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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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츠
작품등록일 :
2023.09.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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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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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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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010421 프랑코/자전거 교육

DUMMY

[아? 아버님!]


저편에서 초인종 벨이 울리고, 동시에 문을 열라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서 사람의 성격이 으레 보이기 마련이다. 저렇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대개는 꼬장꼬장하거나 성격이 꽤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제미크가 적어준 가족이름들 중에 70세의 프랑코 에브게닌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아마 지금 초인종을 누르는 분이 바로 그 사람인 것 같았다.


[너희들, 첫인상 중요한 거 알지? 내일까지 잘 대접받고 싶으면 반갑게 인사해, 알겠어?]


[참 나.. 왜 이런 말은 꼭 나를 보고 말하는 거야? 나보다 오늘 웃은 게 3번을 넘지 않은 에르제를 보며 말해!]


보리스가 투덜대며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에르제는 웃지 않아도 인상이 거칠지 않지만 넌 아니잖아..


[안녕하세요, 아버님! 저희들은 모슈크 부사장님의 전 직원들입니다. 부사장님을 잠시 보려고 와 있습니다!]


[아.. 그래,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들은 부인과 함께 인사를 했다. 실종된 아들의 전직원이라고 말하니 뭔가 기분이 떨떠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어느새 낮잠을 푹 자고 깨어난 벨라가 나타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고 품에 안기자 거짓말같이 환한 표정으로 변했다.


프랑코 씨는 날카로운 턱선에 동그란 안경알 속에 지적인 총기가 가득한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벨라를 안을때는 그냥 평범한 손녀 사랑하는 할아버지였다. 아니, 팔불출 같았다. 안자마자 뺨에 뽀뽀를 쪽쪽쪽 하는 것좀 봐! 어휴.. 좋아 죽을려고 하잖아?


[할아버지, 심심해 죽겠어! 체스하자! 우리!]


[알겠어, 우리 공주님! 어휴.. 피부가 좀 탄 것 같은데? 자외선이 얼마나 피부에 안 좋은데! 시오넬, 정오땐 안에서 놀게 해! 우리 공주님 피부가 얼마나 소중한데!]


[휴.. 알겠어요, 아버님. 내 눈엔 별로 탄 것 같지도 않은데..]


[벨라야, 잠시 후 이고르(마부)가 맛있는 푸딩과 디저트들을 싣고 돌아올 거란다! 음식들이 오면 같이 먹자꾸나, 알았지?]


[응.. 근데, 할아버지.. 아이스크림은?]


[응? 아이스크림 집에 두통 있잖아?]


[...]


빅토르 이자식이 한통하고도 1/3을 혼자 다 먹어치운 바람에 아이스 크림이 없었다. 에르제를 제외한 우리 둘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빅토르에게 눈치를 주었고, 빅토르는 무안해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 할아버님, 죄송하지만 저희들이 다 먹어치워서 지금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뭐, 식성 좋은 청년셋이면 다 먹을 만 하지! 자, 다들 들어와요!]


부잣집이라 여유있는 것봐! 고급 아이스크림 두통을 거덜냈지만 그깟 아이스크림따위야.. 라는 표정으로 으쓱한 후 아버님은 우리를 집에 들어오게 했다.


적적한 집안에 가장 친한 친구인 할아버지가 와서 계속 엉겨붙던 벨라는, 할아버지가 손님들과 잠시만 이야기할동안만 어머니랑 놀고 있으라고 말하자 투덜대면서도 어머니한테 갔다.


부인께서 들고 온 향이 좋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들을 스윽 훑어보는데, 뭔가 그 눈빛이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 아들을 왜 보러 온 거지?]


[하하하, 아버님. 말씀드렸잖아요? 저희들은 부사장님의 전 직원이라구요.]


