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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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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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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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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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DUMMY

“이게 소환 마법진이라고? 소환 마법진 확실해? 다시 봐봐.”


그 많은 마법사들이 한참 머리를 싸매도 알아내지 못했던 걸 대충 슥 보자마자 알아보니 믿음보단 잘못 본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어차피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본 거야? 다른 사람한테 가서 물어보든가.”

“아, 아니! 안 믿는 게 아니라 너무 유능하니까 놀라서 그렇지. 다른 마법사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나는 돌아선 하은의 팔을 급히 붙잡으며 아부를 떨었고 하은은 피식 웃으며 마지 못하는 척 내게 붙잡혀 주었다.

저 웃음, 뭔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딱 소은 누나가 나를 골탕 먹일 때 짓는 웃음이었다.

아니, 이거 옆에서 마법은 안 배우고 이상한 걸 배웠네?

맨날 내가 놀려먹던 애가 이제 반대로 날 놀려먹기 시작하자 기분이 묘했지만 나는 일단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뭐, 확실히 무슨 마법진인지 알아보기 어렵긴 해, 아직 기본적인 틀조차 갖춰지지 않은 불완전⋯은 고사하고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마법진이니까.”

“그런데 그걸 넌 어떻게 알아봤는데?”


백지나 다름없다면서 어떻게 소환 마법진이라고 확신하는 건지 내가 그 근거를 묻자.


“⋯진짜 말해줘?”


하은은 깊게 숨을 들이쉬어 기관총 갈기듯 쏟아낼 수 있는 마법적 근거를 혀끝에 장전했다.


“⋯우리 사이에 그런 건 원래 믿음으로 가는 거지.”

“잘 생각했어, 지도 한 번 줘 봐, 좀 더 자세히 봐줄게.”


내가 지도를 넘겨주자 하은은 평평한 콘크리트 조각에 앉아 다리를 꼬고 유심히 지도와 표시된 마법진을 들여다봤다.


“⋯⋯⋯⋯.”


그동안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 나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잠깐 멀쩡한 세상에 있다가 왔다고 엉망진창이 된 서울의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지옥 같은 전쟁터와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일상의 공간을 수시로 오가니 그 부조화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아린이랑 형은 잘 있으려나⋯.

그런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은이 내게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펜이나 연필 그런 거 있나?”


하은의 말에 나는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주머니를 뒤적이는 척하며 잠시 시간을 벌어 아이디어 하나를 냈다.


“아까 처박혔던 빌딩 사무실에 많던데 하나 가져올까?”

“응, 있으면 종이도 몇 장.”

“네.”


말괄량이 소녀로만 알았는데 자신의 전문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한 하은은 완전히 다른 아우라를 풍겼다.

교수님, 박사님들이 사람들이 풍길 것 같은 학자의 진중함은 감히 그녀를 가벼이 여기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런 분위기에 짓눌린 나는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 슥, 스슥, 스윽.


내가 펜과 종이를 가져다주자 하은은 한참 집중해서 마법진을 분석하고 해석했다.

나는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조신하게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하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조용한 거 아냐?”

“너 집중하는 데 방해될까 봐.”

“잡담 나눌 여유 정도는 있어.”


잡담이라.

평소엔 조잘조잘 잘 떠들었던 것 같은데 의식적으로 대화 주제를 떠올리려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에 나는 가장 만만하고 또 궁금하기도 했던 서울의 전황에 대해 물었다.


“지금은 좀 잠잠해진 것 같은데 방어선은 어때?”

“위기는 다 넘긴 것 같은 분위기야, S급 던전 브레이크도 다 막았고 앞으로 던전 브레이크 일으킬 던전 개수가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었고. 이대로 잘 버티기만 하면 될 것 같아.”

“아린이랑 형은 잘 있지?”

“응, 어제 잠깐 얼굴 봤어.”

“만나기까지 했어? 그런데 왜 합류 안 하고 혼자 여기 남았어?”

