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밴드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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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똘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26 17:04
최근연재일 :
2023.09.2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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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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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반 하나 냅시다

DUMMY

‘이건 완전히 다른··· 아니다. 미선 누나의 곡을 철저히 바탕으로 하고 있어.’


첫 느낌은 완전히 다른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관악기와 현악기가 나와야 할 것만 같았던, 영락없이 바로크 팝의 색채가 묻어있던 곡에서 포크 록스러운 곡으로 탈바꿈한 거였다.


요모조모 상세히 뜯어보면 미선의 곡을 바탕으로 한 게 분명했다.


‘다르다. 하지만, 정말 좋아.’


완전히 다른 장르로 탈바꿈 되었지만, 분명한 건 정말 끝내주게 좋다는 거였다.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미선의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르를 정하자면 하드 록이랑 사이키델릭 포크 그 어딘가인가. 블루지한 느낌도 있고.’


포크스러운 멜로디에 사이키델릭의 몽환적 느낌을 더했다.

마치 폴 매카트니가 꿈속에서 Yesterday를 들었다던 일화가 떠오르는 곡.


‘내가 연주하는 곡은··· 개운한 숙취, 지난 밤의 즐거운 추억, 정도일까.’


기현은 느긋하게 기타를 치며 얼큰하게 취해 올려다 본 선선한 밤하늘을 떠올렸다.


*


연주를 마치고 나니, 기현은 괜스레 멋쩍어졌다.


‘미선 선배가 괜찮다고 말하긴 했지만, 내가 너무 뜯어 고쳤나?’


곡을 뜯어고치다 못해, 바로크팝에서 사이키델릭 포크 록으로 장르의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완전히 뜯어고친 건 아무래도 실례가 되는 일일 터였다.


“이렇게 곡이 바뀌었는데, 선배는 괜찮으세요?”


기현은 미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편 미선은 곡이 끝났음에도 곡의 여운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 곡···.’


미선은 기현이 곡의 장르를 바꾼 건 상관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장르 신경 안 쓰고, 생각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만들었던 곡이었다. 바로크 팝스러운 게 나온 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그렇게 장르는 신경을 쓰지 않기는 했지만, 딱 하나, 곡을 만들 때 염두한 것은 있었다.


바로 ‘추억’이라는 곡의 분위기.


미선은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었다.

기현은 독심술을 사용하기라도 한 것인지, 처음에 자신이 곡을 쓸 때 설정으로 잡았던 ‘추억’라는 설정이 곡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대학가요제, 나갈 수 있겠어···!’


미선은 안도감이 들었다. 계속 긴장했던 마음이 놓였다.


가사를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은 완성되었다.


이 정도라면 무사히 대학가요제에 나갈 수 있었고, 예선은 물론 본선까지 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동상이라도 좋으니까, 입상만 하자!’


입상만 하면 그룹사운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물론, 졸업 후 곧바로 예정된 결혼을 그룹사운드 핑계로 미룰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굴러들어온 복덩이이자 대중음악연구회의 구세주, 강미선 인생의 구세주, 장기현이라는 남자가 미치도록 예뻐 보이고, 잘생겨 보였다.


그래서.


“갑, 갑자기 이게, 뭐-”

“고마워! 덕분에 대학가요제 나갈 수 있겠어!”


있는 힘껏 껴안았다.

충동적으로.


기현은 완전 얼어버렸다.

갑자기? 나한테? 얘가? 왜?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떼어내야 할지,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즈음.


똑똑.


누군가가 예고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선은 여전히 기현을 껴안고 있는 채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이가 있었으니.


“여기가 대중음악연구회··· 어머.”

“······.”


한양레코드의 나승연 팀장이었다.


한양레코드의 나승연 팀장이 기현과 미선보다도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는 대중음악연구회의 동아리실을 기어코 계약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찾아냈다.


“다시 문 닫을까요?”

“아, 아뇨. 들어오세요. 이건, 축구할 때 아시죠. 골 넣었을 때 동료랑 껴안는 거랑 비슷한···.”

“그러니까 껴안았다, 이 말이죠?”

“하아··· 그냥 알아서 생각하세요.”


기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서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외부인이 들어올 만한 곳은 아닌데.”


대중음악연구회 회원들은 나승연 팀장을 경계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선의 추종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곳, 그들은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음··· 차라도 한잔씩 마시면서 할까요?”


동아리실을 벗어나 향한 곳은 인근의 다방 겸 음악감상실이었다.

기현은 난생처음 와본 다방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대의 카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과 나승연 팀장은 서로 마주 앉았다.


“그렇게 다섯 명이 같이 앉으면 좁지 않아요? 내 옆에는 아무도 안 앉아요?”

“아무래도 같은 팀이니까요.”

“대체 뭘 상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싸우자고 온 거 아니에요.”


승연은 한숨을 쉬며 제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漢陽레코드 국내음반팀 나승연 팀장]


“한양레코드···?”


기현을 제외한 대음연 멤버들은 한양레코드 명함을 보자마자 눈이 크게 떠졌다.


