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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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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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5.0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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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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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DUMMY

인과율(因果律)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


내가 막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을 적엔 이 단어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그 인과율이란 개념은 내 2회차 인생에 강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참지 않고 맹지한을 추격한 것이, 첫 번째로 작용한 인과율이었다.

전생의 난 미연이를 그 자리에서 위로했지만, 이번 생엔 이를 악물고 뛰어가 결국 맹지한을 보기 좋게 쓰러뜨렸다.

그리고 난 자연스레 두 번째 인과율을 경험할 수 있었다.


교무실을 박차고 나온 성난 아저씨,

이홍섭 코치였다.


전생엔 그와의 연이 닿지 않았었다.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2반~ 다음 시간은 수학책 펴놓고 있으세요.”

“쌤! 익힘책은요?”

“당연한 건 묻지 마요~.”

“아 익힘책 짱 싫어어.”


11시가 다 되어 가던 시각.


“용제가 익힘책 숙제를 안 했나보- 음? 아, 안녕하세요?”


교실 앞문에 웬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가 교실을 힐끗 쳐다봤다.


담임은 학부모님 중 한 명인 줄 알았는지 버선발로 뛰어나갔고, 곧 다시 들어왔다.


담임마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단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한길, 복도로 좀 나와 볼래?”

“네? 저요?”


4학년으로 돌아가니, 마음까지 어려졌을까.

담임이 복도로 나오라니까 괜히 간이 쪼들렸다.


멈칫하며 교실 뒷문으로 나가니, 그 아저씨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이 사람······.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바로 어제.


“안녕? 네가 한길이니?”

“······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마 한길 친구는 날 모를 거야, 선생님은 육상부 코치거든? 이름은 이홍섭.”


동시에 내 귀엔, 어제 교감의 외마디가 겹쳐 들렸다.

-이홍섭 코치!


그렇다.

회귀하자마자 다음 날, 내 귀에 ‘육상’이란 단어가 꽂히니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든 그 인연이 알아서 찾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어제 오후에 운동장에서 있었던 일 말이다.”

“아, 그건······.”


그리고 뜻밖의 말이 날아왔다.


“정말 잘 달리더구나?”


전생엔 이 말을 담임이 처음 했었다.


체육 시간에 내 달리기 실력을 확인한 선생님은 처음엔 축구를 권유하셨고, 난 그 권유대로 엄마를 졸라 아침 축구반을 1년간 했었다.


5학년 막바지가 돼서야 새롭게 구성된 육상부에서 코치의 눈에 들어, 단거리 달리기로 주종목을 바꿀 수 있었다.


한데, 이번엔 내 전생의 등장인물에 없던 사람이 제 발로 찾아온 것.


“가, 감사합니다.”

“우리 친구 이름도 한길이고, 어제 달리던 모습이 너무 멋져서 이렇게 선생님이 직접 온 건데······.”


이홍섭은 고작 11살 남짓인 내 앞에서도 말을 쭈뼛쭈뼛한다.

정말 내게 무슨 고백이라도 하려는 양 자꾸 입맛만 다셨다.

그래서 알아서 으레 짐작해 대답했다.


“달리기 한번 해보라고요?”


“그, 그래! 그 말이긴 한데.”


“육상부 들어올 생각 없냐고요?”


“······그래! 혹시 생각 있니?”


어젯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걸어온 전생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단 것도 팩트였다.


다만, 난 몇 가지만 생각하며 입술을 곱씹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송치석 코치 밑에 들어가지 않겠다, 전국체전이 되면 컨디션 조절을 잘하겠다, 체력과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정도였다.


그것 말고 명확한 2회차 인생 가이드라인을 짜기엔 아직 너무 일렀다.

난 회귀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11살 소년일 뿐이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꽤나 많았고, 영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한길 친구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니긴 하지만······.”


이어지는 이홍섭의 얘기로 그를 좀 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꽤나 솔직했다.

어린 내게도 자신의 심정과 처지에서 비롯된 제안이 자칫 부담이 될까 봐 선택하는 행동, 내뱉는 말 하나에도 조심했다.

그리고 여과 없이 자신의 속사정을 토로했다.


뜻밖의 얘기까진 아니었다.

어제도 어렴풋이 들었던 얘기니까.


‘육상부 해체.’


사실 난 이때 당시 교내에 육상부가 있는 줄도 몰랐어서 더 놀랐다.

5학년 때 마주한 육상부는 해체한 뒤 새롭게 등장한 것이었음을 이때 알았다.

그러니 이홍섭 코치의 존재는 더더욱 몰랐을 수밖에.


