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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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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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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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도착

DUMMY

백도현은 먼저 감사인사를 올렸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유일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려준 은인이었다.


“은인의 호의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간 꼭···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래, 은혜는 천천히 갚도록 하고 계약부터 하지”

“네! 네···?”


막현위가 근처 찻집에 들어가서 종이와 붓을 빌려왔다. 그 자리에서 막헌위와 백도현의 계약 조율이 시작됐다.


사실 막헌위는 문서 계약이라는 게 언제든 어길 수 있는 성질이라 여기긴 했다. 그래도 계약은 필요하다. 막헌위는 그냥 백도현을 구해준 게 아니다. 백도현 또한 나름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계약은 없겠지만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필요했다.


“임금은 월봉으로 은자 열 냥. 식사는 너까지 포함해서 삼 인분만 준비하면 된다. 지금은 아침만 준비해도 되는데, 언젠간 세 끼 식사를 모두 차려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땐 임금을 인상하도록 하지.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제대로 고민해보고 말해라. 내가 널 구해줬긴 하지만 계약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여태 객잔에서 종일 일하며 받은 돈이 은자 다섯 냥이다. 아침만 준비하는데 은자 열 냥이라고? 오히려 막헌위가 손해를 크게 보는 듯했다. 그에 대해 막헌위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실력의 숙수를 고작 은자 열 냥에 쓰는 건 내가 이득이다. 내가 널 구해줬으니 싸게 부려먹는 거지.”

“······.”


이게 단순한 배려인지 진심으로 그리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백도현으로선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렇게까지 그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여태 있었던가?


“무조건··· 무조건 할게요! 전심전력을 다해 아침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계약은 성립됐다.


* * *


“네가 숙수라고? 그 풍월 객잔의 숙수?”

“예, 풍월 객잔에서 일했었지요.”

“갑자기 도련님이 왜 널 데려오셨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백도현을 바라보던 장엽명의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굳어진다. 가문에서 쫓겨나다시피 장사현에 왔을 때, 막헌위의 곁에는 그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 반쪽에 흉이 가득한 소년을 데려오더니 아침을 준비하란다. 식솔이 한 명 늘어난 것이고, 장엽명에겐 경계되는 상황이었다.


‘설마 낙성파에 따라가지 않은 것을 배신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날 대신할 놈을 데려온 것이고?’


그는 시종일 뿐이었지만, 나름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막헌위는 막씨세가에서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 유명한 대룡상단의 직계였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그를 따르고 있었는데, 왜인지 도련님과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제기랄.’


장엽명은 멍청하진 않았다.

도련님이 데려온 소년을 괴롭히거나 해서 도련님의 심기를 건들진 않을 것이다. 머리를 굴린 장엽명이 소년에게 친한 척 다가갔다.


“큼큼, 내가 요리를 도와주마! 대신, 내게 요리를 알려다오. 같이 준비하면 더 빨리 준비할 수 있을 거다.”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요리를 배워서 백도현보다 요리를 더 잘하게 되면 도련님이 총애하지 않겠는가?


“죄송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뭐야? 내가 도와준다니까?”

“아닙니다. 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알려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와의 약조 때문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치사하게 부모를 들먹이다니?

누군 아빠가 없나!


“이런 비겁한 놈!”

“예? 비겁하다니······.”

“됐다! 알려주기 싫으면 말아라.”


장엽명이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아침을 준비하는 것도 뺏겼다. 이제 뭘 해서 도련님의 눈에 들어야 하는가? 물론, 막헌위가 막씨세가 휘하의 무관에 입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긴 했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백도현이라는 경쟁자가 생겼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었다.


‘나도 뭔가 해야 해.’


갑자기 의욕이 넘친 장엽명이 막헌위의 처소로 향했다.


“도련님,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없다.”

“네?”

“가서 쉬어라.”

“예······.”


요즘 도련님은 주루나 기루에 방문하지도 않는다. 진탕 술에 취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장엽명의 일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말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 * *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장엽명은 충격에 빠졌다. 작은 체구의 백도현이 커다란 철판을 한 손으로 여유롭게 흔들더니 금방 요리를 완성했다.


‘쉽게 만들어서 맛도 없을 거 같았는데.’