[음.. 난 내 아들한테 이런 직원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군. 게다가 자네들 다 너무 젊고 어려보이는데? 다 고등학생이나 20대 초 같은데, 어떻게 이런 나이에 제볼테르 철강회사의 직원이 될 수 있었다는 거지? 내가 알기론 내 아들의 철강회사는 최소 20대 중반 이후,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입사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와.. 첫인상부터 만만찮은 사람이더니 역시 통찰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우리들 중에 가장 임기응변이 뛰어난 나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잠시 할말을 잃어버렸다.


[어.. 그게.. 저.. 저희들이 다 자기관리를 잘 해서 26살인데 20살로 보이는 거에요, 그치? 애들아?]


[네! 하하하! 저희들 보기보다 나이 많아요. 그저 자기관리를 잘했을 뿐인건데.. 음..]


[잠시만!]


갑자기 대뜸 그렇게 소리를 치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치 아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헉! 뭐지?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당혹스럽기 그지없으면서도 난 바로 앞에서 날 바라보는 프랑코씨를 어쩔 수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맞아! 이 할아버지, 두달에 한번씩 친구처럼 보이는 분과 오는 분이셨어! 오는 손님들이 하도 많다보니 이제서야 기억이 났다.


[음.. 왜 이 아가씨가 낯이 익은거지?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에이...설마요, 아버님. 전 전혀 기억에 없는 걸요?]


[아니, 아니야! 기억에 선명해! 심지어 일주일 안쪽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야!.. 이런! 아가씨는 푸른별 여관의 주인 아가씨아닌가! 나 아가씨 여관 단골이야! 이주일에 한번은 꼭 간다구! 그런데 그 여관 주인장 아가씨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에.. 아무래도 내가 일하는 낮시간이 아니라 엘비라가 일하는 밤시간대에 자주 오시나보다. 난 두달에 한번꼴로밖에 보지 못했는데.. 어쨌든, 우리 집 단골이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 아니, 그게요...]


[참 나.. 주인장 아가씨도 그렇고, 자네들도 전혀 나쁜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왜 우리집에 우리 아들의 전직원이라는 엉터리같은 거짓말을 하며 집에 찾아온 건가?]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에르제가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이 여자는 <이 임무의 주인공은 너니까 다 니가 책임지고 행동해라>라는 듯이 나를 잠시 바라본 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머리 굴릴 줄 모르는 빅토르야 그렇다 치고, 나름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보리스도 막막한지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표정이긴 한데 말을 하려 하진 않았다.


옆에 있던 빅토르가 나한테 고개를 기울이더니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망했다...어떡하냐? 우리? 저 할아버지 너무 눈치가 빨라! 그냥 저번에 그레고리처럼 솔직하게 말하자, 응?>


[도대체 무슨 속셈을 꾸미기에 서로 귓속말을 나누고 있는 건가? 응?]


[V: 아버님.. 저희들이 거짓말한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절대 악의는 없어요. 그것 하나만 믿어주세요. 저희들은 순수한 선의로 여기에 왔다는 거.]


[그러니까 그 선의로 무슨 짓을 하려고 여기에 온 건데? 너희들?]


[V: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나틸리 안보렌 양.]


[...네? 제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프랑코씨는 어떻게 성씨까지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우리집 단골인가보다. 어떻게 내 이름까지 이렇게 잘 알고 있지? 분명히 아까전에 이름은 말했지만 성씨는 말하지 않았는데!


