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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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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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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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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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귀(6).

DUMMY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허동의 눈 앞에서 펼쳐졌다.


무당의 장로조차 쉽게 받아내지 못할 수혼귀의 공격을, 약관을 갓 넘긴 후지기수의 검이 멈춘 것이다.


순간 허동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의 입에서 가까스로 새어나온 것은 한 단어였다.


“......우리?”


분명 검객은 ‘우리’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그를 제외하고도 누군가 있다는 말. 대체 또 누가, 어째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때 뒤편에서 등장한 후덕한 인상의 사내가 수혼귀를 향해 둔중한 권(拳)을 내뻗었다.


자세히 보니, 복주 하오문에서 허동과 허겸을 맞이했던 지부장 왕필이었다.


‘저 사내가 어째서!’


하지만 이 순간,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저들이 무당의 두 사형제를 구했다는 것. 그리고 적어도 절정 고수일 하오문의 요직이 조력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허동이 희망을 품었다.


수혼귀의 앞에서는 검객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고, 뒤에서는 절정 고수의 직격이 날아왔다.


태극혜검에 상처까지 입은 수혼귀가 두 공격을 온전히 피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헌데 그때.


스윽.


만근추(萬斤錘)마냥 버틸 줄 알았던 검객의 검이 뒤로 빠졌다.


그러자 수혼귀가 몸을 돌려서 왕필의 권에 응수했다.


꽈아아아아앙!


두 주먹의 격돌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다.


“자, 자네!”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본 허동이 소리쳤다.


“어째서 검을 물린 겐가! 방금 수혼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었거늘!”


그는 당혹을 넘어, 분노하고 있었다.


소일도는 덤덤하게 말했다.


“방금 계속 버텼으면 검이 부러졌소.”

“......!”


허동은 그제야 자신이 쥔 검과 사제의 검이 반으로 뚝 부러져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부러진 검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허동은 검객의 검이 부러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백골공은 파(破)에 주안점을 둔 마공이오. 내 검이 부러졌다면 아무리 수혼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해도 지부장이 당하는 것도 순식간이었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 싸움은 상처 입은 수혼귀의 승리였을 것이다.


사제는 납치를 당하고, 허동 자신을 비롯한 셋은 죽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허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맡기시오.”

“......”

“절대 지지 않을 테니.”


허동은 검신이 줄어든 칼자루를 꽉 쥐었다.


그와 사제는 대무당파의 장로다.


그저 맡기라는 말을, 그것도 아직 새파랗게 어린 후지기수에게 듣고도 가만히 있을 배분이 아니었고,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됐다.


오히려 그가 어린 후지기수를 보호해야 했다.


하지만 허동은 납득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싸우는 것이 아님에. 그리고, 눈 앞의 검객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임에.


“믿겠소.”


눈빛에 결기를 띈 허동이 말하자, 소일도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허동은 즉시 쓰러져 있는 사제에게 가서 상처 입은 그가 앉을 수 있도록 일으켰다.


“당장 운기조식하게.”

“......사형.”


가까스로 일어난 사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제가, 제가, 죄송합니다.”

“괜찮네. 사형이 사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사제의 태극혜검은 마지막 순간 분명 자의에 의해 멈췄다.


그러나 사제가 자신의 제자를 찌르지 못한 것처럼, 허동도 만약 상대가 허겸이었다면 찌를 자신이 없었다.


“일단 회복해야 하네. 그게 급선무야. 저들이 석봉이를 막든 막지 못하든, 만약 기회가 온다면 일단 운기조식을 한 다음일세.”

“알겠습니다.”


사제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동안 허동은 남은 공력으로나마 간신히 두 다리를 지탱하며 호법을 섰다.


눈 앞에서는 왕필과 소일도가 함께 수혼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합을 맞추는 대상이 절정경에 이른 고수였음에도, 젊은 검객은 하오문 지부장에 비해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허동은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보았으리라.


