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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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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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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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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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010411 나틸리의 임무

DUMMY

[전 앞으로 뭘 하면 되죠?]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북을 둥둥둥 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잔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 임무가 뭘까? 정말 어이없게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디렐로스님조차도 확실한 말을 해주지 않으셨다. 그저 위험한 일일 거라는 뉘앙스의 말만 했을 뿐이다. 도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임무길래 신께서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길 꺼리신거지? 줄곧 안개에 가려져 왔던 내 임무의 정체를 알아낼 시간이 왔다.


[디렐로스님께서 설명해주지 않으셨나요?]


[전혀요! 일기 방금 전에 보셨잖아요? 그저 위험한 임무라고만 말한 거. 임무가 얼마나 복잡하고 무시무시하면 신께서도 저한테 말을 해주지 않은 거에요?]


[임무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악의 사도들과 악신들을 하나씩 쓰러트려 나가는 거에요.]


[에에? 뭐라구요? 신을 잡아요? 내가!]


순식간에 피부가 닭살처럼 확 올라왔다. 미친 거 아니야? 위험하겠다고 생각은 늘상 하긴 했고 각오는 했었지만, 신적인 존재와 싸워야 될 줄은 몰랐지! 나같은 게 어떻게 신적인 존재를 죽인다는 거야? 농담하는 거지? 라고 물어보기엔 에르제의 표정이 전혀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란 게 문제였다.


그나저나, 악신들이란 건 또 뭐야? 그런 신들이 아직도 이 대륙에 있었어?


[...농담하지 마요, 에르제. 악신이란 것들... 천년 전에 다 소멸됐잖아요. 정확히는 2차 평화전쟁때! 그 때 미노스나 유켈드 같은 영웅들이 헛짓거리했다는 거에요? 설마?]


[아니요, 그 분들은 분명히 그들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잡을 악신들은 뭐에요? 새로 태어나기라도 했단 거에요?]


[맞췄네요, 새로 생겨났어요.]


[...설마 응애, 응애하고 태어났단 거에요?]


[음... 그렇다고 해두죠.]


농담처럼 한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 나는 할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악신들이 새로 태어날 줄이야. 그렇게 신적 존재가 쉽게 태어나는 거였어?


[나틸리, 너무 겁내진 마요. 엄연히 말하자면 악신이란 존재들은, 신은 아니잖아요. 반신이죠. 인간이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들이에요.]


[알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인간보단 훨씬 쎄잖아요! 인간 입장에선 신이나 다름없죠! 제가 역사공부를 안한 줄 알아요? 혼자서 도시 하나를 장난감처럼 파괴하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런 무시무시한 것들이 아직도 대륙에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요. 하아...]


[...벌써 이 일을 하게 된 걸 후회하는 얼굴 같군요.]


[네, 살짝 그러려고 해요. 악신만 해도 암담하기 짝이 없는 판에, 악의 사도라뇨? 이건 정말.. 생전 처음들어봐요. 얘네들도 악마같은 존재들이에요?]


[맞아요, 악마들. 단지... 나틸리 양이 알고 있는 악마와는 매우 다른 느낌일 거에요.]


[제발, 제발 좀 설명을 명쾌하게 해줘요! 진짜! 그 다른 느낌이 어떤 거에요?]


속이 터질 것 같은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에르제가 싱긋 웃으며 내 팔을 쓰다듬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죠? 아마 일주일 내로 보게 될 거에요. 보게 되면, 제가 왜 악마랑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다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거에요.]


맙소사!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했는데, 일주일 내로 그 사도란 악마랑 싸우게 된다고? 나는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아주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에르제는 그런 나의 모습이 상당히 재밌는지 쿡쿡쿡 웃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발견한 사도들 중 가장 약한 사도부터 시작할 거니까요. 그래도, 아마 지금 상황에선 버겁긴 하겠죠? 그래도, 말릭 씨한테 3년이나 검술을..]


[에르제, 체력훈련이 대부분에 검술 훈련은 3할 정도밖에 안됐어요..]


[어쨌든 3년이나 꾸준히 배웠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죠! 하루에 많이 하는 것보다 꾸준하게 하는 게 더 힘들지만 성장은 확실하니까요. 그 긴박하고 자신도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냉정하게 늑대의 고환을 자르는 걸 보고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전 디렐로스님께서 정말 검술도, 마법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뽑았나 싶어 눈앞이 깜깜했거든요. 늑대하고 싸웠을 때의 용감함, 기백, 그리고 검술 정도면, 아주 약한 사도정도 이기는 게 절대 불가능은 아닐 거에요.]


