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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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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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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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백수가 되다

DUMMY

매화루는 장사(長沙)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기루였다. 술과 웃음을 파는 기루에선 옩갖 진상들이 즐비했다. 눈앞의 사내는 다행스럽게도 진상은 아니다. 진상들은 푼돈을 던져주며 해괴망측한 요구를 일삼곤 했다. 그러나 사내는 호구처럼 돈을 펑펑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매화루에 나타나기만 하면 대부분 기녀가 그의 시중을 들고 싶어 했다.


심서련은 오늘 유일하게 사내에게 선택된 기녀였다.


‘막 공자님이 다른 곳에서 술을 드시고 왔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백이면 백 술을 먹고 왔다는 거다. 방에 들어가니 무엇을 내올지 말도 하지 않고 심서련의 허벅다리에 머리를 뉘고 잠에 빠져들려 했다. 심서련은 오랜만에 잡은 호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를 깨웠다.


“공자님, 술 안 먹고 오셨다면서요!”

“공자님?”

“공자니이이임!”


그러다 문득 위화감이 덮쳐왔다.

아무리 그를 흔들고 깨워도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자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허옇게 뜨는 것이 괴이했다.


놀란 심서련이 막 공자의 코에 검지를 댔다. 놀랍게도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고, 공자님!”


이대로는 안 된다.

호구에게 돈을 뜯어내는 건 이제 문제가 아니었다. 막 공자가 죽게 되면 심서련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막 공자는 장사에서 유명한 백수이자 한량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공자님! 일어나세요! 공자님! 공자님! 공자님! 공자니이이이임!”


미친 듯이 그를 꼬집고 흔들며 깨우려 했다. 죽지 마라! 죽어도 여기서 죽지 말고 나가서 죽어라! 제발!


다행스럽게도 그는 일어났다.

숙취에 괴로운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거기다 막 공자는 무슨 착각을 한 것인지 그녀를 보고 어머리가 불렀다.


‘하아.’


마음이 놓였다.

그냥 술에 취해서 잠에 빠진 것뿐이었다. 숨을 안 쉰 건, 그냥 그녀의 착각이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어떤 술을 내올지 물었다. 사실 기녀로서 살아온 심서련의 본능적인 질문이었다.


“넌 누구지?”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네? 공자님. 뭐라고······.”

“넌 누구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말해라.”


그는 천천히 자리를 잡고 심서련의 앞에 자리 잡았다. 막 공자. 장사 최고의 풍류남이라 불리는 막헌위가 아닌 거 같았다. 사람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당연히.

심서련은 그의 영혼이 뒤바뀌었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게 막 공자님의 주정이구나.’


온갖 주정뱅이들을 상대한 심서련은 몹시 침착했다. 그 모습을 본 막헌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여자가 아니군. 내 눈을 마주하고도 흔들림이 없다.’


당연하게도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막헌위는 자기 자신이 천마라고 생각했다. 아마 대성녀가 그를 더 이용하고자 살려낸 것이 분명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여인이 어떤 말을 해도 놀라지 않으리라. 죽어서도 사람을 살려내는 대성녀의 집착에 내심 한숨이 나오는 거 같다.


“막헌위 공자님은 오늘 유시에 본루에 찾아주셨답니다. 아마 그전에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술에 많이 취하신 것 같아서 일단 술을 시키지 않고 제가 보살펴드리고 있었답니다.”

“······.”


막헌위가 대답이 없자 심서련이 부드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긴 매화루랍니다. 공자님, 오늘은 술에 많이 취하신 듯하니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거기서 한숨 푹 주무시고······.”

“막헌위?”

“네?”


먹헌위의 표정이 기묘했다.


“매화루?”

“네.”

“기루라고?”

“네, 공자님.”

“기루에 내 발로 찾아왔다고?”

“네에?”


이쯤 되니 심서련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 막헌위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혀도 꼬이지 않았으며, 눈빛도 평소와는 달리 몹시 진중했다.


심서련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동경이 있나?”

“있죠. 여기요.”

“흠.”


동경으로 자기 얼굴을 확인한 막헌위가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토해냈다. 심서련은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달라진 막헌위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워졌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왜 저리 이상하게 행동할까? 동경은 왜 보는 걸까?


“닮았군.”

“뭐가 닮았다는 건지······.”

“아니다.”


