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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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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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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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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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의 검객(2).

DUMMY

표물을 잔뜩 실은 마차의 바퀴가 느긋하게 돌아갔다.


마차를 호위하며 걷는 표사들이 열 명 있었고, 건장한 체격의 눈이 부리부리한 표두가 가장 앞장섰다.


그리고 그 표두의 옆에서 걷는 사내......


소일도였다.


“와하하하! 이 친구. 식량은커녕 물도 없이 어찌 여행길에 올랐단 말인가?”


표두가 호탕하게 웃으며 소일도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뒤편에서 표사 하나가 거들었다.


“표두님, 저는 처음에 보고 미친놈인 줄 알았습니다. 달랑 칼 한 자루 차고 산행을 나서는 자가 세상천지 어디 있답니까?”


또다른 표사도 맞장구쳤다.


“맞는 말이네. 운 좋게 만난 것이 우리 표행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말라 죽거나 짐승들에게 죽거나 도적에 죽었겠지.”


표두는 둘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


“아무렴. 그래도 나는 마음에 들었네. 응당 젊은 나이라면 혈기와 치기에 몸을 맡기기도 해봐야 하는 법! 검 한 자루에 의지해서 산중을 거닐다니. 낭만은 있지 않은가?”

“......”

“덕분에 이렇게 인연도 얻었고 말이야! 하하하하하!”


팡 팡 팡 팡 팡!


표두는 이 상황이 그리도 재미 있는지 자꾸만 웃으며 소일도의 등짝을 불기짝 치듯 때렸다.


“그래도 조금은 몸을 사리는 게 좋아 젊은이. 최근에 이 인근에 흑사방이라는 흑도가 한 검객에게 통째로 불탔다지 뭔가. 강호야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시기에는 어디에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말이야.”

“......그렇습니까?”


소일도가 슬쩍 받문하자, 표두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혼자서 흑사방을 무너뜨린 검객이 얼마나 강하며 칼에 독기를 품었겠는가? 복건의 세력들이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으니 또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네.”

“그렇군요.”

“또 하나 조언하자면, 무림인들 중에 제정신인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네. 흑백을 막론하고 잘 피해 다니는 게 좋지.”

“알겠습니다.”

“그래, 이 친구. 배포도 크면서 까칠하지 않고 좋구만! 요즘 젊은 것들 같지가 않아. 와하하하하하!”


소일도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표두는 그의 머리를 헝클며 또 웃었다.


듣자하니 이들 표행은 물건을 전달하러 복주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산중을 걷던 소일도를 발견하고 다가온 거였다.


물이나 식량, 그 외 어떤 대비책도 없이 혼자서 꽤 높은 산의 중턱에 덩그러니 있었기에, 이들은 소일도에게 물이며 말린 고기를 나누어주며 목적지를 물었다.


“복주로 갑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하자, 목적지가 겹치니 데려다 주겠다고 이렇게 달라붙은 것이다.


사실 소일도는 물과 식량 없이도 삼 일은 너끈히 버틸 수 있어서, 최대한 몸을 경량화 한 것인데 말이다.


게다가 배가 고프면 산짐승이나 새를 사냥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일도 아니었고, 물은 청각을 집중해서 흐르는 개울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사양할 틈도 없이 표두라는 자가 다가와서 이렇게 호의를 표했다.


‘굳이 정체를 밝힐 필요는 없지. 오히려 표행의 일원으로 조용히 묻어갈 수 있다면 더 좋다.’


표두가 말했던 것처럼, 소일도는 향간의 주목을 받는 몸이었으니까.


소연을 찾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데, 복잡한 무림인들의 관심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자네 복주에는 어떤 일로 가려고 하는가?”


조금 걷는 사이, 지치지도 않는지 밑도 끝도 없이 칭찬을 퍼부어대던 표두가 물었다.


소일도는 하오문 지부를 찾아가는 중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복주에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복건의 중심지가 아닙니까?”

“뭐? 하하하하! 이 친구 역시 젊은 시절의 날 닮았어. 아주 사내대장부로군. 고작 그런 이유로 산행에 오르다니?”

