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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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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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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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백수는 뭘 하면서 지내는가

DUMMY

막헌위의 몸을 차지한 지 나흘.

그는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다. 장사에서 소문한 한량답게 그는 아침에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둘째 날에 아침을 먹으려 했는데 장엽명이 안 하던 짓을 한다면서 궁시렁대며 근처의 주점에서 요깃거리를 사왔다.


“갑자기 왜 아침밥을 먹겠다고 지랄이야?”


물론, 대놓고 막헌위에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대문을 나서며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예민한 막헌위의 청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장원에 돌아와서 서재를 나선 순간부터 막헌위는 무려 천마신공(天魔神功)으로 단전을 만들었다. 사실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 떨어졌다고 하니 자연스레 가부좌를 틀고 무공 수련을 했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군.’


마영지맥은 마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체질을 타고난 것을 뜻한다. 마기의 역류도 존재하지 않았고, 인간을 파괴하는 원초적인 기운이 머리에 뻗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막헌위의 몸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몸뚱아리는 마영지맥이 아니지만, 마기와 전혀 충돌이 없어.’


막헌위의 몸뚱아리가 재능이 뛰어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녕 천마신공은 혼을 강화하는 무공이란 말인가.’


중원에서는 마귀들이나 익히는 무공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실제로 천마신공은 불가의 소림사처럼 참오(懺悟) 방식의 수련이 대부분이었다. 천마신공의 첫 구절에도 익힐수록 혼이 마기와 동화된다고 했다.


몸은 막헌위였지만, 혼은 장무였다.

그래서 무리없이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천마신공을 제외하면 다른 무공의 재능은 극악이로군.’


이미 대종사의 반열에 들었던 그였다. 당연히 근골의 재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평범보다 못한 열등한 재능. 천마신공의 마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하곤 특별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난 이제 편하게 살 거니까.’


새롭게 얻은 삶이었다.

열심히 알아보니 이미 마교와의 전쟁은 끝이 났다. 무려 20년 전에 말이다. 마교의 새로운 교주였던 수라마제(修羅魔帝)와 삼황이 격돌하여 전쟁이 일단락 됐다고 한다.


수라마제는 분명히 그 자신을 칭하는 별호였기에.

거기다 중원에는 묘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수라마제가 살아있고, 언제든 중원에 쳐들어올 수 있다고 말이다.


‘난 여기 있는데 수마마제가 어떻게 살아 있을까?’


아마 전력이 크게 약화된 마교에서 중원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꾀를 쓴 것이 분명했다. 사실 중원인들을 마교도들을 피를 먹는 악귀라고 소문이 퍼져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냥 인간군상들의 모임이었다. 다 같은 인간이란 말이다. 단지 마기에 침식되어 조금 더 과격할 뿐.


오전 참오를 마치고 막헌위가 방을 나섰다.

나흘째에 겨우 적응이 됐는지 장엽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왜 그러느냐.”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일이라니?”

“요즘 좀 달라지셨지 않습니까?”


아무리 막헌위가 조심해서 행동했다고 해도 장사 최고의 한량이자 백수였던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이상한 일이다. 특히 게으름의 극치였던 막헌위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장엽명이었기에 그 변화를 더욱 실감하고 있었다.


오후에 장원을 나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만취하여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당연히 장엽명이 하는 일이라곤, 장원을 청소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이 백수가 집에만 박혀 있으니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막헌위는 딱히 당황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냥 돈이 부족해졌을 뿐이다.”


첫날 막헌위는 가지고 있던 대부분 자산을 심서련에게 주었다. 비밀의 대가였기에 아깝진 않았지만, 막헌위가 전장을 통해 보내오는 용돈을 전혀 모으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행낭에 그런 거금을 들고 다녔으니 당연히 집엔 돈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남은 돈이 있긴 했지만··· 굳이 기루에 가서 돈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예? 벌써 다 쓰셨다고요? 설마······.”


막헌위가 놓치지 않고 묻는다.


“뭔 설마?”

