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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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최근연재일 :
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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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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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존과 세존 1

DUMMY

잠시 후, 나는 철존과 같은 의원에서 치료받던 루아를 데리고 나왔다.


"괜찮아?"


내가 물었다.


"응."


"배 안 고파? 밥 먹으러 갈래?"


"병원에서 먹었어."


"오, 그래?"


"나물뿐이라 전부 버렸지만."


"아···."


그래도 다행히 몸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그즈음 관윤도 볼일을 마쳤고, 우리는 한수와 만나 인사했다.


한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때렸다.


"그래, 동쪽으로 가는구먼. 세존의 생가를 보러 간다고?."


"네, 그렇습니다."


"내가 아침에 식당에서 말했었지? 거기엔 내 친구가 있다고."


"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 녀석한테 부탁해 봐라. 내 이름을 대면 너를 도와 줄 거다.


혹시 말을 안 들으면 내게 연락해라. 너도 이제 내 친구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또 타갈을 놀리러 가야겠다! 하하핫!"


한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와 헤어진 후, 관윤과 함께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관윤이 내게 물었다.


"이월, 그대는 목사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나?"


"한때 철존과 함께 전대 구무림 지존을 섬겼다고만 들었습니다."


"목사자는 구무림 동쪽의 통치자라네."


"통치자라고요?"


"워낙에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인간인지라 집무실에서 지내기보다는 밖으로 나가 마을을 순찰하며 주민들을 돕고 다니기를 선호하지."


"세력가였군요."


한수는 내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을 한 명의 무림인으로만 생각해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하긴, 한때 철존과 같은 호법이었다는데.


지금 그가 철존 다음 가는 세력가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래야 다음 지존으로 걸맞기도 할 테고.


"자, 그럼 출발해 보세."


우리는 주차장에 도착했고, 각자 바이크에 올라타 구무림 동쪽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구무림의 정중앙에는 한라산이 있고, 그곳을 기준으로 삼아 좌우로 나뉜다.


오늘 아침, 한수와 처음 만나서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을 때 그가 구무림 동쪽에 관해 언급했었다.


서쪽은 서무림, 동쪽은 동무림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의 집은 동무림에 있는데, 동무림은 관아와 철존이 있는 서무림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한다.


패천논검에 참가하는 인원도 서쪽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그는 또한 말했다.


아무래도 철존의 관심이 서쪽보다 덜 미칠 테니 그럴 만했다.


한편 한수는 자기 친구들 이야기도 했는데, 민영도 그중 하나였다.


민영은 콧물을 질질 흘리고 말을 심하게 더듬는 여자아이였는데, 한수의 말로는 단약 제조의 달인이라 하여 단약사라는 별호가 붙었다고 한다.


녹유단, 확실히 대단한 단약이기는 했다. 먹는 순간 내상과 외상이 모조리 나았으니까.


그런 단약을 직접 만들 정도면 확실히 달인이라 일컬어질 만했다.


겉모습은 별것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모르는 법이군.'


한수는 다른 친구들에 관해서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한수 본인과 민영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기인열전이었는데, 그중에는 세존의 생가에서 가이드로서 일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옛날에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다.


아마 그 사람이라면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나와 관윤은 한라산 남쪽으로 난 1115번 지방도를 달렸다.


2차선이었는데, 산 근처라 그런지 공기도 좋고 경관도 좋았다.


하지만 나와 루아 사이의 공기는 별로 안 좋았다.


이 한라산의 중턱에 내가 죽인 석산검 진림의 문파 삼도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열이 문하생들을 몰살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열은 삼도문에 원래 있어야 할 피안사신검彼岸死神劍이라는 검이 없다고 이야기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한라산에서 벗어난 뒤 30분 정도 더 달려 샛길로 들어섰다.


거기서 좀 더 들어가니 성벽과 입구가 나왔는데,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관윤이 말하길, 이곳은 성읍마을이라는 민속촌이었다.


"이 마을에 무존의 생가가 있다네. 여기서 조금 올라가면 세존의 생가도 나오지."


무림삼대지존인 세존, 철존, 무존.


그 중 두 사람의 생가가 이 근방에 있다는 말이었다.


"둘이 엄청 가까운 곳에서 살았네요."


"그렇지. 실제 두 사람의 관계도 가까웠다고 하더군. 너무 옛날이야기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와··· 무존도 되게 늙었나 보네요."


성벽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황토색 흙으로 벽을 빚고 그 위에 황토색 볏짚을 얹은 황토색 초가집.


황토색 모랫바닥과 검은색 돌담.


단순히 낙후된 시골을 넘어서서 과거의 향기가 농후하게 풍기는 마을이었다.


