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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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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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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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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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장(1).

DUMMY

벌써 삼 년째 늦봄 초가을 이 시기가 오면 적가장의 넓은 장원은 그 모습을 바꾼다.


무사 시험을 치르러 방문한 무림인들로 가득한, 하나의 넓은 시험장이 되는 것이다.


비무대 위에서는 온종일 결투가 이어졌다.


시험에 참가하면 가장 먼저 일차 시험으로 임의의 상대와 비무 시합을 총 세 번 서게 되는데, 이것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만, 가우염 승!”

“후우.”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들이 웅성거렸다.


가우현이 비무대에 오른 지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시합을 끌내버리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승자가 된 가우현은 좌중의 시선을 만끽하며 여유만만하게 내려왔다.


이걸로 두 번째 승리였다.


마지막 세 번째 비무에서만 승리하면, 명망 높은 적가장의 정식 무사가 될 수 있었다.


‘방금은 위험했다.’


사실, 금방 승패가 결정 나긴 했지만 가우염은 간발의 차이로 이기고 내려온 참이었다.


마지막에 상대가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쳐진 어깨로 적가장의 대문을 나가고 있는 것은 그였을지도 몰랐다.


다음번에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긴장을 벼리면서, 가우현은 다음 비무를 위해 줄의 맨 끝에 섰다.


줄은 적가장의 대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우현은 그곳에서 대문 밖으로 터덜터덜 퇴장하는 이들을 보며 승리감을 곱씹었다. 그래도 저들보다는 내가 낫다, 강하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씰룩거리던 참이었다.


“......넌 뭐냐.”


한 사내가 천천히 가우현을 지나쳤다.


가우현은 사내의 어깨를 거칠게 획 잡아채며 인상을 썼다.


“어디서 새치기야?”


패기 있게 말하고 보니 이 사내의 의복이 꽤나 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우현은 입매를 쓱 끌어올렸다.


전 비무에서 어지간히 쥐어 터지고 돌아온 것 같았는데, 가우현과 동시에 줄을 서면 저 사내를 다음 시합에서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이놈과 붙으면 꽁승이다.’


이차 시험이 끝나면 마지막 삼차 시험인 적가장주와의 대면이 남긴 하지만, 어쨌든 출셋길에 한 발짝 다가가는 셈이었다.


“줄 서려면 내 뒤에 서라.”


가우현이 입매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사실, 줄이 많아서 반드시 가우현의 뒤에 서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얄팍한 이기심을 위해 사내를 붙잡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지.”


사내는 군말 없이 가우현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었다.


가우현의 뒤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우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인생에 한 번쯤은 대길(大吉)이 찾아올 때도 됐다.’


방금 전의 비무에 이어, 사내의 등장까지.가우현은 아무래도 운수가 대통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줄은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탈락자가 속출해서 적가장을 나갔고, 남겨진 실력자들은 시간을 끌기보단 자신의 실력을 보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가우현의 순번도 금방 돌아왔다.


“청 측, 가우현!”

“예!”


기운차게 대답한 가우현이 안내된 비무대의 왼편에 가서 섰다. 아직 그의 맞은편은 비어 있었다.


뒤이어 시험관이 한 사람을 호명했다.


“홍 측, 소일인(昭一刃)!”


그러자 소일인이라 불린 자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가우현은 새어 나오는 미소를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그의 맞은편에 선 자는, 바로 자신의 뒤에 줄을 서 있던 사내였다.


겅치가 큰 가우현에 비해 몸집이 작고, 주제꼴이 추레한 그 사내.


가우현이 이죽거리듯 입을 열었다.


“소일인? 이름도 특이하군. 본도는 가우현이다. 근방에서는 유명한 청룡학관 출신인데, 알지 모르겠군.”


사내는 가우현의 말에 일절 대꾸하지 않았지만, 가우현은 계속해서 상대를 떠봤다.


“그대는 출신이 어디인가?”


출신을 알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디어디 검문이라고 하면 조심해야 할 점이나, 유명한 절기, 하다못해 검법의 성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된 물음에 소일인이 입을 열었다.


