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환생(8)
상선과 어의는 전하의 객혈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엄명했다. 하지만 비밀로 할수록 사람의 심리는 더욱 그 얘기를 몰래 하고 싶은 법. 이러한 이야기는 궁궐에 계속 퍼졌고 심지어 대비 김씨, 즉 정순왕후에게도 알려졌다.
음력 6월26일 다시 회합이 이루어졌다.
“대비마마, 주상께서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조차 못한다고 하옵니다.”
“그러길래 사가의 의원을 쓰는 것이 아니지요. 어찌 그리 처신한단 말이오..”
“대비마마, 주상전하께 혹시 무슨 변고라도 생기시면......”
“허허, 우상 대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허나 주상께 변고가 생긴다면 이미 세자가 장성해 있지 않소 무슨 걱정이란 말이오.”
회합에 모인 자들의 말이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말로는 주상을 위하는 척 하지만 그 말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정조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말투였다.
그날 대비전에서 대비 김씨와 우의정 이시수간의 별도 만남이 이루어졌다.
“탕약은 제대로 준비하셨던 거지요?”
“대비마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소신이 지난 5일간 전하가 탕약을 전부 드시는 것을 봤나이다. 그리고, 어제부터는 아예 일어나 탕약 자체를 제대로 들이키지도 못하시옵니다.”
“그렇군요. 이제 얼마나 남았다고 합니까?”
“나인들과 의관, 그리고 소신이 보기에는 길어야 하루 이틀이옵니다.”
“그렇군요. 이제 제가 나서야 겠습니다. 내일 마지막 탕약은 제가 들고 들어가지요. 손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할머니. 괜찮지 않으십니까. 하하하하”
음력 6월 27일 궁궐에는 이미 임금이 혼수상태이가 국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정순왕후가 내의원을 찾았다.
“이게 오늘 주상에게 들어가 탕약인가?”
“그러하옵니다. 대비마마.”
“이리 주게 이 탕약은 내가 들고 가겠네.”
내의원 의관이 탕약을 올리자 정순왕후 옆에 있던 상궁이 탕약을 받아 들었다.
“앞장서거라.”
정순왕후는 강녕전으로 향했다. 그 뒤로 우의정 이시수, 좌의정 심환지, 어의 강명길이 뒤를 이었다.
강녕전 앞에 이르자 상선이 정순왕후를 막아섰다.
“뭣하는 짓이오?”
정순왕후를 막아선 상선에게 상궁이 소리쳤다.
“대비마마, 이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아녀자는 약탕을 들고 전하를 마주할 수 없사옵니다.”
“뭐라! 네 놈이 감히 내게 법도를 운운하는 것이냐? 나는 이 궁의 최고 어른이다.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정순왕후가 소리쳤다.
“뭐하나 상선. 어서 길을 열어드리게.”
옆에 있던 이시수가 말을 거들었다. 상선은 주변을 살펴더니 마지 못해 길을 열었다.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고 싶으니 경들은 잠시 물러가시오.”
정순왕후가 직접 탕약을 들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한민권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이미 닷새를 미음만 먹은 탓에 앙상하게 마른 상태였다. 정순왕후는 정조의 옆에 앉고 탕약을 내려놨다.
“주상! 말이 말랐구료.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더니 어이 이리 되었소.”
“.....”
한민권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정순왕후의 말만을 듣기만 했다.
“주상, 내 오라버니[김귀주]를 죽이고, 우리 가문을 죽이고, 그로 인해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맘이 편하였소이까? 주상, 내 열다섯에 궁에 들어왔소. 내가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주상은 알기나 하오. 살해위협! 주상은 살해위협을 받았다고는 하나, 다 그건 주상의 잘못이고, 주상이 아비를 잘못 만난 탓이고, 주상이 어리석은 탓이오.
주상은 절대로 노론을 적으로 돌려서는 아니되었소. 주상의 아비가 왜 죽었는지 잘 알고 있잖소. 주상 역시 왜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오.
이제 그만 편히 가시오 주상. 세자는 내가 잘 돌보리다.“
말을 마친 정순왕후가 옷에서 뭔가를 꺼내 탕약에 넣었다. 그리고 수저로 탕약을 한 숟가락 떠서 정조의 입에 갖다 데었다.
“!”
그 순간 한민권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한민권의 입 바로 앞에 있던 정순왕후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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