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흑막이 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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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os
작품등록일 :
2023.11.29 17:12
최근연재일 :
20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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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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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무관(2)

DUMMY

어슴푸레한 여명 사이로 검광이 번뜩였다.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수련용 목인이 파편을 튀겼다.


카가각!


예기가 스칠 때마다 목인의 사지가 하나씩 달아났다. 사람으로 치면 관절 부분, 이음매를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변화도 눈속임도 없는 강검.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정직한 검법은 그리 많지 않다.


견문이 넓은 자라면 범상치 않은 검이라 칭송할 터였고, 그보다 더 넓은 자라면 이것이 백학무관의 철혈검법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카가가가각!


감지승은 목인의 사지를 전부 날려버린 뒤 전신의 공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직후 다섯 갈래로 나뉘어 쏘아지는 검광.


인체의 요혈 다섯 군데를 정확히 찔러 들어가는 절초, 철혈무위(鐵血武威)였다.


퍼서석!


“후!”


감지승은 납검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해갈하지 못한 열기 때문일까. 벗어젖힌 상반신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버님.”

“음.”


시립하고 있던 감명이 재빨리 수건을 건넸다.


“이젠 네 검을 보여주거라.”


아들은 주춤거리며 검을 뽑았다. 천성이 솔직하고 착하나 그만큼 무르기도 한 것이 아들의 단점이었다.



‘담이야 천천히 키우면 된다. 지고, 이기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커져 있을 테지.’


후웅!


감명은 천천히 철혈검법을 펼쳤다. 초식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었으나 검 끝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큭.”


쉬이익!


다섯 갈래 검광이 허공을 난자했다.


절초 철혈무위의 핵심은 신속함과 정확함.

심사가 어지러운 탓인지 아들은 다섯 갈래를 완연히 전개하지 못했다.


“다시, 다시 해보겠습니다.”


감지승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되었다. 무리했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힘이 모자란다면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새벽 공기가 차구나. 어서 들어가서 더운물로 몸을 씻어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해라.”

“······예.”


감명이 안뜰로 들어간 뒤 감지승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무관을 훑었다.


평소라면 새벽 훈련이 한창일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


천수무관주가 찾아온 것은 이레 전의 일이었다.


“잠깐 얘기를 나눴으면 하오.”


그날, 오한평은 제자 수십 명과 함께 다짜고짜 들이닥쳤다.


백학무관의 제자들이 그들을 둘러싸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으나 감지승은 차분하게 제자들을 물렸다.


“얘기라. 어디 들어나 봅시다.”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천수무관은 일 년 만에 백학무관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했다.


공격적인 확장도 확장이지만 무엇보다도 구파일방 중 하나를 뒷배로 둔 덕분이었다.


바로 형산파.


백학무관이 일대에 이름난 토착 무관이라고는 하나 이름난 명문 정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호랑이 두 마리가 같은 산에 살 수는 없는 법.


두 무관은 언젠가 맞부딪힐 운명이었다.


“요즘 저자에서 중인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하오. 백학과 천수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다들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던데······.”

“낫고 말고 할 게 어딨겠소. 소문은 소문이고 무관은 무관일 뿐.”

“참으로 맞는 말이오. 하지만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여간 지치는 일이 아니더군. 우리 제자들도 영 탐탁지 않은 듯하고······.”


오한평이 능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건 백학무관도 마찬가지인 것 같군.”

“자웅을 겨뤄보자는 거요?”

“뭘 그렇게 거창하게나······. 그저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자는 말이오.”

“좋군. 나도 막 궁금해지기 시작했소.”


감지승은 일평생 승부를 피한 적이 없었다.


오한평은 이 점을 노렸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휘둘러야 할 때 휘두른다면 검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기에······.


“방식은?”

“비무. 다만 어디까지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함이니······ 살초는 금지, 그리고 무공은 철혈검법과 화안검법만 사용하는 것으로 하지요.”

“좋소. 인원은?”

“삼인.”

“그것도 좋소.”

“배분은 적당히 섞도록 합시다. 일시는 이레 후, 이곳에서.”

“좋소.”


곧 백학무관과 천수무관이 경합을 벌인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인근 마을은 물론이고 저자에까지, 사람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경합 이야기만 떠들어댔다.


‘오한평, 전부 그자의 계획대로겠지.’


