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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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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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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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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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고양이

DUMMY

버럭 내지르는 소리.

귀가 아플 정도로 찢어지는 음성이다.


“해줄 수도 있지.”

“뭐?”


물론, 녹호는 태연하기만 했다.


“해줄 수도 있다고. 목적만 달성한다면, 뭔들 못 하겠어?”

“내 목표는 괴롭히는 거야. 김예현이랑 내 이모, 우는 꼴을 보고 싶다고.”

“그러니까 말이야.”


느긋하게 궤변처럼 느껴지는 논리를 이어갔다.


“평생 먹여주고 재워주고 화장품까지 사다 준다는데 싫다는 냥아치도 있잖아? 이것도 그럴 수 있지. 괴롭히려고 뭔가를 해주는.”


개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말이다.

하지만 방금 인영이 체감한 일이기도 했다.

뭔가를 쥐여준다는 게 꼭 행복을 보장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채 말라죽기도 한다.


“···자세히 말해봐.”


역시 인영은 감성보다 이성이 먼저였다.

증명만 된다면 궤변도 선택지로 둘 수 있었다.

더군다나 들어서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확실히 이번 사업은 목사한테 좋을 일이야. 저쪽에서도 간절히 바라고 있겠지. 이쪽에서는 아쉬울 것도 없지만 말이야.”

“그게 왜 괴롭다는 소리야?”

“이쪽이 갑이라고. 모가지 뻣뻣하게 굴어도 말 못 한다는 소리지.”

“······.”

“멀리서 보면 배 아플 일이겠지. 한 발 가까이에선 재밌을 일 아니야?”


얇은 눈매 안에서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코앞으로 왔다.

원수에게 불합리를 강제할 기회라니.

그건 어떤 의미로는 커다란 권력이나 다름없었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모욕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사이가 틀어지면 저쪽에서 손해였다.

그러니 단순 계산을 끝내고선, 처절할 정도로 붙잡아 올 터였다.

이해타산이란, 자신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법이니.


“···히.”


그 짧은 새에 무슨 상상을 했을까?

인영은 순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복수가 벌써 이뤄지기라도 한 듯, 새하얄 만큼 교태로운 미소였다.


“당장···.”

“할 말 끝났으니까 일어나볼게.”


그때, 녹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잠깐! 대답은 듣고 가야지?”


인영은 화들짝 놀랐다.

물어봐 놓고선 뭐 하는 짓이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제안도 있잖아. 찝찝할 뿐이지, 상당히 좋은 조건이고.”

“그건 그렇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루 동안 편안하게 고민해 봐. 식사도 하고 싶으면 하고.”


조금 식어버린 식탁.

하지만 여전히도 먹음직스러웠다.

대부분은 평생 먹어보기도 힘들 궁중음식이고, 남은 몇 가지는 익숙하기에 더 침이 나오는 찬거리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못 먹을 만찬이다.


“1시간 후에 치우라고 얘기할게.”


인영은 듣는 둥 마는 둥 식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큼 배가 고프긴 한 모양이다.

매운탕을 보니, 해장 생각이 간절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머리가 멋대로 움직였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거야? 나한테 일 시키고 싶으면 그냥 당장 대답하게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그 말에 녹호는 나가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당장 입을 열지 않았다.

꼭 고민이라도 하듯이,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글쎄.”


짧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서.



***


“싹 비우셨습니다. 혹시 입맛에 맞으셨습니까?”


유송이 인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민망한 웃음이 그 말에 화답했다.


“아, 네···. 그런데 다 먹은 거, 걔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녹호 씨 말입니까?”

“···네.”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릇 정리를 시작했다.

평범한 반응에 안심이라도 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먹었다고 하겠습니다.”

“아예 안 먹었다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녹호 씨가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뻔뻔하거나 지조 있거나, 그렇게 확실한 느낌을 더 즐거워하실···”


유송이 말을 멈췄다.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답하고 있었다.


“어쨌든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분은.”

“네? 뭐···, 알겠어요.”


고개를 작게 숙이고서 밖으로 나갔다.

