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퇴사하겠습니다.”
내 사직서는 이후.
회사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난 6년 회사생활 동안 모은 돈에 퇴직금을 더해 시골에 정착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일한 유산인 충북 진천의 시골집.
그 집을 리모델링하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집 앞 밭까지 사들였다.
“허억..헉.. 쪄 죽겠네 진짜.”
복숭아를 따는 내내 옆의 빈 땅이 눈에 들어왔다.
저 옆에 밭까지 샀으면 좋았을텐데..
바로 옆쪽의 밭도 주인없이 빈 땅이다.
심지어 지금 밭보다도 넓고 토양도 좋지만···
돈이 있어야 사지···
별 다른 수익 없는 지금.
생활이 불가능했기에 지금 작은 땅에 만족해야했다.
“아이고 무슨 이 뙤약볕에서까지 일을 하고 있댜~ 이 시간에는 참먹고 쉬었다가 하는겨어~”
“그러게요, 어디가세요?”
“우덜은 진즉에 밭일 끝내고 집이 가는겨.”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노부부다.
요즘엔 귀농이나 귀촌하는 이들에게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 후.
이장이란 인간은 정착금을 명목으로 오백만원을 요구했다.
이사 전엔 그렇게 잘해주더니..
사기꾼이 따로 없다.
아랫집 어르신들 얘기를 들으니..
그의 텃세를 못 견디고 떠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란다.
정착금을 내지않고 버티자 실제로 텃세가 시작됐다.
열심히 작물을 심어둔 밭이 뒤집어져 있다거나.
집 앞에 못쓸 비료들이 흩뿌려져 있기도 했다.
마을기금을 들인 공간이나 비품따위 못쓰는건 어쩌면 당연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내고나서야 시골생활에 안정이 찾아왔다.
“그 놈의 거 약을 을매나 타서 준겨? 이파리가 다 죽어가잖어. 복숭아도 멫게 달리지도 않았구만 그려.”
이장과 달리 이 노부부만큼은 나를 친자식처럼 도왔다.
“음··· 물 20리터에 약은 한병씩 줬어요.”
“맞게 줬는디, 뭔일이랴 우리집 것들은 잘만 자라는디 말여.”
하지만··· 매번 이런 식이다.
주변 잡초들 죽이려고 주었던 약이 복숭아 나무까지 죽일 뻔 했다.
농사는 너무 힘들고 어렵다.
인간같지 않은 것들에게 치여 사느라 지친 삶에 비해 마음이야 편하긴한데..
“농사에 소질이 없나..”
그 딴 상사새끼들만 아니었으면.. 그 좋은 대기업을 퇴사하지 않았을텐데.
퇴사하더라도 더 크게 한방 먹여줬어야 했다.
나이가 더 많아서 그딴 놈들보다 빨리 취업했더라면..
아니 그럼 또 다른 상사가 있었겠지?
전 직장의 상사 새끼들에게 갑질 한번 해봤으면···
“그만두자.. 이딴 말도 안되는 상상이나 해봤자.. 피곤하기만 하지.”
바닥에 떨어진 복숭아 하나를 집어들었다.
충격 때문에 한쪽이 물러버렸지만, 그만큼 잘 익었단 뜻이다.
반대부분을 옷소매로 간단히 닦고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츄압-!
츄르릅.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무인도에서 이틀만에 찾은 코코넛을 마시는 듯한 기분이다.
그 당도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맛에 농사짓지.”
이 달콤함에 하루치 노동의 고단함이 모두 풀렸다.
과실이 판매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달리진 않았지만 만족스러운 삶이다.
아직 짓지못해 아랫집에 빌려쓰는 저온창고에 복숭아를 옮겨두고나서야 일과가 끝났다.
“벌써 해가 지려고하네.”
이 곳은 도시생활 할 때보다 해가 훨씬 빨리졌다.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은 더욱 그랬다.