[그, 그래요? 제가 그날 좀 잘 싸우긴 했죠.]


괜히 날 띄워주니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좋아서 잠시 우쭐해 졌다. 그렇지만, 에르제는 당근만 주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다. 곧바로 기분 가라앉히는 말을 하면서 내 미소를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도들은 지금 나틸리의 실력으론 거의 불가능할 거에요. 제가 도움은 주겠지만요. 그렇게 악마들과 싸워가면서, 자신이 도무지 이 일을 할 마음이 안든다면 곧바로 저에게 말하세요. 제 재량으로 신께 임무자를 강제로 바꿔 달라고 할 테니까요.]


[...아직 저에 대한 확신이 완전하진 않으시네요?]


[당연하죠! 아직 보여준 게, 그 늑대와의 싸움 단 하나잖아요? 자, 앞으로 증명해봐요, 제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요.]


[...따르다뇨, 그 말, 너무 부담스럽네요.]


처음엔 언제라도 포기할 생각이면 포기하란 말이 서운하게 느껴졌지만, 생각해 보니 저 말은 나를 향한 배려였다. 지금은 그까짓거,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달려들겠지만, 막상 사도와 싸우면서 온갖 부상을 입거나 죽음의 고비까지 다다르면, 이런 용기가 그때까지 남아 있을까? 그렇게 완전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언제든 빠져나가라고 에르제가 최후의 선택지를 남겨둔 셈이었다.


[뭐, 이 나이에 온갖 산전수전 다 겪어봤는데, 그리 겁나지는 않아요. 한번 제대로 싸워보고 나서 싸우는 게 재밌는지 아니면 죽어도 하기 싫은지 감상을 말해줄게요. 음... 근데요, 에르제.]


[네? 궁금한 게 있나요?]


[저, 꼭 검같은 무기를 쓰는 쪽으로 안싸워도 되죠?]


[활이나 석궁 같은 걸 쓰고 싶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저, 활이나 석궁같은 건 한번도 써본 적도 없고 취향도 아니에요. 좋아요! 검을 써보죠, 뭐. 빅토르 아버님한테 배운 게 아깝기도 하고. 근데요... 저 마법 좀 배워볼 수 있을까요?]


[네? 마법요?]


에르제가 의외라는, 아니, 뭔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또 뭐가 우스꽝스러워서 재밌는 건데? 참!


[네, 마법요! 당연히 19살 먹고 시작부터 배우는 게 쉽진 않겠죠.. 그렇지만 한번 배워보고 싶어요. 좀 가능할까요? 저 마법사 되는 게 어릴 적 꿈이었단 말이에요.]


[아~ 어릴 적 꿈이었어요? 마법사가 되는 게? 그럴만 하죠. 전사보단 훨씬 화려하고 육체 노동도 적게 하고...]


[네, 그것도 정말 좋은 장점이긴 한데... 이유는 다른 데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성 엘지야나, 성 브루튀슈같은 사람들이 다 마법사들이잖아요.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아무리 제가 검술을 죽어라 배운다 해도, 여자라 남자간의 근본적인 육체적 열세가 확연할텐데.. 명확히 한계가 주어진 쪽보단 한계가 무한한 쪽으로 나아가는 게 맞지 않겠어요? 저, 다른 게 아니라 신적인 존재랑 싸워야 되잖아요!]


여행의 마지막엔 카파클로스라는 반신적 존재랑 싸워야 되는데, 한계가 있는 쪽보단 한계가 없는 길로 가서 성장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마법사가 어떨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 나이에 마법을 처음부터 배우게 되는 거니, 어쩌면 전사보다도 더 한계가 미리 명확히 주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에르제라면 이것에 대해서 잘 알 것 같았다.


[마법 좋죠.. 나틸리 양은 똑똑하니까 지금 나이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배우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럼 한번 알아볼까요?]


[네? 어떤 걸 알아보려고 그러시는 건데요?]


[자, 두 손을 줘봐요.]


[네?...네,네.]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눈을 감고 뭔가를 느끼는 듯 완전히 집중해서 미간이 좁혀든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내 팔이 살짝 따뜻해지더니 그녀가 손을 놨다.