예상외로 너무 맛있었다. 예전 막씨세가에서 먹었던 연회 음식보다 나은 거 같기도 했다. 옆을 보니 막헌위도 즐겁게 젓가락을 놀리며 그릇 위를 누비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설 자리가 없어진다. 단전을 형성할 때까지만이라도 쓰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식사 내내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장엽명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생각났다!”


백도현이 깜짝 놀라 장엽명을 바라보았다. 막헌위는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잊은 거 없으십니까?”

“뭘 말이냐?”

“용돈을 다 쓰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이 전장에 전표가 들어오는 날입니다!”


막헌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주에게 은자를 주고, 그를 고용하며 식자재비와 월봉을 미리 내주었기에 이제 정말 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용돈 받는 백수라? 좋군.’


막헌위는 식사를 마친 후,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흘끔흘끔 눈치를 보는 장엽명을 무시하고 장원을 장원을 나섰다. 먼 거리에서 돈을 보내주려면 전장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심가에는 전장이 몇 개 있었지만, 그가 돈을 받는 전장은 거산전장이었다. 알아보니 대룡상단과 연계된 전장이라고 했다.


거산전장 앞에는 절제된 자세의 무인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달마다 전장을 방문하는 막헌위였기에 호위들도 금방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막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기다리고 있으니 안내인이 그를 안내했다. 3층으로 올라가니 고급스러운 집기들이 가득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부를 창출한다. 전장의 신뢰만 확보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거산전장은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

단순히 막헌위의 얼굴만 보고 신분 확인이 끝난 게 아니었다. 부지부장이라는 이가 직접 명패와 거산전쟁이 배부했던 거래 문서를 엄밀히 확인받고 나서야 가문에서 보낸 전표를 받을 수 있었다.


전표를 보낸 사람은 노가영이라는 사람이었다.

막헌위가 고개를 갸웃한다.


‘노가영이 누구지?’


고민해봤지만 당연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산전장의 부지부장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다행히도 고민은 금방 해결됐다.


“공자님의 어머니께서 전표와 함께 서신도 동봉하셨습니다.”


어머니였군.

막헌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전생의 삶에서는 부모는 그에게 시련만 안겨주었다. 그들 덕분에 교주의 제자가 될 수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마교로 피신해왔던 것도 그 ‘성물’이라는 것을 훔치기 위한 계략의 일부였던 것 같다.


그의 부모는 자식조차도 도구로 쓰고 버렸던 것이다.

막헌위의 어미가 보낸 서신을 쭉 읽었다. 가문에서 생긴 일 따위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대부분 아들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찝찝하군.’


막헌위의 부모는 달랐다. 아버지 쪽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는 막씨세가라는 가문을 이끄는 가주였다. 아마 망나니 아들을 신경 쓰지 않고 혐오할 가능성이 컸다. 허나, 막헌위의 어머니는 가문을 떠나 방탕하게 생활하는데도 매달 금자 열 냥이라는 거금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


‘직접 돈을 벌어야겠구나.’


전장에 오기 전만 해도 그냥 계속 용돈을 받으며 백수 생활을 이어가려 했다. 막상 용돈을 받고 서신을 읽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진지한 얼굴로 서신을 보는 막헌위의 눈치를 살피던 부지부장이 슬쩍 운을 뗀다.


“요즘 재밌는 소문이 돌더군요.”

“무슨 소문 말이오?”

“공자님과 관련된 소문이지요. 서가장의 서 소협을 단번에 때려눕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들 믿지 않고 있지만··· 오늘 직접 막 소협을 뵙고 있으니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을 거 같군요.”


거산전장 장사지부 부지부장인 송황영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

“전장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요. 경박하게 스스로 범이라 떠들고 다니는 이들도 보았고, 비범함과 실력을 감추고 만인을 속이는 잠룡(潛龍)도 보았습니다. 오늘 막 공자님의 눈빛을 보니 어쩌면 후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헌위는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한 후로는 굳이 실력을 감춘 적이 없었다.

새치기했다는 이유로 서가 놈을 패버리지 않았는가?


“그리 날 칭찬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소만?”


송황영의 눈빛이 번뜩였다.

예전의 막헌위였다면 작은 칭찬에도 헤벌쭉하여 스스로 가진 것을 모두 내보이려 했을 테다.


‘조금 달라지긴 했군. 겉으로만 바뀐 척하더라도··· 장족의 발전이긴 하지.’


