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한 번으로 아포칼립스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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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은은
작품등록일 :
2024.02.26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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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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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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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3)

DUMMY

4월 24일(3)


예전에 서진의 형이 이런 말을 했다.

훈련소 신병이 가장 현타를 느끼는 건 입소 둘째날이라고.


그땐 빡빡 민 머리를 놀리기 바빴는데.

서진은 새삼 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다.


첫 날은 그냥 어어? 하면서 끌려다니다보면 하루가 끝난다.

자신의 상황을 돌아볼 여유조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둘째 날은 다르다.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훈련소에 있는 것이다.

천천히 상황을 파악한다.

깨닫는다.

앞으로도 매일, 이 훈련소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


영원히 깨지 않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다.


서진은 한숨과 함께 교복을 입었다.


“서진. 교복 입게?”


해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젯밤부터 생각해봤는데. 입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왜?”

“학생처럼 보이잖아.”

“그럼 안 좋은 거 아냐?”

“방심시키기 좋잖아.”


서진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타이타닉에서도 말하지 않던가.

여성과 아이부터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교복을 입으면 동정을 사기도 쉽고.

무엇보다, 만약 어른들과 적대하게 되더라도-

서진이 학생이란걸 알게 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공격을 주저할지도 몰랐다.


서진은 그 주춤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교복을 입기로 했다.


“나도 입을까?”


해린이 교복을 주섬주섬 꺼내들며 물었다.


“음···.”


해린에겐 오히려 교복을 입는 선택지가 안 좋을 수도 있었다.

아포칼립스에 여고생?


“······.”


어젯밤 경매자에 올라왔던 여성을 떠올리며 서진은 교복 단추를 잠갔다.


“생각해봤는데. 정해린, 넌 입지 마라.”

“입을 거면 둘이서 입는 게-”

“입지 마.”

“······.”


서진은 방에 들어가 트레이닝복을 꺼내왔다.

해린에겐 조금 큰 옷이었지만, 그래도 움직이기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복장이었다.


“이거 입어.”


그렇게 오늘 입을 복장이 정해졌다.


옷을 말끔히 갈아입은 후, 현관문고리를 잡았다.


오전 여덟 시 오십팔 분.

활동 시작.


끼익-


문을 열고 나가며 서진은 오늘의 이동 루트를 머릿 속에 그렸다.


~서진의 예상 루트~

서진의 아파트 -> 창동역 대피소 -> 서진의 집


크게 한 바퀴를 돌아갔다 오는 그림이다.


대피소를 이동 루트에 넣은 이유는 다름 아니라 형 때문이었다.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전화 한 통 없이 잠수 타버린 웬수.


‘회사에서 짱 박혀 있던, 대피소에 있던 시발. 전화 한 통이 어렵나.’


형이 죽었을 거란 가정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 가정을 해버리는 순간.

형이 정말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기에 형이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형이 있을 법한 곳들을 추렸다.


‘회사, 대피소, 군대.’


오늘은 그 중 한 곳인 대피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쌍문역 대피소는 새벽에 이미 재가 돼버렸으니 제외.

아직도 시꺼먼 연기가 대피소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서 뭔 일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저기엔 형이 없었길 바랐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진은 계단을 밟았다.


터벅터벅.


계단을 타고 내려가며 해린에게 물었다.


“정해린. 넌 어떡할 거야. 집?”

“우선 대피소부터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해린 역시 파파를 찾기 위해 대피소에 들릴 생각이었다.

서진과 목적지는 같았다.


“바로 가진 말고. 여기부터 털자.”

“여기?”

“금빛 아파트. 여기.”


어제 있었던 불시 위생점검.

그 탓에 금빛 아파트 대부분의 주민들이 증발해버렸지만.

슬라임도 같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말인즉슨.


“서울 어디보다 이 아파트가 가장 클린하단 말이지.”


물론, 밤 사이 슬라임이 아파트에 들어왔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건물들보다 슬라임과 마주칠 확률은 훨씬 낮았다.


1층 계단을 거의 다 밟았을 즈음,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악---


이어서 수박 터지는 소리도 같이.


콰직.


서진과 해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갤 돌렸다.

뛰어내린 사람이었다.