말없이 듣고만 있는 내 반응을 지켜보더니, 이홍섭은 멋쩍게 다시 웃었다.


“아, 그렇지? 부모님께 여쭤봐야겠지?”

“흠, 아뇨. 부모님은 완강하실 거예요.”


그 대답의 의미마저 지레짐작한 이홍섭이었다.


“아······ 그래, 미안하구나. 시간만 뺏었네. 그래, 원래 부모님들은 체육하는 걸 좀 꺼리시지. 시간 내줘서 고맙다.”


내 어깨에 그의 커다란 손이 얹혔다.

그만의 인사 방식일까?

그렇게 이홍섭이 뒤돌아서려 할 때.


“할게요, 달리기.”


“음? 방금은 완강하다며.”


“제가 하고 싶은 걸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에요. 그런 의미로 완강하단 거고요.”


“정말이니?”


이홍섭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당시 난 이홍섭을 믿은 게 아니었다.

전생의 내 기록을 믿었고, 이번 생은 꼭 그 결승선을 넘겠다는 내 독기를 믿었다.


더는 부상 없이 폭주하고픈 내 야망에 베팅했다.


내 목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으니까.

아니, 외려 더 선명해졌다.


육상 국가대표.

그리고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근데 선생님이 우리 길이가 제대로 달리는 걸 다시 한번 보고 싶은데.”


이홍섭은 해맑게 웃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꺼뭇꺼뭇한 수염 사이로 주름이 번졌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만난 기쁨이었는진 나도 모르겠다.


“수업 몇 시에 끝나? 오늘 몇 교시까지니.”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6교시까지요. 점심 먹고 두 교시 더 해요.”

“그럼, 오늘 점심은 조금만 먹어. 운동장에서 한번 더 보고 싶구나, 뛰는 거.”

“네.”

“끝나고 간식 줄게.”

“네!”


4학년 애처럼 정말 간식이란 단어에 기분 좋은 척했다.


그런 간식 하나에 날 회유했다고 생각한 이홍섭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 돌아간 교실.

일찍이 이홍섭의 존재를 알고 있던 용제가 내게 고갤 돌렸다.


“뭐냐, 한길?”


“육상부 코치.”


“그건 나도 알아, 왜 왔대?”


“달리는 거 보재, 어제 나 달리는 거 봤나 봐.”


“뭣?! 그럼, 오! 그럼 너 육상부야?!”


3교시 수학 시간.

용제가 큰 소리로 말한 덕분에, 난 자그마한 세 번째 인과율을 경험했다.


교실 뒤쪽에 나가 10분간 손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마저도 행복했다.

팔이 저려도 우린 서로를 보며 히죽였다.



* * *



용제는 별명이 ‘확성기’였다.


덕분에 우리 둘만 알고 있던 이 달리기 테스트를 지켜보러 우리 반 반절 이상이 운동장에서 대기했다.

아직 이홍섭 코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의 말대로, 점심은 밥 조금에 김치와 나물 정도만 먹었다. 국물은 많이 먹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역시 뛸 때 뱃속에서 액체가 출렁이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때, 우리 반 말고도 다른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야, 이 개새끼야!”


어제 울고불고하며 쪽팔려 했던 맹지한이었다.

맹지한은 혼자서는 무리였는지 자기네 친구들 세 놈까지 대동했다.


아직 코치도 오지 않은 이 시각.

괜히 맞선다면, 패싸움으로 번질 것이고 그럼 용제나 다른 친구들까지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런 맹지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일방적인 시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야, 달리기 다시 붙자!”


“뭐?”


“어제는 내가 저 여자애 가방 들어서 느린 거였고, 다시 붙자고!”


“아니, 나 이제 곧-”


상황을 설명하려 한 내 말을 잘라먹은 맹지한의 다음 멘트는 내 투지를 또 불태웠다.


“쫄? 븅신이네?”


“뭐, 쫄······?”


“쫄았으면 뒈지시던가~”


K-초딩 화법은 도대체가 이길 수가 없다.

전생 포함 30년 이상을 살았던 나조차 이를 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맹지한은 이미 자기 친구들을 쳐다보며, 입술을 씰룩였다.


“크큭, 야 저 새끼 진짜 쫄았네.”

“맹지한, 진짜 쟤한테 쫓긴 거 맞냐고.”

“아니, 어제는 내가 무거운 거 들고 있어서 그랬다고!”


‘쫄이라······.’


천천히 맹지한의 신체를 살폈다.


6학년치고는 확실히 긴 체형.

