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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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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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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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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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살수문 2

DUMMY

독지신毒地身 이연.


독공의 달인. 88개의 암살 임무를 완수한 주골朱骨 등급 살수.


그리고 나 이월의 넷째 누나.


이가살수문의 살수들은 대부분 2인 1조로 행동하는데, 이는 내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이은과 같은 조였으며, 조장인 만큼 실력은 확실했다.


그녀는 쇠구슬 여러 개를 쥐고서 내게 한꺼번에 날렸다.


탄지사 이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한 탄지공 실력. 그녀가 날리는 쇠구슬 하나하나가 나의 급소를 노렸으며 각기 다른 독이 발려 있었다.


이름하여 연식탄지공姸式彈指功.


하지만 무슨 독이라 하든 3식 극병에 의해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가 된 내 앞에서는 의미 없었다.


나는 바람을 조종해 쇠구슬들을 손아귀로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며 공중에서 공기놀이를 했다.


오래전 이열이 내게 보여주었던 공기공기놀이였다.


내 태연한 모습에 이연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으나, 곧바로 침착하게 쇠구슬을 날렸다.


나는 반대편 손으로 쇠구슬을 빨아들였는데, 그 틈에 이연이 달려들어 권격을 펼쳤다.


미완성된 10식 역로를 제외하고 뇌단법의 모든 실식, 진식을 익혔다고는 하나 내공, 외공이 늘어난 건 아니었다.


이연의 외공은 나보다 위다. 그래서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서 꼼짝없이 당했겠지만, 무공의 출력과 다양함이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순간 강한 바람을 불게 해 그녀가 미끄러지도록 만들고, 그 틈에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그녀가 수도로 내 목을 찌르려 했지만, 그녀의 손이 점점 느려지더니 내 목 근처에서 완전히 멈추었다.


2식 진·쇄강. 물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초식.


그것으로 이연의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만하자, 누나."


나는 그녀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이연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은아, 연이 누나 좀 돌봐줘."


"오빠."


"갔다 올게."


"이월! 너 아버지한테 죽을 거야!"


"그거 이미 은이한테 들었어."


나는 이연과 이은을 뒤로 하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부지의 가장 안쪽, 이천의 집무실이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나무줄기에 감긴 석조 저택. 자연과 하나가 된 이 건물이 바로 사무실이었다.


나는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등이 전부 꺼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이곳 또한 3층 저택으로, 3층에 이천의 집무실이 있었다.


나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에 발을 들인 순간, 갑자기 벽 곳곳에 불이 붙으며 복도를 환하게 밝혔다.


벽은 검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곳곳에 하얀 균열이 나 있었다.


이는 원래 대리석에 있는 무늬 같은 것이나, 얇은 실들이 무늬를 가장하여 벽 곳곳에 스며들 듯이 달라붙어 있었다. 실에 기가 담겨 있었기에 겨우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복도를 밝힌 불꽃은 그 실 위에 붙은 것이기도 했다.


복도의 가장 안쪽, 이천의 집무실 문 앞에 실의 주인이 우뚝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풍채가 좋으며 턱에 수염이 둥글게 나고 머리칼도 짧게 깎은 청년.


나의 맏형, 만아인萬牙刃 이염이었다.


그가 근엄한 표정으로 팔짱 끼고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염은 형제의 맏이로서, 그에 걸맞은 위엄을 갖춘 사내다.


아까 말했다시피 이가살수문의 살수들은 2인 1조를 이루는데, 형제는 7명이라 딱 한 명이 남는다.


그 한 명이 이염으로, 그는 이가살수문에서 유일무이하게 아버지 이천과 같은 조다.


아버지에게 직접 배운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살법을 실전에서 지켜본 유일한 가족.


그런 살수가 약할 리가 없다.


"월아."


이염이 군인처럼 굳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새 많이 변했구나."


"응. 사춘기라서 키가 빨리···."


"돌아가라."


이염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돌아가면 죽이지는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내게 자유를 주겠다는 말이야?"


"그래, 나중에 필요하다면 다시 너를 찾아가겠지만."


"그럼 안 돼. 그건 영원한 자유가 아니야."


"영원한 자유가 뭔데?"


"이 집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거."


"이월, 너 앞으로 가족 얼굴 안 보고 살 거냐?"


이염이 꾸짖듯이 말했다.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야. 그걸 모르는 거냐?"


"그리고, 한 번 살수는 영원한 살수고?"


"···."


