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귀 소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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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룡(旦龍)
작품등록일 :
20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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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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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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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죽어보는 것도(2).

DUMMY

삼 주야.

소일도가 마당에서 탈광혼독을 마시고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 사이 소일도의 입술은 갈라졌고, 안색이 나빠지는 것이 점차 보였다. 내내 서 있으니 두 다리는 마보를 하는 것처럼 파들파들 떨렸다.


지켜보는 왕필과 하오문도들의 입장에서는 절로 걱정이 드는 몰골이었다.


그의 발치에 놓아둔 수통은, 최소한의 장치였다.


적어도 육감을 깨달은 뒤 물이 있는 곳까지 움직이지 못해서 죽는 어이없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죽으로 만든 수통을 놓아둔 것이다.


그러나 소일도는 며칠이 지나도록 발 앞의 그 수통을 잡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저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닌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소일도의 목구멍에 억지로 물을 쏟아붓고 싶다.

하지만 설령 그런다 해도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물을 삼키지도 못할 것이다.


억지로 마시게 한 물이 기도에 들어가서 질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당연히 씹어 넘길 수 없으니 음식도 줄 수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그가 스스로 깨닫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애꿎은 입술만 깨물기를 삼 일.


소일도가 움직였다.


“아!”


마침 집무를 끝내고 소일도를 지켜보고 있던 왕필이 탄식했다.

하오문주도 그 옆에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조용히 있었다.


과연 육감을 깨달은 건지, 무작정 움직인 건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라면, 소일도의 명은 여기서 끝이라고 봐야 했다.


문주와 왕필의 시선이 소일도의 손가락에 모였다.


그 손가락은 서서히 내려갔다. 이윽고 허리를 숙인 소일도가, 발 앞에 있던 수통을 콱 붙잡았다.


“그렇지!”


왕필이 양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멀찍이 있던 하오문도들도 고개를 돌려 소일도가 수통을 든 모습을 확인하고는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들었다!”

“저 검객이 드이어 수통을 집었어!”

“정말이다! 정말이야!”


소일도와 함께 수련한 적 있는 문도들에게도 이는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다.


하오문주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서 소일도가 수통의 입구를 정확히 아랫입술에 가져다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물 마시는 소리가 꿀꺽꿀꺽 경쾌하게 들렸다.


그 모습을 본 왕필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웃었다.


“으하하하하! 잘도 마시는구나! 그래, 더 마셔라! 막 마셔라! 하하하하!”


마당이 떠나가라 웃는 왕필이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오문주로서는, 마치 그 웃음이 낭인 시절 두려울 것이 없던 왕필을 다시 보는 듯했다.


그야, 가슴이 뛰고 피가 끓겠지.


모든 무림인들의 목표가 무엇인가?

고수가 되어서 천하를 주유하고, 기연을 얻어 더 강해지고,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여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헌데 누군가의 강해지는 순간, 성장의 찰나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게 되었으니 더 없이 고양되는 것이다.


하오문주의 입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그녀 또한 무림인.

이 장면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수통에 담긴 물을 다 마신 소일도가 하오문주와 왕필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장님처럼 걸음걸이가 약간 삐걱대긴 했지만 휼륭하게 그들의 앞까지 와서 딱 멈췄다.


소일도의 입이 열렸다.


“밥 좀 주시오.”


며칠 동안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에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왕필이 다급하게 주방쪽으로 손짓했다.


“여기, 밥 한 상 크게 차려와라! 아니다, 지금부터 차리려면 오래 걸리니까 아예 객잔에 가서 사와! 발 빠른 놈이 가라!”

“예이, 지금 갑니다요! 아예 기둥뿌리를 뽑아 오겠습니다!”


하오문도 하나가 재빨리 객잔이 있는 도회지로 출발했다.


“암, 이럴 줄 알았지! 믿고 있었고 말고!”


왕필의 입꼬리가 거의 귀에 걸렸다.


* * *


며칠 동안 소일도는 멀쩡하게 행동했다.


“잘 먹는군.”


왕필은 밥을 먹는 소일도를 보고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물 마실 때도 조금씩 흘리더니, 이젠 젓가락질도 완벽해. 음식물도 놓치는 일이 거의 없고. 이젠 정말 안 보이는지도 모르겠구만.”


물론 그가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소일도에게 닿지는 않겠지만, 대신 옆에 있던 하오문주가 들었다.


하오문주는 손수건으로 입가에 뭇은 기름을 닦고 말했다.


“점점 적응해가는 것이지.”

“육감에 말입니까?”


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육감도 나름대로야. 사람에 따라 오감의 민감도도 조금씩 다른 것처럼, 육감을 깨우쳤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시야를 보는 건 아니네.”

“으음. 참고로 저 정도면 얼마나 정확한 겁니까?”

“......글세.”


하오문주의 시선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소일도의 젓가락으로 향했다.


먹고 있는 요리는 동파육.


돼지고기 요리로, 푹 졸이는 요리법을 쓰기 때문에 젓가락이 닿기만 해도 부서지는 것이 특징.


하지만 소일도의 젓가락은 절묘한 힘 조절로 돼지고기를 훌륭하게 들어올려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육감의 민감도는 세 단계로 나뉜다.


오감 없이도 어디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일 단계.


인지한 물건이나 사람이 해로운가 해롭지 않은가, 즉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이 단계.


하오문주는 이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마 검왕도 그럴 것이다.


이 단계라고는 해도 그들조차 여기가 한계일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보이고 들려도 상대에게 적의가 있는지 판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파다한데, 주어진 감각 없이도 이 미세한 기류를 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누백 년을 수련해도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삼 단계.