두 눈에는 안쓰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인영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마주 보고선 이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곧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뭐지, 진짜.”


편안히 누워서는 조용히 중얼댔다.

분노가 전혀 서리지 않은, 순수한 의문만 담긴 목소리다.

그 대상은 누군지 뻔했다.


바로, 녹호.

그 어울리지 않는 호의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 터였다.

불편하고 어색하겠지.

지금은 간지럽기까지 한지, 몸을 뒤척이며 입술을 매만져댔다.


“뭘까, 진짜.”


잠깐 누웠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는 푹신한 매트릭스마저 간질거리는 모양이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물어보는 편이···.”


잠시 생각에 빠진 기색.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선은 곧 책상에 고정됐다.

그리고 당장 의자로 가서 비치된 공책과 펜을 집어 들었다.



***


한밤중.

저택의 전등도 모두 꺼진 상태였다.

남아있는 사용인도 없으니, 집 전체가 잠들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그랬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지금 그림자 하나가 달빛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별관을 지나 본관으로.

거실은 너무나 어두우니, 곧 휴대폰 플래시까지 켠다.

밝은 빛은 기다란 생머리를 드러냈다.


“깜깜하네.”


인영이 저택을 둘러보았다.

작은 불빛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길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더듬더듬 저택을 이동했다.

벽을 짚고서 미로를 탈출하듯이 조금씩.


혹여 넘어져서 큰 소리라도 날까, 조명은 약간 바닥에 향하는 채였다.

처음에는 자연스레 식사실로 가게 됐다.

그나마 발이 익어서 그런 거겠지.

하지만 계속 가다 보니 이상함을 느꼈는지···


“여긴 부엌이겠고.”


알아서 유턴한다.

그렇게 겨우 식사실을 나온 후, 더듬더듬 문고리 하나를 쥐었다.


“얘가 여기 있나···.”


그렇게 중얼대며 나아간다.

이곳은 뭔가 잡동사니가 많은 방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여긴 녹호가 무기를 잔뜩 수집해둔 곳이니까.


“이건 쇠? 도대체 뭔···, 앗!”


따끔했는지, 손을 다급히 회수한다.

휴대폰 불빛으로 비춰보는 상처가 난 곳을 확인했다.

얇은 실선이 짧게 그어져서, 뒤늦게 핏방울이 하나 올라온다.

무언가에 예리하게 베였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피는 안 묻었겠···”


딱, 딱!


그때, 밖에서 높은 음이 두 번 들려왔다.

우연히 난 소리일까, 아니면 뭔가 이변이라도 일어났을까.

인영은 일단 플래시를 끄고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조심히 변화를 살폈다.


캄캄한 와중, 밝게 켜진 불빛이 저 멀리 문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원래부터 그랬는데 몰라본 걸까, 아니면 갑자기 누군가가 켰던 걸까?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한참이나 엎드려서 저 빛을 살핀다.

누군가가 움직일 징조라면, 금세 다시 변화가 생길 테니까.


“······.”


몇 분이 지나도록 별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조용히 관찰한다면 큰 위험은 없을 듯했다.

인영은 몸을 잔뜩 낮추고서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문틈에 조심히 눈을 댔다.


“···없나?”


깜빡하고 불을 안 끈 걸까?

저 뒤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 말은 들어가도 들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영은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천천히 밀고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다시 활짝 열린 문을 닫···


“꺄아아아악···!”


···지 못했다.

떡하니 서 있는 녹호를 보고 주저앉았을 뿐.


“뭐, 뭐야! 너 여기 왜 있어!”

“내 집에 내가 있는데 이유가 필요해? 오히려 내가 이유를 물어야 할 것 같은데?”


귀신이라도 봤는지, 주저앉은 상태에서도 빠르게 물러난다.

그 후, 다급히 표정을 가다듬는다.


“난 대답하러 왔어. 낮에 했던 제안 말이야.”


녹호가 딱히 화내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냥 시큰둥, 별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알겠어.”

“···그래?”

“고양이는 간식 훔쳐먹다가 걸리면, 도망치고 나서 아무 일도 아니었던 척하는구나? 몰랐던 걸 알게 됐어.”


