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밴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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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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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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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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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떨어졌다

DUMMY

“기현아, 이제 지긋지긋하지도 않냐?”


너는 록이 지긋지긋하냐? 나는 하나도 안 지긋지긋한데.


“우리 밴드한 지 10년이야, 10년. 그런데,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 이런 씹, 돈도 안 벌리는 밴드 우리가 왜 하고 있지?”


벌써 10년이 됐구나, 우리 같이 밴드한지.

그래, 알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 단 한 명도.

돈도 안 벌리지. 한 푼도.


“야, 야. 말이 심하다. 기현아, 그냥··· 해체하자. 해체하고 각자 갈 길 가자.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냐. 나 이번 달 월세 낼 돈도 없어. 지금 시대에 포크 록은 무슨 포크 록이냐. 당장 포크 하나 살 돈도 없는데.”


각자 갈 길···.

내 갈 길이 어디더라.

실용음악학원 강사? 작곡 과외?


고개가 저절로 푹 숙여졌다. 월세 낼 돈도 없다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기현아, 너도 이제 정신 차리자.”


그래. 이렇게··· 해체구나. 10년간의 노력이, 발버둥이.


***


10년간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전혀 후련하지 않았다.

그야 후련하다는 말은 무언가 성과를 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니까.


성과 따위는 없었던 우리에게는···


비참, 그래. 비참하다는 말이 어울렸다.


“이제 연습도 없는데 술이나 퍼마실까···.”


끈적하고 눅눅한 비닐 장판 위를 걸을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났다.

침대에서 냉장고까지 고작 한 발자국.


빨간 뚜껑으로 된 소주 두 병을 꺼냈다.

안주? 돈도 없는데 무슨 안주인가.


그리고 냉장고에서 책상까지 다섯 발자국.

나는 방 전체를 도는 데에 약 다섯 발자국이면 끝나는 다섯 발자국 생활권 안에서 살고 있었다. 그마저도 건반과 기타가 공간을 차지했다.


책상에 앉아 소주 뚜껑을 깠다. 트르륵, 병 고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단 주정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소주잔에 붓는 것도 사치였다. 머그잔에 소주를 부어 마셨다.


“으··· 달다.”


한편 머그잔으로 소주를 마시면서도 컴퓨터로 넷플릭스가 아닌 DAW 프로그램인 로직 프로를 실행하는 이 정신머리란.


“아니다. 쓰다, 써···.”


바야흐로 아이돌의 시대.

음원차트 50위 사이에 밴드 음악은 없는 바야흐로 아이돌의 시대.


텔레비전을 틀면 여자 아이돌, 남자 아이돌이 나오는 바야흐로 아이돌의 시대.

아이돌 아티스트가 K-POP을 주름잡는 바야흐로 아이돌의 시대.

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었다.


평론가들은, 리스너들은 우리 음악을 두고 ‘시대를 잘못 태어난, 포크 록의 가장 순박한 투사’라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포크 록?


한국 인디씬에서, 아니, 한국에서 포크라는 장르는 90년대 이후로 완전히 죽었으니까.

거기에 우리 밴드의 고유한 특징인 꾸미지 않은 투박한 가사.

강렬하고 엉뚱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포크의 순박함을 가진 독특한 밴드.

누구는 멋없다고 하고, 누구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극찬했다.


“씨이, 옛날에 음악을 했었더라면··· 뭐라도 달라졌으려나.”


그래서 그렇게 평론가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도,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또 언젠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너는 인마, 70, 80년도에 음악을 해야 했어···. 산울림, 들국화, 밥딜런, 비틀즈··· 응?”

“맞아, 맞다. 기현이 얘는 딱 그때 음악을 해야 했는데- 이 새끼 곡들은 죄다 순수해 빠져가지고.”

“내 곡이 순수한 게 아니라- 아니다, 됐다.”


취중진담이랬지만, 정작 취했을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법이다.

나도 그 당시에는 얼큰하게 취했던 터라, 그 얘기를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미 21세기에, 아이돌의 시대에 밴드하도록 태어난 걸, 무를 수도 없잖는가.


이 시대에 굳이 밴드 음악, 그것도 포크 록을 하는 것에 어떤 거창한 소명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좋아서.


밴드가 좋아서.


밥 딜런이 좋고, 더 스미스가 좋고, 토킹 헤즈, 비틀즈, 산울림, 신중현이 좋았으니까.

요즘 음악보다 옛날 음악이 비교도 못할 만큼 더 좋았으니까.


그들을 따라서, 내가 좋아서 밴드를 했으니까.

그것도 요즘 밴드 말고, 옛날 밴드스러운 걸 했으니까.