“···또 그 사람들이랑 도박을 하셨던 겁니까?”

“그 사람들이라니?”

“그 있잖습니까··· 무서운 공자님들 말입니다.”


도박도 했던 모양이로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막헌위는 기쁘기는커녕 가슴이 답답해졌다. 평생 차별받으면서도 지존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였다. 물론, 그 자리엔 영광이 아니라 업무만 잔뜩 있었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막헌위의 한숨을 본 장엽명이 왜인지 작게 미소지었다.

예상이 맞다고 착각한 것이다.


“쩝, 제 월봉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으니 마님께서 돈을 보내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고맙구나.”

“아닙니다. 대신, 그때 약조했던 건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뭘 약조했더라?

당연히 막헌위는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 뭘 부탁했었더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장엽명이 한숨을 내쉬곤 설명했다.


“제가 무림인이 되면 막씨세가의 무관에 입관할 수 있도록 해주셨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조만간··· 단전을 형성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거만함이 잔뜩 깃든 장엽명이었다. 중원에서는 단전을 형성하는 걸 무림인으로 칭하는 건가? 마교의 교주였던 막헌위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예, 감사합니다.”


장엽명이 슬쩍 막헌위의 표정을 살핀다. 딱히 변화가 없었다. 막씨세가의 지원을 받고도 단전을 형성하지 못한 망나니 놈이 시종이 내공심법을 깨우쳤다는 말에 분명 반응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못난 주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짜릿했다.


‘이상하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막헌위가 말한다.


“밥이나 내오거라.”

“예, 알겠습니다.”


일부러 말을 돌린다고 생각한 장엽명이 고개를 숙인 채 씩 웃으며 자리를 떠나갔다.


‘저리 대놓고 날 업신여기는 티를 내는군. 역시 장가 놈··· 아니지! 장 씨 성을 가졌다고 모두 그러지 않을 거다. 나는 마교를 배신하지 않고 뼈를 묻었지 않은······.’


문득 과거가 떠올랐다.

사실 그 또한 교주가 된 후에 금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건 배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교의 지존이 뭘 하든 자유였으니까.


그러나.

마지막엔 성물을 훔치고 도망갔던 부모처럼 마교의 성물을 부쉈다. 세 개밖에 없던 성물이 장씨 부자로 인해 2개나 사라진 거다.


‘크음······. 그래도 난 삼황 그 노괴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서 마교를 지켜냈으니까.’


만약 정파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마교의 성물을 2개나 사라지게 한 공로로 무림공적 명부에서 지워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막헌위는 매일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사람들이 부대끼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영감을 얻는다. 뭘 해야 할지 정하진 않았지만 급할 것은 없었다.


‘기루는 딱히 가고 싶지 않군.’


돈이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는 평생을 금욕하며 살아왔다. 마교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교주들은 대부분 최대한 욕구를 자제하라고 가르친다. 욕구에 빠지면 빠질수록 마기의 침식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특수한 마공을 익힌 자들은 일부러 욕구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진을 내리 저잣거리만 둘러보던 막헌위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혜월(暳月) 객잔이라는 곳에 열댓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보시오.”


슬쩍 막헌위가 입은 고급 비단옷을 본 중년인이 대번에 표정을 바꾸었다. 귀티가 흐르는 외모에 저런 귀한 비단을 걸치고 있으니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여기 왜 이렇게 줄을 선 것이오?”

“아, 혜월 객잔에 새로운 숙수가 요리 실력이 대단하여 매일 이렇게 줄을 서는 겁니다요. 딱 점심때가 되어서 줄을 서면 재료가 동이 나서 허탕을 치는 거지요.”

“귀하는 먹어보았소?”


애늙은이 같은 말투에 중년인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대답했다.


“예, 숙수가 온 첫날에 먹어보았습죠. 소문이 퍼지기 전에 더 자주 오는 건데 말입니다. 휴우.”

“좋군.”


막헌위도 궁금해서 줄을 섰다.

사실 밥을 먹는데 줄을 서본 적은 없었지만, 별로 급하지도 않았다.