이 나이대에 여관안에서 몇번 보지도 않았던 내 성씨까지 잘 기억하는 걸 보니 죽을때까지 절대 치매는 안 걸리실 것 같았다. 몸에서 바닐라향이 나는 것하며 깔끔한 베이지섹 옷을 입은것하며 부잣집 할아버지답게 자기 관리를 아주 잘하고 사시는 것 같았다. 이야.. 역시 아무래도 몇번의 거짓말로 쉽게 넘어갈 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잘 알다마다. 바르크바에 가서 몇몇 친구들과 놀러 갈때마다 자주 아가씨의 여관에 들렀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자네에 대한 칭찬을 아주 많이 하더군. 고등학교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여관을 훌륭하게 운영하며, 여유가 있으면 주변 사람들을 돕고 친구들도 많다고 말이야. 나도 낮시간에 한번씩 가면 웃으며 우리들을 맞이하며 짖궂은 친구들의 농담도 웃으며 받아넘기는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고 말이야. 그러니 오늘 내 아들의 전직원이라는 엉터리같은 거짓말을 하며 이 집에 눌러붙어 있음에도 아직도 자네들을 쫓아내지 않은 걸세. 나틸리 안보렌 양. 나한테 거짓말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게. 그냥 솔직하게 말하게. 솔직히 말해서 난.. 그날 있었던 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어.]


[어느정도까지 알고 계세요?]


[내 아들이.. 4명의 그 침입자들을 이상한 힘으로 죽인 게 맞지?]


잘 알고 있었다. 당일날 유일하게 그 사건을 목격한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하는 게 서로에게 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과정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아버님, 저희들은 사라진 아드님을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와 저의 이름을 걸고 장담할 수 있는데, 저희들은 단 한치의 악의도 없으며 보답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벨라가 1년만에 그리워하던 아버님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에요. 그러니 의혹이 많더라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더라도 저희들을 믿어주세요. 가만히 저희들을 놔둬 주시면 반드시 일주일 안으로 모슈크 씨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네! 아버님! 저희들이 최선을 다해서 구할거니까 믿고 맡겨주세요!]


싱글벙글 웃으며 확신하듯이 말하는 빅토르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프랑코씨는 에라, 모르겠다! 나쁜 짓 할 애들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라는 생각을 했는지 식은 커피를 쭉 들이킨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P:도대체 이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내 아들을 무슨 수로 데려오겠다는 건진 알 수 없지만, 한번 믿어보도록 하지! 다른 것보다 그 잘되는 여관 주인 아가씨인 안보렌 양의 존재가 충분한 보증서 같으니까! 어디 마음대로 해보게! 아무것도 막지 않을테니! 금고쪽만 접근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이 집에 와도 괜찮고 며칠 머물러도 좋네.]


[N: 흐흐, 아버님. 감사합니다! 너무 큰 걱정은 마세요. 모든 게 잘 될 테니까요.]


[V: 그럼요! 할아버지, 편하게 기다리고 계시면 곧 아드님을 만나시게 될 거에요.]


[B: 아.. 나틸리, 마부편으로 집에 며칠 못가겠다고 전해야 겠는데?]


[N: 그래.. 그래야겠다. 아버님! 죄송하지만 며칠정도 이 집에 머물러도 괜찮죠?]


[P: 그럼! 아까 말했잖아! 실컷 머무르다 가게! 물론, 내 아들 살려서 돌아오게 하는 것도 잊지 말고.]


[V: 물~론이죠! 아버님, 걱정마세요. 아마 내일 중으로 반드시 보시게 될 거에요!]


무슨 근거로 내일이면 보게 된다고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지 프랑코씨가 계속 빅토르를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좀 덜떨어진 앤가? 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근데 빅토르 입장에선 정말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하급 사도니까! 중급 사도인 그레고리처럼 며칠 시간 들일 필요 없이 하루정도면 바로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만.. 마냥 쉬워 보이는 일들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쉽게 풀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에 또 깨닫게 되었다.


***


에브게닌 가문은 잘사는 집답게 집에 하인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 뚱뚱해 보이는 남자 요리사는 딱봐도 게을러 보이고 불친절해 보였다. 그래서 저녁 요리를 먹게 되었을 때 나는 요리의 퀄리티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괜히 부잣집에 고용된 요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 청년 정말 먹성이 좋군 그래! 많이 먹게나, 하하하!]


[와~! 나 이 오빠처럼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봐! 엄마!]


