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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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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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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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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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항쟁의 두 번째 여명

DUMMY

"이제 8개 남았어."


이월이 루아에게 말했다. 앞으로 남은 뇌단법 초식 이야기였다.


"예정보다 빨라. 이 속도면 일주일 뒤엔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을 단축할 진명들은 구해왔나요?"


수희가 루아와 송하에게 물었다.


송하는 주저하며 대답했다.


"때 시時 빼고는 모두 구해왔어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냥 할 수밖에."


"사정은 들었어."


그런데, 하나가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붙여줄게."


생소한 인물의 등장에 이월은 그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그가 루아에게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루아는 무존이라고 대답했고, 이에 이월은 깜짝 놀랐다.


"무존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귀엽다···라고 이월은 남모르게 입속으로 속삭였다.


"루아, 나 그 이름 무좀 같아서 싫다고 했잖아."


하나가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렸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천진난만한 행동과 외모였다.


"으흠."


하나는 목을 가다듬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40년 전에도 이 거리는 이렇게 시끌벅적했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거리. 우정이라는 변치 않는 가치.


요한의 생가는 그런 곳이야.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선물해 주는 곳.


앞으로도 우정이라는 가치가 빛바래지 않기를.


이곳의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이곳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삶을 영원히 비추어 주기를."


영원에 대한 소망을 담아서,


하나는 검지 끝에 푸르게 빛나는 때 시時의 글자를 띄웠다.


이야기로부터 진명을 뽑아내는 신기였다.


하나는 그것을 이월의 진명에 꽂아주었다.


이월은 시간의 이치를 빠르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하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진짜로 무존이시군요. 아난보다 당신이 더 강해요. 인정."


이월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실실 웃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월은 그녀를 지나쳐 가며 루아에게 손 흔들어 인사했다.


"그럼 갔다 올게. 어른이 되어서 만나자."


그는 역로의 집 쪽으로 멀어져 갔고,


루아는 아까보다 커진 그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루아."


근엄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철존이었다.


"이다음 계획은 있느냐?"


루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동료는 많을수록 좋다. 나도 그걸 이번에 느꼈지.


너도 동료를 많이 만들어라. 너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응당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생각해 볼게요."


"동료가 필요한가?"


그들의 대화에 옥근이 끼어들었다.


"루아, 내가 너를 도와주마."


"옥근."


"지금까지 나를 그 정도로 뜨겁게 한 여자는 너뿐이었다. 그러니 너를 따르겠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긴 하지만··· 고마워."


옥근이 단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단호, 너도 따라올 테냐?"


단호는 종이에 글을 적어 보여주었다.


-이런,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민영의 집에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그, 그, 그, 그런 의무 없어요~!"


민영이 단호의 등을 퍽퍽 때렸다.


"저의 집에서 그만 기생하고 좀 독립하세요! 살림 거덜 나겠어요!"


단호는 민영에게 맞으며 종이에 글을 썼다.


-크악···!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너를 따르겠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꼬락서니였다.


두 사람을 보며 루아는 생각했다.


자신을 떨이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했던 아버지 노요한에게 어떻게 해야 굴욕을 안겨줄 수 있을지.


***


같은 시각, 신무림.


미선당주 노루미는 남로 몽현과 함께 미선당이 있는 서울로 도피 중이었다.


두 사람은 시골의 빈집에 숨어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루미는 누워서 잠을 자고, 몽현은 그 앞에 앉아서 눈만 붙이고 있었다.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야심한 새벽.


몽현은 눈을 떴다.


"···또 왔나."


그는 일어서서 담장 쪽을 쳐다보았다. 달빛 아래에서 살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몽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영접했고, 살수들은 몽현의 기색을 잠시 살피고는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오너라, 나선당의 졸개들아."


몽현이 보따리를 끌러 검을 꺼냈다. 검신에 새겨진 의천倚天의 문자가 달빛 아래에서 빛났다.


살수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의천검倚天劍··· 먼 옛날 아미파의 장문인이 사용하던 검의 모조품인가?"


그 살수가 덤벼들고, 몽현은 마루를 딛고 날아올랐다.


몽현은 선녀가 달빛을 타고 내려오듯 공중에서 팽이처럼 나부끼며 살수의 공격을 의천검으로 쳐 내었다.


단순히 방어에 지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의천검의 예리함과 검법의 위력에 살수는 무기와 함께 일도양단 되어 즉사했다. 다른 살수들도 덤벼들었지만, 몽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죄다 무기째로 썰려 나갔다.


누구도 그의 검을 막을 수 없었다.