[에르제, 뭘 한 거에요?]


[사람마다 태생적으로 가지는 속성별 힘이 있다는 거, 잘 알죠?]


[네, 남부 대륙 사람들은 빛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지만, 반대로 북쪽 대륙 사람들은 어둠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인 것과 같은 원리 맞죠?]


[맞아요, 특히 톨트림 국민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둠의 힘을 가지고 태어나죠. 그게 통상적인 사실인데...]


[통상적인 사실인데... 왜요? 저는 좀 특이한가요?]


[네, 참 신기하네요. 어둠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물의 잔뜩 느껴지고, 그 다음이... 바람과 대지의 힘이 내제되어 있군요. 어떻게 톨트림 사람인데 어둠의 힘이 안느껴지는 거지? 이상하군요. 나틸리, 정말 톨트림 사람 맞아요?]


[네? 당연히 맞죠! 톨트림 국민인 걸 입증해주는 민증도 있는걸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조분들이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여기로 이주한 게 아니냐는 걸 물어본 거에요.]


[....]


맙소사! 체내 속성의 힘으로 거기까지 추론이 가능하다니! 에르제의 말이 틀린 말이 전혀 아닌 게, 아버지는 메클랜드 출신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톨트림 사람 맞는데? 어머니가 톨트림 사람이니 어둠의 힘이 느껴져야 정상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아버지는 메클랜드 출신으로 추정되지만, 어머니는 톨트림 사람이에요. 외지인일 리가 없어요.]


[어머니가 아니고, 어머니의 부모님이 다른 나라에서 이 나라로 이주한 건지도 모르죠. 어쨌든, 나틸리의 체내 속성을 보면, 외국계 톨트림인인 것 같아요.]


[아닌데?... 아! 엄마가 피아체에서 몇년간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는데...]


[어머니께서 뭔가 사연이 많으셨던 분인 것 같네요.]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엄마는 참 과거 이야기를 안해주셨어요. 절 그렇게 아끼고 말도 많이 해주셨는데.. 설마, 엄마가 톨트림 출신이 아니라 다른 나라 출신이었던 걸까요? 왜 나한텐 그런 말을 전혀 안해주신 걸까요..]


[말못할 사연이 있으셨겠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괜히 분위기가 확 처지는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쾌활한 척 말했다.


[휴, 살아계실 적 좀 이야기를 해주시지, 이제 알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요. 돌아가셨으니까. 그러고보니 친척 하나 없이 사신 게 이상하긴 했어요. 아무래도 피아체나 나보라츠 출신이었는지도 몰라요.]


[물어봐서 미안해요. 혹시 아버님도... 어머님처럼 병으로 돌아가셨나요?]


[아니요? 아버지는 제가 아기일 때 가족 버려두고 도망갔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동료가 된 김에 사소한 가정사 정도는 이제 알려줘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한 나는 아버지가 우릴 버리고 도망간 것까지 속시원하게 다 말했다. 그 아버지란 작자... 하도 어릴때에 도망간 데다가 어머니가 아버지 사진을 다 없애시고 몇개만 남겨놨는데, 나도 괜히 원망스러워서 잘 보지 않아서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적에 두툼한 사진첩에 아버지 사진들이 많이 있긴 했고 어쩌다 한번씩 어머니랑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즈음해서 어머니가 갑자기 다 불태워버리셨다. 10년동안 기다렸는데도 안나타났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애초에 없었던 사람으로 취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게 기억난다. 죽기 직전까지도 아버지에 대해선 그리 많은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다.


참, 뭐가 좋은 일이라고 이 이야기를 털어놓은 건지 모르겠다. 집안마다 사연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어? 아버지에 대해서는 지금 이정도만 말하고 앞으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뭐...메클랜드쪽에 가게 되면 다시 거론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군요. 아버지에 대해선 함부로 물어볼 수 없어서 추측만 할 뿐이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머님과 16년동안 살기 매우 힘들었겠어요]


[아니요, 고향 사람들과 친구들이 저희 가족들을 많이 도와줬고, 빅토르 아버님이 대신 아버지처럼 저희들을 도와주셔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래요... 바르크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좋은 것 같았어요.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틸리양은 물과 대지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고, 특히 물의 신과 더 가깝군요.]


[잠깐, 그런데 왜 꿈에선 대지의 신을 만난거죠? 저와 덜 가까운데.]


