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드라마

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2,047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5.08 12:15
조회
1,197
추천
20
글자
18쪽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DUMMY

달리는 게 좋았다.


새벽에 홀로 서 있던 트랙마저 좋았다.


내가 치고 나가야 할 길이 보란 듯 명확했기에.


눈앞에 보이는 그 트랙을 누구보다 빨리 완주하면 끝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그 길은, 운이 좋게도 내 ‘재능’과 맞닿아 있었다.


‘천재’


그저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건데,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난 그 단어를 더 완벽히 소화하고 싶었고.

그래서 처절히도 달리고 또 달렸다.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한길! 한길!”

“한길 선수, 역시는 역시군요!”

“우리나라에 이런 인재가 있다니, 축복입니다!”

“정말 우리나라가 또 9초대 신화를 쓸 수 있는 걸까요!”


스피커가 찢어질 듯 중계진의 찬사가 터져 나온다.


쏟아지는 찬사와 기대.


내가 달리면, 사람들은 좋아했다.

눈앞에 쭉 펼쳐진 붉은 우레탄 트랙을 빠르게 치고 나가면, 관중들은 환호했다.

그에 맞춰 내 심장은 더욱 격렬하게 박동했다.


종횡무진 초, 중등 육상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이름을 날린 내가 ‘대한민국 육상 국가대표’를 꿈으로 삼은 건, 어쩌면 나뿐만이 아닌 모두의 바람이었다.


-육상 신동, 한 길(12) 초등부 기록 제패, 11초 65.

-‘달리는 게 재밌어요.’ 한길 어린이 성제중 육상부 선택!

-교육장배 중학생 육상 경기, 단거리 우승은 한 길!

-또 중등부 신기록 갈아 치우다.

-한국 육상의 미래! 9초 98!

-한국 체육고, 한 길(18) 2034 전국체전 출전!


달릴 때만큼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저 앞의 결승선을 넘는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전국체전’

전국체육대회.

주요 정치인까지 참석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가진 국내의 공식 대회다.

이곳에서 제대로 인상을 심어야 한다.

그래야 날개를 펼칠 수 있다.


“남자, 고등부 100m 결승입니다!”

“3레인, 한국 체고 한길 선수!”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토해 내야 한다.

그렇다고 딱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늘 하던 대로.


“후우우-”


늘 그랬듯 남들보다 빠르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다.


떠들썩한 중계진의 목소리와 터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진다.


“솔직히 한길 선수는 남자 일반부와 견줘도 될 만한 실력이거든요!”

“아무렴요. 제가 알기론 훈련 중의 비공식 기록이긴 하지만 9초95가 찍힌 적도 있다고 합니다.”

“자. 3번 레인, 한길 선수. 세계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직전의 고등학생 한길 선수입니다. 지금 화면을 보니, 이번에도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네요.”


루틴.

좋게 말하면 루틴이다.

나쁘게 말하면 징크스의 아류고.


호흡을 가다듬다 숨을 한 차례 멈췄다.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모은 뒤, 조심스레 접지하며 자세를 잡았다.

엉덩이부터 발뒤꿈치까지 이완된 근육을 느끼다 멈춘다.

내가 나아가야 할 경로를 힐끔 쳐다본다.


마지막으로 얇게 벌린 입술 사이로 멈춘 숨을 슬쩍 내뱉는다.


“후웁, 후······.”


백번도, 아니 천 번도 넘게 들은 신호탄이 곧 울릴 거다.

천천히.

긴장하지 말자.

빠르게, 늘 하던 대로.

신호탄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매캐한 화약 내음마저 내 것이다.


“5번 레인, 경기체고 도재철 선수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한길 선수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이 선수도 굉장히 기대되는 유망주거든요.”

“그렇죠, 지난번에도 한길 선수에 밀려 2위가 된 도재철 선수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죠.”

“과연 오늘은 이변을 만들 수 있을까요.”


나와 같은 나이의 도재철.

개인 공식 최고 기록은 10초18.


우린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이름을 날렸다.

매스컴은 그런 우리를 하나의 경쟁 구도에 담았다.