어떤 식으로든 소문을 퍼뜨렸으니 경합 당일 구경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 터였다.


친선을 다지기 위함은 명목일 뿐.


패자는 패자로, 승자는 승자로.

소문은 마찬가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리라.


감지승은 다른 노림수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철혈검법과 화안검법만 쓸 것······. 얼핏 공정해 보이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현재 철혈검법을 익힌 자 중 가장 강한 것은 무관주인 자신.


그리고 그다음은 아들 감명.


나머지 제자들의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배분을 적당히 섞는다면 자신과 아들, 그리고 제자 한 명으로 나누어 겨루게 될 터인데.


‘저쪽에는 형산파가 있다.’


체면상 이쪽에 맞추어 천수무관주, 그리고 그의 아들이 나온다 해도 나머지 한 명이 문제였다.


화안검법을 익힌 수많은 형산 속가 제자들. 그리고 본산의 절학에 입문한 적전제자까지.


느슨한 조건은 사람을 입맛대로 내보내기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감지승은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승부에 응했다.


내어줄 건 내어준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철혈검법이.

그리고 감지승이 추구하는 무(武)의 목표였다.


‘내일 승부 이후에도 무는 계속된다.’


따라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이유는 없으니, 감지승은 조금만 더 수련하자고 마음먹었다.


막 검을 뽑으려는데 돌연 낯선 그림자가 담을 넘어 들어왔다.


휘익!


떠오르는 해와 함께 나타난 청년.


그는 황포를 입고 있었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아침나절부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스릉!


감지승은 검을 마저 뽑아 그를 겨눴다.


“객인가. 아니면 적인가.”

“백학무관주, 감 대협을 뵙습니다. 저는 지나가던 객입니다.”

“객이라면 어찌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오지 않았나.”

“눈에 띄고 싶지 않은지라 담으로 당당하게 들어왔습니다.”

“기개는 마음에 드는군.”

“검 솜씨는 더 마음에 드실 겁니다.”


쑥!


사내가 소매를 흔들자 오른손에 날카로운 협봉검이 생겨났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감지승은 적잖이 당황했다.


‘······뭐지?’


사용하는 병기와 그것을 꺼내는 솜씨로 보아 암검을 연마한 자 같았다.


아마도 살수, 그러나 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천하의 어떤 살수가 저렇게 당당하게, 그리고 헤실거리며 등장한단 말인가.


외양 또한 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한평이? 아니. 이미 저쪽이 유리한 만큼 괜히 들쑤실 필요도 없지. 힘으로 억압하려 했다면 진작에 형산파가 나섰을 거다······.’


사내는 멀찍이 떨어져서 자세를 잡았다. 협봉검이 햇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 대협. 제 검을 잘 봐주십시오.”


감지승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추상같은 호령을 내질렀다.


“무례하군! 정체와 목적을 밝히게!”

“시작하겠습니다.”


슉!


예기가 번뜩이자 감지승 또한 맞받아 출수할 준비를 했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객은 정말로, 자신의 검 솜씨를 보여줄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쉬이익!

쉬이이익!


제자리에서 검초를 펼치는 사내.

그리고 그에 따라 춤추는 협봉검.


“······.”


검무와도 같은 일련의 동작을, 감지승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무슨······.’


내공은 싣지 않았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고 강맹한 검기(劍技)였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저만한 성취를 이루려면 얼마나 고련을 거듭했을까.


감탄이 한껏 치솟아 한줄기 의문을 가까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


사내는 물 흐르듯 검초를 이어가다가 기세를 한층 끌어올렸다. 검법을 연이어 펼치며 생겨난 열기가 검첨으로 모이며, 협봉검이 돌연 여러 갈래로 나뉘어, 쏘아졌다.


쉬이이익!


“음!”


감지승은 저도 모르게 침음했다. 객은 마지막 초식을 끝낸 뒤 다시금 암검을 소매 안으로 숨겼다.


마지막 초식으로 생겨낸 검광은 다섯 갈래.


그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이젠 알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빠르고 정확하더군. 그러나 묘하게 달라.”

“부디 용서하시길. 오랜 인연과 세월의 간극을 스스로 메우다 보니 자연스레 독선과 오판이 깃든 모양입니다.”

“······그래. 자네의 검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네. 이제 자네의 검이 말하지 못한 것도 들려주게.”


감지승이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자넨 대체······ 어떻게 철혈검법을 알고 있는 건가?”