[그건 말이죠, 대지의 신께서 추천해주셨으니까요.]


[그럼 물의 신은 다른 사람을 추천했단 말인가요?]


[일기를 보니 어느 신이 빙하의 마법사를 추천했다던데, 그 마법사가 물의 신의 추천을 받은 자일 것 같습니다.]


에르제도 그저 추측일 뿐이긴 했지만 나도 왠지 빙하의 마법사라고 불린 사람이 물의 신의 추천을 받았을 것 같았다. 그 말을 듣자, 내가 아무리 물의 힘이 강하다지만 딱히 배우고 싶지 않아졌다. 나를 믿고 관심을 가져주는 신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아무래도 친밀도가 높은 신의 힘을 배우는 게 좋겠죠?]


[아니요, 그 신과 친밀하다고 해서 그 신께서 더 힘을 주시진 않습니다.]


[그래요? 신께선 참 공평하시군요. 그래도 대지의 힘쪽으로 갈래요. 물마법은 남부대륙에서 널리고 널렸다구요. 톨트림뿐만 아니라 피아체, 나보라츠, 메클랜드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마법사가 배출된다구요. 하지만 대지마법은 메클랜드에서도 극소수래요. 얼마나 메리트가 있어요! 게다가 에르제는 대지마법 전문가잖아요. 바로 옆에 배울 스승님도 있고, 맞아, 이게 정말 크죠! 공짜 스승이 옆에 있다는 게!]


[하하, 공짜 스승이라구요? 맞아요, 원하면 언제든 가르쳐줄게요! 그래도 가장 적성이 높은 건 물마법이니, 물마법부터 배워보도록 하죠. 마법의 기초는 다들 비슷해서, 물마법 기초를 익히면 다른 마법 기초도 쉽게 배울 테니까요.]


[좋아요. 근데, 물마법은 스승님이 없잖아요. 제가 독학해야 된다는 말을 하시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요. 마법이 얼마나 어려운데 스승님 없이 배우겠어요? 아! 바르크바에 물의 사제님 있잖아요, 저번에 우리들 치료를 도와준. 로슈아 씨였나?]


[아.. 그 사제 오빠요? 하지만 그 오빠는 치료마법만 좀 쓸줄 알고, 그렇게 유능한 마법사라고 보기는 매우 힘들어요. 또, 고향을 떠나면 바로 헤어져야 되고..]


[나틸리, 치료마법이 어때서요? 애초에 물마법은 3할 정도가 치료마법이에요. 중요한 마법이고 도움이 된다는 거에요.]


[하지만, 명색이 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사람인데, 뒤에서 힐이나 주는 건 너무 모양이 빠지잖아요. 앞에서 싸울래요.]


[하하하! 치료마법, 배워두면 얼마나 요긴한데요.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면서 상처를 입으면 자기가 직접 자기 몸을 치료하는 용도로도 쓸 수 있죠. 배울 수 있다면 반드시 배워놓는 게 좋을 거에요. 하지만... 전 두렵군요.]


[어떤 점이 두렵다는 거에요?]


[애초에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가 두렵다는 거에요.]


얼핏 보면 상당히 나를 깔보는 대답같지만, 정말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마법이란 건 절대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그것도 마법에 재능이 있는 애들이 배워도 기초에도 못 다가서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그런데, 아무 지식도 없는 20대 초반의 내가 마법을 배운다니. 어쩌면 진짜로 마법을 배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마법을 배우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없었는데, 여차하면 그냥 전사의 길을 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배울수 있다면 무조건 마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마법을 배워놓으면 정말 쓸데가 많을 것이다. 우선, 마법사들은 사회계급에서 최소 중간은 가는 지위와 재력을 가질 수 있다. 최상급 마법사라면 한 도시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거부가 될 수 있다. 최상급이 아니더라도 치료마법을 배우면 최소 사제가 되거나 의사는 될 수 있고 공격마법을 배우면 좋은 보수를 받고 군인이 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취급이 박한데다가 요즘엔 총기가 나와서 더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전사쪽에 비하면 훨씬 전망이 좋았다.


[제가 마법을 배울 수 있을 지 없을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당장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자기가 배워보고 1년넘게 기초도 못익히면 아예 재능이 없는 거고, 6개월이 넘어도 기초도 못하면 재능이 평범한 수준이라 볼 수 있죠. 대개는 충분히 개화시킬 만한 재능이 있는 마법사는 3개월 내에 마법을 쓸 수 있는 편이죠. 그러니까, 6개월 동안 열심히 배워 봐요. 6개월을 넘겨도 가능성이 없다면... 아무래도 마법보다는 검술 쪽으로 완전히 길을 트는 게 좋겠죠?]