적당하게 조금씩 내놓은 고급요리들을 한입에 삼키며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몫까지 빅토르에게 나눠주었다. 오늘 고생을 많이 하긴 할 테니까.. 열심히 일하는 소에게 여물을 잔뜩 먹이는 것처럼 남의 집에 와서 아무 생각없이 접시를 비워대도 눈치 한번 주지 않았다.


[요리사한테 음식을 좀 더 하라고 말해야겠군, 이거..]


[네.. 아무래도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벨라야, 어제 보니까 너 자전거 되게 잘 타더라?]


[어? 언니, 내가 어제 자전거 탄 거 어떻게 알아?]


[해안가 의자에 앉아서 봤으니까! 자전거는 언제 배운 거야?]


[자전거? 6개월 전에 할아버지한테서 베웠어. 하루동안 계속 넘어지기만 해서 포기하려 했는데 다음날 되니까 탈 수 있게 됐어.]


[아.. 그래?]


[언니, 설마 자전거 못 타?]


[응.. 탈일이 없어서 아직도 배우질 못했어. 이제 시간도 남아서 배워볼까 싶은데.. 어제 조금 타봤는데 도무지 감이 안와!]


[자전거 배우는 거 진짜 쉬운데! 학교 친구들도 다 탈 줄 알아! 언니!]


[그래.. 쉬운 거 아는데, 난 바보라 그런지 도무지 감이 안와! 난 정말 바본가봐! 흑흑!]


[내가 타는 거 가르쳐줄까? 언니?]


[그래주면 너무 좋지!]


[좋아! 밥 먹고 나서 가르쳐줄게!]


[아! 너무 고마워!]


무심결에 한 말이었는데 자전거 타는 걸 가르쳐 주겠다고 하자 난 너무 기뻤다. 아마 제미크 오빠는 다시는 나한테 자전거를 타게 하지 않으려 할테고, 또 그 쇠소리나는 고물자전거 타고 싶지도 않았다. 이 집의 비싼 자전거로 배우면 훨씬 안전하고 배우기도 편할 것 같았다.


[참 나.. 너, 여기 와서도 자전거 타령이냐?]


[야, 이 집에 자전거가 두대나 있으니 좀 타보고 싶은게 뭐 나쁜 거니?]


[아, 맞아.. 이 집에 두대나 있지? 자전거?]


[아니야, 오빠. 우리집에 자전거 세대나 있어. 부럽지?]


[부럽다! 그래! 우리들은 거지라 고물 자전거 하나 없는데 넌 세대나 있어서 참 부럽다! 벨라야!]


[흐엥.. 왜 화내, 오빠? 이 오빠 너무 무서워!]


[야! 왜 또 애를 울리는 거야?]


[아니, 난 농담한 거야! 화낸 게 아니라!]


보리스 딴엔 농담한 건데 벨라가 보기엔 화낸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 저 험악한 인상으로 말하니 애가 보기엔 화내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갑자기 아끼는 손녀를 울리려 하니 프랑코 씨도 보리스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귀한 손주한테 왜 화내듯이 말하는 건가? 자네?]


[아니, 저.. 진짜 농담한 건데..]


[앞으로 말조심 하게!]


[..네..]


보리스는 괜히 무안해져서 옆에 있던 벨라의 앞머리를 가다듬어 주려 했지만 벨라는 힘껏 두 손으로 보리스의 한 손을 밀었다. 제대로 삐진 모양이네.. 완전 비호감으로 찍힌 게 분명했

다. 어휴.. 그러니까 이런 애들한텐 좀 순하게 말해야지, 보리스!


[음.. 벨라야, 나도 자전거 하나도 못타는데 나한테도 좀 가르쳐주면 안돼? 너 어제 진짜 잘 타던데.. 나 너한테 꼭 배워보고 싶어. 내 선생님이 되줘, 응?]