“......학관 운운할 만큼 나이가 젊어 보이지는 않는군. 유일한 자랑거리가 학관 출신인가?”


나직한 말투였지만, 그 내용에는 뼈가 있었다. 철면피라고 깔아놓은 듯하던 가우현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가우현이 욕지꺼리를 내뱉을 때, 소일인은 이미 검을 빼들었다.


그 모습을 본 가우현도 자세를 갖췄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려 지탱하고, 덩치에 걸맞는 박도를 뽑아 중단세를 취했다. 중검(重劍)을 쓰는 전형적인 도객(刀客)의 준비 자세였다.


양측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시험관이 규칙을 재차 알렸다.


“나려타곤을 하거나, 상대를 죽이면 실격입니다! 승부는 한쪽이 포기하거나 시험관이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가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무!”


시작을 알리는 시험관은 한 마디가 터지자, 동시에 가우현이 자세를 낮추고 달려들었다.


비무의 규칙은 상대를 죽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죽이지만 않으면 손목을 자르든 팔을 자르든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본래 진짜 무기를 활용한 비무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잦기 때문에 존재하는 규칙이었지만, 가우현같은 이에게는 이용하기 딱 좋은 부분이었다.


일부러 소일인의 팔이나 다리를 하나쯤 잘라준다고 해도, 실수로 손을 과하게 썼다고 하면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딴 말을 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박도를 휘두르는 순간, 가우현은 양손으로 잡고 있떤 도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빈손으로는 검지와 중지를 세워 검결지(劍訣指)를 만들었다.


가우현은 처음부터 쾌를 다루었지만, 양손 도객인 척 느린 중검을 연상시켜서 방심을 유도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실전도 아닌 비무에서는 치졸한 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가우현의 박도가 사내의 손목에 닿으려던 그 순간.


뻐억!


뭔가 딱딱한 것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가우현의 손목이 칼자루로 찍은 듯한 기이한 형태로 움푹 파였다.


‘어?’


손목은 거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손목이 들어갔다는 것은, 그만큼 뼈가 으스러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쥐고 있던 박도는 물론 놓칠 수밖에 없었다.


“끕......!”


뒤늦게 격통이 밀려왔다.


“끄아아아아!”


가우현은 으스러진 손목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가우현과 소일인의 비무를 구경하던 다른 참가자들은 일시에 탄식하며 목을 길게 뺐다.


“어어?”

“바, 방금 뭐였지?”

“내가 아나? 나도 못 봤네!”


관중들의 반응이야 어쨌건, 승부는 났다.


가우현은 더 싸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이미 엎드려서 무릎과 손이 땅에 닿았으니 나려타곤이었다.


시험관도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급하게 비무 종료를 선언했다.


“그, 그만. 소일인 승!”


사내는 이번이 마지막 판이었다.


결과는 물론 전승(全勝).


그 기록을 확인한 시험관이 승리를 선언할 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소일인, 통(通)!”


동시에 사내의 손에는 일(一)이라 음각된 나무 각패가 쥐어졌다.


“이차 시험을 치러야 하니, 앞쪽 전각으로 가서 대기하시오.”


안내를 받은 사내가 몸을 움직였다.


* * *


일차 시험의 통과자들이 머무르는 전각.


그곳에서는 일차 시험에서 한 번 걸러진 무인들이 각자 숨을 돌리며 비무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운이 좋았든 나빴든 간에 서로가 삼 연승을 거둘 수 있는 실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만큼, 분위기는 이전과 달리 꽤 무거웠다.


눈치를 보며 상대를 탐색하는가 하면, 비무가 끝나자마자 무기를 꺼내 수련을 하는 자들도 보였다. 그 수련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도 있었고, 명상을 하거나 중얼거리며 지난 비무를 복기하기도 했다.


“으음.”


그중 막운엽이라는 대머리 사내는 뒷짐을 진 채 일차 시험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기 장소는 전각이긴 했지만 임시로 창호지와 문살을 다 제거해놓았기 때문에 공간의 구분이 딱히 없었다.