‘내가 기연(奇緣)을 만났구나.’


이미 옛적에 굳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허동의 가슴에 다시금 뜨거운 무언가가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다.


* * *


소일도는 검을 휘두르면서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소일도가 절정경에 올랐다면, 아니 하다못해 일류의 극후반에 도달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손쉽게 수혼귀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혼귀는 체력이 빠졌다. 왕필은 절정경의 고수였고, 소일도가 그와 완벽하게 합을 맞출 수 있었다면 이미 승부는 났을 터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소일도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가진 힘이 부족하면 기술을 이용해라.’


적절함을 넘어 신묘한 힘 조절.

완벽에 가깝게 깨우친 쾌중유환의 검.


그것들이, 단순한 검격 한 번에도 녹아들었다. 그 효력은 일류에 불과한 소일도의 경지를 억지로 절정경의 호흡에 맞출 정도였다.


“지부장!”


소일도가 소리쳤다.


“알겠네!”


주먹을 미친 듯이 내질러대던 왕필이 진각을 딛었다.


그 다음 내지른 주먹은 스르르 풀리더니, 타점(打點)에 이르러서는 장(掌)이 되었다.


내력 싸움을 하기에는 주먹보다 손바닥이 낫다. 면적이 넓으니까, 취할 수 있는 전략이 많아진다.

기혈도 정권의 겉면보다 많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내력의 전달에도 용이하다.


“이놈이!”


거칠게 포효하듯 소리친 수혼귀가 똑같이 손바닥을 뻗어서 왕필의 손바닥과 맞댔다.


틈을 만들어 달라는 소일도의 요구를, 왕필은 제대로 이행한 셈이었다.


‘잘했소.’


마음속으로 말한 소일도가 칼자루를 내려 쥐었다.


검파를 올려 쥐는 것이 안정성은 올라가지만, 위력은 떨어진다. 같은 원리로 칼자루를 내려 쥐었다는 것은, 위력이 올라간다는 말이었다.


칼은 베는 무기.


그릴 수 있는 반원의 크기가 커질수록 위력이 올라감은 당연했다.


‘마공을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


적가장주를 상대하며 깨달은, 그리고 기억해낸 방법들이었다.


‘하나. 마기를 낭비하도록 몰아붙여라.’


‘하나. 어떻게든 한 번에 끝내라.’


소모전과, 그에 반대되는 단발전.


마공을 상대로는 머뭇거리는 순간 승기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뭉툭한 주먹을 다루는 권사는 마공을 상대로 상성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왕필에게 시간 끌기를 맡긴 이유였다.


“자네! 더, 더 이상은 힘들어!”

“알았소.”


왕필이 채근할 즈음, 소일도의 준비가 끝났다.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올라온 기감이 최고의 일검을 예고하는 듯했다.


무거움은 버린다.


상대가 이 정도로 강하면, 지금 수준에서 일격필살에 중(重)을 담는 것은 오만이었다.


약간의 쾌.

그리고 극한의 날카로움.


거기에 모든 것을 담는다.


“아, 안된다!”


멀찍이서 사제의 호법을 서던 허동이 소리쳤다.


바로 방금, 허동과 사제가 태극혜검의 한 수를 날려버린 뒤 죽을 위기에 처했다.

또다시 한 수에 모든 것을 쏟도록 놔두어서는 안 됐다.


심지어 저 검객은 기껏해야 일류 수준이 아니던가?


아무리 구현하는 검술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천천히 상대해야 하네, 나와 내 사제가 금방 체력을 회복할 터이니......”


정신 없이 소리치던 허동이었지만, 그는 그만 입을 닫았다.


‘당황하고 있다. 저 수혼귀가!’


왕필과 내력 싸움을 벌이는 도중임에도 수혼귀는 검객을 자꾸만 힐끔거렸다.


뭐가 그리 경계되는지,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며 어서 빨리 내력 싸움을 끝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굴었다.