인영이 잠깐 목을 움츠렸다.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했건만, 이미 모든 전말을 다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육포가 떨어져서 부엌에 들어갔는데, 웬 불빛이 움직이더라고. 뭔가 싶어서 따라갔지.”

“······.”

“그나저나 저 방 안에서 뭘 하느라 이렇게 늦게 나온 거야? 더듬더듬 고생하길래, 편하게 찾으라고 불 켜주고 문까지 두들겨줬잖아?”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저 손바닥 안에서 재롱을 피우고 있었다.

살금살금 움직이고, 눈치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면서.

생각해보면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었다.


“···하, 변명도 못 하겠네.”


인영은 굳었던 몸을 펴고 똑바로 마주쳤다.

비굴한 기색도,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대로 처분하라는 듯, 자포자기한 모습이다.


“잘못했어. 신고하려면 신고해. 얌전히 끌려갈게.”

“뭘 잘못하긴 했나 봐?”

“당연하지. 멋대로 안쪽까지 들어와서는 자료를 뒤적거리려고 했는데, 뭐가 떳떳하겠어?”

“아니, 그게 아니지.”


담담하기는 녹호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빛을 끄고 깜깜한 데에 익숙해졌어야지. 괜히 휴대폰 불빛에 의존하니까 보이는 곳만 보이고, 위치는 들키는 거잖아?”

“무슨···.”

“그랬으면 원하는 걸 얻었을 수도 있었어. 약점을 찾아내고 나를 쥐고 흔들 수 있었겠지. 그럼 원하는 그림을 그려나가도 됐을 거야.”


그 말에 인영이 눈가를 떨었다.

이 정신나간 말이 꼭 거슬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래도 소리가 났을 때 조용히 관찰하는 건 좋았어. 대부분, 그게 합리적이긴 하겠네.”

“······.”

“돌아가. 사람이 잠은 자야지.”

“···할 말이 있었어.”


품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낸다.


“변명거리, 준비했었어. 세 번째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찾아올 명분은 있는 거잖아.”

“흐음?”

“계획서도 급하게나마 써놨어. 종목은 각종 여가활동 관련된 사업으로 정해서, 교회랑 제휴를 맺는 식으로 가자고 말이야.”


말려진 공책을 앞으로 내민다.


“공책만 올려두고 가려고 했다···, 이렇게 변명할 작정이었지.”


명분은 있었다.

녹호가 시킨 일이고, 혹시나 깨어 있을까 싶어서 왔다고 하면 되니까.

처음부터 걸리지만 않았다면 먹혔을지도 모를 핑계다.


“괜찮은 전략이네. 운만 따라줬으면 통했을 거야.”

“······.”

“마찬가지로 계획도 괜찮고. 내가 생각했던 거랑 똑같아. 믿고 맡겨둘 수 있겠어.”


잘못을 품고 가겠다는 말.

하지만 인영은 안도하기보다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잘됐네. 예상대로 됐으니까.”

“아니, 그게 너무 이상했어. 그래서 여기 왔던 거야. 궁금했거든. 도대체 왜 이러나.”


그 떨리는 눈동자가 녹호를 향했다.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거야?”


작가의말

캬, 이 진부한 대사.

아는 맛이라서 맛있다!

박인영, 이 간장계란밥 같은 여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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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빚 +1 24.01.29 62 1 12쪽
30 30화. 모텔 +1 24.01.26 71 1 12쪽
29 29화. 이상 +1 24.01.25 59 1 12쪽
28 28화. 엄벌주의 +1 24.01.24 60 1 13쪽
27 27화. 욥 +1 24.01.23 65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65 1 12쪽
25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70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3 24.01.18 78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81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81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92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95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95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10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115 3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114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29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127 2 12쪽
13 13화. 훌륭한 사람 +1 24.01.03 132 2 13쪽
12 12화. 죄를 지었으면 +1 24.01.02 140 2 12쪽
11 11화. 의심 +1 24.01.01 137 2 12쪽
10 10화. 게임 +1 23.12.29 15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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