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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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월
작품등록일 :
2024.04.08 12:05
최근연재일 :
2024.04.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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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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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

DUMMY

“그런데 굳이 비무전을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오?”


막헌위의 상식으로는 번거롭기도 한 비무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정말 거산표국이라는 신생 조직을 견제하고 싶었다면, 간자를 심어놓아서 표행을 망치던지 혹은 살수를 보내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비무전?

심세문에게 들어보니 최대한 살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단다. 진짜 서로를 견제하려는 것이 맞는지 궁금했다. 다른 목적이 또 있는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심세문은 막헌위의 의문을 가만히 들으며 옅게 미소지었다.


“단순히 거산표국이 기반도 없이 시작했다면, 이리 번거롭게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거기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로 최대한 정파 내부 분쟁은 죽는 이가 없이 하도록 천도맹에서 명이 내려왔었습니다. 거기다 오랫동안 굳어진 표국의 문화도 중요한 이유지요. 그들이 원한이 쌓였다는 이유로 사생결단을 내려 했다면 풍림객과 같은 이들과 타협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 이유였구려.”


막헌위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심세문은 더 막헌위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과격하고 ‘사파’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지만, 사실 정파 내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 정파인은 정파 내에서 벌어진 불의한 일들엔 침묵했으니까.

그런 모순을 이겨내야지만 진정한 대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심세문은 그런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막헌위처럼 행동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얕게 알수록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럼 비무전의 방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 *



백비표국의 삼대표두 중 하나인 마영환은 심세문이 보내온 막헌위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한 조력자를 보냈다고 하더니 명문가의 철부지 도련님이지 않은가?


“막씨세가는 검법을 쓰지 않았던가?”


개방의 중계를 통해 백비표국에 도착한 무림인 무리. 태평하게 그들과 섞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막헌위를 보며 말한다. 백비표국은 호남성에서 꽤 유명한 표국이었다. 막씨세가의 주 무공이 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마 표두의 말에 또 다른 삼대표두 중 한 명인 신진명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막씨세가의 직계들은 보통 검을 쓰지요.”

“근데 막헌위라는 놈은 검도 없고 다른 병장기도 없는 것 같소만.”

“막씨세가에서도 검이 아닌 권법을 수련하는 무인도 있습니다. 어쩌면 검이 맞지 않아 버렸는지도 모르겠군요.”

“흥, 웃기지도 않구려.”


마영환은 그게 얼마나 허왕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막씨세가에서 검을 쓰지 못했다는 건, 검의 재능이 없었기에 억지로 주먹을 쓴다는 말이었다. 막헌위가 병기 따위는 구애받지 않는 수준에 올랐다면 모를까. 막씨세가의 직계인 막헌위가 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가 보기에 뻔한 이유였다.


“무시하지 말고 최대한 대우하라니 우리 심 아우가 막씨세가와 연을 만들려고 작정한 모양이오.”

“뭐,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심 소협은 백비표국에 투자하긴 했지만, 어차피 개방도아닙니까? 우리 표국이 거산표국을 이겨내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했겠지요.”

“쯧, 마음에 안 드는군. 거산전장이 미친 듯이 돈을 풀지만 않았으면, 이런 비무전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텐데.”

“어차피 닥쳐온 일입니다. 우리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백비표국은 거산표국이 장사현에 자리를 잡는 것부터 방해하려 했었다. 다만, 거산전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에 백비표국의 행동은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백비표국은 당당히 자리를 잡고, 첫 표행을 앞두고 있었다. 표국을 개국하는데 있어서 첫 표행은 매우 중요하다. 첫 표행을 성공하지 못한 표국은 그 이후 어떤 표물을 운송하더라도 결국 망하게 된다.


허나, 첫 표물을 성공적으로 운송하게 된다면 강호인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표국의 첫 표행일은 ‘비무전’이 성사되기에 가장 적절한 날이었다.


“그래서 거산표국은 어떤 무인들을 데려왔다고 하오?”

“은섬창 이상탁을 주축으로 삼십여 명 정도 모았다고 합니다.”

“흐음, 이상탁이라······.”


일류 후반의 경지. 절정을 엿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림에서 절정의 경지란 대문파에서도 대우받는 인재였다. 거산전장은 이번 표행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상당한 출혈을 각오했음을 시사했다.