"나는 살수가 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걸 아버지가 강요했어. 나도 이제 어른이야. 그러니까 이제 독립할 거야."


"월아,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미래를 생각해보란 말이야."


"살수에게는 요절하는 미래밖에 없어."


"지금만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우리는 미래를 위해 오늘 살수 활동을 하는 거야."


"살수에겐 미래 따윈 없다니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이미 마음 떠났어."


"너 이 일 안 하면 당장 뭐 해 먹고 살 건데? 너 미성년자에다 학교도 안 다니고 있잖아."


"서울에서, 루아의 호법으로 일할 거야."


"그건 안 돼! 이가살수문은 미선당을 지지하고 있어! 그런 짓을 하면 넌 우리의 적이 되는 거야!"


"이미 지금도 적이잖아."


"이월!"


잔소리가 시끄러웠다.


맏형은 언제나 저랬다. 잘못을 저지르면 아버지를 대신해서 우리를 직접 꾸짖곤 했다.


그가 먼저 큰 소리로 꾸짖었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무서운 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열보다는 훨씬 고마운 형이었다.


그런 이염을 향해 나는 검지를 들이밀었다.


"염이 형, 비켜."


검지 끝에 복도의 공기가 빨려들 듯이 모여들고, 자그마한 구슬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비키지 않으면 꿰뚫을 거야."


풍비나선 집集. 지금 내 힘이라면 이염과 그 너머에 있을 이천을 한꺼번에 꿰뚫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천穿!"


바로 그 순간, 벽 곳곳에서 실들이 튀어나와 내 몸에 꽂혔다.


너무 미세하고 빨라서 미처 대처할 틈이 없었다.


'화火!"


내 몸에 꽂힌 실에 불이 붙고, 나는 단숨에 불에 휩싸였다.


8식 제화, 불의 재앙을 견디는 초식.


그것으로 불길을 견디고,


8식 진·제화, 불의 재앙을 구현하는 초식.


그것으로 불꽃을 이염에게 곱절로 돌려주었다. 불꽃이 실을 타고 거꾸로 나아가 이염을 덮쳤다.


이염은 불을 버텼다. 그 역시 제화를 익힌 것이다.


"참斬!"


이염이 손날을 들자, 벽에서 실들이 튀어나와 내게 날아들었다.


풍양보를 써서 뒤로 피하니 실들이 벽 곳곳에 박히며 자상을 냈다.


이염은 살아 있는 덫이다.


그는 실을 다루는 것이 특기로, 기를 흘려 넣어 실을 날카로운 흉기로 만들 수 있고 화공을 펼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실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실을 벽 곳곳에 박아 진을 펼친 상태에서 공격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탁 트인 외부라면 공격이 원활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벽과 천장을 부순다면 그 단점을 이용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할 것까지도 없다.


나는 이천과 싸워야 할 몸.


더 이상 형제들과 같은 물에서 놀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이대로 그를 압도한다.


이염이 하얀 구슬들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내게 날렸다. 다른 형제들이 쓰는 쇠구슬과는 달랐다.


저것은 실을 뭉친 구슬. 따라서 이염의 생각대로 궤도를 불가사의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일명 능공탄凌空彈.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염식탄지공饜式彈指功. 이염의 고유한 탄지공이었다.


그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바람을 조종해 이염이 날린 구슬들을 손아귀로 움켜쥐려 했다.


그런데, 구슬 하나가 터지듯이 펼쳐지더니 그물처럼 내 얼굴을 덮쳤다.


"!"


당황하는 한순간, 그 한순간을 노려 이염은 능공탄의 속도를늘렸고, 능공탄들은 전부 내 몸에 박혔다.


각혈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았다.


2식 진·쇄강으로 내 몸을 단단하게 하여 버텨냈다. 구슬들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일제히 전부 실로 펼쳐져 내 두 발목을 한꺼번에 묶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고, 그 틈에 벽에서 실들이 튀어나와 내 팔다리를 칭칭 감았다.


뇌단법을 모두 익힌 나를 상대로 이 정도로 맞서 싸우다니, 역시 대단한 실력이었다.


"월아,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이염이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 마음은 진심일 것이나, 어림도 없는 소리.


"형, 말은 똑바로 해야지. 죽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죽이는 거야."


나와 형제들은 더 이상 같은 물에서 살 수 없다.


9식 진·월공. 공포의 기운을 담은 안력眼力으로 이염을 쏘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염은 소름이 돋은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나를 묶었던 실의 악력이 다소 약해졌다.


