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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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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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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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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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요한과 사람들 2

DUMMY

주황색 머리칼을 양갈래로 묶은, 도복 차림의 소녀.


구무림 주민들의 절을 받는 존재는 그런 소녀였다.


그녀는 초가집 마루에 앉아 무표정으로 그들의 절을 받고 있었다.


주민들은 시종일관 그녀를 향해 사태님이라 부르짖으며 자신에게 힘을 달라느니, 더 건강하게 만들어 달라느니, 누구를 불행하게 만들어달라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요한은 그 모습이 신기하여 벽 뒤로 숨어서 잠시 지켜보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올까.'


그래서 그는 일단 유성문으로 돌아갔다.


유성문주가 그를 보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왜 돌아왔어?"


"사태님께서 좀 바빠 보이시던데, 조금 있다가 다시 찾아가려구요."


"그럼 네 집에 가면 되잖아."


"여기서 우리 집까지 다소 멀어서···."


"어엉?"


유성문주가 붉으락푸르락하며 요한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들었다.


"여기가 객잔이냐? 으응? 네 마음대로 묵고 가게?"


"아! 아아앗!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이것아!"


그렇지만 유성문주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요한에게 묵을 곳을 내주었다.


그렇게 요한은 유성문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후 새벽에 다시 성읍마을로 향했다.


아무리 그래도 새벽까지 그러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거기서 곧장 무명사태의 집을 찾아갔는데, 역시나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한은 좌우를 살피며 도둑처럼 집안에 숨어들었다.


넓은 방 안에 홀로 이불 깔고 자는 사람이 있었다.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아까 절을 받던 그 소녀였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옆에서 보고, 앞에서 보아도 역시 그냥 평범한 소녀로밖에 안 보였다.


요한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져, 검지로 그녀의 볼을 쿡쿡 찔렀다.


소녀가 부스스 눈을 뜨는데, 요한을 발견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꺄아악!"


높은 비명과 함께 까무러치듯 이불에서 뛰쳐나왔다.


벽에 붙어서 요한을 쳐다보는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늑대와 마주친 어린 양처럼 여렸다.


"진정하십시오."


요한은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켰다.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명사태 맞으십니까?"


소녀가 벌벌 떨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사태···."


요한이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뭔가 이름이 독특하시네요. 다른 분들과는 다른 느낌?"


"아, 저···."


가만히 듣던 소녀가 목소리를 내었다.


"무명사태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강하나예요."


"강하나!"


요한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당신의 이름이군요! 훨씬 예쁩니다!"


요한이 하나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으···."


하나는 요한의 거침없는 손길에 더욱 벌벌 떨었다.


그렇게 통성명을 마친 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군청색 하늘에 하얀 별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하나는 작명공이라는 무공의 사용자였다.


작명공이란, 사람의 운명을 글자의 형태로 인식하고, 또 교체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요한은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명을 들은 순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는지 바로 이해했다.


자기 운명을 바꾸어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그러면!"


요한이 흥분하여 소리쳤다.


"제 진명도 보이십니까?"


하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큰 소리로 묻는데, 하나는 부끄러움에 눈길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보, 보여요."


"오오, 보이시는군요. 뭐가 보이시죠?"


하나는 입을 꾹 다물고, 한 차례 숨을 돌리고서 대답했다.


"제석천帝釋天."


"제··· 석?"


"제석천. 장차 무림의 정점에 오를 운명이에요."


"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한 건지, 요한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제석천의 진명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제석천은 인드라라고도 하는데, 천둥 번개를 다루는 신이다.


불교에서는 석가여래의 호법 취급을 받지만, 도교에서는 최고신으로 추앙받기도 하는데, 바로 옥황상제라는 존재이다.


하나가 말하기를, 제석천에서 제는 인드라의 체體, 석은 인드라의 기氣, 천은 인드라의 심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인드라의 육체, 인드라의 기질, 인드라의 영혼이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제석천이라는 진명은 하늘 천天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합이다.


출력은 여래의 진명보다는 낮다. 하지만 무림인에게는 제석천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여래의 진명을 단다고 해서 무조건 무공이 고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의 진명은 불가佛家 계열 무공에 간섭하는 진명인 데다, 무공의 증진보다는 그 너머의 신통력이 생기게끔 한다.