무엇보다 친구랍시고 데려온 애들보다는 다리가 조금 더 길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기엔 다른 애들보다 체육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터. 지금 저 자신감도 그간의 경험과 우위에서 나온 것일 거다.


때마침, 이홍섭도 자리에 나타났다.

예상외로 많이 모인 인파에 이홍섭이 당황했다.


“아니, 길아. 우리 둘만 있으면 되는데, 뭐냐 이 애들은?”

“제가 부른 거 아니에요.”


용제가 씩씩하게 대변했다.


“우린 길이 응원단이에요!”

“그럼, 저 6학년 애들은 왜 온 거냐.”

“우릴 패러 왔어요! 도와줘요, 선생님!”


용제는 급기야 입에 침 한번 바르지 않고 거짓말했다.


그 말에, 맹지한이 신경질을 냈다.


“아니, 저 새끼 뭐야. 누가 언제 팬대, 달리기 시합하자 했는데!”


“달리기?”


이홍섭은 어안이 벙벙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나섰다.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기록도 재면서, 저 맹지한의 코를 다시 또 납작하게 누를 수 있는 간단하고도 통쾌한 방법이.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코치님. 어차피 달리기할 거, 저 형이랑 같이하면 안 돼요?”


“음?”


“같이 달리면, 저도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뭐, 안 될 건 없는데. 너네 진짜 싸우러 온 거 아니지?”


이홍섭은 못 믿겠단 표정으로 맹지한 무리를 쳐다봤다.

맹지한이 콧방귀를 꼈다.


“팼으면 진작에 팼어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거.”


맹지한은 바로 앞에 커다란 어른이 있는 데도 여전히 버릇없었다.


하나, 이홍섭은 개의치 않고 속행했다.


“그래 뭐, 근데 만일 달리기 끝나고 동생들이랑 싸우면 그땐 진짜 혼난다.”


“네~”


그렇게 이홍섭은 스타팅 라인을 임의로 지정해 주고, 자신은 반대쪽 멀리에 자리했다.


“흠.”


이홍섭과 내 거리는 대략 100m.


수백 번도 넘게 뛰어본 내 안목이 말해 줬다.

이홍섭은 지금 100m 단거리 달리기 기록을 재 보려는 생각이다.

그의 손엔 타이머가 들려 있었다.

더없이 명확했다.


그리고 내 옆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 하나 있고.

맹지한은 쉼 없이 나불댔다.


“보여줄게, 이 형이 제대로 뛰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한 건.

맹지한은 4학년 동생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거다.

그런 맹지한에게 나도 나직이 한마디 했다.


“나도 보여 줄게. 내가 제대로 뛰면 어떻게 되는지.”


일순 감정이 복받친 맹지한이 또 욕 한 사발을 퍼부으려는 그때.

멀리서 이홍섭이 손을 들었다. 준비 신호였다.


달리기에 대해 제대로 배운 바가 없는 맹지한은 선 채로 준비했다. 하나, 나는 달랐다.

웅크린 용수철처럼 몸을 숙였고, 두 팔을 벌려 준비 자세를 취했다.


“븅~신. 그렇게 수그리면 어떻게 달리려고?”

“후······.”


신호가 울리기 직전의 긴장감은.

항상 똑같았다.


그때만큼은 날 둘러싼 이들의 시선보다 주변 환경이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살랑이는 바람.

따사로운 햇볕.

그리고 접지시킨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까칠한 모래들.


원래는 귀만 쫑긋하며 총성만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고갤 치켜들고 이홍섭의 손만 바라봤다.

그의 손엔 빨간 깃발이 들려 있었다.


언제 내려갈지 모르는 저 신호.

흐트러진 바람에 빨간 깃발만 내 쪽으로 펄럭였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봤다.

용제도, 미연이도.

그리고 지금마저 입에 뭘 집어넣고 있는 호동이도.


“흡.”


숨을 한 차례 정지시켰다.


‘이번 생은 절대 지지 않는다.’


스타팅 블록도 없고, 그럴듯한 육상화도 신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상대가 아무리 동네 꼬맹이라 할지라도, 모조리 씹어 먹을 거다.


단 한 번의 달리기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 폭주를 막을 순 없다.


잠깐 사이 침묵만이 운동장을 감도는 그 순간.


붉은 깃발을 쥔 코치 손이 움직이려 한다.


‘깃발이 내려갔······.’


슈확-


‘다!’


지체할 것 없이 무자비한 스타트를 터뜨렸다.


파바바박-!


전생의 한을 한꺼번에 풀듯이 치고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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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17 532 1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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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1 784 1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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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09 870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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