변해버린 세상에 적응하기보단, 포기를 택한 자들.


시체를 본 순간, 계단을 내려오며 이어지던 둘의 대화도 뚝 끊겼다.

어색한 기류가 둘 사이에 감돌았다.


“······.”

“······.”


서진은 애써 주제를 바꿨다.


“정해린. 먹고 싶은 거 얘기해봐.”

“···치킨.”

“난 마라탕.”

“아, 잠만. 나도 마라탕으로 바꿀래.”

“새우튀김.”

“치즈떡볶이.”

“오므라이스.”


먹고 싶은 음식들을 하나씩 나열해가며.

둘은 101호 문 앞에 섰다.


“돈까스.”

“탕후루.”

“스시.”


문을 열었다.


“랍스터.”

“푸아그라.”

“너 푸아그라도 먹어봤어?”

“먹고 싶은 음식 말하는 거잖아.”

“아. 메론.”


둘은 빠르게 101호 집안을 수색했다.

예상대로 사람은커녕, 슬라임도 보이질 않았다.


서진은 메고 온 배낭 속에 각종 식량들을 집어넣었다.

참치캔 같은 유통 기한이 긴 것 위주로.


얼추 다 챙기곤, 옆집으로 이동하자고 싸인을 보냈다.


“냉면.”

“불고기.”

“닭강정.”


한 층을 싹 돌았더니 배낭이 꽤나 빵빵해졌다.


“우린 부자다-”


1층을 돌면서는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열했다면.

2층부터는 가고 싶은 나라들을 입에 담았다.


“유럽.”

“유럽 안에도 나라 많잖아.”

“그럼 프랑스.”

“프랑스는 사실 쥐가 엄청 많대. 알아?”

“알기 싫었어···.”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깨서일까.

뾰루퉁한 표정을 짓던 해린은 202호 냉장고에서 사과를 발견하곤, 그걸 서진에게 던졌다.


날카로운 반응 속도로 던져진 사과를 낚아챘다.

그걸 잡을 줄은 몰랐던 해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뭐해.”

“···뉴턴의 법칙 실험.”

“?”


2층 집 수색도 끝나고.

3층으로 넘어갔다.


3층 집들을 수색하던 와중, 별난 집 하나가 나왔다.

벽면 한 쪽이 사진들로 가득했다.

주로 풍경이나 정물 사진들이었다.


“사진 작가 집인가?”


해린이 사진을 감상하며 말했다.


“아. 이 사진 잘 찍었네.”


그녀가 사진을 구경하는 동안, 서진은 방 안에 들어가 책상 쪽을 훑어봤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이건가?”


카메라를 해린에게 보여주자, 해린이 카메라를 유심히 쳐다봤다.


“이거 즉석 카메라 같은데?”

“즉석 카메라?”

“찍으면 바로 사진이 인쇄돼 나오는 거.”


서진은 카메라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봤다.

그러다 순간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뽑혀나왔다.


“어, 나온다.”

“뭐 찍었어?”

“어쩌다 눌린 거라.”


까만 배경뿐이던 사진에 천천히 색깔이 입혀졌다.

이윽고 피사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피사체가 누군지 깨달은 해린은 서진에게서 사진을 빼앗았다.

그리곤 뒤춤에 사진을 숨겼다.


“뭐야 왜 그래?”

“···이건 보지 마. 잘못 찍혔어.”


해린은 인화된 사진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잘 안 나왔으면 그냥 한 장 더 찍어줄까?”

“됐어. 먼저 나간다.”


해린은 서둘러 현관을 밟았다.


문을 열어 나오고선, 서진이 따라나오나 확인했다.

서진은 따라나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못 봤겠지? 방금 사진.


해린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주머니에 쑤셔박았던 사진을 꺼내봤다.

사진 속엔 해린이 찍혀 있었다.


지금의 멀쩡한 모습의 해린이 아니라.

꾸물거리는 촉수의 모습이.


착잡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꾸깃꾸깃 접곤 방금 전 서진의 집에서 가져온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


해린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사진이 재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사진을 꼼꼼히 태우고 나서야 해린은 서진과 다시 합류했다.


금빛 아파트 수색 작전은 정오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이따 대피소도 가야 하니까.”