탁.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시골집 마루에 동그란 스테인리스 상에 소박한 시골밥상을 내려놓았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때가 타 누래진 메리야스와 카고반바지 차림으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대접 가득 담긴 양배추쌈.
한 장을 떼어들어 끈기있는 흰 쌀밥 한술을 올렸다.
시골에서 담근 장을 섞어만든 쌈장을 발라 한입 베어물었다.
뉘엿뉘엿 해가지는 저녁.
마루에 시원히 불어오는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입 안 가득 퍼지는 쌈장과 흰쌀밥의 짭짤함과 고소함.
양배추의 달큰함이 행복 그 자체다.
“하~ 이게 행복이지. 다른게 뭐가 필요해.”
매 순간이 행복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누구의 간섭이나 도시의 소음이 없는 이 생활이 좋다.
“복숭아 좀 팔긴 팔아야 할텐데..”
퇴직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돈을 벌어야한다.
돈만 많았다면 귀농이 아닌 귀촌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나이 겨우 서른 둘.
일을 해야지.
사실 농사가 아니어도 된다.
이 시골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
난 그저 이 시골에 살며 이 행복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아휴.. 내년에는 많이 팔 수 있겠지.”
어떤 작물이 나와 맞을지 몰라 그 넓지도 않은 밭을 둘로 나누었다.
복숭아 철이 끝날시기다.
오늘 반대편 밭에 가을감자의 씨감자를 심었다.
제발 잘 자라나주길..
간단히 상을 정리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한여름 뙤약볕에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샤워기 헤드를 잡고 찬물 쪽의 수도를 켰다.
쏴아아-
“으읏! 뒤지게 차갑네.”
어깨에 닿은 찬물은 뼈까지 시려울 정도다.
산에서 내려 온 냇가의 물을 끌어다 쓴 것이 신의 한수였다.
샤워하는 내내 그 찬 기운이 등골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
몸에 물기를 닦아내고 나온 거실.
삐걱. 탁. 삐걱. 탁.
언제부터 쓴 건지 부모님이 창고에 박아두신 오래 된 선풍기는 고개를 천천히 움직이며 날개를 돌리기 바빴다.
“제법 시원하단 말이지.”
딸각.딸각.딸각.
푸슈우우욱.
“아 옥수수!”
저녁 준비를 끝내고 삶기 시작한 옥수수.
어서 꺼내달라는 듯 냄비 뚜껑이 달각거리며 거품을 내뿜었다.
황급히 뛰어가 불을 껐다.
옥수수를 쟁반에 담아들고 삐걱대는 선풍기 앞에 앉았다.
가장 큰 놈을 반으로 부러뜨리고는 한 입 가득 베어물었다.
이가 끊어낸 옥수수 알알이 혀 위로 우수수 떨어졌고, 뉴슈가에 절여진 달치근한 물이 입 안을 적셨다.
옥수수의 뜨거움을 식혀주는 선풍기바람에 사알짝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하암~ 벌써부터 졸리네.”
마당에 설치 해 둔 밝은 등을 끄자, 몰려들었던 벌레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9시 밖에 안됐지만 마당엔 칠흙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것만 먹고 자야지.”
남은 옥수수를 지퍼백에 담아 냉장고에 넣은 뒤.
방 안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다.
고개를 돌리자 마당과 반대쪽으로 난 창문의 커튼 사이로 유난히 밝은 달빛이 방 안을 비췄다.
“내일 다시 만나자.”
침대에 누운 채 팔을 뻗자 커튼이 달빛을 가렸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으음··· 뭐야 벌써 날이 밝았어..?”
방금 막 잠든 것 같았는데 창 밖에선 엄청난 빛이 쏟아졌다.
커텐을 쳤음에도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다.
“으악! 뭐야.”
밖을 확인하기 위해 커튼을 살짝 걷으려는 순간.
말도 안되는 빛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반쯤 감겨있던 눈을 완전히 감게했다.
“아이고!! 뭔 일이랴! 오씨 나와봐! 하늘이 화가났는게벼.”
