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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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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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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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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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은과 나비 (1)

DUMMY

【저 애, 저번 본선에도 보지 않았어?】


현묵의 말대로, 대기실에 앉아있던 그녀는 노헌과 재은이 결판을 낸 콩쿨, 본선에서 그를 응원해줬던 여학생이었다.


노헌은 조용히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다. 그녀는.


“어? 저번에 긴장했던―?”

“맞아, 오랜만이네.”


저번과 똑같이 노헌의 바로 앞 순서였다.


“헐, 대박 신기해!”


휘둥그레진 그녀의 눈, 물론 노헌도 이 우연에 놀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미처 말하지 못했던 감사 인사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저번에 고마웠어, 네가 말을 걸어줘서 긴장이 풀렸거든.”


진심이었다.

긴장에 억눌려, 식은땀만 흘리고 있던 노헌.

그런 그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에이~ 그런 거로 고맙긴 뭘.”


쾌활하게 대답하는 그녀.

그러나, 이내.


“오늘은 아마 내가 원망스러워질걸?”

“뭐?”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오늘은 굉장히 좋거든!”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 연주가 천차만별로 변한다고 했었다. 좋을 땐 연주도 잘 되지만, 나쁠 땐 처참하다고.


“내 연주 듣고, 기죽지나 마!”


당당한 그녀의 태도에 노헌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김예원이 컨디션이 좋다는데 웃음이 나온다고?”


그 순간 옆에서 끼어드는 남자의 목소리.

그쪽을 바라보자, 엄청난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도 분명 저번에 봤던 거 같은데?’


콩쿨이 아니라, 체육대회에 나가야 할 것 같은 몸매.

그는 저번 전국 콩쿨에서 준서를 제치고 학년 대상을 탔던 남학생이었다.


“아마, 오늘 이 녀석의 연주를 듣고 나면 웃음이 싹 사라질 거다.”

“아니, 컨디션이 좋은 건 전데, 왜 선배가 더 자랑스러워하는 거예요?”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은 학교, 선, 후배 관계인 듯했다.


“그나저나, 너랑은 본선에서만 두 번째 보는 거 같은데, 어느 지역에서 왔어?”“나? 서울.”


그녀의 질문에 노헌이 대답하자.


“서울이면 정하린이랑 김준서가 사는 데 아니냐?!”


갑작스레 고함을 지르는 근육의 남학생.


“어··· 어? 맞지, 그런데 그 둘이 유명해?”

“당연하지! 피아노 치는 애들은 거의 다 알 거다!”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줄여주세요. 선배 너무 시끄러워요.”

“아, 알았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안다니, 노헌은 새삼스럽지만, 자신의 친구들이 유명인이라는 걸 떠올렸다.


“아! 아직 이름을 말 안 했네? 나는 김예원 이제 중학교 3학년 올라가고, 이쪽은 최원석 선배, 예비 고등학생이야.”

“내 이름은 이노헌이고, 이제 고등학교 올라가.”

“뭐야, 동갑인 줄 알았는데, 오빠였어?”

“나도 네가 나랑 동갑인 줄 알았는데?”


하도 자신감이 넘치길래, 노헌은 무의식적으로 예원이 동갑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이제 내 차례군.”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원석.

그는 그대로 무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저 선배도 엄청 잘 치거든? 괜히 천예고 입학생이 아니야.”

“천예고?”

“응, 이번 3월에 입학해.””


천예고등학교.

하린과 준서가 입학하는 고등학교였다.

전에 노헌에게도 스카우트가 왔었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 결국 시험은 보지 않았었다.


“오빠는 고등학교 어디가?”

“아, 나는 일반고 입학했다가 2학기 때 예고로 편입하려고.”

“그래? 그럼, 천예고 편입해! 나도 천예고를 목표로 하고 있거든!”

“생각 좀 해볼게”


그렇게 예원과 잡담을 하며 기다리던 사이.

