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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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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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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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 3 장 신공의 인연

DUMMY

“오라버니! 작은 오라버니께서 이러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방이 철제 창틀로 막혀 있는 음습한 골방, 겨우 한자 남짓한 둥근 창만이 바깥공기와 햇빛을 간간이 비추어 주는 탁습한 정경이다.


그 아래, 두 명의 중년인 남, 여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는 하지 말았어야 할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 가문에 먹칠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시집가지 않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버님과 작은 오라버니께서 강제로 보내며 이 불행한 사태가 초래된 것 아닌지요?”


여인은 악에 받친 듯 독기를 품고 오라버니라 불린 사내에게 대들었다. 격정에 못 이겨 부르르 몸을 떠는 여인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년인.


“네가 남편과 사돈어른, 두 사람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그를 잊지 못해 은밀히 만난 사실, 그로 인해 벌어진 그와 네 남편과의 혈투, 이 모든 불행이 너로 인해 벌어진 참사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불행의 씨앗은 제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시집 보내면서 잉태된 것입니다.”


자신을 책하는 오라버니의 말에 여인은 울분을 토했다.


“어쨌든 사태는 원하든 원치 않던 이미 벌어졌고 너와 우리 집안은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와 운명을 함께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어째서 저를 그에게서 떼어낸 것입니까?”

“너는 엄연한 우리 가문의 여인이다. 네가 그들 사이에 끼임으로 인해 우리 집안이 그들의 볼모가 될 수는 없음이다.”

“흐흐흑!”


끝끝내 참았던 울음이 그녀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참아보려 했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내가 되어 두 볼을 뜨겁게 적셔갔다.


어깨를 들썩이며 격정에 몸을 떠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다독이던 중년인.


“그들 사이 싸움이 벌써 10여 년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지금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담담한 말에 당당했던 그녀의 눈길이 빠른 속도로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자신 탓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너를 보낼 수밖에 없는 내 입장과 너를 가둘 수밖에 없는 가문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한편으론 후련하다는 표정의 중년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오라버니!”


이때 그의 발목을 멈추게 하는 여인의 떨리는 음성. 막 방을 나서려던 중년인은 우뚝 멈춰섰다.


오랜 유폐로 건강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여인은 비틀비틀 힘겹게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서신! 그와 제 자식에게 전해 주세요!”

“사돈에게 쓴 서신은 없느냐?”


서신을 건네받은 중년인의 냉막한 음성에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가는 떨림만 보일 뿐 시선을 외면했다.


“알았다!”


잠시 지켜서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중년인은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는 그녀를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눈에 비친 그의 등은 넓고 거대한 장벽.


'오라버니! 제발 제가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어떤 위해도 가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녀가 아는 작은 오라버니는 자신의 형님과 아버지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문파의 실제적 권력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장악한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막강한 힘을 지닌 그에게 있어 그가 사랑하는 그와 자식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 하지만 막강한 오라버니에 비하면 사랑하는 그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갇혀 있어 외부사정을 알 수 없는 그녀였지만 어쨌든 지금껏 사돈의 막강한 힘에 굴하지 않고 잘 대항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여보, 힘내세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사랑에 눈이 멀면 사리판단마저 흐릿해지는 것인지.




백의의 중년 사내가 서찰을 펴들고 부들부들 분노에 떨고 있다.


희끗희끗 흰 수염이 검은 구레나룻 사이로 듬성듬성 자란 얼굴. 선 뚜렷한 각진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붉은 혈색의 눈에 익은 얼굴. 누굴까?


그는 처음 거사가 있던 날 단주란 자와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만호 장부주였다.


"내 이 자식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죽인단 말이냐!"


펴든 서찰을 꼬깃꼬깃 구겨 버린 그는 벌떡 선반 위 걸쳐 놓은 장검을 뽑아 들었다.


꾸겨 든 서찰을 허공에 뿌리며 흔들 몸이 움직이자 이내 검무(劍舞)가 실내를 은빛 광채로 물들였다.


눈보라처럼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조각난 서찰.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사내는 자단목 탁자를 향해 장검은 내 던졌다.


퍽, 한참을 흔들리며 울음을 토해 내듯 잔 진동을 떠는 장검.


"마무리되면 두고 보자, 네놈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말리라!"


씹어 뱉듯 내뱉는 그의 비분강개한 목소리에 컴컴한 내실은 차가운 냉기로 급속히 얼어붙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아 간 그들, 그를 응징하며 찾은 기쁨도 잠시, 또다시 시작된 깊은 절망의 나락이 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전엔 그래도 이런 비참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었다.


‘여보! 저는 잘 있어요. 몸 상하지 않도록 건강 챙기세요. 몸은 비록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당신 곁에 영원히 있다는 사실 기억해 주세요. 사랑해요. 여보!’



* * *



시간은 흘러 벌써 일 년, 이제는 선선한 바람이 콧등을 스치는 풍요의 계절 가을이 되었다.


팽욱은 여전히 부모님과 실랑이하며 한지를 만들고 있었고 진평 스승과의 졸음 한판도 여전했지만, 이젠 배운 다기보다 동료처럼 같이 실험도 하고 자료도 만들면서 실용학문에 대한, 결과의 꽃을 피워 나가고 있었다.


항상 붙어 지내던 세 사람은 여러 불미스러운 일을 겪으며 한층 가까워졌고 결국 간담상조의 연을 맺어 서로 말을 터놓고 지내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물론 두 친구는 인정할 수 없다며 한동안 길길이 날뛰었지만.


요즘 셋의 가장 큰 관심사는 천무문 기인이 주고 간 '천무 구양 신공(天武 九陽 神功)'을 익히는 일.