[그래요, 혹시 모르니 일단 6개월은 배워보죠, 뭐. 그런데, 전사로서의 훈련 누구한테 배워야 될까요?]


[빅토르 아버지, 실력 좋으시다면서요? 여기 있는 동안 말릭씨에게 배우면 되죠.]


[아아.. 빅토르 아빠, 훈련 강도가 지독하단 말이에요. 어지간한 강골인 빅토르도 날씨좋아서 집중훈련하게 되는 날이면 저한테 와서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검에 체내의 속성의 힘을 끌어와 쓰는 힘인 오오라를 쓰는 건 전혀 지식이 없으세요. 제대로 배우기엔 한계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요? 아버님이 제대로 된 기사는 아니었나 보군요. 오오라를 못쓰다니.. 용병집단 소속이었던 건가요?}


[그거야 모르죠, 그건 빅토르한테 물어보세요. 아마 빅토르도 말못해줄걸요? 아버지가 과거 이야기를 전혀 안하시거든요.]


[나름 사연이 있는 집안인가 보군요... 하아... 오오라를 쓰긴 해야겠죠. 제대로 전사로서 성장하려면.]


[피아체에 물의 오오라를 쓰는 마검사나 기사들이 많다던데.. 당장 피아체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답답하네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곧 가진 않겠지만, 몇달 후에 바로 가게 될 겁니다.]


피아체라니! 마이더리스에서 배워온 선진적인 민주사회와 국민들의 지지를 열렬히 받는 여왕님의 왕정이 결합한 멋진 나라였다. 어릴때 꼭 한번 여행가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이 임무를 구실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요? 굳이 몇달 더 기다릴 필요가 있어요? 바로 가버리죠! 여기에서 굳이 시간낭비할 필요가 있나요?]


[아니요, 오오라가 없이도 전사로서 충분히 성장할 수 있어요. 아니, 피아체에서 제대로 된 기사로 성장하려면 여기서 기본적인 고난과 실전의 과정을 겪고 성장한 후에 가는 게 좋겠죠. 그리고, 마법 배운다면서요? 모스토크에 가서 몇달동안, 물마법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물속성에 대한 검술은 여기서 배울 수 없지만, 마법은 여기서 배울 수 있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물속성 검술은 어떻게 된게 우리나라에서 배우기가 힘든 반면, 물마법은 또 배우는 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 여기서 물마법과 기초 검술에 대한 실력과 감각을 익힌 후에 피아체로 가지, 뭐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좋아요! 와아! 피아체는 아름다운 동화같은 나라라던데. 정령체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이 살고, 경치 좋은 설산과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대요. 조금 늦게 가는 거긴 하지만, 뭐 어때요? 모스토크도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안가봐서 어떻게 변해있을지 너무 궁금하네요. 아, 일하는 게 아니라 여행길에 오른 것 같은걸?]


임무고 뭐고 간에, 어차피 힘들 걸 아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시작하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처음부터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무기력해져 있으면 앞으로 어떤 긍정적인 일이 생겨도 그게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서 난 정신적인 자기방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에르제 입장에서는 내가 현실은 잊고 이상만 좇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괜히 날카로운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에르제, 너무 들떠있네요. 아직 제대로 사도란 존재와 싸워보기도 전에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당신이 하게 될 일이 도대체 뭔지 실감이 들지 않을 거에요. 직접 사도들이 당신에게 들이대는 무기들과 마법을 겪어보고, 그들을 앞에서 상대하면서 느끼는 공포들을 느끼게 되면, 현실의 잔인한 벽에 부딪쳐 지금처럼 이상적인 생각들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포기하게 될까봐 저는 이미 겁이 나는군요.]


이 마법사 언니가, 초장부터 사람을 기를 잔뜩 죽이려고 하네? 좋게 좋게 생각하고 하려는데 이런 말을 하니까 난 괜히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에잇! 정말! 시작도 안했는데 겁만 잔뜩 주시네요! 그거 알아요? 에르제? 악마랑 싸우는 거 겁 안나는 줄 알아요? 그것때문에 며칠간 저 기분 굉장히 안좋았거든요? 그런 마당에 이제 그 공포를 극복하고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억지로 이러는 건데, 왜 초를 치세요?]


