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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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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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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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10쪽

1-5

DUMMY

* * *



어두운 지하 밀실, 중년의 사내가 탁자에 홀로 앉아 머리를 움켜쥐고 깊은 고뇌에 잠겨 있다.


아련히 떠오르는 처참했던 오 년 전 거사의 기억.


"사형! 제, 제발··· (죽어가는 사제의 마지막 부탁이요. 우리 아이 권, 그 아이만은 제발 죽이지 말아주시오.)"


검붉은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는 황룡포인의 입. 하지만 그의 말은 입안에서 맴돌 뿐 말이 되어 흐르지는 못했다.


단지 실룩,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르르 몸을 떨던 그는 눈과 입을 크게 벌린 채 고통스러운 움직임을 멈췄다.


점차 화석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는 그의 몸.


“호천웅비(昊天雄飛) 손정! 당신도 독중지왕이라 불리는 칠점산공독(七漸散功毒)의 독은 당해내지 못하는구려···.”


나지막이 흘러나온 말. 말의 여운이 닿은 끝에 하얀 백의 장포 중년인이 자리했다.


눈에 익은 얼굴, 밀실에 앉았던 바로 그 자신이다.


6척 장신의 당당한 체구, 각진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붉은 혈색의 그는 지금보다 훨씬 당당한 체구를 당시 간직하고 있었다.


“문주···. 우리가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됐단 말이오.”


한숨과 함께 터져 나온 안타까운 말,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빨리 시신에서 장문령패(掌門令牌)와 밀로원패(密老院牌)를 찾아라. 그리고 즉시 시신을 화장하여 증거를 없애고 나머지 그 장손과 자식들을 찾아 모조리 주살하도록. 후환을 남겨서는 절대 안 된다. 빨리, 어서 빨리 움직여!”


기억 속 그는 당시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수하들은 죽은 황룡포인의 품을 뒤졌다.


"부주! 장문령패만 보이고 밀로원패는 보이지 않습니다."


죽은 그의 시신을 뒤지던 흑포인이 천(天)자에 청룡이 좌우에 박힌 금패를 바치며 황송하다는 듯 시선을 바닥에 깔았다.


"무엇이라 없어?"


잡아채듯 금패를 손에 쥔 그,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이 없다면 반쪽 성공?’


빠르게 회전하는 그의 머리. 상징적 존재인 태상문주 손원은 초기에 제압 제거했고 문주인 그의 아들 손정은 방금 목숨을 끊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어린 손주인 소문주.


"소문주, 소문주는 어떻게 되었느냐?"

"거사 시작과 동시에 어디론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합니다."


그의 안면근육이 실룩이며 크게 일그러졌다.


'손원! 그 늙은이가 가장 애지중지하며 가까이했던 녀석은 바로 그 아이. 이제 태어난 지 백일 지난 아기인 소문주, 스스로 피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팽형! 소문주가 없어졌다는 말 들었소? 태상문주 척결시 그림자처럼 따르던 괴불이선, 그들 시신조차 없지 않았소?”

“그럼 그놈들이···, 알겠네, 제 놈들이 뛰어야 벼룩,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즉시 조치를 취함세!"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6척의 흑면인이 그의 말에 동조하며 즉시, 시립 한 주변 수하에게 명(命)을 내렸다.


"황, 최, 들었지? 즉시 살수대를 동원 소문주를 잡아들이라, 나도 곧 따라갈 것이니 반드시 산 채로 잡아야 한다. “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흑면인과 십여 복면인의 신형이 꺼지듯 일제히 사라졌다.


모두 사라진 빈자리에는 문주 호천웅비 손정의 시신과 그의 호법 십여 인의 시신만이 을씨년스레 자리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그.


'하~ 과연 이게 잘 한 짓일까?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과연 떳떳이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을까?'


긴 장탄식과 함께 느닷없이 바닥의 용호신검(龍虎神劍)을 번쩍 치켜드는 그.


피에 절은 검. 용호신검은 주인 황룡포인의 검붉은 피를 마치 새 옷처럼, 두텁게 두른 체 차가운 한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주인의 한을 잡아먹은 놈이 뭐가 잘났다고···, 무정한 놈!'


스슥!


미세한 기척에 긴장된 얼굴의 그는 미끄러지듯 물러서며 피 묻은 용호신검의 손잡이를 익숙하게 움켜쥐었다.


"날쌔!"


검은 복면을 쓴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 그가 신형을 드러낸 순간 백의 장포인의 눈엔 어둠이 찰나에 스치곤 흩어졌다.


"어서 오시오!"


그의 포권에 복면인 역시 마주 포권을 취했다.


"이번 거사 성공을 경하하오!"

"단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번 거사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오.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그가 감사의 뜻을 표하자 복면인은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하하! 장부주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삼혈천(三血天)이 저자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오.”

“삼혈천의 죽음,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의례적인 인사치레 후 두 사람은 두 개 중 한 개만 입수, 반쪽 성공에 머문 사실에 답답해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진행한 거사를 어떻게 눈치챈 걸까?


"태상문주 손원 그 늙은이 때문에··· 좋소! 소문주 그 아이 몸에 패가 있다 자백했으니 추적대 손에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요. 장부주! 당신은 나와 약조했던 사항만 지켜주면 되지 않겠소."

