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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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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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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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방(6)

DUMMY

“확실해?”


백연이 물었다.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

“응.”


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에 찬 답이다.


“네가 열심히 조사하는 동안 나도 따로 무기들을 좀 살펴봤지. 금이 간 비룡의 무기, 그리고 나머지 결함이 있는 두 자루. 모두 각기 같은 방식의 합금을 사용했어.”

“그것만으로 확정지을 수 있어?”

“아니. 하지만 무기를 만드는 방식은 그 사람의 습관이야. 망치를 휘두르는 각도, 쇠를 두드리는 횟수, 금속을 쳤을때 울리는 진동의 크기와 검신의 날을 세우는 정도까지 전부 다.”

“그걸 알아냈다고?”

“네가 무인들의 움직임을 볼때 그 사람의 행동과 버릇을 분석한다고 했지? 그거랑 크게 다를바 없어. 나는 야장들이 만든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습관을 지녔을지 생각해보는거야.”


터무니없는 말을 쉽게 입에 담는다. 물론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만든 무구는 대충 보아도 누가 만들었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인의 특색이 뚜렷하게 들어나는 명검의 이야기.


균일한 품질과 형태로 내놓고자 다듬은 수련용 무기에 가져다 댈 이야기가 아니다. 검을 이루는 쇳덩이의 미세한 성질을 기반으로 야장의 습관을 알아냈다는 소리인데, 보통 눈썰미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일례로, 할아버지께선 생전 작업하실때 신기에 다다른 망치질을 보여주셨어. 겉보기에는 그냥 휘두른 것 같지만 한번에 모든 면에 균일한 충격을 주셨지. 앞면이건, 뒷면이건, 가운데건, 옆이건. 덕분에 할아버지가 만든 무기는 그 균형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동일해. 일부러 어긋낸게 아니라면.”

“너도 그게 가능해?”

“아니. 나는 그런 손기술은 부족해.”

“하지만 나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백연이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장문인께서 가지고 계신 새하얀 검. 운룡검(雲龍劍)은 천관이 생전 마지막으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신검(神劍)이라 부를 물건이지만 백연은 그 검과 선아가 만든 여휘검에서 뚜렷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방금 그녀가 설명한 습관 같은 것은 느끼지도 못했는데.


“못 느끼는게 보통이야. 아마 나도 죽을때까지 그런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할거고. 그리고 그 기술은 필요한 것이라기 보단 그냥 할아버지의 무의식적인 습관 같은 것이었어.”

“습관이라.”

“한번은 나도 따라하고 싶어서 망치를 두들기다가 검의 오른면과 왼면을 거의 동시에 따닥 쳐본적도 있었는데. 그날 할아버지한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혼났지. 필요없는 잡기술이라고.”


선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무튼, 그건 진짜 쓸데없는 기술이지만. 중요한건 모든 야장의 손에는 습관이 묻어있고 그 습관이 이 세자루 무구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거야.”

“어떤 면이 그렇지?”

“합금의 성질부터 거의 동일해. 또 검을 내리칠때 혼자 작업을 한게 틀림없어. 보조를 쓰지 않고 혼자 집게를 쥐고 검을 두들기는 사람이야. 미세하게 쇠의 경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는 걸로 보아 오른손잡이고.”


이어지는 설명이 길었다. 백연은 채 반절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선아가 무기에서 지적한 점들이 확실하게 조사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기 모두가 일정하게 내재된 균열이 있어. 그게 아마 쇠의 강도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

“균열?”

“균열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기맥과 비슷한 거야. 쇠에 기가 흐르는 미세한 통로를 담아내는 작업인데, 철야방의 사람들처럼 내공심법을 다룰 줄 아는 야장이 아니라면 만드는게 불가능한 방식이지. 하지만 이 무기들은 그 형태가 조금 어설퍼.”


음식을 다 치우고 앉은 두 사람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설명을 마친 선아의 앞에는 무기 세자루가 전부 올라와 있었다. 검 두자루와 묵직한 도 한자루.


그의 눈에는 특색없는 수련용 무기처럼 보이나 선아는 그것이 아니라고 했다. 호언장담한 만큼 백연은 그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나머지 스물 네 자루의 무기도 같냐는 것.


