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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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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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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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백학무관(1)

DUMMY

“음!”


헛간을 둘러본 신전흥이 짧게 탄식했다.


“그냥······ 헛간이군.”


아무리 살펴봐도 잡다한 공구와 농기구, 포대 따위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요. 제가 한 번 더 확인해 볼 테니 신 대협은 경계를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신전흥이 바깥을 예의주시하는 동안 안유는 찬찬히 내부를 살폈다.


그러나 안유가 내린 결론 또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냥 헛간이다. 비밀문도, 수상한 격벽도 없는 헛간.’


설마 예상이 빗나간 것일까.

안유는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확신은 이내 현실로 변모했다.


‘이건!’


안유의 시선이 바닥의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온갖 부스러기가 흩뿌려진 바닥 위로 선명한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흔적.


곡식 쪼가리 같은 것이 발자국마다 박혀 있기에 안유는 초흠의 용무가 무엇이었는지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안유는 가지런히 세워져 있던 포대 중 하나를 열어젖혔다.


촤르륵!


안에는 곱게 빻은 곡식이 가득 차 있었다. 가축의 사료라기엔 품질이 꽤 좋았으므로 아마도 건량인 듯했다.


“설마 거긴 아니겠지.”


신전흥이 핀잔을 주었으나 안유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곧 싱긋 웃으며 포대에서 손을 빼냈다. 주먹 쥔 손은 무언가를 꼭 붙들고 있었다.


“설마 여기였을 줄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건량이라. 찾아오는 객이 적지 않으니 금세 동나겠군요. 딱히 의심받을 일도 없고······. 돌아가는 길에 허기를 채우라며 나눠준다면 그저 그만이겠습니다.”


곡식에 파묻혀 있던 것은 몇 번이나 접어 숨겨둔 밀서(密書)였다.


안유는 내용을 확인하고 도로 밀서를 집어넣은 뒤 다른 포대의 주둥이를 열었다.


그렇게 확인하고 돌려놓기를 반복하자 신전흥이 어이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군. 의표를 찔렀다고 해야 할지 조심성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괘념치 마십시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허 참!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더니 그걸 고스란히 팔아먹는구나. 노인네가 누구의 사주라도 받은 건가?”

“그걸 왜 제게 물으십니까?”

“자네 말대로 ‘지도’를 찾았지 않나. 더한 것도 알고 있을 것 같군.”


안유가 다음 밀서를 꺼내 들며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사주 때문은 아닙니다.”

“······.”

“이는 ‘비선’이라는 조직의 수법입니다. 철저한 점조직으로 아래에서 위로, 온갖 정보를 차츰 선별해가는 식의, 일방적인 보고만이 가능하지요.”


-신선곡의 후인이 나타나 일단의 무리를 격퇴. 순식간에 오십여 명을 격살하고 사라짐.


안유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적힌 밀서를 고이 접어 포대 깊숙이 집어넣었다.


“굉장히 은밀하면서도 이렇게 무신경한 일면을 보이는 까닭은 그들에게 가해진 금제 때문입니다.”

“독인가? 아니면 인질인가?”

“양쪽 다 아닙니다. 그러나 훨씬 더 흉악하지요.”


안유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판관이 항상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비선’에 대해 발설해도, 제 역할을 소홀히 해도 뇌수가 곤죽이 돼버립니다.”


신전흥이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악독한······. 가보면 알 거라는 그 말뜻을, 내 이제야 알겠네.”


뿌득.


신전흥이 이를 짓씹으며 화를 억눌렀다.


“······초흠뿐만이 아니겠군.”

“아마도······. 그는 수많은 전달책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요. 조달책은 그보다 더 많을 겁니다. 어쩌면 객청의 빈객 중에 섞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하위 전달책은 자각(自覺)조차 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윗선은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아직도 우리가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인 없는 물건인데, 가져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나.”


안유는 마지막 밀서까지 확인한 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행히 필요한 정보는 전부 챙길 수 있었다.


이 정보에 전생의 기억이 더해지면 앞으로의 경로(徑路)는 대략적으로나마 정해진 셈이었다.


‘추려내면 세 개 정도인가.’


첫 번째, 백학무관(百學武館)의 분쟁.


두 번째, 대호채(大虎寨)의 발호.