[싫어! 이 오빠는 나한테 계속 화내잖아! 가르쳐줄때도 또 나한테 화낼거지? 그렇지?]


[아니? 절대 화 안낼게! 내가 미쳤어? 선생님한테 화를 내게? 가르쳐주는 동안 나한테 화 실컷 내도 돼, 그러니까 가르쳐 줄거지?]


[생각해 볼게.]


라고 말하며 벨라는 화가 다 풀린 듯 웃으며 고기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뒤끝은 없어 보이는 게 참 다행이랄까? 밝고 우쭈쭈해주는 가정에서 자란 애 답게 어린 천사같았다.


밥을 먹고 배를 조금 꺼지게 한 후 우리들은 밖으로 나와 벨라에게 자전거를 교육받기 시작했다. 벨라는 집 뒤의 창고로 우리를 데리고 가 자전거를 소개시켜줬다.


[부럽지? 언니, 오빠들? 이거, 메들랜드에서 짱 좋은 회사에서 만든 자전거다? 여기에 마법을 넣어놔서 다른 자전거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 있다?]


[와.. 부럽다! 벨라야! 그 자전거 얼마나 해?]


[300블랑이야!]


[뭐? 500블랑? 나틸리 니 여관 한달 이익이 5백블랑 아니야?]


와.. 성수기에 순 이익이 5백블랑이 나오는데, 고작 이 자전거 둘이 성수기때 내 한달 순이익 값이 나온다고? 부러워 죽을 것 같았다. 자전거에 금이라도 발라놨나, 어쩜 이렇게 비쌀 수가 있지?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들 중에서 제일 쪼들려 사는 보리스가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니, 부러워 심사가 뒤틀린 게 분명했다.


[그래, 부럽다! 진짜 부러워 죽겠어! 어휴! 배야! 아파서 터질 것 같네!]


부잣집이 물건 자랑하는 게 괜히 심술이 난 보리스가 또 참지 못하고 투덜대며 말했다. 어휴.. 저러다가 또 삐지게 만들라!


[자, 이 작은 자전거는 내거.. 할아버지가 쓰는 자전거는 언니꺼.. 또 이 오래된 자전거는 오빠꺼..]


[쳇, 선생님 편애하시는 겁니까? 왜 제일 헌 자전거를 나한테 주십니까?]


[자전거가 3개밖에 없는 걸 그럼 어떡해? 싫으면 타지 마!]


[탈건데? 헌 자전거라고 치기엔 너무 새거같잖아? 제미크 형의 그 자전거는 이거에 비하면 고물덩이나 다름없네.]


3개 중에선 헌 자전거지만 제미크 오빠의 자전거처럼 쇠소리나고 기어도 누렇게 녹이 슨 자전거에 비하면 새거나 다름없었다.


미로같이 얽힌 정원에서 탈 건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국도로 나왔다. 바르크바 서부지역은 워낙 국도로 돌아다니는 마차나 차가 없다보니 안전했다. 북부지역의 모스토크로 가는 국도로 가야 붐비지..


[자, 잘봐! 제자들아?]


이젠 아주 제자로 부르는 구나.. 근데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난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라고 말하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자.. 이렇게 타는 거야, 어때?]


그렇게 말하며 벨라는 국도를 자전거를 타고 50미터를 나아간 다음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서 왔다.


[자, 봤지? 어렵지 않지? 한번 타봐.]


[아니,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타보라니! 어떻게 타는 지를 가르쳐 줘야지, 그냥 보여주기만 하고 바로 타보라는 게 어떻게 가르치는 겁니까? 스승님?]


[내가 타는 거 보여줬잖아! 오빠! 이렇게 쉬운 걸 어떻게 방법을 알려주라는 거야?]


[휴.. 벨라야, 얘들이 너무 초보라 유치원생들처럼 하나하나 다 가르쳐줘야 탈 수 있어. 그러니까 나도 좀 가르쳐주면 안될까?]


[좋아, 오빠.]