무대 쪽에서 장엄한 연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것은 마치 홀로선 기사가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

듣기만 해도 무거운, 건반의 옥타브가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다.


“이게 원석 선배의 연주야.”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23, No.5」. 수준이 상당히 높은데, 저 친구?】


도약과 옥타브, 그리고 연타가 남발하는 이 곡은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곡에 속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 근육이 엄청났지?’


옷 위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원석의 울퉁불퉁한 근육.

이것 또한 그의 장점이었기에 상당히 곡 선정을 잘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덩치에 맞지 않게 섬세하기까지 하네.’


강렬한 첫 부분을 넘어, 중간에 접어드는 원석의 연주.

초반과는 다른 부드러운 선율이 잔잔하게 흘러들어왔다.


‘정말 잘 치네.’


현묵은 원석의 미래가 기대되었다.

지금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나중에는 얼마나 더 성장할지.


그리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시동을 걸기 시작한 원석.

잔잔했던 소리는 점점 속도가 붙었고, 어느새 처음의 그것을 넘어, 막바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연주가 처음 시작했을 땐 혼자였던 기사 주위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

그들은 다 함께 전장을 거닐었고, 결국 목표를 달성한 뒤, 그대로 흩어져 버렸다.


이후, 대기실로 돌아온 원석.

그의 이마와 목에는 땀이 흥건했다.


“수고하셨어요, 선배.”

“어, 고맙다.”

“와, 너 진짜 잘 친다.”


예원이 건네는 휴지를 받아 든 그는 곧장 땀을 훔치곤, 감탄하는 노헌에게 대답했다.


“컨디션이 좋은 김예원은 나보다 훨씬 잘 친다.”

“어, 어? 그 정도야?”

“그래, 그러니까, 쟤 연주가 끝나고 쫄지나 말라고.”

“맞아, 오빠도 본선까지 온 실력을 증명해야지!”


혹여나 그들은 예원의 연주가 끝나고, 노헌이 기죽을까,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걱정 안 해줘도 돼, 나 예선 때 하린이 바로 다음 차례였거든.”


노헌은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를 겪은 후였다.



♪♪♪



스릴러 영화를 보면 쫓고 쫓기는 장면이 나온다.

죽일 듯이 쫓아오는 살인마,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잡힐 듯 말 듯 한 상황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결국, 주인공 앞에 나타난 막다른 곳, 뒤에서 불쑥 살인마의 손이 튀어나오는 아찔한 순간―


“이건, 몰랐지?”


라고 말하는 듯 아슬아슬하게 그곳에서 탈출하는 주인공.

그 찰나에 사람들은 스릴을 느낀다.

그것이 스릴러 영화의 묘미.


하지만, 예원의 연주는 달랐다.


뒤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살인마.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디로 빠져나갈지 생각할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1초라도 늦으면 곧장 찾아올 것 같은 죽음.

오직 살기 위해 달릴 뿐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격」.


그것은 노헌의 발밑에서부터 천천히 그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들었던 곡 중 가장 빠른 속도인 예원의 연주는 마치 실제로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고, 어쩐지 원석과 그녀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잘 치는 게 아니잖아···!’


마치 이 곡이 현실이 된 것처럼 노헌의 숨통을 조여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도망쳐야 할 것 같은 기분.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 한순간 찾아온 죽음에 노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노헌아, 눈 떠, 우리 차례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연주였을 뿐, 실제로 추격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빠, 예선 때 하린 언니로 겪어봤다고 하지 않았어?”


어느새 무대 뒤편으로 들어온 예원.

그녀는 자신의 소매로 노헌의 이마를 쓱 닦아주었다.


“그런 거 치곤, 땀이 너무 많이 나는데?”

“아, 아니. 이건 곡 분위기가 너무 무섭잖아···!”


쇼팽의 「추격」.

사람들이 붙인 제목답게 무척이나 공감이 갔던 노헌이었다.


“그나저나, 괜찮아? 이 상태로 연주할 수 있겠어?”