세 번째, 불귀산장(不歸山莊)의 암약.


모든 정보는 써먹기 나름이다.


잘 써먹을 수 있고, 또 당장 써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정보였다.


회귀 전, 별것 아니었던 사건들은 이제 대사건의 시발점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가장 시급하고 또 궁금하기도 하니 처음은······.’


계획을 짜던 안유의 눈에 신전흥이 밟혔다.


그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안유를 지켜보고 있었다.


“······.”

“날이 밝는 대로 떠나야 합니다. 누굴 도와줄 상황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서각의 일 또한 화급하니 어쩔 도리가 없지.”


신전흥이 크게 숨을 내쉬며 화를 삭였다.


꽉 막힌 사람.

협의에 따라 움직이고, 협의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


신전흥이 왜 분통을 터뜨리는지는 명약관화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으나 당장은 나서기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었다.


‘언젠가는 전부 해방하겠지만 지금은 무리다. 그녀도 아직은······. 이참에 인사나 해둘까.’


안유는 포대에서 다시 밀서를 꺼내며 왼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붓 한 필이 대뜸 튀어나왔다.


신전흥이 놀라는 것도 잊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위험하네.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필체 흉내는 자신 있습니다. 또 미리 말해두는 편이, 신 대협도 마음이 놓이시지 않겠습니까.”

“자네······.”


안유는 초흠의 필적을 뜯어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곤 순식간에 밀서에 줄글을 더해버렸다.


-장사(长沙) 천화루(天花樓)의 삼화(三花)가 가히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라 부를 만하다고 함.


***


“아가씨. 기침하셨습니까?”


매예령은 여느 때처럼 시비의 인사말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들어오세요.”


시비가 들여온 세숫물로 얼굴을 씻고 곧바로 치장을 시작했다.


청루(靑樓)의 가기(歌妓)는 낮부터도 찾는 사람이 많았기에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는다. 장신구를 꽂고 향을 바른다. 그러나 화장은 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보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백옥같은 피부와 수려한 이목구비에도 불구하고 매예령은 손님들 앞에서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옥안(玉顔)을 가로지른 기묘한 상흔.

나뭇가지 모양의 흉터가 얼굴을 수놓고 있었다.


꾸드득!


“······.”


흉터가 맥동하며 선명하게 불거진다. 시비는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새카만 면사포를 드리웠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두포입니다.”

“무슨 일 있나요?”

“방물장수가 왔습니다. 한 아름 걸머지고 왔군요.”

“그렇군요. 안으로 들이세요. 오늘도 고마워요. 당신도 나가서 일 보세요.”


시비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물러났다. 그리고 교대하기라도 하듯 중늙은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가씨. 오랜만입니다!”


투박한 외양의 사내가 경망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어떤 물건을 보시렵니까? 비녀도 있고 노리개도 있고······. 성도에서 모셔온 향낭도 있답니다!”

“······.”

“가락지는 어떠십니까. 이놈이 아주······.”


꾸드드득!


면사 아래의 흉터가 발작하듯 요동쳤다.


그 직후 사내의 말투는 점차 느릿해지며 두 눈에서도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 또······.”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세요.”

“······예.”


방물장수는 탁자 위로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그가 소개한 어떤 물건도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 자그마한 주머니가 우수수 쏟아졌다.


매예령은 흘러내린 곡식을 손으로 쓸어버리며 방물장수에게 두툼한 전낭을 건넸다.


“다음에도 또 들러주시길.”


방물장수는 주섬주섬 보자기를 챙기더니 나갈 채비를 했다. 흐리멍덩하던 눈빛은 문가에 이르러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어, 하, 하핫! 역시 아가씨는 통이 크십니다요! 다음에는 어떤 물건으로 챙겨올깝쇼?”

“동경(銅鏡)이 좋겠군요. 가능한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실한 놈으로다가 물어오겠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자 매예령은 천천히 주머니를 끌렀다.


안에서 밀서를 꺼내고 주머니는 한편으로 치워놓았다. 곧 탁자 이쪽에는 밀서가, 저쪽에는 건량 주머니가 수북하게 쌓였다.


가기는 소리 내어 밀서를 읽기 시작했다.


