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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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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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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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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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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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DUMMY

쭈뼛쭈뼛 무대 위로 올라오는 주선.

노헌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190cm는 될 것 같은 엄청난 키.

부끄러움이 많은 편인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진짜 피아노 치기 좋은 손인데.】


현묵의 말대로 주선의 손은 투박하면서도 거대했다.

건반으로 따지면, 도에서 다음 음계의 미까지는 닿을 듯한 정도.

피아노는 손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유리한 악기였다.


“마지막으로 전체 대상 호명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하린!”


그 순간 호명된 그녀의 이름.

이따가, 무대에서 보자는 말을 확실하게 지킨 하린은 노헌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상장은 각 수상자의 집으로 배송될 예정이며, 이 자리에선 장학금 수여만 진행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한 명씩 흰 봉투를 나눠주는 심사위원.

노헌 역시 하린이 받은 직후, 장학금을 건네받았다.


‘안 그래도 요즘 지갑이 가벼웠는데.’


너무나도 예상치 못했던 학년 대상이었기에 노헌은 마치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상으로 전국 신학기 피아노 콩쿨, 서울 예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순식간에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노헌이 멍하니 서 있던 그때.


“노헌아··· 그, 사진 찍어줄까?”


하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아, 사진 좋지!”


비록 예선이었지만, 오늘은 노헌이 처음으로 상을 탄 날이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은 필수.


찰칵―


하린은 피아노 앞에서 흰 봉투를 들고 환하게 웃는 노헌을 찍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말을 내뱉는 그.


“하린아, 너도 같이 찍자.”

“어? 나도?”

“너도 오늘 전체 대상 탔잖아. 우리가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또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 순간.


“그래, 어서 노헌이 옆에 서봐, 내가 찍어줄게.”


김준서가 나타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실수한 것에 침울해 보였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다시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이 정도면 됐지?”

“좀만 더 붙어.”


하린은 준서의 말에 따라 노헌의 옆에 살며시 다가갔다.


“그래서 사진에 나오겠냐? 더 붙어.”

“됐지?”

“더, 더, 더, 더, 더, 더. 좋았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준서는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좋아, 잘 찍혔다.”


그랜드 피아노 앞, 서로의 어깨를 다정히 기대고 있는 노헌과 하린의 모습.


‘나 사진작가 해도 되겠는데?’


준서의 욕망이 가득 담긴, 최고의 역작이었다.



♪♪♪



예선이 끝났음에도 연습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 주가 콩쿨 본선, 전국의 학생들이 모이는 만큼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그나저나, 너무 티 나게 밀어주는 거 아니야?’


연습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노헌은 3일 전, 콩쿨 예선에서 찍은 하린과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에 둘 다 나오기엔 충분한 거리였음에도 준서는 부족하다며 거리를 좁히라 재촉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이것.


어깨를 다정히 기대고 있으면서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하린과 자신의 사진이었다.


‘김칫국 마시지 말자, 어차피 이런 천재가 나를 좋아하게 될 리 없다고.’


게다가 예선 때, 쓸데없는 오해를 사서 화나게 만들어버렸었기에 가망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집.


“오빠, 콩쿨 나갔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노헌의 여동생.

그의 상장을 들고 있는 나은이었다.


“어? 어.”

“학년 대상이면 엄청 높은 상 아니야?”

“전체 대상 다음이니까, 2등 정도지?”

“뭐야, 왜 말 안 했어! 축하 파티해야지!”


마치 자기가 상을 탄 것처럼 기뻐하는 나은.


“됐어, 이 정도로 뭘···.”


노헌은 이런 것이 영 부담스러웠기에 그녀의 손에 있는 상장을 낚아채―


“어?”


지 못했다.


“피아노 치는 사람치곤 너무 느린 거 아니야?”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이것 보라는 듯 상장을 흔드는 동생.

이후로도 뺏어보려 했지만, 나은이는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아니, 왜 그러는데?”