[애들아.. 내가 하는 걸 잘봐?]


빅토르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며 탄 후 중심을 잡는지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과 발, 그리고 전체적인 몸의 균형을 통해 중심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빅토르가 제대로 알려주는데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 30분 지났나.. 난 몇 발자국 가면 옆으로 넘어지고, 또 몇 발자국 가면 옆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옆에서 똑같이 헛발질을 하며 젠장, 아 짜증나네, 이거? 라고 말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 어? 나아간다, 나아가!]


30분 후에 보리스가 갑자기 앞으로 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나 중심을 잘 잡으며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맙소사! 나보다 운동신경 저질인 보리스도 감을 잡았는데 왜 나는 감을 못 잡는 거야! 도대체! 여관주인으로 3년 살다보니 운동신경 다 죽은건가? 설마?


[아.. 왜 나는 안되는 거야! 젠장할!]


[하하하, 야, 너 3년간 여관주인으로 살면서 운동신경 다 죽었나 보다.]


[자기는 감을 잡으니 기고만장해진거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나를 놀리는 거야? 너?]


[아니.. 좀 그런 것 같긴 해서. 너 어지간한 남자애들보다 운동을 잘하는 애 아니었어? 그래서 자전거도 금방 배울 것 같더니 이틀이 지난 오늘도 감을 하나도 못잡고 있잖아. 이제 시간이 비니 운동 좀 해. 야, 빅토르. 너희 아버지한테 얘 좀 데려가라. 운동을 너무 쉬어서 감각 다 사라졌다.]


[아.. 아닌데? 자전거 타는 거 동네 할머니들도 하는 건데 이걸 어떻게 이틀이 지난 지금도 감도 잡지 못하는 거지? 나틸리, 너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아니야! 내가 이딴 걸로 왜 농담을 해! 이 자식아!]


[언니, 바보! 헤헤헤! 나도 2일째에 좀 탈줄 알았는데 아직도 조금도 못가면 어떡해?]


[선생님, 놀리지 마시고 좀 가르쳐 주세요! 제자가 이렇게 좌절에 빠져 있는데 놀리기만 할 거에요?]


[아, 알겠어! 언니! 근데, 이제 6시라 조금만 있으면 어두워지는데..]


[아니야, 벌써 어두워졌어. 야! 내일 타자!]


오후 5시에 타기 시작해서 오후6시가 되었기 때문에 벌써 사면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쳇, 어쩔 수 없지. 내일 타야겠다.


아니.. 내일은 사도랑 싸운 다음에 쉬워야 해서 타지 못할 텐데! 배우려면 오늘 많이 배워놔야 하는데, 1시간 내내 탔는데도 몇걸음을 가지 못하다니! 난 보리스와 빅토르 말처럼 진짜 운동신경이 다 죽은건가 싶어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잘 타는 걸 어떻게 새파할게 젊은 내가 이틀을 배워도 몇걸음도 갈 줄 모르는 거야! 나틀리 안보렌, 이 바보, 멍청이아!


내가 마른세수를 한참 하는 걸 본 친구들이 놀리는 게 미안해졌는지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었다.


[V: 음.. 나틸리, 이러다가 갑자기 감 잡아서 확 잘해질 수도 있어. 나도 그랬거든? 이건 수많은 실패의 반복으로 감을 잡는 거라, 어제랑 오늘 내내 삽질했으니 다음엔 갑자기 확 잘해질 수 있어. 그러니 좌절하지 마..]


[B: 쳇, 사도랑 싸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자전거 하나 이틀째 감을 못잡는 것 가지고 그렇게 좌절을 하고 있냐? 다음날 다시 타보면서 감을 잡아봐, 너 운동신경 좋잖아? 뭐.. 지금은 좀 죽어있긴 하지만, 그 좋던 운동신경이 어디 사라졌겠어?]