“무당산에 올라가서 확인하고 내려오는게 맞을까? 한번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아가 물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한 백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운현에서부터 무당까지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반나절.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무인인 백연의 걸음으로도 그랬다. 올라갔다 내려오면 다음날 오후일 터인데, 그렇게 되면 내일 하루를 통째로 날린다 봐야 했다.


“배제하자. 네 말대로 세자루 무기가 모두 균일하게 같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나머지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게 옳아.”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반드시 같다고 가정하고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네 말대로라면 무기들에 하자가 생긴 것은 유통과정이나, 보관의 문제가 아니야. 또 중간에 누가 끼어들어 의도적으로 훼손한것도 아니란거지?”

“응. 이건 야장이 한 실수야. 아니, 실수가 아니라 의도겠지.”

“단 한명. 그 사람을 찾으면 해결이겠네.”


백연이 선아를 쳐다보았다.


“네가 말한 습관들, 그것만으로 누군지 찾아낼 수 있어?”

“......조금 복잡해. 일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잠깐 보는걸론 어려워. 무기가 아니라 사람을 분석하는건 또다른 문제라.”


통상적인 습관은 겹치는 사람이 꽤 있다. 미세한 점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만큼 자세하게 모두를 조사하고 다니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의심가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추려야 한다. 그리고 백연은 이미 몇몇을 생각하고 있었다.


“철야방에서 무당파의 무기 제조를 맡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몇명 없어. 그중에서도 의심되는 사람이라 하면......우선 내일은 철야방이 아니라 다른 곳을 좀 다녀오자.”

“아까 말한 그 사람?”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은, 탁 노인을 찾으러 갈거야.”



※※※



다음날 아침.


“여기가 맞나? 아무것도 없는데.”


퉁명스레 중얼거리는 팽악의 목소리가 큼직하게 울렸다.


세 사람은 아침 일찍 철야방에서 만나 이동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운현 중심 시가지에서 한참 떨어진 강가.


도심과는 거리가 먼 강가에는 초가집들이 드문드문 거리를 두고 서 있는데, 하나같이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소이다. 어떤 도시를 가나 있기 마련인 장소였는데, 이곳은 개중에서는 상당히 상태가 좋은 모양이었다.


“철야방주가 확인해줬습니다. 여기가 맞아요.”

“더럽게 조용하군.”


아직 해가 중천에 이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까지 감안하면 아직 민초들이 일어나 활동할 시간이 아니었다. 덕분에 초가집이 늘어선 강가는 한없이 고요했다.


간간히 길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과, 저 멀리 살얼음이 낀 강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만이 얼어붙은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풍경일 따름이었다.


“정말 맞나? 야장이라는 인물이 살법한 곳으로는 보이지 않아. 은퇴했다손 치더라도 돈이 많을 인간이 이런 곳에 살고있을 이유가 없는데.”

“저도 의아하긴 했는데......”


백연이 고개를 돌렸다. 마침 훅 불어온 한줄기의 바람이 품고 있는 옅은 열기가 뺨에 느껴졌다.


찬 겨울바람과 어울리지 않는 불꽃의 기운이다. 백연의 시선이 하늘 저편에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연기를 응시했다. 강가에 늘어선 초가집들 중, 가장 외딴 구석에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맞게 온것 같습니다.”


밥을 지을때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 바람이 품고 있는 것은 구수한 쌀 냄새 대신 매캐한 목탄과 금속의 향이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걸어 초가집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모습이 조금 더 잘 보였다. 다른 초가집들보다 먼 곳에 있어 처음에는 알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허름한 초가집인 것은 맞았으나, 초가집을 둘러싼 낮은 울타리와 집 뒤편으로 이어진 커다란 지붕 하나가 그 존재감을 뚜렷이 과시하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 집으로는 안보이네요.”

“흐음.”


백연의 말에 팽악이 숨을 들이쉬었다.


“이봐, 주인장......!”


한껏 목청을 높인 그가 외치려던 그 순간.


콰앙!


묵직한 폭음이 초가집의 뒤편에서 터져나왔다. 뒤이어 거친 기침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바깥으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콜록, 콜록. 아이고.”


눈을 반쯤 뜬 노인은 얼굴과 손을 따라 검댕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잿더미에 한바탕 구르고 나온듯한 형상이었는데, 손 마디에 새겨진 옅은 화상 자국이 곧바로 눈에 띄었다. 깡마른 몸을 지녔으나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고 손끝이 뭉게져 있는 것이 한눈에 보아도 그 노인이 쇠를 만지는 사람임을 알게 해주었다.


