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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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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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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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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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의 검객(1).

DUMMY

흑사방주가 죽고 며칠이 흘렀다.


노인에게 주문한 단약에 완성되기까지, 소일도는 흑사방의 장원에서 지냈다.


애초에 수용하는 인원이 많았던지라 먹을 것도 제법 있었고, 반대로 그 많던 인원이 전부 도망가서 수련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밥을 먹는 등 생리적으로 필요한 시간과 운기조식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장원에서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검귀의 기억이 깨어나고, 이렇게 여유로이 수련에 몰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후우우.”


소일도는 검을 하단세로 들고, 감았던 눈을 부릅 떴다.


그러자 눈 앞에 흑사방주가 있었다.


흑사방주는 이미 죽었지만, 소일도는 여전히 상상 속 흑사방주와 나날이 싸웠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한, 아직까지 흑사방주는 가장 고수였기 때문이다.


“흡!”


한 호흡째.


소일도가 쾌검으로 흑사방주의 몸을 사선으로 베며 달려든다.


그러나 흑사방주는 장삼의 끄트머리만 살짝 갈라졌을 뿐, 오히려 한 발짝을 파고들어 경력이 실린 손으로 화염장을 뻗는다.


그 순간 소일도의 검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형체를 감춘다.


언제 앞으로 내질렀냐는 듯 흑사방주의 손목 앞에 도착해 있는 소일도의 검날.


상대를 홀리는 검.


환검(幻劍)이다.


서걱!


흑사방주의 손목이 날아간다.


“음.”


숨을 길게 내쉰 소일도가 겁집에 검을 넣었다.


그는 며칠 새에 무섭도록 성장했다.


영약을 먹고 내공을 얻어서 공세의 격이 오른 것은 물론이고,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움이 대폭 사라졌다.


그 결과, 흑사방주와 다시 맞붙는다면 한 호흡 안에 승부를 낼 자신이 있었다.


여러 경우를 상정해봤지만 모두 그랬다.


며칠 전과 지금의 소일도는 완전히 다른 검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흑사방 간부들과 흑사방주를 상대하며 깨어난 감각과 깨달음은 그만큼 컸다.


고작 몇 개의 영약으로 얻은 작은 내공만으로 쾌검, 중검, 유검, 환검의 묘리를 자유자재로 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본은 모두 익혔다.'


물론 평생을 수련해도 끝나지 않는 것이 기본이긴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초석은 이만하면 됐다.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도화지를 넓히는 작업이 끝날 줄은 몰랐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워낙 많은 실전을 경험한 탓인가.’


무림에서 최고의 경험이라 하면, 곧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생사결(生死結)이다.


그 어떤 폐관수련이나 비무 대련보다 생사결의 경험 한 번이 무인을 성장 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일도는 검귀의 기억과 감각이 점차 깨어나며 믿기 어려운 속도로 지평을 열어낸 것이다.


‘다음 층계, 살짝 밟아만 볼까.’


다음 층계라 함은 곧 새로운 검법이었다.


흑사방주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린 마지막 일검. 그 일검에서 소일도는 검법을 하나를 깨우쳤다.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펼친 검이 전생의 것과 겹치면서 잠들어 있던 검귀의 기억 속 검법의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철연수개검(鐵蓮秀開劍).


대종사 구야자(歐冶子)가 창안한 무공.


철로 된 연꽃이 수려하게 피어나다는 뜻의 검법이었는데, 검과 연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불명이었다.


검귀였을 적에도 깨닫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아직 기억이 온전치 못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소일도가 스스로 철연수개검의 여섯 층계 중 첫 번째 경지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거였다.


적근산괴(赤菫山壞).


적근의 산이 무너지다.


강소성(江苏省) 소주(苏州)에 위치한 생뚱맞은 적근산이 연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도 역시 불명이었다.


다만 이 검법이 소일도를 검의 끝, 즉 검신의 길로 이끄는 첫 번째 단서라는 사실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여섯 층계를 모두 올랐을 때.’


상상만으로 소일도 안에 있는 검귀의 영혼이 기뻐하고 있었다.