“귀주의 금사(金沙)에서 비적 떼가 몰살. 흉수는 불명이나 전원 극독에 당했다. 당문? 아니. 그들이라면 곧장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표했을 거야. 귀주라면 당장 생각나는 곳은······.”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에서 취합되며 또한 정리된다.


비선의 영역은 비단 이곳 장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또 얼마든지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정보는 거미줄과도 같다. 촘촘해질수록 더 견고해지지.’


이는 굳건한 기반이 되어 그녀는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乘勝長驅)를 거듭했다.


지금은 하오문 장사 지부장의 수하에 불과하지만 정보력만큼은 장사 지부 전체를 합친 것 이상으로 광대했다.


천형(天刑)과도 같은 저주를 떨쳐내기 위해.


그녀는 언젠가 하오문의 정상에 오르리라 다짐했다.


매예령은 한참 동안 밀서와 씨름했다.


한순간도 막힘 없이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다가, 밀서의 어느 단락에 이르러 잠깐 숨을 골랐다.


“······신선곡?”


신선곡.

작금에는 전설로만 여겨지는 신비의 문파.


소재는 끝내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전설 속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는 매예령이었다.


“신선곡의 후인이······ 나타났다······?”


후인은 어느 숲에서 수십의 무인을, 가공할 만한 검술로 단번에 격살했다고 했다.


‘형산 인근. 대체 무슨 일이지? 굳이 흔적을 남기면서까지, 혹시, 흔적을 남기는 것 자체가 목적인가?’


무림의 은원은 대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정보는 파고들수록 새로운 일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녀의 감에 따르면 신비인에 관한 정보는 아마도 이런 부류인 듯했다.


‘왠지 그냥 넘기기엔 찜찜해. 이 건은 진위 파악이 필요하겠어.’


매예령은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보다가 또다시 어떤 단락에서 시선을 멈췄다.


이번에는 반대로, 무척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장사(长沙) 천화루(天花樓)의 삼화(三花)가······ 가히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라······?”


천화루는 그녀가 머무는 바로 이곳이었고.

삼화는 다름 아니라 매예령의 별칭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새카만 면사 너머로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넘실거렸다.


***


마차를 몰던 안유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갑자기 왜 웃나?”

“한 사람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아마 웃지도 울지도 못할 테니 대신 웃어주는 겁니다.”

“그렇군.”


신전흥은 안유의 화법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었다.


호들갑 떨어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 조용히 받아들이는 쪽이 보기도 좋을 터였다.


“‘지도’도 챙겼으니 이젠 ‘검’ 차례군.”

“그렇습니다. 이번에 얻은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지요.”

“‘검’ 또한 ‘지도’가 그랬듯 단어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겠지. 자네의 소매에선 검이 쑥쑥 튀어나오니 철방을 찾는 것도 아닐 테고. 해서 이번엔 어디로 가려는 건가.”

“‘검’을 얻기 위해선 몇 군데를 들려야 합니다. 우선은 백학무관(百學武館)으로 가볼까 합니다.”


신전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관? 무관은 왜?”

“비선의 정보에 따르면 백학무관은 최근 난처한 일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그간 쉬쉬하던 근처 무관과 갈등이 생긴 거지요.”

“흐음. 밥그릇 싸움인가?”

“예. 근처의 천수무관(千修武館)이란 곳이 사소한 일을 빌미로 자웅을 겨루자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곡절은 알겠군. 근데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검’을 얻기 위해선 협명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협명 좋지. 우리가 쫓기고 있지 않았다면 말일세.”

“어찌 일신의 안위를 우려해 협의를 저버리겠습니까.”

“······.”


신전흥이 뭔가를 우물거리자 안유가 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신 대협. 협의를 바로 세우러 가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풍뢰전사
    작성일
    24.01.01 00:39
    No. 1
  • 작성자
    Lv.99 전재환
    작성일
    24.01.28 12:06
    No. 2

    음.. 재밌긴 한데

    너무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라
    갑갑한 느낌도 좀..

    독자들에게 어느정도 기대감을 줄 떡밥이 필요해 보임.
    지금보다 더 흥미유발이 될 법한 걸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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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학무관(1) +2 23.12.06 1,048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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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도(2) +3 23.12.04 1,242 21 13쪽
5 지도(1) +3 23.12.01 1,402 29 13쪽
4 무림출도(3) +2 23.11.30 1,502 2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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