"나에 대해 깨닫는다고 한들, 정작 너희 자신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그의 검에 최후의 살수가 죽어 쓰러지고,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이 정도면 조금은 안심할 법도 한데 몽현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주위에서 아까보다 더욱 많은 살수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사면초가였으니 여기서 결사 항전한다고 하여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몽현은 싸웠다. 싸웠으나··· 그는 노인. 맹장이라고는 하나 점차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당주···!"


철존과의 싸움 도중 상당량의 진기를 소모한 루미는 잠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다. 잠에서 깬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은 못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은 여기서 끝까지 주군을 지키겠노라고 몽현은 다짐했으니, 하늘이 그의 의지를 헤아려 주었다.


"미선당주!"


다른 살수 무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몽현을 도와 나선당의 살수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 살수 무리는 이가살수문의 살수들이었으며, 그들의 선봉에 선 것은 천수상좌 이천의 맏아들, 만아인萬牙刃 이염이었다.


"당주를 데리고 따라오시오. 활로를 열겠소."


몽현은 루미를 둘러메고, 이염은 그를 이끌며 적들의 무리를 뚫고 나갔다.


"도망친다. 쫓아라!"


뒤에서 살수들이 쫓아 왔으나, 이염의 부하들이 그들을 틀어막았다.


이염과 몽현은 달빛 아래를, 어둠 속을 질주하며 도망쳤다.


***


다음날, 작명사 협회.


'노요한의 세 딸 중 누구에게도 협력하지 말 것.'


그런 말을 남기고 어느 날 떠나간 협회장, 범불작사 아난.


그가 사라진 이후로 작협은 혼란을 겪으면서도 아난의 의지에 따라 중립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바로 오늘 작협은 불가역적인 혼란을 겪게 되었으니, 찾아와서는 안 될 자가 작협의 수뇌부에 찾아오고 말았다.


작협의 운영 방침을 정하기 위해 갑급 작명사 대부분이 모인 자리였다.


"제게 협력하세요."


그 불청객은 자신을 따를 것을 작협에 일방적으로 강요했다.


작협에는 아직 아난을 따르는 무리가 많았기에 작명사들은 그자의 말을 무시했다.


불청객과 일행은 얼굴에 힘을 주고서 작명사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고 분위기는 급속도로 살벌해졌다. 그러고 있으니 갑급 작명사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불청객을 정중하게 내보내려 하는데,


불청객은 허리춤에 찬 검을 단숨에 뽑아 그 작명사를 베어 죽였다.


작명사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다른 작명사들은 경악에 빠졌다. 불청객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다시 한번 말했다.


"한 번만 더 말합니다. 제게 협력하세요."


검은 물감이 흘러가듯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칼.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운 용모.


업적을 입증하는 휘황찬란한 휘장들과 번개를 상징하는 푸른 제복.


힘과 정통성을 입증하는 신무림 제일의 검, 전륜검轉輪劍.


이 모든 것을 몸에 두른 여인.


신들의 왕 제석천, 그의 가장 유력한 후예.


나선당주喇仙堂主 노루나.


그녀가 호법들을 이끌고 이 자리에 행차했다.


"제 손으로 쥘 수 없다면, 제 손으로 모조리 없애겠습니다."


나선당주의 으름장.


그 한마디에, 자리를 지키던 갑급 작명사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경계했다.


그녀는 신무림 세존 노요한의 맏딸, 섣불리 건드리면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한때 노요한의 일대제자였던 뇌전작사雷電作師 전금이라는 자가 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노요한을 직접 배알하고 그의 밑에서 직접 배웠기에 더욱 잘 알았다.


노요한의 핏줄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것인지.


그러나 단 한 사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일어서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작명사가 있었으니,


"전원, 갑급으로서 체통을 지키시지요. 세존 본인도 아니고,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처녀가 무엇이 그리들 무서우신지요?"


가장 상석, 본래 아난에게만 허락되어야 했을 자리에 다른 작명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루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거의 2미터 정도 되는 꺽다리에, 보라색 줄무늬가 세로로 수놓아진 검은 정장.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에 죽음처럼 검게 칠한 입술.


남성의 골격에 중성적인 목소리, 여성의 말투를 구사하는 괴이한 인간.


작협의 2인자이자 협회장 대리인 사생작사死生作師 지모수라는 작자였다.


죽은 듯 적막한 회장 안에 그의 구둣발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나선당주시여."


그는 이내 루나의 앞에 서서 여유로운 얼굴로 물었다.


"원래 있던 전속 작명사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죽였습니다."


루나는 무덤덤한 표정과 목소리로 즉시 대답했다.


"말을 듣지 않아서, 대의를 위해 죽였습니다."


존댓말을 쓰면서도 사람을 쓰레기처럼 다루는 발언.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녀의 모습은 얼핏 천진난만하게 느껴졌으나, 실은 냉철함이 도를 넘은 것에 가까웠다. 본인의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탓에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관 따위는 가벼운 말로, 일상적인 말로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대의입니까, 후후."