백비표국은 기본적으로 표사들의 수가 거산표국보다 많지만, 외부에서 초청한 무인의 수는 확실히 거산표국보다 적었다.


“우리 표두 세 명이 합공한다면 제아무리 은섬창이라 하더라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오.”

“예, 은섬창만 막는다면 조직적인 훈련을 통해 성장한 우리 표사들이 낭인 무리들에게 밀릴 일도 없을 겁니다.”


불안하긴 했다.

그러나 백비표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랜 기간 쌓아온 기반을 잃어버릴 순 없었다.


“최선을 다해봅시다.”

“예, 백비표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저희와 돈을 받고 싸우는 무림인들과 같겠습니까?”



* * *



표국의 비무전의 방식은 간단했다.

한 쪽은 공격 나머지 한 쪽은 수비. 표행을 나가는 이들이 수비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표물을 탈취할 수 있다면 공격 측의 승리였다. 심판이 존재하고 비무장이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실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사람이 죽기도 하는데, 거산표국이 막헌위를 영입하려 한 이유가 그것에 있었다. 막씨세가는 직계의 죽음에 명분이 생길 것이고, 막헌위가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면 백비표국은 막씨세가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물론, 정말 막헌위가 덜컥 죽는다면 거산표국 또한 대가문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으니 죽지 않게 잘 배치하고 미리 거산표국에 그의 정체를 알려줬을 것이다.


허나 막헌위는 결국 거산표국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미 은섬창 뿐 아니라 뇌섬창까지도 합류하기로 했다.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기에 백비표국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거기다 백비표국은 피치 못할 상황을 대비한 비장의 수를 준비해놓았다.


“부지부장님, 정찰조에서 백비표국의 무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무려 칠십에 가까운 낭인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표사들까지 포함하면 이백 명에 가깝습니다.”


거산전장의 부지부장 송황영은 기념비적인 첫 표행에도 동참했다. 거산표국의 개국은 그가 참가한 사업 중 가장 규모가 컸다. 그는 책사로서 작전을 전두지휘하고 있었다.


인원의 차이가 꽤 났다.

그러나 송황영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호남 북동쪽에만 만족하고 확장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던 놈들이 이제야 발버둥 치려 해도 소용없지.”


거산표국에는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로서 백비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표국으로 호남성에 첫 발을 내딛을 것이다.


“무인들에게 준비하라 일러두게.”

“예.”



* * *



“잠시만 정보가 다르지 않소!?”


비무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백비표국 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진짜 고수’는 은섬창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호남성 소양(邵陽)에서 명성을 떨치는 또 하나의 고수가 은섬창 옆에 있었다.


뇌성검 능장환.

그는 패도적인 검법을 익힌 무인으로, 일검을 휘두를 때마다 뇌성이 친다고 하여 뇌성검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삼대 표두 중 하나인 마영환이 말한다.


“거산전장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로군요.”

“태평하게 있을 때요?”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신진명의 태연한 어조에 마영환은 가슴 속에 울분이 치밀었으나, 이 자리에서 그와 맞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실 미리 뇌성검이 대회에 참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로서는 대비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이렇게 된 거 할 수 없겠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소.”


마영환이 결의를 다졌다. 왜인지 다른 삼대 표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난 건가?


“이대로 당한다면 우리가 애써 키워온 백비표국이 몰락할 것이오.”


이쯤 말하니 두 표두의 표정도 굳어졌다. 만족한 마영환이 표사들에게 먼저 소리쳤다.


“비무전에서 성과를 내는 이들은 국주님께서 친히 상을 내려주실 것이다. 무공을 익히기 원하는 자는 무공을! 금화를 원하는 이들은 금화를 얻으리!”

“우아아아아아!”


당연히 표사들은 은섬창이니 뇌성검이니 잘 모른다. 수적 우세에 곧 승리를 탈취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의뢰를 통해 이곳에 온 강호의 동도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우리의 가족이나 진배없소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싸워주시오! 목표는 하나. 저들이 운반하는 진홍금환(振紅金丸)을 탈환하면 되오! 어떤 방식으로든 표물을 탈취하는 이에겐 금자 서른 냥을 지급하겠소!”


