이었다.


우웅-


대기가 떨려온다. 동시에 시야 위편으로 물결처럼 번져가는 거대한 태극이 눈에 들어왔다. 압축에 압축을 거듭한 검기는 어느새 그 검로를 거대한 구름마냥 부풀리는 중이었다. 일순 선극의 일검이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진기의 파문.


동시에 늙수레한 육합전성이 웅혼한 울림과 함께 터져나왔다.


[태극검(太極劍). 만월(滿月).]


직후 거대한 원형의 검기가 협곡에 추락하듯 내려찍혔고.


쿠구구구구구궁-!


협곡의 양끝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속에서 움직인 천독. 공손령이 짐짝이라도 된것 마냥 한손으로 움켜쥐고 그녀를 그대로 일으켜 바깥으로 던지듯 떠민다.


백연의 눈에는 보였다. 튕겨나가듯 멀어지는 공손령의 몸을 만천화우의 진기 요결이 감싸고 있다는 것이.


붕괴하는 협곡의 사이로 공손령의 신형이 사라진다. 직후 그 자리에 거대한 바위와 흙더미가 떨어지며 출입이 가능한 길을 전부 틀어막는다.


쿠구구구궁-


끊임없는 붕괴의 소란 속에서 백연의 곁으로 떨어지는 백색 신형.


“참으로 아슬아슬했네.”


송문고검을 쥔 노검객이 그의 오른편에 우뚝 서며 수염을 쓸었다. 뒤이어 왼편에서 솟아오르듯 나타난 천독이 비도 한자루를 쥐고 백연을 힐끗 쳐다본다.


“이 자리에서.”


메마른 음성이 묵직한 기운을 품고 흘러나온다.


“결착을 내겠다. 궁주.”


그와 함께였다. 어느새 상처를 재생한 수라궁주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큼직한 걸음으로 세 사람의 앞에 선 거한이 이를 드러내었다.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군. 이곳은 준비된 무덤이었나.”


쿠웅. 쿠구구궁.


떨어지는 돌과 바위의 빗속에서 권마(拳魔)가 적안을 빛내며 웃었다.


“좋다. 끝장을 보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8 기련산 +5 24.06.04 1,867 58 14쪽
277 천살문(2) +6 24.06.03 1,877 56 12쪽
276 천살문 +6 24.06.01 2,074 56 18쪽
275 떠나는 바람 +5 24.05.31 1,957 53 15쪽
274 휴식(3) +6 24.05.30 1,944 52 16쪽
273 휴식(2) +6 24.05.29 1,951 60 17쪽
272 휴식 +9 24.05.28 1,976 63 16쪽
271 검흔(3) +7 24.05.27 2,034 60 16쪽
270 검흔(2) +8 24.05.24 2,155 67 20쪽
269 검흔 +9 24.05.23 2,055 64 15쪽
268 천라방(2) +6 24.05.22 2,080 59 16쪽
267 천라방 +6 24.05.21 2,055 61 15쪽
266 천독(3) +7 24.05.20 2,008 62 15쪽
265 천독(2) +7 24.05.18 2,154 58 18쪽
264 천독 +7 24.05.17 2,024 64 15쪽
263 무극(無極)(3) +10 24.05.16 2,058 64 19쪽
262 무극(無極)(2) +6 24.05.15 2,083 62 22쪽
261 무극(無極) +10 24.05.14 2,083 65 20쪽
260 권마(拳魔)(5) +8 24.05.13 2,086 61 17쪽
» 권마(拳魔)(4) +9 24.05.11 2,171 63 18쪽
258 권마(拳魔)(3) +8 24.05.10 2,018 63 15쪽
257 권마(拳魔)(2) +6 24.05.09 2,050 60 16쪽
256 권마(拳魔) +6 24.05.08 2,134 64 16쪽
255 서주(4) +6 24.05.07 2,158 64 16쪽
254 서주(3) +7 24.05.06 2,132 65 14쪽
253 서주(2) +7 24.05.03 2,453 66 17쪽
252 서주 +7 24.05.02 2,390 64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2,200 67 16쪽
250 푸른 별(8) +6 24.04.30 2,225 61 16쪽
249 푸른 별(7) +8 24.04.29 2,225 67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