한편 루나의 발언에 지모수는 여성스럽게 웃었다.


"나선당주께서 차기 신무림맹주의 좌에 오르는 대의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루나가 생긋 웃었다. 지모수는 이어서 말했다.


"그 친구도 참 융통성이 없군요. 이미 전속으로 배정된 작명사라면 굳이 중립을 지킬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여러분이 그만큼 아난을 철저히 따랐다는 증거겠지요?"


"나선당주,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아난처럼 꽉 막힌 사람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아난의 전언을 무시하고 가장 먼저 작협에 찾아와주신 당주님의 기개와 발상을 높게 사 드리고 싶어요."


지모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것은 그런 당주님께 제가 드리는 상이랍니다."


한 청년이 루나의 등 뒤에 나타났다.


"어, 잠시만 좀 지나갈게."


루나가 깜짝 놀라 뒤돌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흰 머리칼에 동그란 안경을 낀 청년이었는데, 루나의 또래였다.


루나의 호법들이 그를 살벌하게 노려보는데,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들의 옆을 슬며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지모수의 곁에 섰고, 지모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희가 요즘에 키우는 친구예요. 아난의 뒤를 이어 차기 작협회장이 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작명사죠."


"당신이 직접 협회장 자리에 오르지 않는 건가요?"


루나가 물었다. 지모수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재능이 없거든요."


"재능?"


"아난이 생각보다 빨리 나가서 좀 애매해지긴 했지만, 이 친구는 잘 키우면 역대 최고의 작명사가 될 거예요. 무존 강하나마저도 뛰어넘는 작명사로 말이죠."


그가 청년의 등을 떠밀어 루나에게 가도록 했다.


"삼라작사森羅作師 파비야. 연수라도 시킬 겸 당주님께 잠시 빌려 드리겠습니다. 당주님께서 잘 키워주시지요."


"그래··· 그렇단 말이죠."


루나가 파비야라는 청년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름대로 멀쑥하니 잘 생기긴 했지만, 옷차림은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였으니 이런 자리에서는 수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예의범절도 모르는 녀석이 정말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루나는 의문스러웠다.


그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루나,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파비야에게 물었다.


"파비야, 지금 항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나요?"


"어느 정도는."


"제가 미선당주를 잡으려 하는데, 이가살수문에서 방해를 하고 있어요. 제가 항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2가지 방법이 있어."


파비야는 곧장 대답했다.


"하나는 제석천의 진명을 모아 무림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냥 나한테 전부 다 맡기는 것."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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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뇌신인형술 나운 1 23.09.01 50 2 13쪽
85 동맹 23.08.31 39 1 13쪽
84 천수살법 이천 3 23.08.30 43 1 18쪽
83 천수살법 이천 2 23.08.29 44 3 16쪽
82 천수살법 이천 1 +2 23.08.28 47 3 15쪽
81 이가살수문 2 +1 23.08.25 46 1 12쪽
80 이가살수문 1 23.08.24 45 2 13쪽
79 재정비, 그리고 신무림으로 23.08.23 56 2 16쪽
78 당산봉 전투 4 23.08.22 45 1 12쪽
77 당산봉 전투 3 +2 23.08.21 59 2 14쪽
76 당산봉 전투 2 23.08.18 49 2 15쪽
75 당산봉 전투 1 23.08.17 53 1 15쪽
» 항쟁의 두 번째 여명 23.08.16 54 3 13쪽
73 뇌단법과 호걸들 7 - 무존 강하나 2 +1 23.08.15 58 3 11쪽
72 뇌단법과 호걸들 6 - 무존 강하나 1 23.08.14 56 3 13쪽
71 뇌단법과 호걸들 5 - 천공광 소유 23.08.11 85 3 13쪽
70 뇌단법과 호걸들 4 - 산명조 단호 23.08.10 57 1 12쪽
69 뇌단법과 호걸들 3 - 불괴신 옥근 23.08.09 62 3 12쪽
68 뇌단법과 호걸들 2 23.08.08 67 2 14쪽
67 뇌단법과 호걸들 1 +2 23.08.07 63 4 12쪽
66 노요한과 사람들 3 +1 23.08.04 68 4 12쪽
65 노요한과 사람들 2 +1 23.08.03 73 5 12쪽
64 노요한과 사람들 1 +2 23.08.02 67 4 12쪽
63 무존과 세존 3 23.08.01 72 4 11쪽
62 무존과 세존 2 +2 23.07.31 61 3 13쪽
61 무존과 세존 1 23.07.28 64 4 12쪽
60 교환 +1 23.07.27 74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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