[아, 그런 거였어요? 미안해요. 전 완전 몽상에 갇혀버린 줄 알고..]


[몽상이라뇨. 악마랑 싸울 마음의 준비를 며칠간 한참을 맘고생을 하며 해놓은 거라구요. 에이, 정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잖아요? 그 악마란 존재랑, 언제 싸울 수 있어요? 이왕 이렇게 하게 된 거, 빨리 경험해보고 싶네요.]


[언제든 가능해요.]


[그럼, 가능하면 빨리 경험하게 해주세요. 너무 두려워서 되려 빨리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시간을 길게 두면 더 심하고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될 것 같거든요. 제 좌우명 중에 하나가, 더럽고 힘들 수록 빨리 해놓고 치워버려라! 라는 거거든요?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미리 크게 한번 제대로 악마한테 얻어맞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요.]


[좋아요. 아주 좋은 마인드에요. 그럼 바로 함께 가장 약해 보일만한 악마를 찾아보죠. 그 다음, 곧바로 싸워보는 거에요.]


[악마라는 건 어떻게 찾아요?]


[그건....내일부터 찾아보기로 하죠. 그 전에, 음식 좀 만들어 줄래요? 아침에 삶은 달걀 2개를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안먹었거든요.]


[그 팔찌가 뭐라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오셨어요... 알겠어요,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틸리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닌데 얼마나 안먹었으면 뱃속에서 그런 소리가 날까? 정말 이 팔찌 하나 찾으려고 밥도 안먹고 온거구나. 나는 그게 좀 웃기면서도 괜히 나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져서 곧바로 밑으로 내려가 음식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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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8 1-057: 010427 두번째 자전거 교육 24.05.08 11 0 24쪽
57 1-056: 010422 재회 24.05.08 9 0 21쪽
56 1-055: 010422 사도의 기억 24.05.08 9 0 30쪽
55 1-054: 010422 나틸리 vs 모슈크 24.05.08 10 0 22쪽
54 1-053: 010422 야외/1층 전투 24.05.08 6 0 30쪽
53 1-052: 010422 체스 놀이/이공간 입장 24.05.08 9 0 18쪽
52 1-051: 010421 프랑코/자전거 교육 24.05.08 6 0 23쪽
51 1-050: 010421 포탈의 위치 24.05.02 10 0 22쪽
50 1-049: 010421 에브게닌 가 방문 24.05.02 6 0 20쪽
49 1-048: 010420 자전거 타는 소녀 24.05.02 9 0 29쪽
48 1-047: 010420 자전거 교육 24.05.02 8 0 25쪽
47 1-046. 010416 그레고리 사건 종결 24.04.27 9 0 18쪽
46 1-045. 010416 다시 집으로 24.04.27 4 0 18쪽
45 1-044. 010415 이공간 탈출 24.04.27 4 0 20쪽
44 1-043. 010415 사도의 기억 24.04.27 3 0 22쪽
43 1-042 010415 휴식 24.04.27 4 0 18쪽
42 1-041. 010415 빅토르 VS 그레고리 2차전 24.04.27 5 0 13쪽
41 1-040. 010415 이공간 진입 24.04.14 10 0 18쪽
40 1-039. 010415 이반 라고프 24.04.14 5 0 19쪽
39 1-038. 010414 당황하는 보리스 24.04.14 6 0 23쪽
38 1-037. 010413 빅토르 vs 그레고리 1차전 B 24.04.14 5 0 19쪽
37 1-036. 010413 빅토르 vs 그레고리 1차전 A 24.04.14 3 0 20쪽
36 1-035. 010413 빅토르의 합류 24.04.12 6 0 15쪽
35 1-034. 010412 사도와의 전투 24.04.12 5 0 12쪽
34 1-033. 010412 이공간 24.04.12 4 0 14쪽
33 1-032. 010412 재방문 24.04.12 4 0 17쪽
32 1-031. 010411 파동의 근원지 24.04.12 5 0 18쪽
31 1-030: 010411 두 친구의 내재된 힘 24.04.07 6 0 19쪽
30 1-029: 010411 친구들과의 대화 24.04.07 4 0 23쪽
» 1-028: 010411 나틸리의 임무 24.04.07 6 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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