아랫집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천천히 눈을 뜨자, 창 밖의 빛이 약해지고 있다.
“오씨!! 자는겨?!”
“예~ 지금 나가요.”
황급히 마당으로 나가보니 대문 앞에 아랫집 아저씨의 등 돌린 모습이 보였다.
방 안에서 빛에 고통스러워하던 것이 무색하게 마당은 어두웠다.
“저게 뭐시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어느새 아랫집 아저씨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내 밭을 보고있다.
“어..? 뭐···뭐야!!”
마당과 달리 마당 밖.
그러니까 소중한 내 밭에 달빛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다.
“저건.. 설마.”
빛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빛이 완전히 사라기전.
고개를 들어 빛의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생전 본 적 없는 크기의 거대한 차원의 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다.
“안돼!! 내 밭에는..!”
약 30년전.
지구를 사이에 두고 5광년 이상 떨어진 행성.
‘구스토스’와 ‘웨싱’을 잇는 차원의 문이라는 것이 열렸다.
그곳에는 여러 이종족이 지구로 넘어왔고, 그때부터 지구는 행성 사이의 휴게소가 됐다.
하지만.. 퇴사와 동시에 타 행성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차원의 문을 직접 본 것은 손에 꼽지만..
그 빛이 내리쬔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주변이 초토화되거나 황폐화되기도 한다.
“차원의 문이 열리는게 맞냐고!! 왜 하필 내 땅에!”
“오씨! 어디가는겨! 돌아와!”
전 재산을 바친 땅이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빛이 내리쬐고 있는 밭으로 뛰어들었다.
철푸덕.
밝은 빛 덕분에 발 밑을 보지 못하고 흙이 쌓인 둔덕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서서히 사라지던 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날이 밝아왔다.
“씨바아알..!!”
“아이고.. 우짠댜..”
나무 이파리가 전부 말랐고, 복숭아가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 내가 넘어진 곳은 씨감자를 심은 자리다.
쑤욱. 쑤욱. 쑤욱.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씨감자가 흙 위로 솟아올랐다.
그것들 모두 양분을 전부 빼앗긴 듯 메말라있다.
“아이고.. 내가 씨감자 남은거라도 나눠줄테니께.. 이따 우리집으로 오라고..”
아무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두는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도 금세 자리를 비웠다.
“아무리 망친 농사라지만.. 이건.. 이건 아니잖아..!!!”
매일이 복숭아를 먹으려는 새와의 전쟁이었다.
오늘은 고라니와 멧돼지로부터 씨감자를 지키기 위해 밭 주위로 말뚝을 박고 그물망까지 쳤건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씨이발..!”
그저 욕이 나올 뿐이다.
회사생활 내내 갑질에 질려 왔건만···
이번엔 타 행성이 갑질을 한다.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양분을 빼앗긴 씨감자를 치우고 밭을 정리했다.
잘 쌓아두었던 둔덕도 다시 쌓아야한다.
흙을 뒤집고 밭을 정리하기 위해 쇠스랑과 삽을 챙겼다.
첫 삽을 뜨는 순간.
삽에 느껴지는 흙의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뭐가 이렇게 질퍽하지..?
흙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깊게 한 삽 파내었다.
흙이 젖은 것은 아니다.
“토질이 이렇게 좋았나?”
비료를 적당히 주긴했지만 내가 알고있던 흙의 상태가 아니다.
더 깊은 곳까지 파냈지만 안쪽의 흙은 더 좋다.
“대체 그 빛은 뭐였지..”
흙을 살피던 그때.. 깊게 판 구덩이 안쪽에서 푸른 액체가 흘러나왔다.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이 푸른 액체를 못알아 볼 리 없다.
퇴사 전, 6년간 다녔던 대기업 ‘EL’.
그들을 국내 1위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한 물질.
‘이엘리스.’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순간.
[ ‘이엘리스’를 품은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
낯선 목소리가 귀가 아닌 머리에 다이렉트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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