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밴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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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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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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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락밴드연합회

DUMMY

한양레코드.


나승연 팀장은 계속 생각났다.

대중음악연구회의 음악이, 보컬 장기현의 목소리가.


‘이렇게 계속 어른거릴 수 있는 일이야?’


나승연 팀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 많은 음악을 섭렵한 자신이, 음악 평론까지 쓴 적 있는 자신이, 고작 대학교 서 밴드에 굴복당하다니.


‘하지만 그 재능은 너무 빛났지. 계속 두고 보고 싶을 만큼.’


국내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음반을 내는 역할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못 내서 안달 낸 적이 있었나?

없었다.


승연은 제 일을 즐기고 좋아하긴 했으나, 그래도 그저 먹고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에 더 가까웠다.


‘분명 대학가요제 나가면, 여러 회사에서 눈독을 들일 텐데.’


자신이 먼저 대중음악연구회에 침을 발라놓았지만, 사람 일이란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승연은 불안했다.

계약보다도 더 끈끈하게 붙잡을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다.

예컨대, 무시무시한 한국인의 정이라던가.


‘데뷔곡은 얼마나 죽여줄까··· 아, 내가 제일 먼저 듣고 싶다. 아니, 되도록 우리 회사에서 내줬으면 좋겠다.’


다른 회사가 눈독을 들일까 불안하다는 마음도 있었으나, 본심은 다른 데에 있었으니.


바로 대중음악연구회의 데뷔 첫 곡을 한양레코드의 음반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정말 하등 쓸데없는 이유였다.


‘하, 이걸 부장님한테 입 밖으로 꺼내면, 된통 깨질 게 분명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하는데.’


하지만 정말 하등 쓸데없는 이유라도 욕심이 나는 걸 어쩌나?

그래서 나승연 팀장은 이번 해 대학가요제 음반은 한양레코드에서 만들자고 부장님을 꼬실 생각이었다.


물론 한가닥하는 가수들의 음반만 취급하는 한양레코드는 원래 대학가요제 음반 제작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왜?


그런 거 안 해도 얼추 팔리니까.


하지만 이번 해는···. 이상하게 음반이 안 팔리는 해였다.

한양레코드 전체적으로 판매가 저조했고, 특히 나승연 팀장이 담당하는 국내음반팀이 그랬다.


그러니,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핑계를 만들었으니, 개시만 하면 된다.

나승연 팀장은 부장님에게 올해 국내음반팀 성적이 부진하니, 대학가요제 음반으로 한몫 끌어보자고 구슬렸다.


“부장님, 국내음반팀의 올해 미래는 대학가요제 음반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가요제 올해 음반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합니다. 대학가요제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 한양레코드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뛰어들어서 한몫 해야죠!”

“어우...."

"예?!"

"시끄럽다, 시끄러워. 알았어, 알았으니까, 나승연 네가 알아서 해봐.”


승연이 부산스럽게 우다다다 쏘아대자, 부장은 못 이기겠다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훠이훠이 흔들었다. 일에 있어서는 유능한 그녀이기에,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싶었다.

그렇게 OK 싸인이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럼 저는 방송국이랑 얘기하러, 가보겠습니다!”

“······.”


나승연 팀장이 90도로 허리를 숙이고는 부장실을 쌩하게 빠져나갔다.


“나 참, 난 또 방송국이랑 이미 얘기 되어있는 줄 알았네.”


*


나승연 팀장은 그 즉시 대학가요제 피디와 약속을 잡았다.

사실, 대학가요제 팀 부서에 쳐들어갔다고 해야 좀 더 맞겠다.


“우리 김 피디님 계시나요~?”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박카스 두 박스를 양손에 든 채로 대학가요제 피디 김성룡을 찾았다. 김성룡 피디와 나승연 팀장은 서로 구면이었다.


“어, 어? 나 팀장님이 여기 웬일로···?”


김성룡 피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연히 나승연 팀장의 방문은 웬일로? 일 테다.

1층 로비에서 명함 보여주며 김성룡 피디와 약속했다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올라왔으니까.


“우리 다른 곳에서 얘기 나눌까요? 우리 김 피디님에게 아주 좋은 소식 들고 왔는데.”

"한양레코드에서 좋은 소식이요?"

"여기에서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그렇고, 다른 곳에서 말씀 나눴으면 좋겠어요."


나승연 팀장은 살살 눈웃음을 지으며 김성룡 피디를 끌고 근처 다방으로 향했다.


‘다 잡았다.’


정말로 다 잡은 벌레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 나승연 팀장은 마치 거미와 같았고, 김성룡 피디는 나승연 팀장이 친 줄에 걸린 한 마리의 먹음직스러운 모기와 같았다.


“그래서 그 좋은 소식이라는 게···.”


승연은 다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일부러 본색을 드러냈다.


“대학가요제 음반 건 해서 한양레코드랑 계약 하나 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무례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에이, 김 피디님 잘 아시면서. 그러니까, 올해 대학가요제 음반을 저희 한양레코드 쪽에서 만들고 싶다, 이 말이죠.”

“예? 한양레코드가요?”


나승연 팀장은 내친김에 미리 작성해 둔 제안서까지 내밀었다. 제안서에는 한양레코드가 제시하는 조건과 제안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물론 업계 1위의 회사인 만큼 다른 음반사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이었다.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더 원하시는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대학교 서클 하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김성룡 피디는 알까.

나승연은 스스로가 아주 놀라웠다.