그야 보기 좋은 그림이었으니까.


숙명의 라이벌.

듣기만 해도, 괜히 관심이 가고 흥분되지 않는가.


그런 도재철의 수식어는, ‘트랙 위의 악동’


다소 비매너스럽다는 질타도 받지만, 기록으로 경쟁하는 냉정한 세계에서 그의 위명은 자자했다.

잔망스럽고도 재기 발랄한 포즈와 표정.

다들 긴장하는 순간마저도 재밌는 게임 한판을 즐기러 온 한량 같은 모습.


문제는 그 장난기 가득한 도발 아닌 도발이 종종 함께 뛰는 선수를 향한다는 거다.

괜히 저번 경기에서 옆 레인 선수가 분을 참지 못하고 드잡이질을 하다 실격된 게 아니었다.

상대의 기록과 기회 그리고 페이스마저 무너뜨리는 저 행동.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


하나, 그런 도재철의 권세가 유일하게 범접하지 못한 게, 나였고.


그만큼, 알게 모르게 도재철은 내게 위기의식과 동시에 도전 의식을 홀로 불태웠다.


“한길 선수를 대적할 라이벌이 도재철 선수밖에 없죠?”

“그렇죠, 기록으로 봐도 무섭게 따라오고 있지만 한길 선수는 매 대회 때마다 자기 기록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도재철 선수가 유일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도재철 선수는 루틴은 따로 없나 봅니다. 저 혓바닥 내민 모습 보십쇼. 아예 이 순간마저 즐기고 있습니다.”


중계진의 소개와 함께, 그를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 찰나의 순간에 도재철과 내 눈이 맞았다.

도재철의 눈썹이 잠깐 찌푸려지다 씰룩인다.


무표정으로 일관한 나와 달리, 녀석은 여유롭다.

곱씹는 입술에서 번지는 비릿한 웃음.

작게나마 움직이는 놈의 입술 모양이 절로 읽혀 버렸다.


-쫄?


고개를 다시 돌렸다.


흔들리지 말자.

내 길만 가면 된다.

저 트랙 끝자락에 보이는 흰 라인.

저기만 누구보다 빠르게 넘어서면 된다.

오직 그것뿐이다.


호흡을 가다듬다 숨을 한 차례 멈췄다.

기도손 모양을 한 뒤, 그대로 땅으로 접지.

엉덩이부터 발뒤꿈치까지 이완된 근육을 느끼다 멈춘다.

내가 나아가야 할 경로를 힐끔 쳐다봤다.


“자, 준비.”

“이번 남자 100m의 결승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지.”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후······ 흡!”

탕!

“출발했습니다!”


강렬하게 터뜨리는 초반 스타트.

짧은 시간에 최고 속력을 끌어내야 한다.


파바바박-!


“스타트는 지금 도재철이 빨랐어요! 도재철!”

“6레인의 조명준 선수! 좋습니다!”


더, 빠르게.

할 수 있잖아.

짧게 생각.

더 빠르게.

뛴다, 뛴다, 뛴다!


“자, 한길 선수가 치고 나옵니다!”

“거리가 벌어집니다!”

“3레인에 한길, 한기이일!”


그때.


‘으음?!’

아니, 잠깐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이 트랙 위에 쏟았는가.


“하, 한······ 아! 한길 선수!”

“쓰러지고 맙니다! 한길!”


하나,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


넘어졌다.

정확히는 고꾸라졌다.


그 1초도 되지 않은 흐트러짐에 무려 7명의 선수가 날 추월했다.


눈앞에서 선수들이 멀어진다.

강한 무언가가 내 오른쪽 다리 전체를 옭아맨 것만 같다.


······무겁다.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생에 처음 느껴본 경험.


‘근육 경련?’


아니 왜.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고.

오른쪽 다리를 내려다보니,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햄스트링 파열.

순식간에 부어 버린 허벅지 뒤쪽에 짙은 멍이 퍼져 있다.

동공이 흔들렸다.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날 쳐다보는 수많은 관중의 시선도.

어느 때보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한길 선수, 결국은 멈춰 버렸습니다!”