막헌위는 수십 년간 마교라 불리는 단체에서 교주로 살아왔다. 그곳은 온갖 혈투가 암중에서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이런 상황에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윤회하여 새로운 삶을 찾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죽기 전에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갈망하긴 했었다. 그렇다고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성인이 된 다른 인간의 몸에 차지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엇을 해야 하는 지는 자명하다.


“네가 아는 나 막헌위를 설명해보거라.”

“네?”


심서련은 왠지 심통이 났다. 오늘 호구에게 돈을 뽑아낼 생각으로 기분이 좋았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잠만 자더니 갑자기 일어나서는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이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자.”

“고, 공자님?”


막헌위는 행낭에 있는 금자를 꺼내 여인에게 내놓았다.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이게 뭔 미친 술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술시중을 드는 것보다 편하지 않은가? 역시 호구는 호구다!


심서련의 판단을 빨랐다.


“막 공자님은 4년 전, 장사현에 처음 왔다고 하셨어요. 소문으로 듣기로는 막씨세가의 소가주 경쟁에서 밀··· 이런 말씀까지 드려야··· 앗! 감사합니다. 큼큼, 막씨세가 소가주 경쟁에서 밀려나시고 유배를 떠나왔다는 소문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저희 기녀들은 공자님을 참 좋아했답니다. 명문가 자제들처럼 저희를 무시하지도 않으시고, 매번 돈을 이렇게··· 아, 이건 돈을 받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도 양심이 있답니다.”


심서련의 말이 이어졌다.

가만히 듣던 막헌위는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아무 일도 안하고 매일 기루에 들락거리며 가끔 기녀들을 데리고 동정호에 유람도 갔다고?’


어찌 이런 삶이 있나?

부모의 죄를 홀랑 뒤집어쓰고, 살벌한 마교도들을 이끌며 매일 긴장을 틈을 놓지 않았단 막헌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이었다.


누군가는 막헌위라는 인간의 삶을 부정하고 비하할지는 몰라도.

평생 속박당하는 삶을 살았던 장무에겐 그의 삶이 꿈에 그리던 것임은 분명했다.


“오늘도 공자님은 본루에 찾아주셨죠. 그리고 갑자기 방에 들어오자마자 주무셔서 제가 깨우려고 아주 조금 꼬집기도 했답니다.”


설명을 끝마친 심서련이 다시 한 번 막헌위가 내민 금자를 받고 감격한 듯 환하게 웃었다.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신가요?”

“내가 살던 곳까지 길 안내를 해주어야겠다.”

“아, 돈은 그만 주셔도 된답니다. 이미 많이 받았어요.”


심서련은 이미 하루가 아니라 보름치 매출을 땡겼다. 더 욕심을 부리면 과욕이다. 남자가 술에 취해서 거금을 쓰고, 다음날 후회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심지어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막헌위가 그러진 않을 거 같았지만, 다시는 매화루에 찾아오지 않으면 그녀의 손해가 아니던가? 그런데 막헌위는 묵묵하게 돈을 내밀었다.


“이건 입을 다무는 대가다.”

“입을··· 다물어요?”

“매화루의 뒤에는 하오문이 있겠지. 정보를 사고 파는 집단이라 알고 있다.”


사실 마교는 매번 중원 정벌을 할 때, 매번 하오문주를 직속 정보단체처럼 써 먹어왔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중원에서 정보를 취득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장사현이라면 호남성의 성도다. 장사에서 손꼽히는 기루라면 하오문과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비밀을 지켜줄 수 있겠나?”


심서련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실 하오문에 이런 정보를 가져다주어도 타박을 들을 게 뻔하지 않은가? 장사의 한량 막헌위가 술주정을 부린 것뿐인데.


“네, 당연하죠!”



* * *



혼자 살기엔 꽤 넓은 장원에 도착했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내부가 깔끔했다. 심서련은 집까지 안내해준 뒤 떠나갔고, 막헌위는 가만히 장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중원 땅을 밟아보다니.’


십만대산.

마기(魔氣)가 흐르는 그곳은 최고의 수련처이기도 했지만, 그를 옥죄는 감옥이었다. 몇 번은 나가려고 시도해봤지만 쇄맥단혼금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섯 살에 중원을 떠나 마교로 가게 됐었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무적장가의 그늘 안에서 평탄히 살아갔던 때를 말할 것이다. 자의가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우연으로 중원으로 돌아왔다.


‘타의일 수는··· 없겠군.’