“뭔가 이상합니까?”


그러자 표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당연하지 않나? 밤의 산이 얼마나 위험한데. 게다가 강호는 어떻고. 보통 별다른 이유 없이는 산을 오르지 않네. 우리 같은 표사들이야 먹고 살고자 표행을 하지만.”


표두가 뒤편에 실린 말을 쓰다듬고 표물을 탕탕 쳤다.


“하지만 그래. 자네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네. 하기사 사내가 여행을 떠나는데 이유가 무언들 중요하겠나? 중요한 건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첸데 말이야!”


꾸며낸 소일도의 대답마저 표두의 취향이었나보다. 그는 또 소일도의 등을 솥뚜껑같은 손으로 두들겼다.


도대체가 이 사내와 함께 다니면 등짝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돌연 표두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나는 자네가 웬 뚱딴지같은 검을 차고 있기에, 적가장의 무사 시험을 보는 줄 알았네.”

“무사 시험 말입니까?”

“그래, 이것도 모르나보군.”


표두가 무사 시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적가장이라 하면 안휘의 남궁세가같은 오대세가만은 못하더라도, 복건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가니까 말이야. 매년 무사 시험을 볼 때면 지원자가 복주로 몰린다더군.”


그 말에 소일도가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家場)이라 함은 곧 혈족을 중심으로 모인 세가였다. 그런 세가에서 무사를 시험으로, 그것도 매년 선출한다는 것은 의아했기 때문이다.


소일도가 이것을 질문하자, 표두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해줬다.


“적가장의 장주가 삼 년 전에 폐관을 깨고 나왔다는 소식이더군. 그래서 지금 적가장을 복건제일가로 만들겠다고 인재들을 뽑고 있는 모양이야.”

“삼 년 전이요?”

“그래. 그때 이후로 적가장의 시험 덕분에 매년 이맘때면 복주가 떠들썩하다네.”


다른 부분은 넘어갈 수 있었지만, 장주가 바뀐 시점이 공교롭게도 삼 년 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삼 년 전은 흑사방이 막 남정현에 나타난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일도의 어머니 설화은과 동생 소연이 납치를 당한 시점이기도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던 소일도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우인가. 그저 시기가 겹친다 뿐이니.’


어떤 시기에도 굵직한 사건은 일어난다. 하물며 적가장주의 폐관 수련이 흑사방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소연의 행방을 찾는 일이 먼저였다.


‘자세한 건 하오문에 가서 물어야겠군.’


소일도가 그렇게 생각하고 적가장의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해둔 그때였다.


“잠깐.”


표두가 생각에 몰두한 소일도를 멈춰세웠다.


표행 전체가 벽이라도 마닥뜨린 듯이 우뚝 멈췄다.


앞길을 막는 무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룡표국의 표행이다. 그대들의 정체를 밝혀라.”

“그걸 꼭 귀로 들어야 아나?”


표행의 앞길을 막아선 것은 마치 그린 듯한 산적패였다.


‘나 도적이오.’ 하고 주장하는 듯한 누더기 복장에, 인원 수는 딱 표사들을 상회했고, 손에는 엉성하게 이가 나간 병장기들을 들고 있었다.


소일도가 검갑으로 손을 살짝 가져갔다.


여차하면 전부 벨 생각이었다.


그러나 표두의 행동은 달랐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다 아는 사람끼리 입만 아프군. 성의껏 돈을 가져와라.”

“알겠소.”


표두가 소일도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하고 대표로 도적들에게 다가갔다.


소일도는 멀리서 표두가 전낭을 건네는 장면과 산적들이 그 전낭을 풀어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일은 잘 풀린 듯 싶었다.


표두가 당당한 걸음으로 돌아왔고, 산적패들은 수풀 너머로 사라져 길을 터줬다.


그대로 표행은 당연하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소일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표두, 방금 싸웠으면 이길 것 같았는데 왜 돈을 준 겁니까?”

