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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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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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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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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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귀(4).

DUMMY

허겸은 허리를 숙여서 머리 없는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목 부분을 잡고 들춰보니 으스러진 머리통 안쪽 내용물이 텅 비었다.


“사형.”

“맞는 것 같다.”


하동도 근처에 널린 다른 시신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서 산간의 어느 촌락.


두 장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주민들이 모조리 죽어 있었다.


그것도, 그들이 잘 아는 형태로.


혼을 담는 그릇인 두개골이 한 구도 빠짐없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이것은 명명백백한 수혼귀의 소행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예.”


삼 년 전처럼 허무하게 놓쳐서는 안 된다.


그때는 무림맹의 무사들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으나,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돌아왔지 않았던가.


새삼 무거운 얼굴로 대답한 허겸이 서쪽으로 튀어 올라서 숲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허동은 발맞춰 동쪽으로 향했다.


시신들이 죽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았다. 놈은 아직 근처에 있으리라.


하지만, 당장 가까이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건만, 허겸은 이 순간에도 잡념에 시달렸다.


‘석봉아.’


수혼귀가 무림공적이 되기 전 이름.


아직 그가 무당의 문도이자, 허겸의 아끼는 제자였을 적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게냐.’


허겸은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석봉이 금서를 훔쳐 무당에서 탈주한 그날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째서 석봉이 탈주했는지.

지금 벌이고 있는 기행은 무슨 의미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허겸은 석봉이 걸음마를 뗄 적부터 그의 스승이었음에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마음을 길게 후벼팠다.


‘정말로 마공을 익힌 것이냐.’


솔직히, 적가장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석봉이 훔쳐 간 금서는 마공이 아니었으니까.


수양패무공(純陽覇武功).

구음결응공(九廕結蔭功).


이렇게 두 권의 무공비급은 그 성질이 무당의 부드러움과 맞지 않는다 하여 금서로 지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치우쳤을 뿐 마공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죽이고, 머리통을 부수고 다니는 것도 마공 때문이 아니라 성질이 강한 무공을 무리하게 익히다가 폭주한 것으로 봤다.


그때는 그 시선이 합당했다.


마공은 사장되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배울래야 배울 사람이 없으며 익힐래야 제대로 익힐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허나 마공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금은 아니었다.


석봉이 모종의 마공을 익혔을 가능성은 농후했고, 만약 그렇다면 그의 무공 스승이었던 허겸의 책임은 막중했다.


‘정말로 힘을 탐해서 그리된 거라면, 그것은 내 잘못이구나.’


허겸이 잘못 가르친 죄였다.


좀처럼 잡념들이 지워지지 않는 와중, 허겸은 운용하던 제운종을 잠시 멈췄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누군가 있었다.


“끄...... 흐흑.”


기감을 집중할 것도 없이 고통 어린 신음 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허겸은 곧장 그 방향으로 달렸다.


수풀을 들춰보니, 정말로 예닐곱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쓰러져 울고 있었다.


피를 흘렸는지 주변 흙이 붉었다.


그 광경을 본 허겸은 깨달았다.


‘이건 함정이다.’


자신이 아끼던 제자가 이런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지만, 정확상 그랬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중에 상처 입은 아이가 덩그러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숨길 생각도 없는 함정이었다.


아이가 도망쳐온 흔적도 없었고, 어른의 발자국 하나도 찍혀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파악했어도 이미 허겸은 함정에 걸렸다.


아이를 보고 말았으니까.


이 아이를 지키면서 싸우려면, 그렇잖아도 힘든 싸움에서 승산은 더욱 줄어들리라.


“......나와라.”


허겸이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빽빽한 나무들 너머에서 인영이 가까워지더니 모습을 드러냈다.


허겸은 그 모습을 보고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짓씹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혼귀는, 석봉이었을 적과 같은 모습이었다. 순박한 인상에, 정갈하게 묶어 올린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무림공적 수혼귀.”


허겸이 낮게 읊조렸다.


“적가장주가 당하자마자 나타나는 걸 보니, 역시 네놈이 마공을 가르친 범인이었구나. 목적이 무엇이냐?”


허겸은 자신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적대감을 끌어올리며 검을 뽑았다.


태극의 문양이 새겨진 무당검이 시퍼런 예기를 도도하게 빛냈다.


하지만 수혼귀는 검날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허겸에게 포권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스승님.”


수혼귀가 스스럼없이 한 발짝 다가왔다.


“여전히 정정하시군요.”

“누가 네 스승이더냐 이놈! 나는 이런 간계를 부리는 자를 제자로 둔 기억이 없다!”


허겸이 시선을 바닥으로 흘끔 던졌다.


아이는 이 상황이 무서운지 숨을 죽이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허겸이 저 아이를 안아드는 순간, 그의 한쪽 손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검수에게 있어서 한쪽 손을 자유자재로 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중심을 잡거나 힘을 실을 때 심각한 하자가 동반된다는 뜻이었다.


치명적인 불리함을 떠안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아.”


헌데 수혼귀는 이제 알았다는 듯이 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쳐다보고는, 손가락을 까닥 휘둘렀다.


퍼걱!


가벼운 탄지공(彈指功)이었다.


그 손짓 하나에, 아이의 머리통은 연약한 두부처럼 터졌다.


허겸의 동공이 순간 커졌다.


스스로 파 둔 함정을 치워버리다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어서 사고가 잠시 굳어버린 것이다.


이에 수혼귀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간계라니요. 저는 그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약속 장소를 정해놓고 기다렸을 뿐이지, 인질을 삼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대화?