덕분에 뒤에 있는 시험장도 멀긴 했지만 훤히 들여다 보였다.


“소일인, 승!”


시험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또 한 명의 통과자가 나온 것이다.


“오오!”


일차 시험장을 지켜보는 이들은 막운엽 외에도 몇인가 더 있었다.


하지만 순간 소리를 낸 것은 막운엽 하나였다. 그 혼자만 소일인이라는 참가자의 검격을 알아본 것이다.


아니, 사실은 검격도 아니었다.


발검과 동시에 칼자루로 상대의 손목 옆구리를 찍어버린 것이다.


그게 다였다.


다만 엄청나게 빨랐고, 힘이 실려 있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승부는 결정됐다.


막운엽은 세 번 모두 소일인의 비무를 지켜봤지만, 전부 단순한 저 한 수를 견디지 못하고 끝장났다.


“오랜만에 보는 심지 굵은 젊은이구만.”


곧 이쪽으로 올 텐데, 기대가 됐다.


막운엽이 아버지 선물을 고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한편 구경하는 막운엽을 본 또 다른 참가자는 속으로 경악성을 질렀다.


‘협객(俠客) 막운엽!’


아니, 저 자가 뭐 하러 이 시험장에 있다는 말인가?


복건에서 낭인 협객단의 단주로 이름을 날린 그였다. 그 정도의 실력도 겸비했다.


어디 돈 많은 세가에 식객으로 눌러 앉겠다고 하면 환영할 곳이 넘칠 터였는데, 유희쯤으로 생각하고 나온 것 같았다.


‘이미 절정에 올랐다고 들었는데.’


곧 있을 이차 시험을 생각한 참가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차 시험은 내일부터 이 너머의 장원에서 행해지는데, 내용은 내력 대결이다.


서로 악수를 하듯이 손을 붙잡고 내력을 흘려 넣어서 잔기술이나 기교 없이 순수하게 내력으로만 겨루는 것이다.


사실, 내가기공에 익숙한 무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이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세상에 완벽하게 평등한 시험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 참가자는 그저 이차 시험에서 막운엽을 상대로 만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내력 대결은 그만큼 위험했으니.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결은커녕 막운엽과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피하기 바빴다.


‘아무리 협객으로 이름났어도 경쟁자가 되니 무섭구나.’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참가자가 이만 눈을 돌리려고 한, 그때였다.


“자네, 내게 무공을 배워볼 생각 없는가?”


막운엽이 누군가에게 제안했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의 시선도 획 돌아가서 그쪽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막운엽 쯤 되는 고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제자도 고수가 되리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당장에 적가장의 무사가 될 거냐 막운엽의 제자가 될 거냐 물으면 그의 제자가 된다고 대답할 사람이 반절은 될 거였다.


막운엽이 적가장주보다 대단한 고수는 아니지만, 단체에 소속되는 것과는 달리 하나뿐인 수제자가 된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모두가 황송한 제안을 받은 운 좋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이제 막 일차 시험을 끝내고 올라온,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막운엽이 선선히 웃으며 물었다.


“소일인이라고 했나?”

“......”

“딱히 스승 노릇을 할 생각은 없네. 그저 나는 무공을 가르치고, 자네는 그저 배워가면 될 따름이야.”


제안만 해도 놀랄 노릇인데, 조건마저 파격적이었다.


스승 노릇을 않겠다는 것은 귀찮은 여러 절차들을 생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구배지례를 하거나 아침마다 문안을 드리거나, 밥을 차리거나 빨래를 하거나. 사냥을 하고, 불을 떼우고, 심부름을 하는 등의 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순수하게 무공에 몰두할 수 있다는 말.


‘누군지 몰라도 정말 부럽구나.’


그 광경을 바라보는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시선으로 소일인을 바라봤지만, 이것 하나는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소일인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보자마자 제자라니, 별 괴상한 사람도 다 있군.”


소일인은 마치 엉터리 엉터리 상품을 파는 사기꾼이라도 본 것처럼 막운엽의 말을 무시하고 눈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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