“허허, 젊은 소장. 세상 모든 일은 싸워야만 풀리는 것이 아니라네. 전투가 벌어졌다면 이기기야 했겠지만 누구 하나쯤은 다쳤을 테지. 저들에게 준 돈보다 그 약값이 더 나가네. 애시당초 저들도 그 점을 노리고 습격해온 게야.”

“아......”

“표행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네.”

“그렇군요.”

“음.”


표두는 그렇게 말하고도 잠시간 고민했다.


뭔가 할 말이 더 있는데 어떻게 전달할지 말을 고르는 듯했다.


“그리고 애초에 저들은 양민이네. 각자가 인생에 어떤 흉(凶)이 닥쳐서 먹고 살기 힘들어져니 산을 오른 이들이 대부분이지. 또 풍작이 돌거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농민으로 돌아갈 걸세.”


정예 산적인 녹림채의 산적들도 아니고.


대부분의 노상 도적이나 강도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표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저들같은 도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표국을 찾고 물건을 의뢰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상생 관계라고도 할 수 있지. 또 저들이 다시 산을 내려가면 표물을 의뢰하는 고객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

“부딪힌다고 해서 항상 부숴야 하는 것만은 아니야. 피해갈 수도 있는 법이지.”


자네도 일단 검을 찬 무인이라면 알아두게. 표두는 그렇게 덧붙였고, 인자하게 웃었다.


소일도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표두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덧 한밤중이었다.


아쉽게도 산 아래 마을의 불빛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은 산에서 야영을 해야 할 듯했다.


표행은 말 고삐를 나무에 묶어두고 자리를 깔았다.


며칠 전, 흑사방에 찾아가는 길에 자객들을 경계하며 쪽잠을 잤던 것에 비하면 호화로운 잠자리였다.


“자, 한참 전부터 산을 헤맸으니 피곤할테지. 호법은 우리에게 맡기고 편히 자게.”


본래 표사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이동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드는 법이다.


그런데 표두는 흔쾌히 식량을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차 안쪽 가장 편안한 잠자리까지 제공했다.


“정말 밖이라도 괜찮습니다.”

“주는 사람 마음이네.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것이니 편히 마음 먹고 자게.”

“그럼 염치 불구하고.”


거절도 이 이상 하면 실례였다.


소일도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검파를 붙잡을 채 새우잠을 청했다.


* * *


이윽고 밤이 깊었다.


표행이 피워낸 모닥불도 꺼졌다.


달도 뜨지 않은 흐린 밤, 숲속은 어둠과 적막으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무언가 사부작댔다.


역수로 쥔 유엽도가 잠든 누군가의 목 바로 위에서 예리하게 휘어졌다.


목숨을 거두어 가려는 것이다.


날붙이를 잡고 찌르려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낮의 어설픈 산적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움직임, 분명 훈련된 암살자였다.


하지만 암살자의 유엽도는 그대로 목을 내리찍지 못했다.


복면 뒤 얼굴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든다. 암살자는 땀 흘리는 망부석이라도 된 것처럼 눈알조차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암살자의 배꼽에 시퍼렇게 날 선 검끝이 대어져 있었다. 검날을 타고 피가 한 방울 흘러서, 검파를 쥔 사람의 주먹 위에 안착했다.


“이러지 않길 바랐는데.”


목을 찌르려던 암살자가 고개는 돌리지 못하고 천천히 눈알을 굴렸다.


잠든 줄 알았던 소일도가 눈을 치켜뜨고 암살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표두, 이게 어찌된 거요.”


호탕했던 사내,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암살자의 정체는 분명했다.


“애초에 표행 자체가 거짓이었던 건가.”

“찔러라!”


암살에 실패한 표두가 소리치자, 마차 벽에서 도검이 푹푹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찌른 검들에 꿰뚫린 것은 표두의 몸뚱이뿐이었다. 소일도는 뺨에 얇게 베인 상처 하나를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그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로 창대 하나를 타고 올라가 있었다. 그러고도 피할 수 없던 공격은 검면으로 막고 흘려냈다.


“해치웠나?”


마차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안쪽을 확인하려 문을 여는 순간, 소일도의 검이 문틈을 향해 쏘아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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