절정 고수의 합격도 웃으면서 받아낸 저 수혼귀가 어째서?


고작 일류 검객의 무엇에 위협을 느낀단 말인가?


끝까지 허동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소일도의 검은 휘둘러졌다.


그 모습을 본 수혼귀가 약간의 내상을 감수하면서 급하게 팔을 빼냈다.


그리고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조용했다.

그 검격에서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완전한 무음(無音).


하지만 소일도의 검은 거기서 한 단계 진보했다.


검의 소리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수혼귀의 팔이 잘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허동의 눈에, 그리고 왕필의 눈에는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듯 보였다.


아마 수혼귀에게도 그럴 것이다.


검격을 막기 위해 들어올린 자신의 팔이 잘리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피부를 가르고 근육 다발을 지나, 혈관, 팔뚝 뼈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검.

두부를 썰어도 이것보다는 시끄러울 터였다.


“......”


일순간 모든 것이 침묵했다.


수혼귀의 팔은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검에 잘렸고, 검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음에도, 팔은 멀쩡히 붙어 있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수혼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 팔은 힘 없이 바닥으로 뚝 떨어질 것임을.


일류고 절정이고.


소일도가 보여준 검격은 그런 표현들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건 내공이나 외공을 넘어선 무언가였으니까.


“다시 덤벼봐라.”


대놓고 검끝을 수혼귀에게 겨눴지만, 수혼귀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면 날뛰어도 좋고.”

“......”


물론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팔이 잘리면 피가 뿜어질 것이고, 한쪽 팔과 대량의 피를 잃으면 절정고수 셋과 이 기이한 검객의 합공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수혼귀의 눈에 붉게 실핏줄이 갈라졌다.


눈꺼풀을 깜빡이는 순간 팔이 떨어져 나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흑사방주에게 화염공을 가르치고.”

“......”

“적가장주에게 마공을 알린 것이 네놈.”


소일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러니까 내 가족들을 모두 죽인 것이, 결국은 네놈이로군. 네가 원흉이었어.”


맨 처음, 철방에서.


소일도는 아버지와 약속했다.


가족을 구할 것이고, 만약 죽었다면 그렇게 만든 놈들을 전부 베어버리겠다고.


“그러니......”


씹어뱉듯 말했다.


“부디 끝까지 발악해다오.”


소일도의 검끝이 쑥 밀렸다.


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피해도 결국 죽는다.


그래도 나중에 죽는 것이 당장 죽는 것보다 나은 법이었다.


말 그대로 발악.


“죽여버리겠다!”


마침내 수혼귀가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팔이 떨어져 나가며 핏물이 터졌다.


허나 이미 예상했던 일.

수혼귀는 개의치 않고 소일도를 향해 반대쪽 팔로 조법을 휘둘렀다.


쩌엉!


소일도의 검과 수혼귀의 조법이 부딪히며 굉음을 토했다.


“이제 검을 깨트릴 힘은 없나 보군.”


정곡이었는지 수혼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제야 대등해졌구나.”

“네이노오오오옴!”


수혼귀가 악다구니를 질렀다.


즉각 왕필이 소일도를 돕기 위해 신형을 움직이려 했으나, 소일도가 손을 뻗어 저지했다.


“이제부터는 간섭하지 마시오. 설령 내가 죽더라도.”

“......자네!”


계약서를 쓴 왕필에게는 미안하게 된 일이지만.

언젠가 왕필이 했던 말마따나였다.


“뭐든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법이라고 하지 않았소?”

“......!”


적가장에 쳐들어가기 전에 왕필이 했던 말이었다.


“내게는 지금이 그때요.”


소일도가 검을 한 차례 퉁기면서 수혼귀와 거리를 벌렸다.


“따라오지 마시오.”


검을 검갑에 집어넣은 소일도가 산속을 향해 뛰었다.

수혼귀가 괴성을 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왕필은 그 자리에 붙박인 듯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둘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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