결국, 지쳐버린 노헌.

2년이라는 세월의 차이일까, 그는 지금도 팔팔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오빠, 예선 통과한 거면, 본선도 나가겠네?”

“그렇지?”

“그럼, 나 오빠 본선 나갈 때 구경할래.”


뜬금없는 그녀의 말,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라.”

“앗싸! 여기 상장.”

“뭔데, 설마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도망 다닌 거야?”

“응.”


노헌은 어이가 없었다.

물어볼 거면 그냥 물어볼 것이지, 굳이 힘을 왜 쓰게 만든 것인가.

그러나, 그 뒤에 그녀가 입을 열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야, 맨날 싫다고 했었잖아···.”


나은의 말대로 노헌은 항상 자신의 여동생을 밀어내왔다.

어차피, 부모님이 알아서 챙겨주실 테니까.


가족이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동생에게 벽을 세운 것은 어떻게 보면, 노헌 나름의 심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장을 뺏어갔을 때부터 싫증을 내고 곧바로 방에 들어갔겠지만, 부모님이 독일행을 허락해준 뒤로 조금씩 나아진 것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니까, 같이 가던지.”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노헌은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은 외동이라고 하셨죠?”

【맞아.】

“되게 편했을 것 같아요. 비교도 안 당하고, 다니고 싶은 학원도 다닐 수 있고―.”


이후로 외동의 장점을 쭉 늘어놓는 노헌.


【글쎄··· 과연 그럴까.】


현묵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



어느새 다가온 본선.

집을 막 나서려는 노헌의 핸드폰이 울렸다.


위잉― 위잉―


지금 막 도착한 두 개의 문자.

그러나, 발신자는 서로 달랐다.


김준서와 이재은.


‘재은이는 언제 오냐, 재촉하는 거겠고···.’


오늘 역시 재은과 만나, 연주회장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보지 않아도 뻔한 그녀의 문자를 잠시 보류하고, 노헌은 준서의 문자를 먼저 펼쳤다.


[오늘 우리 엄마가 같이 오실 예정이라, 나랑 정하린한테는 말 걸지 않는 게 좋겠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오시는데, 왜 말을 걸면 안 된다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본인이 하루만 그렇게 해달라는데, 어쩌겠는가.

노헌은 알겠다는 한마디를 보낸 후, 집을 나섰다.


“오빠, 늦겠어!”

“어차피, 중등부는 한참 뒤니까, 천천히 가도 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은의 모습.


‘내가 얘랑 단둘이 어디 간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봐도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뭐, 지금 가니까, 상관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노헌은 보류해두었던 재은의 문자를 보았다.


[빨리 와!]

“역시나.”


너무나도 예상과 똑같은 내용이라, 노헌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웃어?”

“그냥 재밌는 걸 봐서.”

“뭔데?”

“아냐, 네가 볼 땐 재미 없어.”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나은은 오빠와 잡담을 나누며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개찰구 앞에서 무미건조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한 여자, 그녀가 오빠의 친구인 듯했다.


그러던 그 순간.


고개를 든 그녀.


“야! 왜 이렇게 늦게―!”


한순간 미소를 지은 그녀는 이내.


“누구야?”


미소를 싹 지우곤, 오빠에게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자신이었다.


‘무, 무서워!’


싸늘한 눈빛에 나은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오빠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저 평범하게 입을 열었다.


“내 동생이야.”

“아~ 진짜? 어쩐지 귀엽게 생겼더라!”


다시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녀.

한순간에 몇 번이나 바뀐 표정에 나은은 당황스러웠다.


“얘는 내 친구, 재은이고. 얘는 내 동생 나은이야.”

“안녕, 나은아~”

“아, 안녕하세요···.”


오빠의 중개로 나눈 인사.

그러나, 경계를 풀 수 없었다.

재은의 살벌했던 시선이 잊히질 않았기에.


‘대체 뭐였지···?’