소일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상승했다.


“어디 한번.”


중얼거린 소일도는 바뀐 복장의 요대에 검갑을 집어 넣었다.


의복은 흑사방 어딘가에서 대충 조달한 것이었고, 요대는 남정현의 포목점에서 곽 노인에게 받은 장삼이 싸움 도중에 그을리고 헤진 것을 말끔한 부분만 잘라 허리춤에 멘 거였다.


애초에 천이 고급이라서 요대로 활용해도 질기고 검을 튼튼하게 지탱했다.


소일도는 요대 속에 집어넣은 검의 손잡이를 다시 말아쥐고, 사냥하는 맹수처럼 자세를 낮추었다.


발검의 자세였다.


새롭게 얻은 깨달음으로 말미암은 검법.


“......”


소일도의 호흡이 조용히 멈췄다.


그러자 한동안 소일도의 신형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전신의 땀구멍에서 송골송골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전신을 뒤덮는다.


소일도의 온 몸이 땀방울과 함께 차게 식더니, 다음 순간 곧바로 피부에 붉은 기가 돌았다.


산들바람에 날아든 낙엽이 소일도의 몸을 스치면서 치익, 하고 연기를 뿜었다.


이 순간, 소일도의 몸은 불덩이였다.


츠즈즈즈즈즈.


검파를 쥔 손다박에서도 연기가 올라왔다.


소일도의 전신이 한계까지 다다른 순간.


파앙!


검갑에서 발출한 검이 숨통을 트이듯이 파공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소일도의 호흡도 돌아왔다.


“커헉......! 허억, 허억.”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연신 뱉어냈다.


실패였다.


소일도가 본 것은 철연수개검의 첫 번째 층계에서도 극히 작은 편린에 불과했으나, 적어도 지금의 발검이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소일도의 수준으로는 철연수개검의 검식을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역시 검법이 떠올라도 그에 맞는 내공심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인건가.’


소일도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가 끓을 거처럼 뜨겁던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내공이 조금이라도 없었으면 몸이 터져서 죽든가 머리가 익어서 죽었겠군.’


그만큼 괴랄한 무공이었다.


소일도가 아는 한 어떤 무공도 입문 단계에서 이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열기로 인해 전신에서 느껴지는 참기 힘든 고통.


수련자를 물건 쯤으로 생각하는 건지, 입문의 문턱에서 배려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미친 대종사가 이런 무공을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뭐.’


어차피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일도는 납검하고 달궈진 검파에서 손을 뗐다.


검파에는 손바닥 모양대로 피부가 눌어붙은 자국이 남았다.


* * *


약속했던 삼 일이 지났다.


노인이 있던 의약각을 찾아가니,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단약을 내밀었다.


“여기, 말씀하신 약재들을 배합하여 솜씨껏 단약으로 만들었습니다.”


소일도는 망설임 없이 단약 네 개를 집어 꿀꺽 삼켰다.


모든 공정 과정은 직접 옆에서 지켜봤다. 독이나 다른 재료가 들어갔다면 진즉에 알아차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삼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에서 약효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양이나 음에 치우친 기운은 모두 제하고, 불순물도 씻어낸다.’


단약을 마치 영약처럼 흡수한 소일도는 잠시 뒤 눈을 떴다.


“퉤.”


침을 뱉자 검게 물든 타액이 바닥에 탁 떨어졌다.


단약에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일찌감치 제거한 덩어리였다.


삼 일 동안 제조한 단약을 한 다경도 지나지 않아 전부 먹어치운 소일도가 노인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받으시게.”

“이게 무슨 돈입니까?”


손바닥 위에는 흑사방에서 발견한 금두꺼비 한 마리가 올라가 있었다.


“약을 만들어준 대가다.”

“그, 그런.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노인은 한사코 손을 저으며 거절했지만, 그 진짜 저의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흑도의 돈에는 대개 무림의 은원이 얽혀 있다.


거금이라 해도 웬만하면 손 대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은 것이다.


“노인장.”

“예.”