“한양레코드가 어딘데요?”


오히려 기현이 한양레코드를 모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듯했다.


“너 음악 한다는 애가 어떻게 한양레코드를 몰라?!”

“혀엉! 한양레코드는 모르면 안 되죠! 우리나라 최고 가수들은 다 여기서 음반 내는데!”


성호의 부연설명이 따라오자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23년으로 치면 대형소속사에서 대뜸 찾아온 거나 마찬가지인가 보네.’


“빙빙 돌려 말하는 거 제일 싫어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제가 여러분을 찾아온 이유는 제가 입학식 공연을 봤기 때문이에요.”

“···어땠나요? 솔직하게요.”


미선은 꿀꺽 침을 삼켰다.

관계자의 반응을 들을 수 있는 기회, 흔치 않다.


“안 좋았으면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좋았어요, 정말.”


승연의 말에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작게 환호했다. 좋다니, 그것도 정말 좋다니.


“그러니까 저희랑 냅시다, 음반.”


음반···!

좋았다, 정말 좋았다.

칭찬 받은 것 만큼이나 정말 좋았다.


다른 때라면 두 번 생각 않고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받아들일 터.

하지만 승연의 제안을 아무 생각 없이 덥썩 받아들이기에는 걸리는 것이 있었다.


대학가요제.


대학가요제는 순수 ‘아마추어’ 대학생 팀만 참가 모집 자격이 된다.

고로 승연의 제안을 받아들여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면 대학가요제는 포기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승연의 제안을 듣자마자 미선과 기현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대학가요제 최고의 부흥기인 1980년대. 기껏 이 시절 사람이 되었는데, 대학가요제 한 번 경험해보지 않는 건 싫었다.

샌드 페블즈, 마그마, 샤프, 무한궤도··· 대학가요제는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긴 밴드들이 쏟아져 나온 무대였다.


‘전설 같은 밴드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그래서 한편으로 기현에게 대학가요제는 꿈의 무대이기도 했다.


‘꿈의 무대를 포기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꿈을 걸고 한 아버지와의 내기.

대학가요제의 승패에 기현의 꿈이 달려 있었다.


기현도 대학가요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미선도 마찬가지였다.

미선은 그룹사운드, 밴드가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키보디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


‘나는 키보디스트가 되고 싶은 거지, 가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미선의 부모님은 그룹사운드 같은 걸 할 바에, 차라리 심수봉, 양희은처럼 음반을 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런 건 미선이 원한 바와는 정반대로 달랐다. 미선은 기현처럼 노래 부르는 재능도,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재능도 없었다.

그저 그룹사운드가 내는 힘이, 하모니가 좋을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선에게 다가온 이 제안은 아주 유혹적이었지만, 그녀는 그룹사운드를 계속할 수 없는 몸. 졸업 이후 그녀를 기다리는 건 결혼이었다.

졸업 후에도 그룹사운드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대학가요제에서 입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 그녀는 반드시 대학가요제에 참가해야 했다.


“잠시만, 저희끼리 회의 좀 해보고요.”


대중음악연구회 멤버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며 수근거렸다.

음반, 과연 대학가요제를 포기하면서까지 낼 가치가 있을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무조건 대학가요제.”

“나도 미선이랑 똑같이 대학가요제.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면 어차피 음반 내주잖아?”


원형으로 모여 어깨동무를 한 채 속닥거렸다.


“음··· 조금 고민돼요. 음반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작년 같았으면 음반 골랐을 테지만, 올해는 기현 형님 계시니까 무조건 대학가요제요.”

“그럼 저도 병철이 형이랑 같이 대학가요제 할래요.”

“저도.”


‘기현 형님 있다’는 말에 갈팡질팡하던 성호와 성현도 곧장 대학가요제를 택했다.

성호와 성현은 기현이 보여준 미친 편곡 실력에 완전히 혼을 빼앗겨버렸다.


고로, 대중음악연구회는 대학가요제로 만장일치였다.


“정했어요.”


미선이 결의에 단단히 찬 얼굴로 운을 떼었다.

한창 담배 타임을 가지고 있던 승연도 미선이 운을 떼기 시작하자 재떨이에 장초를 비벼 껐다.


당연히 대중음악연구회가 한양레코드와 계약할 거라고 생각해, 승연은 테이블 위에 계약서까지 꺼내놓았다.


“당연히 음반 계약이겠죠?”


순순히 들어온 대어를 이렇게 놓칠 거냐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치지 않는 한, 한양레코드에서의 음반 발매 기회를 놓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레코드 회사에서의 데뷔 기회를?


“아뇨. 죄송합니다.”


기현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음반계약서를 승연 쪽으로 주욱 밀어놓았다.


작가의말
오늘의 곡

Loveholic- Love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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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중음악연구회 +11 23.08.28 4,576 121 9쪽
2 80년, 동명이인 장기현 +10 23.08.27 4,862 121 11쪽
1 1980년에 떨어졌다 +11 23.08.26 5,991 1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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