그런 와중에 드문드문 보이는 자동차들과 현대적인 행색을 한 외지인 무리. 확실히 관광지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한편 이곳은 실제로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기도 했다.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구경하는 집'이라고 따로 팻말을 세워 놓았다.


빈집이 많아서 그런지 팻말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집도 많긴 했다. 물론 마당까지만 그렇고 집안에는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계속 가다 보니 젊은 수녀 두 사람이 재잘거리며 길을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관윤에게 물었다.


"여기 수녀도 있네요?"


"이 근방에 교회가 있거든."


수녀들의 행색이 꽤 특이했다.


왼쪽 수녀는 주황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있었는데, 아이 같은 인상이었다.


오른쪽 수녀는 긴 생머리를 하얗게 물들이고 피부도 갈색으로 태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귀에는 초승달 모양의 금귀걸이도 끼고 있었는데, 꽤 놀게 생긴 인상이었다.


"와··· 요즘 수녀들은 저러고 다니나? 신기하네요."


내 말에 관윤이 속삭이듯 말했다.


"참고로 내 취향은 오른쪽 여성일세."


"안 물어봤어요···."


얼마 안 가 관윤이 바이크를 멈춰 세우고 옆을 보았다.


커다란 마당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거기서 뛰놀고 있었다.


마당 안쪽에는 초가집 하나가 있었고, 그 너머 멀리 교회의 십자가가 보였다.


내가 그에게 왜 멈추냐고 묻는데,


그가 마당 안쪽의 초가집을 가리켰다.


"여기가 무존의 생가일세."


"여기가요?"


큰 마당이 있다는 것만 빼면 다른 집과 별 차이도 없었다.


"진짜요?"


"그래, 진짜일세."


"와."


'지존인데도 이렇게 소박하게 사는 건가?'


으리으리한 곳에서 살고 개인 섬도 보유한 철존과는 딴판이었다.


아니, 여긴 고향의 생가일 뿐이니까 지금 사는 곳은 여기보다는 훨씬 좋겠지.


아무도 사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존의 생가라서 그런지 거미줄이 거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아무도 없네요."


"워낙에 유유자적 살아가는 사람이라 집에 거의 안 들어간다고 들었네."


"네? 여기서 산다는 말인가요?"


내가 놀라서 물었다.


"상상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네."


"허어."


놀랄 노 자였다.


뭐, 운둔 고수 같은 건가?


"애초에 왜 무존無尊인 거죠?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존인 건가요?"


"무존은 작명사예요."


내 물음에 송하가 대신 답했다.


"작명공의 극치에 달한 작명사라고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작협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아서, 작명사 중에서도 실제로 만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요. 저도 본 적 없고요."


"작명사 지존이었구나. 무존이 아난보다 대단한 사람이야?"


"그건 아닐 거예요."


송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부님께선 모든 진명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출력을 가진 부처 불佛의 양산이 가능한 작명사시니까요. 반면 무존의 업적은 따로 없어서 작명사로서 저평가받는 부분이 있어요."


"김송하, 얘가 묻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루아가 끼어들며 말했다.


"얘는 아난과 무존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를 묻는 거잖아."


루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맞지? 너는 남자애니까 그런 쪽에 더 흥미 있지?"


나는 욱해서 이를 악물었다.


"···애라고 하지 마라."


"그럼 어른이야?"


"어른이다."


"어른은 무슨, 아직 머리에 피도 덜 마른 게."


"말조심해라. 너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난다."


"어이가 없네. 내가 연상이거든? 말조심은 네가 해야지."


"하하, 이것 참."


관윤이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나도 두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내심 궁금했다네. 하하핫!"


"두 사람이 싸운다고 하면···."


송하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루아가 눈감고 탄식했다.


"하아··· 진짜 재미없다."


이에 송하가 급하게 부연 설명했다.


"그, 근데 무존은 어떤 진명이든 부, 부술 수 있다고 해요. 무無와 파괴의 이치를 손에 쥐고 있어서 무존이라고 불리는 거래요.


업적은 몰라도 작명공 실력 자체는 최고라고 해요.


다만 자기 존재마저도 없애 버리는 사람이라, 소재를 아무도 몰라요.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거의 아무도 몰라요. 사진이랑 증인들이 있기는 한데 묘사하는 모습이 다 따로따로예요. 뭐가 진짜인지 모르는 거죠."


"근데 왜 무림삼대지존인데? 그 말 누가 만든 건데?"


내가 물었다.


"모, 모르겠어요. 그냥 옛날부터 그런 단어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선후부장은···."


잠자코 듣던 관윤이 끼어들었다.


