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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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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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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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2

DUMMY

* * *



“영감! 이럴 때 그 도사님 다시 오셨으면 좋겠어요!”

“도사? 무슨 도사?”

“영감도 늙긴 늙었구려, 팽욱이 목숨을 구해주셨던 그 도사.”

“아! 맞아,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


두 사람의 뇌리에는 십여 년 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늙은 도사의 신위가 문득 떠올랐다.


도사, 이름도 성도 모르는 도사는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아이를 안고 나타났었다.


아이는 바로 자신들의 자식. 깜짝 놀란 부부는 너무 놀라 벌벌 떨었었다.


한참 기어 다닐 나이이기에 방심하면 안됐는데 방문을 닫고 안에 재워 놓았기에 설마 했다.


방문을 열고 기어나간 아들 팽욱이 폭우로 범람한 물살에 휩쓸리며 떠내려가기 직전 근방을 지나던 도사분이 극적으로 구해줘 목숨을 건지게 되었던 사연이다.


“이 아이는 십년 후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물로 인한 큰 재난을 겪을 것이오.”

“예에?? 또요? 그, 그걸 피해갈 방도는 없는지요?”

“허허! 글쎄, 그걸 재난이라 해야 하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천기를 헤아려 살피니 이 아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될 상이오. 다만 이십 세가 되기 전 세 번의 죽을 고비와 이십 세 이후 세 번의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앞선 세 번의 고비만 넘기면 후일 크게 대성할 인물이오.”

“그럼 앞으로 두 번의 고비를 더 넘겨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허! 이런 주책없이 또 천기를 누설하고 말았구먼.”


잠시 먼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도사는 품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부부에게 건넸다.


“이 물건들은 아이가 이십 세 이후 위기와 함께 큰 깨달음을 얻을 때 도움이 될 것들이오. 하지만 그 이전에 닥칠 위기는···. 노도와 인연이 된다면 또 구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 그게 사실입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손을 저으며 부부의 큰 절을 극구 사양하던 도사는 묵었다 가라는 부부의 간청을 뿌리치고 결국 그날로 길을 떠나고 말았다.


“한 가지! 당부말씀이 있다면 아이가 커서 노도가 드린 그 물건들에 대해 묻거든 절대 내가 주었다하지 말고 이십 세 이전에 비밀을 풀겠다고 나서면 일체 못하도록 이르시오. 만일 거역할 시에는 장차 큰 화를 입을지 몰라 그러는 것이오.”


도사가 주고 간 물건은 은패와 두 장의 보자기였다.


십여 년 전 일을 셈 해보니 바로 지금 이때와 딱 맞아 떨어지는 시기. 부부는 오금이 저려오는 두려움과 한 가닥 기대로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응? 여기가 어디야?"

"오! 깨어났구나! 아이쿠 내 새끼!"


어머니의 반가운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잊을 뻔 했던 그 목소리. 반가움에 천근만근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사랑하는 이들의 환한 웃음이 비쳐들었다.


“살았구나! 와아!”

"야 이놈아! 너 때문에 이 애비 명이 십년은 짧아 졌을 게다"

"내가 산거야, 죽은 거야?"

"네 눈에는 우리가 귀신으로 보이냐! 이 고얀 녀석아!!"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원평아! 얼굴 한번 꼬집어 줄래?"


어이가 없었는지 풋 하고 웃던 나원평이 안면을 세차게 꼬집자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욱. 인상 찌푸리며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보다 이내 활짝 소리 내 웃었다.


"나 산거 맞지? 그렇지?"

"그런데 너!! 왜 갑자기 세상이 싫어졌냐! 아님 폭포와 뽀뽀하고 싶어서 뛰어 든 거냐?"


살았다는 기쁨에 펄쩍 뛰던 팽욱은 혁린천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낯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더니 홱 돌아누워 손사래를 쳤다.


그만 나가 달라는 뜻. 깜빡 잊었던 충격이 되 살아난 모양이다.


뭐라 말을 꺼내려던 혁린천을 조용히 제지하는 아버님. 그의 손짓에 네 사람은 조용히 물러나왔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소탈하고 명랑한 아이인 것 같아도 그 동안 심리적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던 듯하구나! 이런 마음의 병은 누가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낫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다. 조급히 여기지 말고 때를 기다려 보자꾸나!"

"예! 아저씨!"