너희들도 나처럼 좋아서 밴드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냥 좋아서 밴드를 한다는 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맥없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서른 중반이 넘도록 홍대 인근의 낡고 작은 원룸방을 전전하는 내 인생.


“젠장, 과외도 끊겼는데 월세는 어떻게 내지?”


절망적이다.

누군가는 대가리가 제대로 꽃밭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일이다. 30대 중반까지 제대로 된 직장도 안 갖고 밴드를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마이크를 붙잡아야만 비로소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무대 위에서 노래해야지만 비로소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 물 밖에서 물고기는 살지 못한다.


밴드만 10년, 음악을 한 건 20년이 훌쩍 넘는다.

나는 음악밖에 할 줄 모르는, 음악 바보, 음악 등신인 거다.


오로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음악’밖에 없는 내게, 음악을 관두라는 것은··· 나가 뒤지라는 말이랑 같지 않을까.


밴드를 놓을 수 없어서, 과외와 실용음악학원 강사를 전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과외 학생을 실용음악 명문대에 합격시킨 적 없는 신입 강사 스펙에는 작은 실용음악학원 정도가 다다.

고로 나는 학원 재정 상황이 나쁘면 언제든지 잘리는 신세였다.


“여기도 간판, 저기도 간판···.”


커리어잡 사이트를 드륵드륵 훑어 내려가며 학원 공고란 공고는 모두 찾아보았다.

비루한 간판을 가진 선생에게 넉넉한 돈을 주는 그런 아량 넓은 곳은 없었다.


“제길, 약도 안 드네. 잠이나 퍼질러 자야 하나.”


오랫동안 먹어온 항우울제 사이로 자꾸만 절망이 비집고 나왔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기는커녕, 너무 많은, 우울한 생각이 오가서 큰일이었다.


스피커로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이 흘러나왔다.


‘How does it feel, how does it feel? To be without a home (기분은 어때? 집 없이 사는 것 말이야.)’


눈이 꼴사납게 축축해졌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 아니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많은 사람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영어 가사로 된 팝송이 여기저기서 불리듯, 멋 없는 가사로 쓰인 내 곡도 여기저기서 불렸음 했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것뿐이다.


“씨이··· 의리 없는 새끼들.”


괜히 아무 잘못 없는 밴드 멤버들을 원망했다.

소주를 몽롱하도록 마셨지만, 바라는 잠은 오지 않았다.


“약이나 먹고 잠이나 자야지.”


취침 전 약을 소주와 함께 털어 넣었다. 될 대로 돼라, 라는 식이었다.

깨어나면 깨어나는 거고, 못 깨어나면··· 못 깨어나는 거고.


나는 약이 돌기 전까지 로직 프로를 만지작거리며 멜로디를 쌓았다.

정신이 몽롱했다. 내가 뭘 찍고 만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물 먹은 듯이 몽롱하게 번졌다.


‘점점··· 졸린 것, 같기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귓가에는 계속해서 밥 딜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like a complete unknown, like a rolling stone? (완전히 잊힌, 구르는 돌처럼 사는 것 말이야.)’


몸이 무거웠다. 몸만 틀면 침대가 바로지만, 침대에 누울 정신머리가 있었더라면, 애초에 소주에 약을 먹는 행위는··· 하지 않았을······.


그렇게 이른 밤부터 긴 잠에 빠졌다.

아주 깊은 잠이었다.


.

.

.


“기현아, 장기현!”


누군가 기현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따스한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함에, 더 자려다, 원룸에 들어올 여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파드득 일어났다.

이곳은 기현이 자던 홍대 원룸방이 아니었다. 원룸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아늑하고 따듯한 곳.


“···누구?”

“누구냐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짜악! 매서운 손이 등짝으로 날아들었다. 닿지도 않는 등을 붙잡으며 앓았다.

이렇게 아픈 걸 보니 분명 꿈은 아니다.


“하도 자서 내가 네 누나인 것도 잊어버린 거니? 기현이 너 테레비 본다고 깨워달라고 했잖아. 오늘 대학가요제 한다고. 너 다 놓쳤어. 마지막 곡만 남았다고.”


어깨선까지 오는 단발머리의 여자. 수더분하게 생겼다.

이름은 내 이름이 맞는데, 그런데 이 여자가 내 누나···?


하지만 여기서 더 부정했다가는 분명히 또다시 매서운 손길이 날아들 테다.

기현은 오리무중인 이 위기를 어물쩍 넘기기 위해 고개만 까딱였다.


“어, 어···. 고마워, 누나.”

“얼른 와. 마지막 팀 한다.”