***


안유와 감지승, 그리고 감명은 나란히 다탁에 둘러앉았다.


“······.”


아무래도 미심쩍은지 감명은 자꾸만 안유를 힐끗거렸다.


안유는 그 모습이 퍽 웃겨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 건가.’


파릇파릇한 이십 세의 감명은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

“······.”


다들 찻물이 우러나길 기다리고만 있으니 우선은 자신이 운을 띄워야 할 것 같았다.


“철혈검법은 가전 무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대대로 연마하다가 감 대협의 대에 이르러 무관을 여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지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대의 전인께서는 본 곡의 어르신 중 한 분과 인연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무학을 논하다 의기투합하신 끝에 철혈검법과 당신의 검법의 비급을 교환하셨다더군요.”

“······곡?”

“감히 입에 올리기 부끄러울 정도지만 불초 안유, 신선곡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 신선곡이라니······!”


감지승과 감명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런 곡절이 있었군. 하나······.”

“송구스럽습니다. 무학은 본디 비인부전(非人不傳). 두 분의 인연이 깊다 해도 함부로 외인에게 전하여선 안 되지요. 하여 선대께서도 무학을 참오하기 위해, 그리고 세간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조건을 거셨다고 합니다.”

“아니.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이미 지난 얘기일 뿐이니 말일세.”

“그러나 어찌 외인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안유는 감명을 힐끔 쳐다보곤 말했다.


“본 곡과 백학무관의 연이 끊기지 않았으니 피붙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직 각별하며, 또 마땅히 돕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럼 자네는······.”

“본 곡의 일 때문에 출도한 이래 천수무관의 흉계는 익히 들었습니다. 철혈검법을 익힌 자로서 연전(連戰)에 참가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훗날 감명의 성정은 아마도 눈앞의 아버지로부터 말미암았을 것이다.


언제나 정정당당하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을 거는 인물.


감지승은 천생이 무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일수록 의리와 보은에 크게 감동하는 법이었다.


“물론일세.”


감지승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객을 내치지 않네. 그것이 우리 백학무관일세.”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배를 탔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감지승은 현 상황과 이틀 뒤의 대결에 대해 소상히 털어놓았다.


대부분 비선의 밀서대로였지만 최근에 추가된 듯한 정보 또한 있었다.


“형산파가 제대로 마음먹은 모양이더군. 제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라 당분간 나오지 말라 일러놓았네.”

“그래서 연무장이 텅 비어 있던 거군요. 벌써 참가자를 공표한 겁니까?”

“그렇네. 여유의 발로겠지. 선봉은 천수무관주 오한평이고 다음은 그의 아들인 오유관이네.”


오유관이라는 이름을 듣자 감명의 몸이 움찔거렸다.


“무공으로만 따지면 오한평보다는 내가 낫고 명아보다는 오유관이 낫네.”

“별일이 없다면 동수겠군요.”

“그래서 마지막이 중요하지. 그들이 절대적인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도 그 때문일세.”


감지승이 전의를 불태우며 말했다.


“형산파 이대 제자 사영풍.”


감명의 몸이 또 한 번 들썩였다.


“절정지경(絕頂之境)에 근접한 고수로 타고난 기재라고 하네. 그 자질을 인정받아 벌써 형산의 절학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화안검법을 벌써 대성했다는 말도 있더군.”

“천수무관주가 꽤 바빴겠군요. 소문을 나르느라 말입니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네. 형산파의 촉망받는 신진일세. 동년배 중에서도······.”

“아하하하!”


안유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자는 제가 잘 압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혹시······ 안면이 있는가?”

“있다마다요. 하하하하하.”

‘사영풍. 자네도 와 있는 건가.’


사영풍.


훗날 초절정에 이르러 형산의 차기 장문인으로까지 거론된 절세 검객.


자질도 자질이지만 무엇보다도 놀리는 재미가 일품이었던 사내였다.


‘나이가 들어 한풀 꺾였음에도 유쾌한 친구였지. 한창때인 지금은 얼마나 유쾌할지······.’


감명에 이어 사영풍까지.


반가운 얼굴이 연이어 등장하니 절로 흥이 솟았다.


‘우선은 감명. 그다음이 영풍, 자네 차례일세.’


감명을 응시하는 두 눈이 유쾌한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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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학무관(1) +2 23.12.06 1,047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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