“켈록, 켈록, 흐어어. 죽겠구먼.”

“여기, 물좀 드세요!”

“으, 으응?”


언제 움직였는지 노인의 곁에는 선아가 물을 한바가지 들고 서 있었다. 그녀가 건넨 물을 얼떨결에 받아든 노인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검댕이 잔뜩 묻은 얼굴을 소매로 닦아낸 노인이 눈을 몇차례 깜빡이더니 백연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댁들은 뉘슈? 여기 처자는 누구고?”

“철야뱡에서 왔다.”


팽악이 나서서 대답하자 노인의 시선이 팽악을 위아래로 슥 훑었다.


“철야방에선 댁같은 사람 안받는데. 딱봐도 무인의 근골이구먼. 어깨가 수직으로 벌어져 있고, 어디보자. 등 뒤에 도는 한손하고 반 길이로 잡는건가? 절기를 내칠때 두손으로 잡기도 하겄어. 무게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무겁고.”


혀를 쯧 찬 노인이 손을 저었다.


“돌아가슈. 나는 이제 더 이상 주문 안받으니께. 댁의 그 대도(大刀)는 충분히 명품이야. 조금 손보면 나아질 곳이 없는건 아니지만서도.”

“미친 늙은이였나?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줄 알고......”

“잠깐만요.”


백연이 팽악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는 무기를 만들어달라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철야방에서 일하셨던 탁 노야(老爺)가 맞으시겠죠?”

“......그렇네만?”

“몇가지 여쭐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한달정도 전에 철야방을 그만두셨다고. 그 직전에 철야방에서 무당파의 수련용 무기를 납품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에 관해 궁금한 것이 좀 있습니다.”


노인이 입매를 좁혔다. 백연을 가늠하듯 훑어보던 노인이 이윽고 몸을 홱 돌렸다.


“들어오슈. 뭐가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이 처자 마음씨가 고와서 시간 내는거여. 안그래도 바쁜데......”

“감사해요, 탁 야장님!”


끼익.


초가집의 문이 열렸다. 선아가 먼저 따라들어가고 팽악과 백연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슬쩍 팽악의 표정을 살피자 굵은 눈썹이 불만이 가득한 듯 찌푸려져 있었다.


“지금 일치면 안됩니다.”

“그 정도 생각은 한다. 다 끝나고 모가지를......”

“그것도 안됩니다.”

“허.”


어처구니 없다는 듯 한숨을 쉰 팽악이 등의 도를 슬쩍 풀어 손에 쥐었다. 그것을 가늠하듯 살핀 그가 입매를 비틀었다.


“내 도가 부족한 곳이 있다? 쓸데없는 개소리.”


중얼거리는 팽악을 무시한 백연이 초가집 안으로 걸음했다.


단촐한 집이었다. 벽은 한풍이 들지 않게 종이 몇장이 덧대어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붙어있지 못하고 끄트머리가 벽에서 떨어져 있다. 바닥은 나무 아래로 흙 냄새가 풍겼고, 방 안에 놓인 가구라고는 옷가지를 넣어두는 자그마한 장(欌)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장에 붙은 작은 쇠장식은 삭막한 집안의 형태와는 전혀 달랐다. 섬세한 손기술의 극치. 검을 휘두르는 작은 무인의 조각이었는데, 새하얀 금속으로 이루어진 질감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었다.


대단한 작품이었다. 방안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던 선아가 장식을 보고 감탄을 뱉을 정도로.


“와아, 세상에! 이런 기술이라니.”

“흐음. 그 정도냐?”

“팽가 가문에서도 이런것 본적 있어요? 쉽지 않은 기술이에요. 아마 야장께서 직접 만드신 것 같은데......”

“저렇게 새하얀 것은 본적 없다.”

“그건 이게 가백금(假白金)이라 그래요.”


팽악에게 설명해주는 선아의 표정에는 옅은 열의마저 어려 있었다. 그만큼 야장의 손기술이 뛰어나다는 소리겠지. 백연의 눈으로 보아도 뛰어난 것이 느껴지는데, 선아의 눈은 더할 것이었다.


“그건 실패작이여. 감탄할 필요 없어.”


그때 탁 노인이 돌아왔다. 그새 씻고 왔는지 검댕이 없이 말끔해진 얼굴이었다.