"무존이 그라비아 모델처럼 생겼다고 하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하하."


그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뭔 헛소리야. 당연히 아니지!"


루아가 곧장 날카롭게 일갈했다.


나도 속으로 그녀에게 동의했다.


"생김새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유자적 살아가는 건 한수랑 비슷하네요."


"목사자는 주민들과 친목 하려고 돌아다니는 거니 결이 좀 다르긴 하지."


내 말에 관윤이 대답했다.


"철존도 지존이 아니었다면 혼자 유유자적 무공 수행이나 했을 걸세."


"무존에게도 철존처럼 친구가 없대요."


송하도 거들었다.


"아··· 한수가 아니라 철존 과였구나."


갑자기 무존과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무존의 생김새에 관해서 말인데···."


송하가 말했다.


"제 추측을 말씀드리자면, 무존의 별호가 무명사태無名師太인데, 사태라는 말은 나이 든 비구니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아마 할머니가 아닐까요?"


"그렇겠지. 철존과 세존 둘 다 나이를 많이 먹었고, 그 세존과 가까운 사이라고 했으니까. 절대 젊지는 않겠지."


하지만 철존보다 까마득히 어린 내가 철존과 친분이 있는데, 무존과 세존의 관계 역시 그런 것이라면···.


에이, 나도 모르겠다.


"여기선 딱히 볼 것도 없을 것 같으니까 그냥 바로 세존의 생가로 가죠."


내 말에 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세존의 생가는 성읍마을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몇 분 정도 걸어가니 나왔다.


이 마을은 신식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북서쪽으로 좀 더 올라가 보니 마당이 딸린 주택들의 단지가 나왔다.


"여기 같군."


관윤이 단지 입구 쪽에 있던 주택을 가리켰다.


그 옆에는 신무림 세존 노요한의 생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가 세존의 생가···.'


나는 그 집을 올려다보았다.


무존의 생가와 마찬가지로 주변 주택들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 없는 평범한 집이었다.


그도 예전에는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걸까.


"이거, 제대로 읽어 봐."


안내판을 유심히 보던 루아가 말했다.


그녀 말대로 안내판을 다시 내려다보는데,


"!"


놀라울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뇌단雷斷의 집, 쇄강碎强의 집, 비람飛嵐의 집···."


안내판에는 여러 주택의 이름과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내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택 단지를 보니 모두 사진과 모습이 일치했다.


그리고 이 단지의 주택들에 할당된 이름,


그것은 각각 뇌단법의 10초식 이름들이었다.


"설마··· 이 일대의 주택 전부가 세존의 생가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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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천수살법 이천 2 23.08.29 44 3 16쪽
82 천수살법 이천 1 +2 23.08.28 47 3 15쪽
81 이가살수문 2 +1 23.08.25 46 1 12쪽
80 이가살수문 1 23.08.24 45 2 13쪽
79 재정비, 그리고 신무림으로 23.08.23 56 2 16쪽
78 당산봉 전투 4 23.08.22 47 1 12쪽
77 당산봉 전투 3 +2 23.08.21 59 2 14쪽
76 당산봉 전투 2 23.08.18 49 2 15쪽
75 당산봉 전투 1 23.08.17 53 1 15쪽
74 항쟁의 두 번째 여명 23.08.16 54 3 13쪽
73 뇌단법과 호걸들 7 - 무존 강하나 2 +1 23.08.15 58 3 11쪽
72 뇌단법과 호걸들 6 - 무존 강하나 1 23.08.14 56 3 13쪽
71 뇌단법과 호걸들 5 - 천공광 소유 23.08.11 85 3 13쪽
70 뇌단법과 호걸들 4 - 산명조 단호 23.08.10 57 1 12쪽
69 뇌단법과 호걸들 3 - 불괴신 옥근 23.08.09 62 3 12쪽
68 뇌단법과 호걸들 2 23.08.08 68 2 14쪽
67 뇌단법과 호걸들 1 +2 23.08.07 63 4 12쪽
66 노요한과 사람들 3 +1 23.08.04 69 4 12쪽
65 노요한과 사람들 2 +1 23.08.03 73 5 12쪽
64 노요한과 사람들 1 +2 23.08.02 67 4 12쪽
63 무존과 세존 3 23.08.01 73 4 11쪽
62 무존과 세존 2 +2 23.07.31 62 3 13쪽
» 무존과 세존 1 23.07.28 65 4 12쪽
60 교환 +1 23.07.27 74 2 14쪽
59 광변발도공 영힐 2 23.07.26 60 3 11쪽
58 광변발도공 영힐 1 23.07.25 6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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