‘여유란 좋은 거지.’


그리 생각하며 반 시진을 기다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줄이 훨씬 더 길어져 있었다. 대화를 나눴던 중년인은 혜월 객잔의 음식이 기대되는지 군침을 꿀꺽 삼켜댔다.


“소협, 탕초리척(糖醋里脊)은 꼭 드려보십시오. 여기 숙수가 제일 자신있다는 요립니다.”

“고맙소. 꼭 먹어보리다.”

“흐흐, 아마 소협의 취향에 잘 맞을 거 같소. 백주 한 잔에 탕초리척 한 점이면··· 크으! 오, 벌써 내 차롄가 보오!”

“고생했소.”


점소이가 나와 중년인을 안내하려 할 때였다.


“여기가 그리 맛있다고?”

“예, 제가 먹어봤는데 장난이 아닙니다. 듣자하니 황가의 요리를 담당했던 대령숙수 집안 출신이라는 소문도 있더군요.”

“오호, 황실의 요리를 장사에서 먹어보는 건가? 오 소저도 황실의 요리는 안 드셔보셨겠지요?”

“네, 북경까지 갈 일이 없었으니까요.”

“좋은 경험을 하겠습니다. 근데 줄이 길구나? 원래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기다리실 필요가 없지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건장한 청년이 곧은 자세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허리춤에는 기다란 검이 있었다. 딱 봐도 무림인이었다. 점소이가 깜짝 놀랐고, 중년인은 왜인지 불안한 눈치로 뒤를 흘끔거렸다.


“우리 공자님께서 시장하시다고 하더구나.”

“예?”


점소이는 눈치도 없이 반문했다. 알아서 자리를 내주면 될 터인데 말이다. 저잣거리 구석의 허름한 객잔이라 그런지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안 되어 있었다.


“객잔주나 총관이 있더냐? 여기 특실은 있겠지?”

“트, 특실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전망 좋은 자리가 있긴 한데 지금 손님이 있어서······.”

“어허, 그냥 상관을 불러오거라.”


점소이랑 실랑이할 시간이 없다. 보는 눈도 많은데 조용히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점소이는 상대가 무림인이라는 것에 두려웠고, 높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에 당황했다.


“누, 누구시라고 할까요?”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지.”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중년인이 막헌위를 돌아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림인들이오. 조금 더 기다려야 할··· 소협?”


막헌위는 중년인의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구릿빛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청년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병신 같은 놈이 개념이 없군.”

“뭐··· 뭐··· 병신?”

“조용히 짜져서 줄을 서라.”

“뭐 짜져? 이게 정말 미쳤나!”


청년이 두 눈을 부라리며 막헌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청년이 내려다보면 주눅이 들 만도 했지만, 막헌위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청년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입 냄새가 심하군.”

“이 새끼가··· 감히 나한테 시비를 걸··· 어엌!”


순간 하늘이 뒤집혔다.

정확히 말하면 청년의 몸이 엎어진 것이다. 추하게 바닥에 누워버린 것을 본 구경꾼들 사이로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물론, 무림인의 무서움을 알고 금방 입을 틀어막긴 했지만 말이다.


황급히 객잔주를 불러오려던 점소이도 깜짝 놀라 그것을 지켜보았다.


“먼저 들어가시오.”


중년인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막헌위와 저 뒤에서 굳은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는 일남일녀를 곁눈질했다. 무림인들 싸움에 엮이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음, 저 연놈들이 걱정되나 보군. 내가 해결할 테니 걱정마시오.”


순해 보이던 청년의 입에서 쌍소리가 나오니 중년인은 섬뜩함을 느꼈다. 알게 모르게 막헌위의 눈빛에는 광기가 일렁이고 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너무도 다르다.


“이··· 이··· 새끼가··· 감히 우리 공자님이 누구신줄 알고······.”


막헌위가 쓰러진 청년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이 놈팽이가 당신 신분을 믿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오?”


가만히 지켜보면 청년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막헌위의 보던 공자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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