“독을 만들어본 적 있나?”


그러자 노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독을 만든 적이 있냐고 묻는 것은, 곧 살생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이.”


노인이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우물거렸다.


소일도는 노인의 다리를 흘끔 보았다. 크게 다쳤는지 절뚝거리고 있었다.


도망치지 못하는 의원.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건지, 아니면 도망치지 못하는 몸이라 표적이 됐는지는 몰라도, 사정은 유추가 가능했다.


“이미 독을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평생 약을 만들면서 살게. 그 정도 실력이면 약방 하나쯤은 거뜬하겠지.”


소일도는 금두꺼비를 탁상에 탁 올려놓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길로 흑사방을 떠났다.


노인이 그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금두꺼비를 챙겼다.


* * *


발 달린 말이 백 리를 갈 때, 발 없는 말은 이역만리를 간다.


소일도가 흑사방에서 수련한 삼 일은, 장주 전역에 수수께끼의 검객에 대한 풍문이 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간만에 재회한 단골 보부상과 객잔 주인이 대화를 시작했다.


“이보게, 그 소문 들었는가? 흑사방이 망했다네. 그것도 하루아침에!”

“알고 있고 말고. 참으로 잘 된 일이지. 어디 흑사방 그놈들이 자리잡은 뒤로 그쪽 지역이 어디 사람 사는 분위기였던가?”

“그래, 그럼 이것도 아는가? 흑사방의 방주부터 말단까지 전부 검객 하나에게 당했다는 말이 있더군!”

“뭐?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도 흑사방 전력이 족히 수백은 됐을 것인데. 자세히 좀 말해보게.”

“흠흠.”

“왜 뜸을 들이는가? 에잇!”


객잔주인이 보부상의 탁상에 철전 두 냥을 던졌다.


“하하 그저 보고 들은 소식을 전해주는 것뿐인데 뭘 이런 걸 다.”

“시끄럽고, 어서 시작해보게.”

“이 친구, 성질도 급하구먼. 알았네. 그게, 그 기인검객의 첫 출두는 남정현의 등매루에서부터......”


장주에서 일파만파 알려진 이름모를 기인검객에 대한 이야기는, 이레 쯤 시간이 지났을 때 어느덧 복건 전역에서 최고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당연히 이 소식은 복건에 있는 각 세력 총수들의 귓전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적가장(翟家場).


복건의 중심지인 복주에 위지해 있고, 복건성 내에서 위명 있는 정도 세가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세가.


그곳의 장주, 적광(翟光)은 이 소식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흑사방주가 죽었다라. 그 기인검객이라는 놈의 정체는 뭐냐.”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장주에 있던 작은 철방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철방의 자식?”

“예. 듣자하니 흑사방에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확인된 정보는 아닙니다.”

“확실한 정보가 하나도 없군.”

“송구합니다.”


하지만 수하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검객과 조금이라도 연루된 인물 중 살아남은 인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검객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다더냐.”


적광이 물었다.


이번에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곳, 복주를 향하고 있다 합니다.”

“이곳으로?”

“예.”

“보고는 끝인가.”

“그렇습니다.”

“......알았다. 이만 나가봐라.”


수하는 포권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보고를 물린 적광의 옆에는 아직 형체 없는 인영이 드리워 있었다.


“흑사방을 치고 곧장 이곳으로 향한다라. 대주,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그 검객이 흑사방과 본가의 거래를 알아챈 듯한가?”


대주라 불린 인물은 그림자만 비출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아직 확단하기는 이르지만. 기우가 아직 기우일 때 불씨는 꺼두는 편이 좋습니다.”

“역시 그러한가. 흐음.”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적광이 결정을 내렸다.


“적풍대 다섯을 보내겠다. 흑사방주를 이겼다 했으니 이 정도는 필요하겠지.”

“명, 받듭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주의 기척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적풍대가 나선 이상, 소문은 며칠 새에 사그라들 것이다.


소문의 발원지 자체가 사라질 테니까.


“끌끌......”


적광은 조용히 혀를 차며 이름 모를 검객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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