어른어른 들려오던 텔레비전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정신이 몽롱한 것 같기도, 또렷한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거실에는 온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기현을 흘끗 바라보고는 귤을 조각내 한입 물었다. 본능적으로 저 남자가 아버지 되는 사람임을 알아챘다.


“장기현. 그렇게 깨워달라 하더니만, 이제 일어나니?”

“아버지. 쉿, 쉿. 마지막 팀 나와요.”


아버지가 핀잔하자, 누나는 검지를 치켜들어 콧대에 가져갔다.

막 마지막 팀을 소개하려던 차였다.


“이제 80년 대학가요제의 마지막 팀이 되겠습니다. 참가번호 18번!”


80년···?

대학가요제···?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기현은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룹사운드 샤프, 최명섭 작사 작곡, 연극이 끝난 후. 부탁드리겠습니다.”


혼란한 생각 위로 적막이 내려앉듯 재즈풍의 아련한 전주가 흘렀다.

어림잡아 수백 번은 들었던 곡이 지금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모든 일이 어른어른 몽롱하게만 변했다.

이 노래 앞에서는 모든 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음악 앞에서 모든 상황은 허물어졌다.


모든 극이 끝나고 난 뒤의 무대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은 상황이 그려지는 첫 소절.

모노톤이 입혀진 화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기현은 중후한 목소리에 매료된 채 똑바로 서서 화면 속 그들을 바라보았다. 귓가에 그다음 가사가 맴돌았다. 넋을 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을 이해하기를 포기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조명이 꺼져 어두워진 무대.

모든 것이 막을 내린 뒤의 극장을 바라보는 화자.

귓가로 노래 가사가 흘렀다.


지금은 1980년.


바야흐로 대학가요제의 부흥기.


바야흐로 한국 록밴드 음악의 르네상스 시기.


2023년의 장기현은 1980년의 동명이인 장기현에게 빙의되었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익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 작성자
    Lv.1 n1******..
    작성일
    23.08.30 17:19
    No. 1

    락앤롤 레츠고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9.14 13:04
    No. 2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서비스
    작성일
    23.09.14 15:07
    No. 3

    장르의 문제도 있겠지만...
    재능이 없는데도 그걸 취미로 즐기지 않고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문제 같네요...

    찬성: 8 | 반대: 0

  • 작성자
    Lv.1 이천탄
    작성일
    23.09.15 14:59
    No. 4

    소재도 글도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참 낭만이자 어떤 향수로 읽힐 수 있는 소재라 홀린듯 읽었네요. 이런 글들은 후반에서 큰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들이 기대되어 꾸준히 읽겠습니다 ㅎㅎ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74 아찿1
    작성일
    23.09.17 20:31
    No. 5

    바야흐로...몇번나오나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56 il******..
    작성일
    23.09.17 21:45
    No. 6

    인디밴드 망하게한 꼬추보여준 그ㅅㄲ들이 생각나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4 가갉갏
    작성일
    23.09.19 18:30
    No. 7

    인디밴드는 쭉 내리막길 이었지만 생방에서 성기 깐 그새끼들이 결국 관짝에 못질 한거죠 ㅋㅋㅋ

    찬성: 4 | 반대: 0

  • 작성자
    Lv.99 스티븐식칼
    작성일
    23.09.26 13:13
    No. 8

    요즘 판소리를 누가 들으며 클래식과 재즈도 대중적인 인기를 잃은지 수십년. 락의 시대도 끝났고, 힙합도 머지않아 과거의 유행이되겠지.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6 봉무낙
    작성일
    23.09.26 18:19
    No. 9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참 좋아요 윳~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콩씨
    작성일
    23.09.26 21:19
    No. 10

    jpop에 밴드노래 들으니 좋던데 한국도 계기만 있었다면 밴드열풍이 나오는 세계선이 있을수도 있것지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38 손천
    작성일
    23.10.10 16:06
    No. 11

    연극이 끝나고 난뒤 .. 명곡중에 명곡인데 그 시대 베스트였고 친구에도 나왔었지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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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북동 공주님, 강미선 +3 23.09.02 4,099 121 11쪽
8 국어교육과 장기현, 꿈은 시인 +4 23.09.01 4,126 114 10쪽
7 우리 음반 하나 냅시다 +7 23.08.31 4,184 109 10쪽
6 이게 이 곡이라고? +10 23.08.30 4,247 117 11쪽
5 선언 +7 23.08.29 4,266 123 11쪽
4 저 사람 괴물 아녜요? +7 23.08.28 4,426 113 10쪽
3 대중음악연구회 +11 23.08.28 4,576 121 9쪽
2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10 23.08.27 4,862 121 11쪽
» 1980년에 떨어졌다 +11 23.08.26 5,991 1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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