"잊지 않고 있소이다."


복면인의 요구에 담담히 대꾸하는 기억 속의 그, 그의 안색은 지금 이 순간 썩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장부주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요. 하지만 일이 성사될 때까지 당신의 부인 남궁빈화는 내가 모셔가야겠소이다.”

“예~에?”

“무얼 그리 놀라시오, 당신의 부인은 나와 각별한 사이이니 내 어찌할까 그러시오, 내가 모셔가는 것은 불안정한 이곳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보호해주겠다는 의미요. 그러나 그대의 아들만은 절대 손대지 않을 터이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시오.”


인질로 잡겠다는 협박 아닌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가슴은 충격에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분기로 얼굴이 붉게 변했던 그의 안색은 체념한 듯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자, 잘 보호해주시리라 믿소이다.”


단주라 불린 그는 그의 다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껄껄껄 좋소이다! 천인검유, 그자의 약점에 대한 정보 역시 당신에게 모두 주었으니 이번 일에 꼼짝없이 협조할 거요.”

“알겠소!”

“다만 걱정은 단순히 우두머리를 제거했다 하여 모든 것을 장악할 수는 없을 것이오. 그들이 숨겨놓은 비급과 재물, 비밀세력을 모두 찾아내 깨끗이 마무리하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최종 목표요.”

“···”

“파악한 바로 천무문에는 세 개의 패가 존재한다고 들었소. 문주령패와 밀로원패 천령패. 앞의 두 개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나 천령패는 찾기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장부주! 당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터이니 걱정하지는 않겠소. 내 물심양면 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터이니 마무리까지 잘 부탁하오.”


말을 마친 그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죽은 문주 손정을 바라보는 그. 그의 창백한 안색에는 짙은 그늘의 어둠과 한편으론 성취했다는 기쁨의 감정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흘렀다.


"고식지계(姑息之計)를 택해 일시적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양호유환(養虎遺患)의 우(愚)를 범한 것은 아닌지···."


무슨 뜻일까?


후회를 뜻하는 고사성어를 그는 왜 중얼거린 것일까?


거사를 꾸미고 거사를 진두지휘,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가 한 말이다.


하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단주란 자와 서로의 이해충돌이 맞아떨어지며 성사된 일이니 하지만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한숨만 푹푹 나온다.


멍하니 검은 하늘을 바라보던 그, 아니 과거의 분신이 천천히 신형을 돌려 어둠에 잠긴 대문을 향해 쓸쓸한 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스산한 바람, 그의 작아진 신형 뒤로 부서져 뒹구는 천무문(天武門)이란 붉은 편액이 어스름 달빛에 조각의 편린을 내비친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칼로 평생을 보낸 그였지만 참혹하고 생생했던 그때 그 기억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더욱 또렷이 떠올랐다.


후~! 한숨을 내쉬며 일그러지는 얼굴, 어째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걸까?


5년이나 지났는데, 그동안 수십의 사람을 눈 하나 깜빡 않고 직접 죽이거나 죽이도록 명을 내렸으면서 그깟 문주와 그 가족 몇을 죽였다고 이리도 괴롭고 아프단 말인가.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러다 미치기라도 한다면. 두렵다.


스스슥!


기척, 사람의 기척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무덤덤한 익숙한 표정.


“어서 오시오! 단주!”

“흐흐, 이젠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오?”

“최근 복잡한 일이 많아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시오.”


그의 손이 슬쩍 허공을 가르자 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촛불, 어떻게 켰을까? 놀라운 손놀림이 아닐 수 없다.


반쯤 녹아내린 촛농이 아슬아슬 남은 촛대를 집어삼킬 듯 뿌옇게 덮었다.


붉은 촛불은 바람도 불지 않는 데 살랑살랑 두 사람의 그림자를 흐느적거리게 했다.


그의 말에 인상이 크게 찌푸려진 단주란 자.


"장부주! 오 년이 지났소! 아직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 이유, 도대체 무엇이오?"

"죄송하외다, 아시다시피 오 년 전 사건에 의심을 품고 있는 자들이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사사건건 천인검유(劍儒)의 뜻에 대립하고 있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중이오."

"그건 검유 그가 너무 수동적으로 움직여 그런 것 아니오?"

"아니라 말할 수는 없소이다. 그가 당초 계획대로 움직여만 준다면 쉽게 풀릴 일이었지만 심성이 유약한 관계로 반대파에 대한 숙청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가장 큰 문제요. 반신반의하는 세력이 전체 반을 넘는 상황에서 회유하느냐 아니면 제거하느냐에 힘겹게 잡은 권력의 완전 장악 여부가 달려있는데···."

"그럼, 동기부여를 하면 될 것 아니오?"

"동기부여요?"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인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리고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뚫어져라, 응시했다.


"천하의 장부주! 당신이 그것을 몰라, 내게 묻는 것이오?"


작가의말

새벽, 졸린 눈을 비비며 ...



"장문령패(掌門令牌)와 밀로원패(密老院牌), 천령패(天令牌) 세 개의 패가 있어야 천무문의 실권을 쟁취할 수 있는데.



앞선 두 개의 패는 사람이 지니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최후의 보루, 진정한 권력의 힘인 천령패는 선택된 자만이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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