[언니, 다음날 내가 아침부터 알려줄게, 그러니 눈물흘리지 마.. 응?]


[안흘렸어! 그냥 마른세수나 좀 한 거라구! 봐봐, 눈가에 눈물 한방울이라도 있니? 없지?]


마른세수를 하는 걸 눈물흘리는 거라 착각했는지 벨라가 괜히 울먹이며 말했다. 아휴.. 이 마음씨 착한 공주님! 어제 자전거 탈때부터 그랬지만 참 마음에 드는 동생이었다. 난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벨라에게 약속을 받았다.


[이왕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책임져줘. 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만들어 주기로. 알겠지? 벨라 선생님?]


[응! 내가 탈 수 있을때까지 하루종일 가르쳐 줄게!]


[음.. 내일은 곤란한테..]


[왜? 오빠?]


[아니, 그런 일이 있어, 벨라야..]


맞아, 내일은 사도랑 싸운 다음에 지치고 아픈 몸으로 쉬느라 자전거 탈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엔 충분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난 아무래도 이 집에 염치도 없이 3일 이상 머물다가 가게 될 것 같았지만, 어차피 모슈크씨를 구해주는 구세주인데 며칠 머무는 게 그렇게 큰 민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화려하고 좋은 집에서 며칠 머물러 보겠어? 머물 기회가 있으면 실컷 머물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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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057: 010427 두번째 자전거 교육 24.05.08 11 0 24쪽
57 1-056: 010422 재회 24.05.08 9 0 21쪽
56 1-055: 010422 사도의 기억 24.05.08 9 0 30쪽
55 1-054: 010422 나틸리 vs 모슈크 24.05.08 10 0 22쪽
54 1-053: 010422 야외/1층 전투 24.05.08 6 0 30쪽
53 1-052: 010422 체스 놀이/이공간 입장 24.05.08 9 0 18쪽
» 1-051: 010421 프랑코/자전거 교육 24.05.08 7 0 23쪽
51 1-050: 010421 포탈의 위치 24.05.02 10 0 22쪽
50 1-049: 010421 에브게닌 가 방문 24.05.02 6 0 20쪽
49 1-048: 010420 자전거 타는 소녀 24.05.02 9 0 29쪽
48 1-047: 010420 자전거 교육 24.05.02 8 0 25쪽
47 1-046. 010416 그레고리 사건 종결 24.04.27 9 0 18쪽
46 1-045. 010416 다시 집으로 24.04.27 4 0 18쪽
45 1-044. 010415 이공간 탈출 24.04.27 4 0 20쪽
44 1-043. 010415 사도의 기억 24.04.27 3 0 22쪽
43 1-042 010415 휴식 24.04.27 4 0 18쪽
42 1-041. 010415 빅토르 VS 그레고리 2차전 24.04.27 5 0 13쪽
41 1-040. 010415 이공간 진입 24.04.14 10 0 18쪽
40 1-039. 010415 이반 라고프 24.04.14 5 0 19쪽
39 1-038. 010414 당황하는 보리스 24.04.14 6 0 23쪽
38 1-037. 010413 빅토르 vs 그레고리 1차전 B 24.04.14 5 0 19쪽
37 1-036. 010413 빅토르 vs 그레고리 1차전 A 24.04.14 3 0 20쪽
36 1-035. 010413 빅토르의 합류 24.04.12 6 0 15쪽
35 1-034. 010412 사도와의 전투 24.04.12 5 0 12쪽
34 1-033. 010412 이공간 24.04.12 4 0 14쪽
33 1-032. 010412 재방문 24.04.12 4 0 17쪽
32 1-031. 010411 파동의 근원지 24.04.12 5 0 18쪽
31 1-030: 010411 두 친구의 내재된 힘 24.04.07 6 0 19쪽
30 1-029: 010411 친구들과의 대화 24.04.07 4 0 23쪽
29 1-028: 010411 나틸리의 임무 24.04.07 6 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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