얼떨떨한 심정으로 나은은 오빠의 뒤를 따라 역으로 들어갔다.



♪♪♪



도착한 콩쿨은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로비로 들어가려던 순간, 노헌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얘가 왜 이렇게 얌전해졌지?’


처음 집에서 출발했을 때는 활발했던 동생은 연주회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딘가 시무룩해 보였다.


“재은아, 먼저 들어가 있을래?”

“왜?”

“나은이가 멀미를 좀 한 거 같아서.”

“알겠어~”


로비로 들어간 재은을 뒤로하고 노헌은 나은에게 물었다.


“괜찮아?”

“으응··· 그런데 오빠, 혹시 저 언니랑 사귀는 사이야?”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황급히 고개를 젓더니, 이제 괜찮아졌다는 나은.

그런 그녀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본인이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 아니겠나.

노헌은 로비로 들어섰다.


“어?”

“아.”


그리고 그곳에 마주친 한 남자.

바로 저번 주, 예선 때도 봤던 참교육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아, 예선 통과자 중에 모르는 이름이 얘였구나?’


분명 박형준이라는 이름이었다.


‘얘가 말을 하는 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패거리들과 말다툼을 할 때, 그는 항상 뒤에서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본선에 올라온 것이 그나마 형준이라 다행이었다.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아마 기분이 나쁜 상태로 연주를 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방관도 폭력이긴 하지.’


그걸 본인도 아는지, 형준은 머쓱한 표정을 짓곤 노헌의 앞을 지나갔다.


“오빠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몰라.”


나은의 말에 대답해준 후 받은 순서표.

그의 차례는 220번으로 중등부 첫 조의 맨 마지막 순서였다.


그렇게 노헌이 나은과 연주회장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야야, 저기 봐. 김세림 피아니스트!”

“아들 콩쿨 때문에 온 거구나?”

“그 옆에는 정하린인 거 같은데?”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존재감이 강한 세 명이 눈에 들어왔다.

준서와 하린, 그리고 준서의 어머니.


【저분이 김세림 피아니스트야.】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쿨 우승을 손에 넣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런데 준서랑 하린이 분위기가 평소랑 다르다?】


어딘가 불편한 듯해 보이는 두 사람.

하린은 평소에도 무표정을 고수했기에 별반 다르진 않았지만, 준서는 어쩐지 평소랑 다르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마주친 시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준서의 모습에 노헌은 오늘 집에서 출발할 때 받은 그의 문자가 떠올랐다.


【엄마랑 같이 있을 때는 말 걸지 말아 달라고 했었지?】


여전히 이해가 안 갔지만, 노헌은 나은의 손을 이끌고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하린의 흔들리는 두 눈동자.

그러나,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내 차례라 갔다 올게, 그동안 나은이 좀 돌봐줘.”

“오빠랑 나랑 2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

“알겠어, 그리고 오늘은 내가 이길 거니까, 알아서 해.”


현재 무대 위 전광판에 표시된 숫자는 199.

10분 뒤면 중등부 첫 조가 시작되었기에 노헌은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은 반드시 정하린 제치고 말 거다!”

“선배, 그 전에 저부터 제쳐야 할걸요? 저 오늘 컨디션 되게 좋은데?”“아, 그건 좀 빡센데···.”


평소의 과묵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기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


‘정하린? 하린이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간 노헌.

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순간 떠오르는 기억들.


“너무 긴장 안 해도 돼~ 나 오늘 진짜 못 칠 거거든?”


“내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실력이 완전 다르거든? 그런데 오늘은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아마 완전 못 칠 거야.”


“이번에 못 치면 다음에 더 잘 치면 되는 거지!”



그녀는 바로 저번 콩쿨 본선, 노헌의 앞 순서였던 여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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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9 6 11쪽
36 축제 +3 23.06.21 79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80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90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8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8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90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 재회 +2 23.06.06 99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9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2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21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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