여기서부터는 범인이 아니라 천고의 기재라고 해도 발을 들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녀도 존재한다는 정도만 알고,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육감이 오감을 대체하게 되는 상태.


혀가 잘려도 맛을 느낄 수 있고, 눈이 없어도 세상을 볼 수 있는 경지를 일컫어 육감의 삼 단계라고 칭한다.


물론 소일도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분 탓일까.


동파육을 씹어 넘기는 소일도를 보며 하오문주는 생각에 잠겼다.


‘아주 희미하지만, 맛을 느끼는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설마.’


아직 검왕도, 자신도 깨우치지 못한 경지에 불과 며칠 전 육감을 익힌 검객이 범접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하오문주가 들고 있던 젓가락 하나를 갑자기 쏘아냈다.

젓가락은 소일도의 목을 향해 암기처럼 쇄도했다.


그러나 소일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피할 기미도, 막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왕필이 당황하며 뒤늦게 손을 뻗은 순간, 젓가락은 소일도의 목 바로 앞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우뚝 섰다.


하오문주가 격공섭물로 붙잡은 것이었다.


“무, 문주님.”

“식사중에 미안하구나. 역시 과한 생각이었네.”


하오문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이어갔다.


소일도의 경지는 아직 일 단계.


적의를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젓가락이 멈출 것까지 알고 있었거나. 육감이 어마무시하게 예민한 자라면 그것도 가능하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하오문주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번들거리는 눈빛이 소일도를 응시했다.


“정말로 던져볼까?”

“문주님!”


보다 못한 왕필이 식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비례가 심하십니다. 이 수련만 해도 그런데, 또 뭘 하실 생각입니까? 게다가 혹여 문주님의 손으로 그를 시해한 것을 무당에서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

“그리고 그는 이미 수 차례나 강호를 위해 일한 자입니다. 저 또한 최소한 머리를 들 수 있게 해주십시오.”

“내가 경솔했네.”


실수를 깔끔히 인정한 하오문주가 다시 착석했다.


달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소일도의 오감은 서서히 돌아오더니, 어느 날인가 신묘하게도 완전히 이전과 같아졌다.


탈광취독은 오감의 완벽한 차단을 위해 그 독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없는 독이다.

때문에 해독제도 존재하지 않고, 중화제 또한 없다. 그럼에도 달포가 지나니 깔끔하게 증상이 사라지다니, 얼마나 높은 수준의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독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남은 기간은 석 달.


조사가 끝난 적가장의 장원에 소일도와 하오문주가 서 있었다.


“사람도 없고, 공간은 넓은 데다가 지형지물도 복잡하니 안성맞춤이구나. 남은 석 달 동안은 여기서 수련하면 되겠어.”


하오문주는 주변을 둘러 봤다.


부서진 전각과 바닥에 난 칼자국들을 보니 얼마나 험하게 싸웠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 모자라.”

“......”

“도왕과 손속을 겨뤄본 본녀가 말해주자면, 만약 그였다면 같은 공력을 가지고도 훨씬 간결하고 위력적인 싸움을 했을 것이네. 아, 물론 그대의 실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야. 그저 도왕과 비교했을 때......”

“굳이 그렇게 안 긁어도 제대로 할 거요.”

“음.”


하오문주가 뻘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지금부터 석 달간 매일 치고받으며 대련을 할 예정이었다.


“가겠소.”


소일도의 검신이 일렁였다.


육감을 깨우치는 수련과 철연수개검의 두 번째 층계, 약아한조의 깨달음은 상이했다.

그것을 시험해 볼 때였다.


하오문주도 소매에서 철선을 쑥 꺼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하오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본녀가 잘못 생각했어. 정정하겠네.”

“뭘 말이오.”

“도왕도 그대 나이에 이 정도는 아니었네. 혹시 용이라도 잡아서 삶아 먹었나? 아니면 본녀처럼 반로환동이라도 겪은 게야?”

“비슷하긴 하다고 할 수 있겠소.”

“역시나.”


하오문주의 뺨에는 송골송골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반로환동한 이후 이미 외공 수련을 하지 않는 그녀로서는 몇 년만에 있는 드문 일이었다.


물론, 소일도는 상처 투성이에 아예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소일도가 육감으로 공격을 피하거나 받아치려고 하면 하오문주는 거짓말처럼 예측을 싹둑 끊어먹고 변수를 만들어냈다.


아직 소일도와 하오문주의 대등하지 않다.


“육감이라 해도 결국 감각의 하나. 너무 맹신하지는 말게나.”

“명심하겠소.”


하오문주가 생긋 웃었다.


“남은 석 달, 잘 부탁하겠네.”


더욱 혹독한 수련의 예고였다.


* * *


북해빙궁 교류회에 갈 후지기수를 선별하는 선발대회.


대회가 열린 곳은 산서(山西)였다.


중원에서 북해로 가기 위해서는 대부분 거쳐야 하는 길목이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산서에 무림맹 본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선발대회는 무림맹에서 치러진다.


논을 수십 마지기 연결해놓은 것처럼 드넓은 연무장 안에 사람이 바글바글 모였음에도 소란이 일지 않는 이유였다.


그 어떤 작자가 미쳤다고 무림맹 내에서 분란을 만들겠는가?


평소 같으면 무림인들이 모인 자리에 시비가 없을 수 없겠지만, 이곳에서는 어깨가 부딪히든 눈빛이 겹치든, 적당히 헛기침을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대회가 시작되기 하루 전.


산서의 객잔에 도착한 일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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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기연이 있을지도 모르고(1). 23.06.09 584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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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수혼귀(5). +2 23.06.06 604 17 12쪽
30 수혼귀(4). 23.06.05 614 12 11쪽
29 수혼귀(3). +3 23.06.04 666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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