허겸은 뒤늦게 분노와 허무함이 동시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슨 대화를 한다는 말인가.


그가 알던 석봉은 이미 없는데.


허겸의 무당검에 절정고수의 상징인 푸른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맺혔다.


“네이노오오옴!”


허겸의 손에서 무당파의 신공절학인 태청검(太淸劍)의 검식이 유감 없이 펼쳐졌다.


격분하고 있음에도 도도히 흐르는 듯한 검이,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긴 세월을 수련하고 정진해왔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허겸의 검은 너무도 쉽게 수혼귀의 손아귀에서 멈췄다.


잡은 것이다.

검기가 맺혀 있는 검신을, 맨손으로.


허겸의 얼굴에는 경악이 드러났으나, 뭐라 생각할 것도 없이 움직인 몸이 재빠르게 검과 몸을 동시에 물렸다.


수혼귀는 벌어진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조차 없이,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역시나 스승님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검을 수련하고 계시는군요.”

“닥쳐라 이놈!”


허겸은 소리쳤지만, 이전처럼 섣불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수혼귀의 실력이 높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스승님을 이렇듯 뵈러 왔지 않았습니까. 자, 스승님. 저와 함께 가시지요. 무(武)의 진수를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수혼귀가 허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겸이 가르친 대로 무당의 검을 따라 알알이 박혔던 굳은살이 모두 사라진, 고운 손이었다.


허겸은 씹어뱉듯 말했다.


“무의 진수가 어찌 마(魔)란 말이냐, 어리석은 놈.”

“스승님.”


수혼귀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얼었다.


“이것은 구음결응공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얼어붙었던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화염공을 익힌 것처럼 화륵 타올랐다.


“알아보셨다시피 수양패무공이지요.”

“......”

“잘난 정파인들이 마공이라 부르는 신공을 익히는 마당에, 제가 왜 이것들을 훔쳐 간 줄 아십니까?”


그러더니, 이내 수혼귀의 손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이지러졌다.


그것은 곧 검은 기운으로 화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허겸은 그것이 마기라는 것을 확신했다.


“마공이 뭔가 크게 탁하고 이질적인 것이라 착각하시는 모양이지만, 아닙니다. 혼원(混元)의 이치를 따를 뿐, 마공도 결국 일맥상통하는 무공이라는 것이지요. 아니면 어찌 제가 알지도 못하는 마공을 익혔겠습니까?”


그러니까, 수혼귀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공도 근본적으로 무공과 다를 바 없다.


허겸이 인상을 와락 구기고 소리쳤다.


“네가 나를 능욕하느냐? 정말 마공이 순수한 무공과 같다면 어찌하여 이리 잔학무도한 일을 벌이느냐!”

“잔학무도(殘虐無道)라......”


들릴 듯 말 듯 속살거린 수혼귀는 다시 한번 허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승님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 시선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인지.”

“뭐라?”

“마공을 익히시면 보다 높은 경지의 세상이 보일 겁니다. 그것은 인간이 정해놓은 규율과 규범을 초월하는 세상이지요. 결국 생과 죽음은 하나이거늘, 어찌 겉모습만 보고 잔인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렇게 말하는 수혼귀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번뜩거렸다.


“완전히 미쳤구나.”

“아직은 그렇게 보이시겠지요.”


수혼귀의 손에 피어올랐던 마기가 점차 팔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윽고 수혼구의 양팔이 모두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나중에는 제게 고마워하게 될 겁니다.”


그와 동시에 혀겸의 무당검도 다시금 검기를 머금었다.


“모두 내 잘못이다.”

“......?”

“무당의 검을 가르쳤어야 했거늘, 네 재능을 보고 고양감에 취해서 강함만을 강조했어. 나는 무당의 태극(太極)이 아니라 승패를 가르친 못난 스승이었다.”


이것은 허겸의 진심이었다.


기재들로만 선별된 무당파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도드라지는 재능을 보였던 석봉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주입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을지 몰랐다.


그러니.


“다시 한번 가르쳐주마. 무당의 검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무당무공부주진공(武当功法不主进攻).

무당의 무공은 공격적이지 않지만.


연이역불가경이침범(然而亦不可轻易侵犯).

감히 침법할 수 없나니.


허겸이 기수식을 취했다.


“이것이 저승길 선물로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허겸의 검이 유선형으로 휘둘러졌다.


그 속도며 실린 힘이 어찌나 일정하고 부드러웠는지, 직검이 마치 곡도처럼 휘어져 보였다.


그러나 마기를 두른 수혼귀의 팔과 주먹은 쉽게 뚫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런 허례허식을.”


처음부터 수준 차이는 극명했다.


마공을 익히기 전부터 일류에 발을 들였던 수혼귀는, 지난 칠 년 사이에 수십 배는 강해졌다.


당장 마수(魔手)를 뻗으면 스승의 목을 잡아 짖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해해 주시지 못하겠다면야.”


무력으로 데려갈 수밖에.


순식간에 수세를 버린 수혼귀가 갈퀴처럼 세운 손을 뻗었다.


한 번에 허겸의 모가지를 움켜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수혼귀의 손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피잇!


붙잡기는커녕, 수혼귀의 손바닥에 작은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살짝 흘렀다. 허겸이 공격을 흘려내며 남기고 간 상처였다.


“설마, 칠 년 동안 본도는 그대로일 거라 생각한 게냐?”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


허겸은 이미 수혼귀의 뒤편에 있었다.


그가 또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태청검의 식이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또 한 번 허겸의 검이 빛살처럼 휘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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