3층까지 파밍을 끝낸 서진은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혹시 냄새가 날까봐 교복에 페브리즈도 뿌렸다.


“생각보다 많네.”


서진의 집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한 층에 여덟 호수씩 있었으니.

3층까지만 돌아도 24개의 집을 수색한 셈이었다.


“이정도면 한 달은 그냥 버티겠다.”


식량을 베란다 뒤쪽에 숨기며 서진이 말했다.

무거운 식량부터 차곡차곡 쌓자, 벽면 한 쪽이 가득 메워졌다.


‘이걸 방역 점수로 바꾸면 다 얼마냐.’


자정마다 열리는 경매장.

거기서 식량을 방역 점수로 교환할 수도 있었다.


‘이걸 팔아서 능력치 강화하는 선택지도 나쁘지 않을 지도.’


물론, 그건 조금 나중 일이 될 것이다.

당장은 먹을 식량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으므로.


“서-진- 이거 받아-”


해린이 양손 가득 과자 봉지들을 들고 왔다.


유통 기한이 긴 과자는 베란다 뒤쪽에 숨겼고,

짧은 과자는 즉석에서 포장지를 깠다.


달콤한 설탕이 혀를 간지럽혔다.

우물우물, 맛을 음미하며 서진이 말했다.


“슬슬 가자. 대피소.”

“응.”


식량을 쌓아둔 곳 위에 커튼을 덮고, 빈 박스들을 던져서 아무 것도 없는 척 위장했다.


“이럼 더 수상한 거 아냐?”

“···그런가.”


빈 박스들까지 쌓아두는 건 오히려 의심스러운 거 같길래 그냥 치웠다.

커튼만 덮는 걸로.


“일단 임시로 박아두고. 더 괜찮은 곳 생기면 옮기자.”


물건 은닉까지 끝낸 후, 서진은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가자.”


8층에서 미리 이동할 루트가 안전한 지 내려다보곤 금빛 아파트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어제보다 개판이 된 거리가 그들을 반겼다.


서진은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나침반을 확인했다.


“정해린. 너도 나침반 있지.”

“응.”

“어디 가리켜?”

“저어기.”


정해린의 나침반 역시 서진과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나랑 같네.”

“미리 말하지만. 난 나침반 쪽으론 안 가.”


해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가 있을 지 모르잖아.”

“안 가. 안 가.”


서진 역시 아직은 갈 생각이 없었다.


‘확실히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만약 나침반이 이끄는 곳을 가게 된다면.

거기에 어떤 위협이 있고, 어떤 보상이 뒤따르는지.

체크한 뒤에 갈 생각이었다.


무작정 들이대는 건 사양이다.


“대피소부터 가자.”


나침반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도 아니고.

당장은 각자의 가족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둘은 나침반의 반대 방향인 창동역 대피소 쪽으로 걸음을 시작했다.


으아아악--


조금 멀리서 남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수박 터지는 소리도 같이.


서진과 해린은 소리가 들린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보나마나였다.

또 뛰어내린 사람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목을 맨 사람도 드물지만 보였다.


‘뭐 이리 많아.’


광고라도 하고 싶은 건가.

서진은 불쾌하게 고갤 돌렸다.


막 코너를 꺾으려던 무렵.

한 남성의 고통 섞인 울음 소리가 들렸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서진과 해린은 동시에 발을 멈췄다.


해린은 조용히 검지를 입에 가져다댔다.

저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끄덕.


서진은 코너 너머로 고개를 삐죽 들이밀었다.

남성 한 명이 차량에 깔려있었다.


“도와주세요. 아무나-”


깔린 채로 도움을 요청하는 남성.

어찌나 애처롭게 부탁하는지.

서진도 하마터면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 줄 착각할 뻔했다.


더블 클릭을 쓰지 않았다면 말이다.


딸깍딸깍.


+--------------------------------------+

슬라임 - (안국원)

인간을 흉내내고 있다.


액티브 스킬

가시

강탈

냉기

+--------------------------------------+


“도와주세요···제발요, 차량에 깔렸어요 흑-”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٩ʕ•ﻌ•*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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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월 23일(4) 24.03.07 158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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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월 23일(2) 24.03.05 193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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