신통력은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데, 멀리 보거나 멀리 내딛거나 하는 잡기술에 가깝다.


무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도가道家 계열 무공임을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무공의 정점에 닿기 위해서는 도가 계열의 정점인 제석천만 한 진명이 없는 것이다.


"와,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요."


요한이 또 하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앞으로 저희 친하게 지내죠!"


"아, 아아···."


요한이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드는데, 하나는 얼굴을 붉히며 요한의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네."


그 대답에 요한은 티 없이 웃었다.


그는 하나에게 그 작명공이라는 것을 자기에게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르쳐줄 수는 있어요."


하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쓰는 작명공은 좀 특별해서 제자를 한 명밖에 둘 수 없어요."


"왜죠?"


"모든 것을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즉, 제자를 키우면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그러자 요한은 쓰읍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저 때문에 하나가 곤란해지는 건 싫어요."


"그, 그래도."


하나가 요한의 소매를 잡았다.


"기본적인 작명공이라면 알려줄 수 있어요."


"진짜요?"


"네, 그러니까 자주 찾아오세요. 가르쳐 드릴게요."


"오오! 꼭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요한이 또 하나의 손을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이제는 하나도 적응되었는지 요한의 손길을 쉬이 받아들였다.


이제 작명공을 배우기 위해 하나의 집에도 주기적으로 들러야 했으니, 앞으로 갈 문파들은 오로지 통학으로만 다녀야 했다.


머리가 꽃밭인 요한이라도 그 험난함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귀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오늘은 그저 즐거웠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이후 그는 장장 1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구무림에서 살았다.


구무림인 중에는 그를 재밌어하는 자들도 있었고, 그의 재능에 탄복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를 질투하고 미워했다.


요한은 10년간 갖은 수모와 모욕을 겪으며 무공들을 배웠다.


그러면서 하나에게도 착실하게 작명공을 배웠다.


작명공은 불가 계열 무공이었기에 도가 계열 무공들보단 학습이 더디었다.


그렇지만 갖은 노력 끝에 진명을 보는 것만 가능한 정급을 넘어, 진명을 쓰는 것도 가능한 병급에 이르렀고, 진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한 을급에 이르렀다.


요한은 30대가 되었고, 주름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반면 하나는 여전히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으니, 요한은 늘 변함없는 그녀를 보며 마치 요정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 요한은 10년 동안 무공을 배워봤지만, 마음속의 갈증이 통 사라지지를 않았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완전무결한 자신만의 무공을 만드는 꿈을.


고향에 있던 시절, 그는 어느 거대 기업가의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공이라는 것에 강하게 이끌렸고, 개인적인 성취를 위해 후계자를 포기하고서 이 땅에까지 왔다.


그러니 대신 최고의 무공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그는 강압에 가까운 압박을 스스로 걸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무공에 대해 진지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래서는 완전무결한 무공은 만들 수 없다.'


무공은 끝없이 성장한다. 그러니 완전무결함이란 존재치 않는다.


이러한 모순을 견딜 수 없었던 요한.


그는 혼자 끙끙 앓다가 어느 날 고민을 하나에게 털어놓았고, 그러자 하나는 대답했다.


"진명이 사람의 토대를 만드니까, 너는 무공의 토대를 만드는 게 어때?"


"무공의 토대?"


"무공을 만드는 무공을 만드는 거지. 네가 처음에 배운 삼재공처럼. 그러면 무공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네 무공에서 시작된 셈이니까 너도 그 업적에 얹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아···."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무공의 근간이 되는 무공을 만들어, 완전무결을 향해 나아가는 세월 그 자체에 동참하라는 말.


하나는 반농담식으로 던진 말 같았지만, 요한은 그녀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10년 전 그날처럼,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벅찬 목소리로 외쳤다.


"좋았어. 그럼 나는 만인이 쉽게 무공을 익히고 쉽게 자기만의 무공을 만들 수 있게 하겠어! 그걸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로 삼겠어!"


그렇게 그는 자기만의 무공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요한은 유쾌한 성격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껏 걸어온 10년 동안은 무공만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지, 그것을 가르치는 무림인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았기에 그들로부터 쉽게 미움받았다.