"너희 둘, 삼일 밤낮을 꼬박 지세며 잠도 자지 않았으니 걱정은 그만하고 돌아가 푹 쉬고 나중에 괜찮아지면 찾아가라 이를 터이니 그리 알고 돌아들 가거라!"

"그래도 저희가 있는 편이···."

"아니야 린천아! 우리가 원인제공을 한 셈이기 때문에 보이면 오히려 회복에 장애가 될 거야. 아저씨 말마따나 돌아가서 좋은 소식 오기 만 기다리자!"


알았다며 힘없이 대답하는 혁린천, 어깨가 축 처진 두 사람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터덜터덜 사라졌다.



* * *



"이리 오너라!"


황의도포에 사척(120cm) 가까운 긴 지팡이를 짚은 커다란 삿갓 쓴 도사가 집 싸리문 앞에 서 있었다.


가슴어림까지 늘어진 백미를 주름진 손으로 어루만지며 연신 이리오라 반복해 소리쳤다.


도포는 때가 꾀죄죄하게 껴서 소매가 까만 때의 층으로 번들번들하고 여기저기 헤져 뜯겨진 옷 사이로 지저분한 속살까지 드러나 있었다.


속일 수 없는 나이로 주름이 온 얼굴을 뒤덮었지만, 그 사이로 비쳐 보이는 두 눈은 수정처럼 맑았다.


갑자기 들린 창노 한 노인의 음성에 팽욱의 아버지 팽춘길은 황급히 돌아봤다.


"뉘 시온지?"

"허허! 날 몰라보시겠소?"


고개를 갸웃하던 팽춘길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은인이 아니시옵니까? 우리 아이를 구해주셨던??"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아버지에 도사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역시나! 맞았군요!!”


혹시나, 기다렸던 팽춘길은 성큼 큰절을 올렸다.


"여보! 은인이 정말로 오셨어! 십 년 전 그 도사님 말이야!"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어머니는 밥주걱을 손에 든 채 헐레벌떡 뛰어왔다.


노인의 모습을 확인한 아낙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대뜸 맨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오신다더니 정말 오셨군요. 그런데 도사님 행색이 어찌."

"혼자 다니다 보니 이렇게···"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으시고 오히려 혈색마저 더 좋아지셨으니 도사님의 도력이 한층 높아지신 것 같습니다."

"허어! 그래요? 감사할 따름이지요! 허허허!"


큰절 뒤 몸을 일으킨 어머니는 도사의 주름진 손을 꼭 붙잡고 행색을 꼼꼼히 요모조모 살피며 살가운 말을 이었다.


"시장하시죠? 내 곧 요기 거리를 챙겨 내 오겠습니다."


어머니는 노도사의 소매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끌어당겨 방으로 모셨다.


너무 반가우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여인의 사는 방식인가? 역시 피는 못 속여.


뒤따라오던 팽춘길도 노도사의 지팡이와 봇짐을 받아 들고는 들마루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서자 각 사방위를 향해 도호(道呼)와 함께 안녕기원을 염원하는 도가술법을 중얼중얼 돼 뇌인 도인은 그가 권하는 윗자리에 좌정했다.


“노도가 다시 찾은 것이 십년 만이지요?”

“예, 예! 꼭 십 년 만에 약조하신 대로 다시 오신 겁니다.”

“오오, 잊지 않고 계셨었구려.”

“당연하지요. 제 아들놈 안위가 달린 일인데 잊을 리가요.”

“안위라···. 그때 그렇게 말씀드렸던가요?”

“예, 이십 이전 세 번의 큰 위기를 겪는다 하셨지요. 그 첫 번째가 세살 때 일이고 십년 후 지금 이맘때쯤 물에 관련되는 일로 온다했습지요.”

“허~ 늙으면 죽어야지···. 발길 닿는 대로 오다 눈에 익은 집이 보여 들렀는데 이런 우연이.”

“시장하시지요? 상 금방 봐 올리겠습니다.”

“차려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소이까?”

“아!! 예, 예!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배가 든든해야···.”

“걱정하지 마시고 아이를 데려오시지요.”


아이가 건넌방에 누워있어 데려오기가 난망했던 팽춘길은 머리를 긁적이며 송구스러워했다.


"역시 예상한대로 아이가 아픈 모양이구려. 어디에 있소이까?”