거기엔 천무구양신공(天武九陽神功)이라는 내공심법(內功心法)과 호종천보(虎縱天步)라는 거창한 이름의 신법(身法), 그리고 천무장권(天武掌拳)이라는 권장(拳掌)법이 기술(記述)되어 있었다.


책대로 한다면 하늘을 날고 산을 부수며 물 위를 떠다닐 수 있다는 너무도 황당무계(荒唐無稽)한 환상적인 내용이라 늙은 도인이 어린애 희롱하려고 던진 책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천무문(天武門)에 대해서도 책자에 간략히 소개되어있는데 천무문은 무당파(武當派) 장삼풍 조사의 아홉 번째 제자인 산서인 왕종악의 이대 속가제자 진주동자 진복(진가태극권 창시자)과 함께 동문수학했던 손무(孫武)가 가르침에 큰 깨달음이 있어 독자 창건한 문파로 기본은 무당 태극파의 한 줄기라 할 수 있었다.


책에는 없지만, 최근의 동향을 보면 지금 문주는 십여 년 전 문파에 발생한 혈겁(血劫) 즉, 천마방(天馬幇)과 하남성 패권을 두고 벌인 싸움의 와중에서 전임 문주였던 손정(孫正)과 그의 조부 손원(孫湲), 그리고 장자인 손혁(孫赫)이 천마방의 암살마수에 걸려 사망, 또는 실종된 이후 손원의 대 제자였던 서문공유(徐門孔儒)라는 분이 문주 대행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사라진 어린 둘째 아들 손권(孫權)은 천무문의 수많은 이들이 지난 10여 년 금화 10냥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수소문했지만, 아직 그 행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천무문은 문주의 암살에 따른 보복으로 천마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천마방이란 이름을 하남 땅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사라진 소문주는 소문에 괴불이선(怪佛二仙) 육대수, 육대화가 아이 자질을 탐해 데리고 장백산(백두산) 깊은 계곡에 잠적했다는 뜬소문만 전해질 뿐이었다.


나원평과 혁린천 두 사람은 천무구양신공을 익히기 시작하고부터는 다니던 청무관을 그만두고 팽욱과 함께 각자의 일과가 끝나는 해시초(亥時:오후9시~오후11시)에 모여 자시 말(子時:오후11시~오전1시)까지 두시진 동안 수련했다.


내용이 난해할 뿐 아니라 더러 추상적인 것이 많아 셋이 중지를 모아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갔다.


수련 장소는 파천천 너머 잠룡산 깊은 동굴로 늦은 시간에 모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방해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그곳을 수련 장소로 택했다.


이들이 택한 동굴 앞에는 쌍룡폭이라는 장대한 폭포가 자리했는데 대부분의 동리 사람들은 폭포는 와 봤어도 그 속에 동굴이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입구는 넝쿨이 복잡하게 뒤엉켜 접근이 어려운 데다 폭포의 파괴적인 무시무시한 굉음에 아무도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팽욱, 그는 이제까지 일하기 싫거나 공부하기 싫을 때 혼자만의 비밀장소로 사용했었으나 절친한 친구들의 무공수련을 돕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공하게 되었다.


폭포의 높이는 무려 10장, 폭은 2장에 떨어지는 물보라의 위용은 마치 거대한 용과 호랑이가 뒤엉켜 포효하는 듯 어마어마했다.


폭포에서 100장 떨어진 곳에서도 들리는 엄청난 굉음과 충격에 옆 사람과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곳은 서 있기만 해도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끈 용솟음치는 것만 같아 수련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훌륭한 장소였다.


폭포의 중간을 헤 치고 들어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햇볕이 든 날 동굴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무지개빛 영롱한 빛깔이 마치 화려한 보석처럼 반짝여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동굴은 호리병 형상으로 입구에서 일장의 거리는 직선으로 성인어른이 겨우 구부리고 들어갈 정도로 좁았지만, 그 이후에는 직각으로 꺾인 공간엔 성인 장정 대 여섯은 서 있어도 될, 넓은 공간이 있어 안에서 불을 켜고 있어도 밖에서는 안쪽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묘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오늘도 세 사람은 동굴에 모여 각자의 체질에 맞는 공부(功夫)를 택해 익히고 있었다.


책에 의하면 일단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내공심법 통해 몸 안에 일정한 양의 기력 즉 공력을 쌓아야 여러 신법과 권장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이상하게 팽욱은 천무구양공이라는 내공심법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이 없었다.


반면 두 친구는 그와 달리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일 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미미하게나마 기(氣)의 순환을 느끼는 수준에 올랐다며 자랑하곤 했다.


따라서 팽욱은 이곳에 오면 책자 내 무공구결을 외우고 익히며 동작을 흉내 내고 그 원리를 깨우쳐서 두 친구에게 알려 주는 역할로 만족해야 했다.


"태극(太極)은 만물의 근원을 의미한다. 태초에 태극으로부터 만물이 형성되었는데 이 태극은 음과 양이 서로 분화되지 않고 서로 맞물려 있는 상태, 즉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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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2 +1 24.05.14 709 13 13쪽
10 2-1 +1 24.05.13 755 13 17쪽
9 제 2 장 어린 팽욱의 뛰어난 재치 +2 24.05.13 923 15 11쪽
8 1-6 +1 24.05.12 943 17 9쪽
7 1-5 +2 24.05.11 1,141 16 10쪽
6 1-4 +1 24.05.10 1,166 15 16쪽
5 1-3 +1 24.05.09 1,311 18 13쪽
4 1-2 +1 24.05.09 1,558 19 12쪽
3 1-1 +1 24.05.08 1,795 19 13쪽
2 제 1 장. 평생지기와 소녀와의 운명적 만남 +1 24.05.08 2,459 18 11쪽
1 서 (序) . +1 24.05.08 2,853 2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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