아무리 마교의 대성녀가 신비로운 힘을 부린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생사를 주관하여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할 수는 없었으리라. 만에 하나라도 그의 윤회에 대성녀가 관여했다면, 마교에서 부활시키지 굳이 중원으로 그를 보낼 이유는 없었다.


처음엔 꿈이 아닌가 싶었지만, 생생히 불어오는 바람과 세상을 보고 있자니 현실임을 자각했다. 천마로서 아득한 경지에 이른 그의 정신력은 꿈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체내의 내공 따위는 한올도 없었지만 말이다.


찬찬히 장원을 둘러본다. 깨끗한 것을 보니 분명 관리하는 이가 있으리라. 한량처럼 살아가던 막헌위가 직접 장원을 하진 않았으리라.


그렇게 서재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음, 도련님?”


멀끔한 인상의 청년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심서련에게 들은 가끔 기루에도 데려온다는 시종인 장엽명이 분명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뭘 묻느냐는 듯이 사내가 반문한다.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무슨 책이지?”

“···무공서죠. 도련님께서 무공서를 읽어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막씨세가와는 관련 없는 것들이라고요.”

“이리 줘보거라.”

“예에.”


사내는 귀찮은 듯 서책을 내밀었다. 맹룡결(猛龍訣)이라는 심법서였다. 아주 간단한 천지의 이치만이 적혀 있었고, 세맥의 기로(氣路) 또한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단일 문파로는 최강의 세력을 자랑했던 마교의 교주였던 막헌위가 보기에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막헌위가 진중한 얼굴로 무공서를 읽고 있으니 사내가 코웃음을 지었다.


‘무공을 못 익히겠다고 가문에서 도망친 주제에 본다면 뭘 아나?’


막씨세가에서 유일하게 그를 따라나섰던 장엽명은 막헌위의 실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막씨세가의 피를 이어받고도 기본적인 수준밖에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 20년에 가깝게 막씨세가의 지원을 받았지만, 단전조차 형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문의 수치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아꼈다. 그대로 막씨세가에 있다간 형제자매들의 경쟁에 휘말려 희생될 것을 걱정하여 그를 장사현으로 보낸 것이다. 도망친 주제에 금의환양하겠다고 처음 1년 동안은 가문에 부탁해서 잡학서나 다름없는 무공서를 모았다.


당연히 막씨세가의 무공으로도 별다른 발전이 없었던 막헌위가 저잣거리에 떠도는 무공으로 고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벌써 내공에 대해 감을 잡고 있는데 말이야. 제대로 된 스승만 구하면 나도··· 무림인이 될 수 있을 거다.’


물론, 아무리 성공해도 막씨세가 핏줄인 막헌위보다 잘 살지는 못하리라. 그렇기에 장엽명은 막헌위가 참 부러웠다. 저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기회도 못 잡는 꼴통이라 생각했다.


‘배경을 믿고 여인들과 어울릴 줄만 알지! 쯔쯧.’


어느새 막헌위는 맹룡결을 내려놓고 다른 무공서를 훑고 있었다. 몇 권을 훑어보던 막헌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죄다 쓰레기군. 막씨세가의 핏줄이라지 않았던가.’


심서련에 말에 따르면 호남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가(武家)라 했다. 이런 조잡한 무공서를 왜 서재에 보관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음. 하기야 경쟁에서 밀려 유배왔다고 했었지.’


어느새 책을 내려놓고 입을 꾹 다문 막헌위.

그 모습을 본 장엽명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우리 꼴통 도련님은 아무리 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비웃었다.


막헌위가 휙 고개를 돌려 장엽명을 바라본다.

찔끔한 장엽명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출신 가문이 어딘가?”

“네?”


심서련에게 들었다. 그의 이름이 장엽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무적장가 출신이었던 장무로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 무적장가와 연관이 있나?”


갑자기 그런 것을 묻는 도련님이 이해가 되지 않은 장엽명이었지만, 그래도 도련님이 묻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무적장가라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아무튼, 시종인 제가 뭔 가문이 있겠습니까요? 그냥 아버지가 장 씨 성을 썼기에 저도 장 씨지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다.”


장엽명은 머리를 갸웃하며 서재를 나섰고, 막헌위를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이겠다. 그의 뇌리에 대성녀나 교주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최 장가 놈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었지.’


새로운 몸에서 눈을 떴는데, 그 시종이 장 씨라니?

우연치곤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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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가 되다 24.04.08 584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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