금자 서른 냥이라는 말에 모두가 눈빛이 바뀌었다.


“쓰러트린 적의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다들 힘내봅시다.”

“그래, 가보자고.”

“그냥 안 싸우고 진홍금환을 훔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크크, 그거 좋은 방법이로군!”


당연히 귀한 표물은 백비표국의 최강자가 지키고 있으리라.


‘국주님께서 제때 나서주신다면 비무전에 승리할 가능성인 크다.’


역대로 비무전은 공격자가 유리했다. 표물만 훔쳐내면 되니까. 그것으로 신생 표국의 신뢰는 바닥이 기게 된다.


“갑시다!”

“우아아아아아-!”


표사들은 전문적으로 합격술을 익혔고, 낭인들도 오랫동안 강호에서 살아왔으니 꽤 그럴듯하게 진형을 갖추고 달려갔다. 그리고 막헌위도 그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


* * *


비무전이 시작되고 이 각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마영환을 비롯한 삼대 표두들이 합공하여 은섬창을 겨우 막아내고 있었는데, 문제는 뇌성검이었다.


“으하하하, 나를 막을 자가 누구냐!”


콰릉! 콰르으응!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치는 듯 굉음이 울려 퍼졌다.


“표물만 훔쳐내라! 우리가 막고 있을 것이다! 국주님도 합세하셨다!”


상황을 지켜보던 백비표국의 국주가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숨어서 표물을 탈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대로 가다간 싹 다 제압당할 판이었다. 확실한 열세였지만, 백비표국에 죽은 이가 몇 없다는 게 실력 차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능 형도 백비표국에 붙을 줄은 몰랐습니다!”

“흥, 백 국주가 평소에 친우들에게 베풀며 살았다면 나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오!”

“내 탓이라는 겁니까?”

“당연하지!”


콰앙! 뇌성검의 실력이 예전보다 더 상승한 듯하다. 어찌나 뇌성의 위력이 강한지 사용하는 검이 갈라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몇 번 검을 맞대다가 백비표국의 표국주 백천악은 뒤로 물러섰다.


‘정말 절정의 경지에 오른 건가?’


표국주가 당하면 완전히 끝이 나는 거다.

백천악이 전세를 살펴본다. 은섬창을 잘 막아내고 있긴 한데, 나머지가 문제였다. 백비표국의 표사들은 초반에는 선전했지만, 육검문의 은여안을 비롯하여 젊은 후기지수가 나서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어떻겠소?”


뇌성검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패배하면··· 백비표국은 끝입니다. 어찌 물러설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이길 가능성도 없지 않소? 누구도 표물에 접근하지 못했소이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하지요. 우리 삼대 표두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시오. 능 형이 내력을 오래 운용하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소.”


뇌성검 능장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약점 중 하나였다. 지금도 백비표국주를 더 공격하지 않은 것은 진탕된 내부를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뇌성검이라는 별호가 있었지만, 사실 그 별호가 조롱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어찌 모를까?


단기적인 힘은 강했지만, 오래 싸우지 못하는 무림인.

버티기만 하면 자멸하기에 백비표국주도 저리 말할 수 있었다.


“백비 표국의 삼대 표두들이 은섬창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보시오?”

“잘 버티고 있소. 그들은 평생 함께 합격진을 연마하여 분명히······.”


백비표국주가 말을 이어나가다가 얼굴이 굳어졌다. 분노와 절망에 가득 찬 마영환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어찌 당신들이! 배신하는 건가!”


어느새 마영환은 쓰러져 있었고, 은섬창의 곁에는 백비 표국의 자랑이었던 두 표두가 서 있었다. 삼대 표두가 돌아선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백비표국은 끝이오. 이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시오.”


삼대 표두 중 두 명이 백비표국에게서 등을 돌렸다. 백비표국의 표사들과 낭인들이 밀려나고 있다.


‘다 끝인가······.’


절망에 빠지려 할 때.


“제기랄! 잡아라! 무조건 저놈을 잡으란 말이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거산전장에서 부지부장을 역임하며, 이제는 거산표국의 원로가 된 송황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백비표국주가 소란이 일어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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