“실패작이라뇨? 이게 어떻게 실패작이에요!”

“원래 그것을 만들려던게 아니니깐. 쇳덩어리를 하루종일 주물거리다 다 말아먹고 그냥 머리 좀 식히려고 만든거여.”

“이런 조각의 가치가 얼마나 비싼데요. 가백금 공예는 수요도 많고.”

“도검장이 도검 말고 다른거 만들어서 뭐혀? 내가 돈이 없는것도 아닌데.”


선아의 반발에 손을 내저은 탁 노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팔짱을 낀 그가 세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튼, 그건 치워두고. 그래서 왜 오셨다고?”


백연은 지체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었다. 지금 눈앞의 탁 노인이 보여줄 반응.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것에는 많은것이 필요치 않다. 그가 한번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선아가 탁 노인이 일하는 모습을 한번 살피면 될 일이다.


“철야방에서 납품한 무당파의 수련용 무기에서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하자가 있는 무기가 스물 일곱자루가 나왔죠. 그 덕분에 여기 팽악이 크게 다칠뻔 했고요.”

“하자? 철야방의 물건에서?”


탁 노인이 당황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럴리가 없다니. 팽가의 소가주가 그것 때문에 뒈질뻔 했단 말이다.”

“허어. 헌데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여길 찾아와?”

“노야께서 철야방을 그만두신 것이 무당파에 무기를 납품한 시기와 겹친다고 알고 있습니다.”


노인이 턱을 매만졌다.


“맞지. 납품이 끝나고 그 직후에 철야방을 나왔으니. 여튼 그래서 내가 범인으로 의심되어 찾아왔다?”

“꼭 그런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확인은 해야지요. 혹시 일에 대해 알고 계시는게 있습니까? 혹 수련용 무기를 함께 만든 야장분들이나......”


노인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 호흡에서 백연은 별다른 변화를 읽을 수가 없었다.


‘딱히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윽고 탁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층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일단 나는 아니구먼. 내가 무당파의 수련용 무기를 같이 만든건 맞는데, 평생 내 무기에 하자가 있었던 적은 스물 세살 이후로 없어. 헌데 말한다고 믿어주긴 하나?”

“확실히 확인할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뭔데?”

“노야께서 일하는 모습을 한번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에 탁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댁들한테? 댁들이 그걸 봐서 뭘 알 수 있는데?”

“저희는 모르지만.”


백연이 손을 뻗어 선아의 어깨를 짚었다.


“얘는 압니다.”

“......처자가?”

“야장, 선아라고 해요. 탁 야장님께서 기분 나쁘실 수 있지만, 저희도 범인을 한시 빨리 찾아야 하는지라......죄송해요.”


고개를 살풋 숙이며 말하는 선아의 모습에 탁 노인이 볼을 긁적였다. 이윽고 잠시 고민하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슈. 망치 두들기는 것만 보여주면 되지?”


탁 노인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들어온 방향이 아닌 집의 뒤편에 있는 커다란 지붕 아래였다. 그곳에는 백연이 예상한대로 적당한 크기의 화덕과 쇠붙이, 그리고 망치를 비롯한 야장의 물건이 있었다.


이곳이 탁 노인이 철야방에서 나온 뒤 개인적으로 마련한 간이 대장간의 모습인 듯 했다. 여러모로 황량하던 초가집보다 훨씬 공을 들인 공간임이 눈에 보였다. 허나 백연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자, 불질을 해야되니까 좀 물러들 나봐. 어차피 또 실패할 것 같지만......”


중얼거린 탁 노인이 집어든 것은 큼직한 돌덩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철광석이 아니었다. 백연의 눈에도 익숙한 덩어리.


그제서야 백연은 방 안의 가백금 조각이 왜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탁 노인이 손에 든 덩이는 분명히 백철 광석. 백철 광석의 주조에 실패해 나온 부산물이 탁 노인의 조각이었던 것이다.


그 말인즉슨.


“백철 무기를 주조하시려는 겁니까?”

“응? 맞는데, 댁이 백철을 어떻게 아나? 야장들도 잘 모르는 건데.”

“그건, 제가 이런걸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백연이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슬쩍 뽑아보였다. 손가락 한 마디정도 드러난 여휘검이 대장간 안에 흐린 빛을 뿌렸다. 그러나 그것을 마주한 탁 노인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배, 배, 백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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