“예, 알겠습니다···.”


김 피디는 처음에 놀란 기색이다가, 이후 난감한 기색이 얼굴에 서렸다.


“아주 좋은 거래 아닌가요? 대학가요제와 한양레코드.”

“좋은 거래죠, 좋은 거래이긴 한데···.”

“걸리시는 게 있으신가요? 아니면 뭐가 부족하신가요?”


김 피디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부족하다니요.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하지만?”


김 피디는 맑은 눈의 광인 그 자체인 나승연 피디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굴에 들어갈 쥐꼬리만 한 목소리다.

내성적인 김 피디에게 나승연 팀장은 너무 버거운 상대였으니.


“실은 저희가 대학가요제 음반 건으로 부탁받은 곳이 있어서···.”

“계약서 썼어요?”

“···예?”


기세가 아주 등등한 걸 넘어섰다. 그녀의 기세는 당장 환불하러 미도파 백화점에 가도 될 수준이었다.


“계약서 썼냐고요.”

“아, 아뇨.”

“그럼 문제 없잖아요.”


김 피디는 곤란했다. 부탁도 부탁이었지만, 나승연 팀장의 제안 조건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조건도 좋고, 한양레코드도 정말 좋은데, 아무래도 부탁받은 게 걸려서 말이죠.”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이 정도의 조건에도 고민해대는 우유부단한 피디에게 승연은 비기를 던졌다.

대체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예? 아, 뭐든 하겠습니다.


승연의 필살기에 김 피디는 이미 승연 쪽으로 반 이상은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비즈니스인 이상, ‘제가 뭘 하면 될까요?’라는 제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김 피디는 고민했다. 한양레코드의 국내음반팀 팀장, 나승연 팀장이 뭘 하면 좋을지.


‘이 양반 듣는 귀도 좋고, 평론까지 했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것도 될까?’


김성룡 피디는 가장 고민이었던 ‘그것’을 꺼내기로 했다.


“사실 저희 심사위원이 필요합니다.”


심사위원.

그건 바로 대학가요제 전국 지역 예선 심사를 봐 줄 심사위원이다.

올해 들어 대학가요제 규모가 눈에 띄게 커져, 아무리 지역 예선으로 나눈다고 해도 봐야 할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방송국 측에서는 심사위원 학대, 심사위원 귀 고문을 막기 위해 최대한 여러 심사위원들을 지역 예선에 배치했다.

그러나 계획했던 심사위원의 수보다 딱 두 명이 부족했다.


‘두 명만 채워지면 딱 떨어지게 돌아가면서 심사 볼 수 있는데.’


두 명을 좀 더 고생시킬 수 있지만, 우유부단 김 피디는 그것마저도 선택할 게 많았다.

누굴 고생시킬 건지 선택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돈이 아니고 심사위원이요?”

“네. 두 명, 두 명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줄 수 있습니까?”


김 피디는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숫자 2를 표시했다. 심사위원 정도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운 좋으면 대중음악연구회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겠네.’


물론 떨어질 콩고물 생각도 안 한 건 아니다.


“전부, 두 명.”

“그중의 한 명은 나승연 팀장님 본인인 걸로 합시다.”

“제가요?”

“네, 음악 관련해 칼럼도 쓰시고 평론도 쓰시고 하시잖아요. 팀장님만 한 분 없어요.”

“그렇다면야, 뭐. 할게요.”

“그리고 다른 한 명도 나승연 팀장님처럼 음악 관련해 전문성 갖춘 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거면 됩니까?”

“네.”

“좋아요. 거래.”


나승연과 김성룡 피디는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악수했다.


*


한편 충무로, 아메리카나 햄버거.


아, 이 얼마나 오랜만의 햄버거인가.


기현은 한 입 크게 치즈버거를 물고 먹었다. 양 볼이 터질듯했다. 그런 기현을 멤버들은 기인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기현 오빠, 햄버거 처음 먹어요?”


미선은 어쩐지 안타까운 표정이기까지 했다.


“그것보다,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누나가 쏜 햄버거라 더 맛있나 봐요.”

“그것도 그렇지.”


아무래도 내 돈 주고 먹은 햄버거가 아니라 그런가, 더 꿀맛이었다.

그렇게 치즈버거 한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멤버들은 악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요. 밴드하세요?”


다시 연습하러 장소를 옮기려던 무렵, 누군가 다가와 티켓을 건넸다. 멤버 수에 맞게 모두 다섯 장이었다.


“오늘 서울락밴드연합회에서 밴드 공연하는데, 보러 오실래요?”


서울락밴드연합회?

이름도 생소했다.

대학가요제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한창 연습에 매진해야 할 때기에, 적당히 거절하고 넘기려 했다.

그러던 중.


[ 혼 HORN ]


출연하는 밴드 중 단연코 눈에 띄는 한 그룹.


‘뭐야, 형들이 왜 거기서 나와?’


2000년대에는 이미 해체한, 전설의 록 밴드 ‘혼’이 출연 목록에 있었다.

뒤에 붙는 영어 스펠링마저 HON이 아니라 HORN이라는 점도 똑같았다.


“죄송해요, 저희가 연습이···.”

“아니. 우리, 가자.”


기현은 적당히 거절하려던 미선의 말을 막아 섰다.

기현에게는 지금 연습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지금 형님들 뵈러 아우가 달려갑니다.'


형님들의 음악을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옥슨 ‘80- 불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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