"지금 작은 방에서 요양하고 있습니다."

"크게 다쳤습니까?"

"별 것 아닙니다. 얼마 전, 물에 빠져 죽을 뻔하다 가까스로 살아났습니다. 외상은 다 나았으나 정신적인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지금껏 자리보전하고 있습니다."

"흠, 겉 병이야 약으로 쉽게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노 도사는 좌정한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눈이 천천히 벌어지며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의 눈에서 빛이 나오리란 건 생각조차 못 했던 팽춘길. 경외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설마, 사람의 눈에서 어찌 빛이 나올까.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시죠."

"도사님 음식은 무엇으로 준비해 올릴까요? 별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시면 바로 차려 들이겠습니다.”

"허허! 배고픈 늙은이가 무어 가릴 게 있겠소이까만, 염치불구 부탁드린다면 김치에 고추, 된장과 보리밥 한 그릇만 있으면 족할 듯하오이다.”

“김치에 된장 말씀하셨습니까?”

“왜? 없소이까?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 아닙니다. 매일 우리 식구가 먹는 음식이온데 어찌 없을 수 있겠습니까. 곧 차려 올리겠습니다.”

“허허, 그 음식이 정말로 있다니. 찾아오길 잘했네!”

“한데 도사님은 어떻게 저희 고려인의 음식을 찾으시는지···.”

껄껄 웃던 도사는 머리에 쓴 삿갓을 벗어 바닥에 놨다.

“억! 상, 상투가···.”

“맞소이다! 노도 또한 고려인이니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이 드넓은 중원 땅에서 같은 동포를 만나다니···.”


최근 십여 년간 고려인을 본 적이 없었던 팽춘길은 너무 기쁜 나머지 노도사의 주름진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허허! 이러다 아이 치료 시기 놓치겠소이다.”

“예? 예!”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노도사의 엄포(?)에 크게 놀란 팽춘길. 도사의 손을 이끌어 작은방으로 안내했다.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잠에 빠져있는데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다.


서둘러 아들을 흔들어 깨우는 아버지.


"팽욱아! 어서 일어나! 십년 전 네 목숨을 구해주셨던 도사님이 다시 찾아오셨다. 어서!"


아버지의 느닷없는 재촉에 힘겹게 눈을 뜬 팽욱. 물끄러미 아이를 내려다보던 도사는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천기란 역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그때도 물과 관련이 있더니 또 물에···. 아이는 천생, 물과 깊은 인연이 있는 듯싶구려."


팽욱은 처음 보는 노 도인이 불쌍하단 시선으로 한숨을 내쉬자 어리둥절, 눈만 멀뚱멀뚱했다.


"녀석아! 이분이 널 구해준 은인이시다! 벌떡 일어나 큰절 올리지 못할까!"

"예?···. 예!"


화를 내는 아버지의 재촉에 팽욱은 마지못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나 절을 올렸다.


절을 올리는 그의 작은 몸을 마치 자신의 눈에 새겨 넣으려는 듯 도사는 뚫어지게 주시했다.


"겨우 세살 때 일인데,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무덤덤하게 말을 이은 도사는 손짓과 함께 아이를 반듯하게 눕혀 웃옷을 벗기고는 전신을 쓸어내리듯 훑었다.


그의 눈에 띈 은패, 동전 크기의 패를 유심히 살피던 도사는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도사님! 지금 보신 그 패는···."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셔도."


도사는 아이의 맥문을 쥐고 눈을 감았다.


잡고 얼마 안 있어 그의 얼굴엔 언뜻 놀란 대경실색한 기색이 스치듯 지나갔으나 반 식경 정도의 침묵이 흐른 뒤 차츰 완연한 정상 혈색으로 돌아왔다.


"크게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이 병은 결국 시간이 가면 자연스레 치유되는 마음의 병입니다."


도사는 잡았던 아이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모든 병은 마음에 그 근원이 있다 했습니다. 이 아이의 마음에는 번뇌와 집착이 자리 잡아 기의 흐름을 막고 오장육부(五臟六腑)의 활동을 흩어 놓고 있소이다. 도가의 근본에는 무위 자연사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즉, 공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차 있는 것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 참이란 진정한 참이 아닌 한계가 있고, 공은 무한하다 하였지요.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욕심을 극복하고 그 욕심을 자신의 의지와 의욕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때 아이의 병은 절로 나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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