그래서 이제 그는 앞으로 걸어갈 10년 동안은 다른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돕고 이해하는 생활을 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요한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런 경험 덕에 요한은 다양한 무림인들의 생태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저 보고 듣기만 하는 걸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초식을 1개 만들 때마다 집을 하나씩 짓고, 그 집에서 살면서 그 초식을 배울만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우선 삼재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심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 심법을 바탕으로 하여 최초의 초식을 만들어 냈다.


최초의 초식은 검법에 관련된 초식이었다.


요한 본인이 검법을 좋아했기에 딱히 타인의 삶에 몰입할 필요는 없었고, 이미 지내던 집도 있었기에 그냥 그 집에서 평범하게 살며 초식을 개발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연기를 하였다.


그가 연기하는 것은 제석천의 재능을 갖추지 못한 절대다수의 일반인.


그렇게 1년 동안 노력한 결과 그는 일반인들도 배울 수 있는 검법을 만들어 내었고,


비가 오는 날, 유성문주를 포함한 지인들을 모아 목검으로 번개를 잘라내는 신기를 선보였다.


그는 방금 사용한 검이 유성문 문하생 시절 자신이 쓰던 검이고, 유성검의 초식 중 하나인 낙류성에서 영감을 얻어 이 검법을 창제하였다며, 유성문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요한은 번개를 자른다는 의미를 담아 이 영광스러운 첫 번째 초식에 뇌단雷斷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장차 만들어갈 무공에는 뇌단법雷斷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번개를 자르는 일과 비슷하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방법의 모음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요한과 하나, 그리고 유성문주와 더불어 요한이 그동안 신세 졌던 지인들.


이날 다들 기쁨에 겨워, 비가 오는 새벽 내내 밖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춤추고 웃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요한은 뇌단법을 구무림에 홍보하고, 흥미를 갖는 사람들을 모아 뇌단법의 일대제자로 삼았다.


이날 모인 사람 중에는 훗날 거물이 되는 자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신무림 최대의 무공 교육기관, 수미관須彌館의 관장이 되는 자도 있었고, 신무림 세존의 측근인 선후부장이 되는 자도 있었으며,


또한, 무림에서 제일가는 살수가 되는 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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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천수살법 이천 2 23.08.29 44 3 16쪽
82 천수살법 이천 1 +2 23.08.28 47 3 15쪽
81 이가살수문 2 +1 23.08.25 46 1 12쪽
80 이가살수문 1 23.08.24 45 2 13쪽
79 재정비, 그리고 신무림으로 23.08.23 56 2 16쪽
78 당산봉 전투 4 23.08.22 45 1 12쪽
77 당산봉 전투 3 +2 23.08.21 59 2 14쪽
76 당산봉 전투 2 23.08.18 49 2 15쪽
75 당산봉 전투 1 23.08.17 53 1 15쪽
74 항쟁의 두 번째 여명 23.08.16 53 3 13쪽
73 뇌단법과 호걸들 7 - 무존 강하나 2 +1 23.08.15 58 3 11쪽
72 뇌단법과 호걸들 6 - 무존 강하나 1 23.08.14 55 3 13쪽
71 뇌단법과 호걸들 5 - 천공광 소유 23.08.11 85 3 13쪽
70 뇌단법과 호걸들 4 - 산명조 단호 23.08.10 57 1 12쪽
69 뇌단법과 호걸들 3 - 불괴신 옥근 23.08.09 62 3 12쪽
68 뇌단법과 호걸들 2 23.08.08 67 2 14쪽
67 뇌단법과 호걸들 1 +2 23.08.07 63 4 12쪽
66 노요한과 사람들 3 +1 23.08.04 67 4 12쪽
» 노요한과 사람들 2 +1 23.08.03 73 5 12쪽
64 노요한과 사람들 1 +2 23.08.02 67 4 12쪽
63 무존과 세존 3 23.08.01 72 4 11쪽
62 무존과 세존 2 +2 23.07.31 61 3 13쪽
61 무존과 세존 1 23.07.28 64 4 12쪽
60 교환 +1 23.07.27 74 2 14쪽
59 광변발도공 영힐 2 23.07.26 60 3 11쪽
58 광변발도공 영힐 1 23.07.25 6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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