이미 중계석의 힘찬 함성은 다른 이에게 향하고 난 뒤였다.


“도재철입니다! 도재철!”

“5번 레인의 도재철! 10초17!”

“공식 기록은 좀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우승은 명확합니다!”

“금메달은 도재철 선수가 차지했고요! 은메달은 누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도재철 선수와 확연히 차이가 날 것 같아요!”

“박우진 선수나 조명준 선수일 것 같긴 합니다!”


처음이었다.

내가 트랙을 끝내지 못한 게.

그리고 또 처음이었던 건, 내가 1등이 아닌 것과 8등인 것.


‘하, 안 돼.’


벅차오르는 숨을 뱉어 가며 황망하게 코치를 바라봤다.


송치석 코치.

내게 항상 웃기만 했던 그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

처음엔 걱정과 우려 섞인 표정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어린 나였어도 단번에 알았다.

그건 분노와 멸시의 눈빛이라고.


“역시 뚜껑은 열어봐야 압니다!”

“도재철 선수! 멋지게 다시 퍼포먼스!”

“육상계의 재간둥이! 설마 저 혀가 지금 엎드려 있는 한길 선수를 향해 있는 건가요?”


도재철이 개구진 표정으로 내게 혀를 삐죽 내밀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비난조 기사가 쏟아졌던 그 표정이 이젠.


“도재철! 힘들 텐데 밝고 유쾌하군요!”


또 다른 찬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뚜껑은 열어 봐야 한단 저 말.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내 가슴에 칼이 되어 꽂혔다.

핏물 하나 흐르지 않았지, 그 말은 당시의 내게 치명상을 넘어 다음 트랙에 서기까지 무한한 두려움을 선사했다.


억울했다.

난 늘 겸손했었으니까.

우쭐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았다.

감히 우승을 예견하지도 않았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다.


늘 저 끝엔 내가 성취해야 할 마지막 열매가 있단 마음으로 처절하게도 달렸다.

그런데······.

왜 저를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코치님.


처음으로 맛본 트랙 위의 패닉은.


내 삶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 * *



-한 길 선수, 결승 8위. 중도 포기?

-햄스트링 부상, 한 길 선수 이겨 낼 수 있을 것인가?

-한 길, 연이은 대회에 6위로 전락.


하나가 꺼지니, 다른 하나가 자연스레 부상한다.


-꺼져 가는 육상의 별 한 길, 떠오르는 혜성 도재철!

-동갑내기 경기체육고, 도재철 선수. 2위의 설움을 토하다!

-진짜 별은 따로 있었다! 도재철(20) 육상 국가대표 발탁!


파란만장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어떻게든 다시 트랙에 발을 딛으려 했지만, 그럴듯한 내 자리는 없었다.


“그만하지?”


세상은 차가웠다.

애초에 나만을 위한 트랙은 없었단 걸 알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사람들은 나, 한길을 좋아하던 게 아니었다.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는 좋은 재목이 필요했을 뿐.

기록도 좋고, 심지어 마스크도 좋은 그런 인물이면 됐었던 거다.

그런 대체재를 찾는 건 더더욱 쉬웠다.


바로 내 뒤의 ‘도재철.’


매스컴에서 멋대로 나와 숙명의 라이벌 구도로 삼았던 그 도재철은 결국 내 열매를 따 먹었다.

그래, 사실 원래 내 열매란 것도 없었겠지.


뭐든, 빠른 녀석이 채 가는 싸움이었으니까.


“짐 싸라, 어차피 졸업하는 마당에.”


한 번씩 겨우내 얻은 기회에선 유의미한 순위는커녕, 지지부진한 성적과 함께 비난의 과녁이 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손가락질했다.


‘애매한 재능.’


어릴 적부터 박수 받아 왔으니까.

그 단어만큼은 내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


내가 트랙에서 열심히 뛰면, 처음엔 가까이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웃었고 다음엔 코치님이 웃었고, 더 훗날엔 매스컴에서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다.


“코치님, 재활 잘할 테니까 한 번만 더······.”

“새끼가 재활이 뭐 하루아침에 되는 줄 알아? 하긴 네가 그동안 다쳐 봤어야 알지.”