“나도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고 싶었는데 S급 헌터랑 A급 헌터가 같이 다니는 건 전력 낭비니까. 지금 이 근처에도 A급 헌터 나 혼자뿐이야.”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며 방어선 전력에 공백과 불균형이 생긴 만큼 강한 헌터를 여기저기 골고루 재편한 건가.

역시, 소식이 안 들렸을 뿐이지 내가 대전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하는 동안 여기선 아찔한 하루하루가 펼쳐졌나 보다.

그나저나 내가 걱정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근데 너 마력 회복 안 되는 건 좀 어때?”

“여전하지 뭐.”

“그럼 요 며칠 새에 마력 엄청나게 썼겠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지경이야.”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앞으로 1년 정도 쓸 마력 남았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은 얼마나 남았는데?”

“한 3개월?”

“마, 많이 쓰긴 했네.”


괜한 말을 꺼냈나, 하은은 아주 죽상을 하고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에휴, 이번 일이 정리되고 나면 평생 먹고살 보상이라도 빵빵하게 받으면 좋겠는데⋯ 서울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나라에 그만한 돈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시 알바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마, 마력이 없어져도 마법적인 지식은 어디 안 가잖아, 아카데미 졸업하고 교수님이나 마법 자문 같은 거 하면 되지.”

“그런데 사실 더 못 버는 게 아쉬울 뿐이지 이미 언니네 길드에서 벌어둔 돈만으로도 평생 사는 데 큰 문제 없긴 해. 자!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하은은 자신이 하던 무언가가 끝났는지 내게 여러 장의 종이를 지도와 겹쳐 보여주었다.

종이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다양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야?”

“지도에 표시된 마법진은 헌터관리국이 그리는 중인 마법진의 위치를 전부 밝혀낸 게 아니라 그냥 일단 발견된 곳만 정리한 거지? 아직 어디서 더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는 거고?”

“응, 정확해.”

“그럼 나머지 장소를 밝혀내는데 내가 그린 마법진을 활용해봐. 만약에 지도 속 마법진을 나한테 완성해보라고 하면 이렇게 마법진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도야. 그 초대형 마법진을 설계한 마법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 정도 실력이 된다면 분명 비슷하게 그릴 거야. 실력이 딸려서 이상한 마법진을 그렸다면⋯ 그건 어차피 실패한 마법진이니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거고.”

“우와⋯.”


아무리 마법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나라지만 지금 하은이 덤덤하게 내민 이 종이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놀라운 천재성이 담겨있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얘가 이 정도로 똑똑하고 유능한 친구였나, 순간 하은과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그놈들이 뭘 소환하려고 이 정도의 소환 마법진을 그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만한 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뭐든 간에 엄청난 게 튀어나올 거야. 그러니까, 그 전에 꼭 막아, 알겠지?”

“최선을 다할게.”

“최선으로는 안 돼, 무조건 막는다고 약속해.”

“알았어, 무조건 막을게.”

“좋아, 그럼 이제⋯ 가는 거지?”


하은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표정과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험악하고 삭막한 전장에서 잠시나마 아는 사람을 만난 게 꽤나 반가웠나 보다.


“가야지, 가서⋯ 할 일 해야지.”

“그래, 할 일 해야지.”


내가 하은이 건네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천천히 뒷걸음질 치자 하은은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저런 거 보면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 맞는데.


‘⋯기분 참 이상하구만.’


그렇다고 나라고 어린애가 아닌 건 아니었다.

모두가 있는 이곳을, 내가 있어야 할 곳 같은 이곳을 떠나 다시 혼자서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려니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그냥 이대로 여기 남아 평소처럼 강한 적을 만나면 아린이 뒤에 숨고, 골치 아픈 상황이 나오면 형한테 어떻게 하지?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게 더 편하고 익숙한데, 그 편안함과 익숙함을 떠나려니 영 불안하고 불편했다.


‘어른 되기 더럽게 힘드네.’


언제쯤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줄 아는, 혼자 서도 불안하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형과 아린이를 잠시라도 만나러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헬기를 타기로 한 합류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




“⋯! 무사히 돌아왔군!”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헬기 착륙장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던 미즈키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서울에 따라가겠다는 걸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지부에 남아있으라고 겨우 설득해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래서 다녀온 보람은 좀 있어?”