송황영이 말한다.


“거산전장에서 장사현을 거점으로 하여 표국을 개국하려 하고 있습니다. 거산표국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그렇소?”


막헌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 말을 듣고도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을까?’


송황영이 설명을 이어갔다.


“표국을 운영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자금이 필요한 이유는 표물을 지키는 데 인력을 고용하기 위함이지요. 현재 거산전장은 실력 있는 무인들을 초빙하고 있습니다. 전 막 소협도 함께해주셨으면 합니다.”

“날 말이오?”

“예, 막 소협이 표국으로 오신다면 일반 표사가 아니라 표사를 이끄는 표두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공을 세운다면 표국의 요직에 앉아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거절하겠소.”

“······.”


이렇게 바로 거절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송황영은 약간 당황했지만, 황급히 설득을 이어나갔다.


“이건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개국공신이 된다면 막 소협께서도 분명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막씨세가의 후계 구도에 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미끼를 던진 낚시꾼의 얼굴이다.

막헌위는 그런 눈동자를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잠룡이니 뭐니 치켜세워줄 때부터 의아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막씨세가의 공자를 표사나 표두로 고용한다고? 아무리 서지산을 일격에 때려눕혔다는 소문이 있다고 해도 전장을 운영하는 놈들이 손해 보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아마 내 배경을 이용하겠단 속셈이겠지. 낙성파 놈들처럼 말이지.’


막헌위는 혈기 넘치는 아이가 아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마교도들을 관리하던 교주였다.


“요즘 일거리를 찾고 있긴 했었소.”


송황영이 기뻐하며 두 팔을 벌렸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럼 저희 표국에 합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표국에 소속되겠단 이야기가 아니오.”

“예?”

“객원 표사라는 게 있지 않소? 표국의 일손이 부족할 때, 호위로 써주시오.”

“그런······.”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송황영이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라도 일단 끌어들이면 그만이었다. 다만······.


“좋습니다. 객원 표사는 보통 일봉이 은자 한 냥으로 측정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짜군.”

“당연합니다. 객원 표사는 원래······.”


관록이 깃든 말솜씨로 철부지 도련님을 현혹하려 한다. 이런 애송이를 요리하는 건 송황영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오랜 설득에도 막헌위는 고개를 저었다.


“실력을 검증한 후 걸맞은 대우만 해주면 되오.”

“허허, 실력이라······.”


처음에 잠룡이니 뭐니 극찬한 게 실수였던가? 송황영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자에게 이리 설득하는 것 자체가 악수였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사무적인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린다.


“임금에 관한 것은 제 소관이 아니어서 표국 측과 상의를 해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댁으로 돌아가셔서 기다려주십시오.”

“알겠소.”


그렇게 막헌위가 떠난 후.

부지부장실에 백색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무인이 들어섰다.


“첫 표행에 육검문의 은여안을 비롯하여 5명의 후기지수가 표행에 참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첫 강호행인 만큼 집단의 도움을 얻으면서 여비를 벌겠다는 심산인 듯합니다.”

“다들 배경도 확실하고 실력도 검증된 이들이로군.”

“예. 그 외에 은섬창(銀閃槍) 대협과 뇌성검(雷聲劍) 능 대협도 첫 표행에 맞춰 도착할 수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은섬창과 뇌성검은 첫 표행을 완벽하게 성공하고자 거산전장에서 거금을 들여 초빙한 고수였다. 내부적으로 은섬창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뇌성검까지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가만히 상황을 헤아려보던 송황영이 확실히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굳이 지금 막헌위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첫 표행에 그런 애송이를 데려갈 수는 없지. 거기다 표국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똥줄이 타서 찾아오겠지.’


그땐 객원 표사니 뭐니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헛소리하진 않으리라.



* * *


“표국은 텄군.”


막헌위는 마지막으로 본 송황영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마 연락이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미련 따위는 없었다. 세상천지에 돈을 벌 방법은 많았으니까.


‘거기로 가면 쉽게 일을 구할 수 있다고 했었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백수 짓만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시작은 흥미 본위이긴 했으나 나름대로 중원의 정보를 꽤 많이 얻었다.


‘개방으로 가봐야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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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대의 변화 24.04.14 38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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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백수가 되다 24.04.08 583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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