이젠 내가 뛰어도, 아무도 웃지 않는다.

눈살을 찌푸리고, 혀만 찬다.

내 도전엔 항상 관심을 두던, 가까이 있던 코치마저 돌아섰다.

그리고 왜 송치석 코치가 그리도 냉소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나락은 비단 내 것만이 아니었기에.


코치의 불명예는 물론이거니와 줄곧 그가 그려왔던 미래에도 작지 않은 타격을 가져왔다.

그런 코치의 선택은 단순하고도 확실했다.


혹은 떼면 되니까.


이미 한참 바뀌어 버린 그의 말투는 여전했다.


“어이, 한길.”

“예? 네, 코치님.”

“여기가 어딘 거 같아, 네 눈엔?”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여기가 어디야.”

“그, 그야······.”

“접어라, 여긴 자선 사업하는 곳 아니다.”

“코치님.”

“나도 이제 좋은 말 안 나온다, 나가라.”


죽기 직전에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장면들이 주마등이라 했던가.


접으란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기에.

일순 장면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쳤다.


한국 체고 입학과 동시에 누구보다 버선발로 뛰어왔던 송치석.

솔직히 그럴듯한 지도를 해준 것은 딱히 없던 그였지만, 내가 그런 그에게 바랐던 건 하나였다.

웃어 주던 어른.

내가 뛰면 환하게 웃어 주던 어른이었단 것 자체로 든든했다.


항상 내 선수 생활의 미래를 먼저 그리며 앞으로 승승장구할 생각에 설레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거면 됐었다.


근데 애석하게도 이제야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심하게 아팠거나 슬럼프 왔을 적에도 송치석, 이 인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었다.

오롯이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산들이었다.


아, 아.

그뿐이었구나.


“하.”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그럼 인정하는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를 떨궜다.


죄인이 된 것 같다.

잘못 하나 한 것 없는데.


다친 건 나고, 닫힌 건 내 미랜데.

왜 내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냔 말이다.


“네, 감사했습니다.”


코치실을 나가면서도 귀를 쫑긋했다.

혹시나 날 다시 붙잡지 않을까 해서.


근데.

아직 덜 닫힌 문틈 사이로 그의 혼잣말이 들렸다.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냥 바로 갈걸.


“아, 애매한 새끼. 이번 기수도 나만 줄 잘못 잡았네, 시발.”


난 이제 확실한 녀석이 아닌 애매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애매하다면,

꿈은 이룰 수 없었다.



* * *



선수들은 누구나 언제든 다칠 수 있다.

하여 그 난관을 어떻게 딛고 일어서며, 그 움츠린 탄력을 가지고 얼마나 더 튀어 오를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한평생 그런 적 없던 내게 그간 있어야 할 부상이 통째로 던져진 걸까.

난 결국 재기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2층 계단 하나를 내려가는 게 이리도 버겁다.


그런 내가 다시 전력 질주를 하고 싶단 건 말이 안 된다. 나도 그걸 잘 알았다.


문득 든 생각에 찾아본 기사는 어김없이.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도재철 선수 도전.

-한국 9초대 역사를 쓰려 도전한다.

-도재철 키즈, 육상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다.


그날 넘어지지 않았다면, 다치지 않았다면, 조금만 더 훈련에 정진했더라면, 컨디션에 만전을 기했다면······.


이젠 헛된 IF겠지만.

이 기사의 중심에 내가 설 수 있었을까.


과연?


이젠 나마저 내게 의구심이 차오른다.

아니었을 거란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하······.”


아직도 눈을 감으면, 내 앞을 치고 나가는 결승전 선수들의 뒷모습이 훤하다.

아, 도재철의 날름거리는 혓바닥도.


무자비하게 뽑아 버리고 싶은데, 녀석은 가도 이젠 너무 멀리 갔다.


난 보란 듯이 튀어 오르지 못했다.

영원히 접혀 버린 용수철이었다.

외면하려 했지만, 이젠 정말 알 것 같다.


“더는 내가 달릴 트랙은 없구나.”


좁은 골목길만이 그날의 트랙처럼 가느다랗게 나 있을 뿐.