미즈키 다음으로 서연이 새침하게 물었다.

얘도 지 떼놓고 혼자 다녀왔다고 좀 삐져있는 것 같았다.


“보람 수준이 아니야, 가서 하은이 만나고 왔어.”

“⋯! 하은이는 어때, 잘 있어?”


하지만 내가 하은이 이름을 꺼내자 서연은 삐진 기색은 싹 빠지고 보기 드물에 안달 내며 하은의 안부를 물었다.


“응, 잘 있더라.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그리고 잘 있다는 말에 여태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도했다.

항상 곁에 있어 잘 몰랐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얘도 사람 참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동료의 안부도 중요하지만 이제 일거리 물어왔으니 우린 다시 일하러 가 볼까요?”

“좋다, 그런데 그 종이가 뭔데?”

“이거? 보물찾기 지도.”

“한 대 맞으면 똑바로 말할 생각이 들 것 같나?”


나는 종이에 적힌 내용이 뭔지 많이 궁금한지 계속 쫑알거리는 미즈키를 뒤로 하고 일단 지부 안으로 들어가 오주한과 김민주, 그리고 다른 요원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지도 속 마법진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가져온 종이가 무엇인지 한 번에 설명했다.


“준호 씨! 스캔 끝났어요! 불 끌게요!”

“네, 고마워요.”


내가 요원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눈치 빠른 김민주는 대략적인 마법진이 그려진 지도와 하은이 그려준 마법진을 스캔 떠 빔프로젝터로 큰 화면에 띄울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이건⋯.”

“이야⋯ 대단한데⋯.”


그렇게 떠오른 화면을 본 요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민주는 지도에 원래 표시돼 있던 마법진의 크기와 방향에 맞춰 하은의 마법진을 겹쳤고 화면엔 지도 위를 지나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이것은 제가 아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유능한 마법사가 그려준 마법진 예상도입니다.”


수많은 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어쩌다 보니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런 발표나 설명회 같은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생각보다 긴장되거나 하는 것 없이 술술 말이 잘 나왔다.


“저희는 이 예상도를 중점으로 본부 놈들의 나머지 은신처를 수색할 것입니다, 대체 뭘 소환하려고 이렇게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미처 사용하지 못한 마석을 수거해 놈들이 그리려 하는 마법진을 깨트려버릴 수만 있다면 그게 최상이구요!”


내가 말하자 요원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런데 저 넓은 구역을 전부 수색하기엔 인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요? 구역을 좀 더 좁혀야 할 것 같은데요.”


요원은 내가 헬기에서 하던 고민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은이가 마법진으로 수색할 구역을 특정해줬다곤 하지만 마법진의 크기가 너무 거대한 탓에 그 특정된 지역조차 너무 넓었다.

하지만 하은은 내가 그런 멍청한 고민을 할 것까지 미리 예상했는지 지도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표시해뒀었다.

참 발상이라는 게 막상 떠올리면 별것 아닌 간단한 것인데 그 간단한 발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았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쓸데없는 부분은 전부 버릴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김민주는 눈치껏 레이저 포인터를 가져다주었다.

아니, 무슨 센스가 이렇게 좋아? 이런 동료 있으면 진짜 같이 일할 맛 나겠다.


“지금 보시면 마법진이 워낙 복잡해서 이리저리 중구난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레이저 포인트로 특정 지역 몇 곳을 강조했다.


“이 부분을 봐주십시오, 모든 마법진에서 공통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곳은 마법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저희는 이곳만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입니다. 더 질문 있습니까?”


나는 추가 질문을 받았지만 더 이상 질문자는 나오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움직입시다!”


그렇게 내가 힘차게 손뼉을 한 번 치며 프레젠테이션을 끝내는 순간, 수많은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은 내 부하도 아니고 내가 무슨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내 한 마디에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은 뭔지 모를 짜릿함을 선사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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