나는 실 사이사이로 바람을 끼워 넣어 실이 풀리게 만들고, 마찬가지 바람으로 몸을 띄워 다시 바닥에 섰다.


바닥에 축 늘어진 실들을 밟으며 나는 이염에게 다가갔다.


진·월공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그 외의 큰 행동은 취할 수 없었다.


이염은 동공이 풀리고 벌벌 떠는 와중에도 정신력으로 공포를 억누르며 시선으로 나를 쫓고 있었고, 두 손은 부르르 떨며 어떻게든 힘을 주려 애쓰고 있었다.


'월공을 익힌 건 아닌 것 같은데, 엄청난 정신력이긴 하군.'


그가 월공을 익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실을 조종하는 한 가지 무공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굳이 익히지 않은 것이다.


20세기 중후반에 어느 절권도 고수가 말하지 않았던가, 만 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다만 유감스럽게도 노요한의 뇌단법, 특히 진식은 인간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자연의 재앙이었다.


"염이 형, 더 할 거야?"


이염의 코앞까지 다가선 내가 한 말이었으나, 이염은 아무런 대답도 흘리지 못했다.


그는 단지, 공포에 버티고, 생각을 말로 내뱉고, 그 외 다른 행동들을 하는 데에 쓰이는 모든 정신력을 한데 모아 주먹을 움켜쥐는 데에 사용했고,


움켜쥔 주먹을 내게 휘두르는 데에 사용했다.


2식 진·쇄강.


이염의 주먹은 내 단단한 신체에 약간의 흠집도 남기지 못했다.


"···월."


이염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신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를 정성스럽게 안아 복도 벽 쪽에 놔두었다.


그리고 이천이 있을 집무실의 대문을 돌아보았다.


굳게 닫힌 검은 철문. 이가살수문에서 가장 차가운 장소.


이천을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려움에 세차게 뛰고 숨이 가빠졌으며 식은땀이 흘렀다.


이열과 싸울 때가 떠올랐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도 여전히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극복해야 한다.


'맞서 싸워야 한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집무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돌로 된 기물들과 탁자, 방을 은은히 밝히는 등불들.


창문 하나 없는 삭막한 폐쇄 공간.


돌로 된 탁자 앞에 그는 앉아 있었다.


천수상좌 이천, 나의 아버지.


"천수상좌, 당신의 탕아가 돌아왔습니다."


나는 증오를 억누르며 그를 조용히 노려보았다.


"제가 얼마나 컸는지 확인 좀 해보세요."


이천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지 않았다.


그는 안경을 낀 채로 서류 종이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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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천수살법 이천 2 23.08.29 44 3 16쪽
82 천수살법 이천 1 +2 23.08.28 47 3 15쪽
» 이가살수문 2 +1 23.08.25 46 1 12쪽
80 이가살수문 1 23.08.24 45 2 13쪽
79 재정비, 그리고 신무림으로 23.08.23 56 2 16쪽
78 당산봉 전투 4 23.08.22 45 1 12쪽
77 당산봉 전투 3 +2 23.08.21 59 2 14쪽
76 당산봉 전투 2 23.08.18 49 2 15쪽
75 당산봉 전투 1 23.08.17 53 1 15쪽
74 항쟁의 두 번째 여명 23.08.16 53 3 13쪽
73 뇌단법과 호걸들 7 - 무존 강하나 2 +1 23.08.15 58 3 11쪽
72 뇌단법과 호걸들 6 - 무존 강하나 1 23.08.14 55 3 13쪽
71 뇌단법과 호걸들 5 - 천공광 소유 23.08.11 85 3 13쪽
70 뇌단법과 호걸들 4 - 산명조 단호 23.08.10 57 1 12쪽
69 뇌단법과 호걸들 3 - 불괴신 옥근 23.08.09 62 3 12쪽
68 뇌단법과 호걸들 2 23.08.08 67 2 14쪽
67 뇌단법과 호걸들 1 +2 23.08.07 63 4 12쪽
66 노요한과 사람들 3 +1 23.08.04 67 4 12쪽
65 노요한과 사람들 2 +1 23.08.03 72 5 12쪽
64 노요한과 사람들 1 +2 23.08.02 67 4 12쪽
63 무존과 세존 3 23.08.01 72 4 11쪽
62 무존과 세존 2 +2 23.07.31 61 3 13쪽
61 무존과 세존 1 23.07.28 64 4 12쪽
60 교환 +1 23.07.27 74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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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광변발도공 영힐 1 23.07.25 6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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