골목길 끝의 횡단보도만 보며 힘없이 걸었다.


쏴아아-

터벅터벅-


어쩌면 내 생의 끝도 결국 내 탓이었다.


비까지 대차게 내리는 그날 밤.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땅만 보고 걸었으니까.


빠아아앙-!

펑! 끼이익-!


주전부리를 고이 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저 멀리 날아간다.


의식을 차렸다고 하기에도 뭣한 상태로 내가 다음으로 본 장면은 까만 밤하늘이었다.


쓰러진 거다.

얼굴에 굵은 빗방울만이 따갑게 떨어지는 걸 간신히 느꼈다.


일순 어지러웠지만, 긴 안식에 들 것만 같은 착각이 엄습했다.


“하, 학생! 괜찮아?! 학생, 학생! 야!!!”


그 어지러움은 곧 잠잠해졌다.

기나긴 고요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끅, 하 씨발 끅, 좆됐네······.”


하긴, 밤늦은 시각에 술에 거나하게 취했던 운전자 잘못도 있긴 했다.

하나, 그리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조금은 고마웠다.

커다란 바위에 짓눌린 것 같은 내 인생을 이렇게나마 걷어 줬으니까.


게다가 참 우습게도.

인생의 반을 트랙에서 보냈던 내가 생의 마지막에 누운 자리는 또 자동차들의 트랙이었다.



* * *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한때나마 대한민국 육상계에 9초대를 실현한 한길.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현장이 카메라 속에 담긴다.

짧게나마 클립 영상으로 제작된 이 보도는 곧 다음 소식으로 바뀌었다.


은퇴한 육상 코치 이홍섭은 한 손에는 핸드폰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직 타다 남은 연초 한 대를 마저 피웠다.


“어휴, 불쌍한 녀석.”


이홍섭은 씁쓸하게 핸드폰 화면만 넘겼다.


[한 길(24), 잊혀진 육상계 스타, 하늘의 별이 되다.]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기어코 그의 목구멍 너머로 육두문자가 흘러나왔다.


“시팔, 그렇게 기대한다고 할 땐 언제고. 다쳤을 땐 욕하더니 막상 죽으니깐 이러네.”


그의 입술에서 한 움큼의 연기가 내뱉어지고,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문득 궁금해져 댓글창을 확인하니, 역시나 고인에 대한 예의가 바른 대한민국이었다.

이때 ‘고인’은 명줄이 끊겼다는 의미도 맞겠지만, 잊혔단 말이 더 시큰하게 들어맞았다.


-거기서는 마음껏 달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도합니다.


그리고 아껴도 되는 관심이 이어진다.


-그래도 한길이 고교 시절에 만든 기록이 넘사벽이긴 함. 유일한 9초대 아님?

-전국대회 이후로 부상을 못 이긴 것도 자기 능력 한계임.

-다 그렇지 뭐, 그렇게 잠재력 따지면 전부 다 월클이게?

-어차피 도재철이 10초 극초반대라 곧 뚫을 거. 걱정 안 함.


이홍섭은 이끌리듯 담뱃갑에 연초 하나를 더 꺼냈다.


“후······.”


그렇게 혀를 차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뭐, 자기 인생도 그렇게 남 얘기에 애도할 만큼 펴지지 않았단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안타까움 가득한 한숨만 거듭 토해낼 뿐이었다.


근데, 나는.

나, 한길은-


“나, 살아 있어요?”


근데 살아 있는 그 모습이 좀 다르긴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18 501 13 11쪽
13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17 532 11 16쪽
12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16 609 9 15쪽
11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24.05.15 627 11 12쪽
10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4 696 14 16쪽
9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3 725 15 15쪽
8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2 757 17 15쪽
7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1 784 18 16쪽
6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10 813 16 15쪽
5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09 870 20 12쪽
4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3 24.05.09 925 19 13쪽
3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1 24.05.08 1,065 23 18쪽
» EP1. 육상천재가 회귀했다. +2 24.05.08 1,198 20 18쪽
1 EP0. 프롤로그. 트랙 +4 24.05.08 1,245 22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