예원은 걱정스럽게 노헌에게 물었다.

실제로 그의 이마와 목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노헌은 그녀의 시선을 뒤로하고, 무대 위로 나아갔다.

여전히 온몸이 떨렸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오늘은 나은이가 보러왔단 말이야.’


지금도 재은과 함께 관객석에 앉아있을 여동생.

부끄러운 모습 보일 순 없었다.


“네가 「추격」한다면 나는 「나비」처럼 날아가 주겠어.”



♪♪♪



나은은 어렸을 적부터 주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가지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모두 그녀의 차지.

그래서일까? 자신이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딸은 어쩜 이렇게 공부를 잘 할까?”

“아빠가 이거 사줄까?”

“나은아, 너 되게 예쁘다!”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그녀는 늘 이쁨받는 존재였기에.

그래서 나은은 모두에게 그렇듯 자신의 오빠에게도 어리광을 부렸다.


“오빠! 나, 이거 하고 싶어~”

“그래? 그럼, 해야지.”


어렸을 적에는 잘 받아준 오빠.

하지만, 점점.


“나랑 같이 이거 하면 안 돼?”

“오빠, 지금 바빠.”


시간이 지날수록.


“저기, 오빠···.”

“나한테 말하지 말고, 엄마, 아빠한테 말해.”


그는 자신을 밀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선, 말도 걸지 않았고, 가족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변했어···.’


처음에는 그저 오빠에게 섭섭한 마음만 있었다.

예전에는 잘해줬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차가워졌는지.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야기만 하려 하면 그는 항상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바빴고, 결국 둘의 소통은 단절되고 말았다.


‘진짜, 너무해.’


섭섭한 마음은 어느새 오빠에 대한 원망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은은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집 주변에 있는 광장에서 촬영된 한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

<전공자 압살해버리는 레전드 중학생>을.


재생하자 전공자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나은과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기에 호기심에 들여보던 그때.

다음으로 나타난 한 남자.


‘오빠?’


그는 바로 자신의 오빠, 이노헌이었다.


‘오빠가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노헌.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빠의 모습은 나은에겐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이 영상은 뭐냐고.

그러자 그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냥, 독학했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오빠에게서 관심을 뗐던 그녀였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득 드는 의문, 그렇게 피아노를 좋아하면 학원을 가지, 굳이 왜 독학을 했을까.


그래서, 큰맘 먹고 그에게 물었다.


“왜 독학했어? 엄마, 아빠한테 학원 보내달라고 해도 됐잖아.”

“어차피 말해봤자··· 아니다. 너한테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냐.”


그러나, 오빠의 대답은 짜증 나기 그지없었다.

마치 네가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에.


‘괜히, 이야기했어···.’


그런 후회를 하면서도, 나은은 어쩐지 그의 말이 신경 쓰였다.

엄마, 아빠에게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항상 내 말은 잘 들어주던데, 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오빠가 말을 안 해서 그렇―.’


그 순간.


“왜 말을 안 하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중학생이 된 오빠는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뭔가를 부탁한 적이 없었다.

용돈을 달라거나, 어딜 가고 싶다거나, 뭐가 먹고 싶다고.


그때부터 그녀는 그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변하게 된 이유를.


마침내 깨닫게 된 정답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은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설마, 내 탓이야?’


엄마, 아빠는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다.

아니, ‘자신의 말만’ 들어주었다.

오직 그녀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반면에··· 오빠는.’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그의 말을 들어준 기억은 없었다.

오빠라는 이유로, 조금 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배려를 강요받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차지하는 주제에, 어리광을 부렸다.

심지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오빠에게마저.


자신과 비교되어 학원도 못 가고,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선택권마저 잃어버린 그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것이 바로 침묵이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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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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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비밀 (수정) +4 23.06.25 91 6 11쪽
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9 6 11쪽
36 축제 +3 23.06.21 79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80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90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8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8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90 9 12쪽
»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9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9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5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9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2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21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6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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