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웨이 시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페이스트
작품등록일 :
2024.05.08 12:18
최근연재일 :
2024.07.18 20:40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817
추천수 :
52
글자수 :
380,628

작성
24.06.17 20:40
조회
8
추천
1
글자
16쪽

시그윈 1장 (9)

DUMMY

짧은 소풍을 즐긴 다음 날.


쥬드는 기분 좋게 집을 청소하고 있었다.


딱히 좋아하는 일과는 아니었으나 어제 시그윈과 한 약속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나만 아는 숨은 명소가 있거든. 다음에 같이 가보자. 내가 초대할게."


"정말?"


"응. 기대해도 좋아."


쥬드는 들뜬 마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언제쯤 불러주려나. 오래 걸리진 않겠지?"


조만간 시그윈에게 들려줄 노래를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쥬드였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방을 정리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쿵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로엔!"


쥬드는 익숙한 목소리에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장난기 많아 보이는 엘프가 밖에 서 있었다. 다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나름 진지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음··· 혹시 잠깐 이야기 해도 괜찮을까? 물어볼 게 있어서."


"지금 청소 중이라서··· 우리 집 정원에 벤치가 있는데 거기라도 괜찮을까? 내가 나갈게."


로엔은 흔쾌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둘은 나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쥬드가 물었다.


"팔은 이제 괜찮아?"


"응. 엘프는 회복력이 좋거든."


의외로 얌전한 대답이었다. 시그윈이 묘사한 대로라면 과장된 몸짓으로 난리법석을 떨어야 할 텐데.


낯을 가리는 건지, 아니면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서 자중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쥬드 입장에서 이런 로엔도 나쁘지는 않았다.


"시그윈한테 듣긴 했는데 다 나았다니 다행이네."


쥬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용건이 뭐야?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그게 말이지···"


로엔은 우물쭈물하다가 물었다.


"쥬드. 너는 시그윈과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


"···?"


쥬드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로엔은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다.


"오해하지 마! 난 딱히 너희 둘 사이를 방해하려는 건 아니야. 다만 그냥 네가 로엔과 어디까지 친해지고 싶은지 궁금할 뿐이야."


쥬드는 보고 들었던 로엔의 일면을 생각해 보았다. 시그윈에게 과거 이야기를 몇 번 들었기에 사정은 알고 있었다.


시그윈에게는 로엔은 엘프를 귀찮게 하는 장난꾸러기라는 인식이었지만 쥬드가 보기에는 시그윈을 많이 걱정하는 반쯤 부모 같은 존재였다.


솔라니아 외곽에 자리 잡은 외딴집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는 성실함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본인이 원인이라고는 해도 지금 있는 집도 다 로엔의 도움으로 지었다고 들었다.


추방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부채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로엔은 시그윈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있었다.


적어도 쥬드가 보기에 나쁜 엘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흔쾌히 질문에 답했다.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냐고 하면··· 물론이지."


"그럼 어디까지 친해지고 싶은데?"


"···시그윈한테 이야기하지 않을 거지?"


"응. 약속할게! 엘프는 절대 약속을 어기지 않으니 믿어도 좋아."


쥬드는 시그윈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했다.


'시그윈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달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나는...'


언젠부턴가 품고 있었던 마음을 슬며시 밖으로 꺼내놓았다.


"나는 시그윈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길 원해."


"그렇구나···."


로엔은 고민스러운지 눈살을 찌푸렸다. 쥬드는 그 표정 뒤에 어떤 고뇌가 숨어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시그윈한테 들었어. 엘프와 인간은 다르다며?"


"맞아. 그래서 나는 인간과 엘프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


여지를 찾아보기 힘든 단호한 발언이었다.


"서로 다른 본성 때문이지?"


"응. 본성은 그리 쉽게 바꿀 수 없어. 인간과 엘프, 어느 쪽이든 정말 어려운 일이지."


"그런 걸까..."


"납득이 잘 안 가지? 시그윈이 금방 감정을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야."


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감정을 익혀나가는 시그윈을 보면 본성이 달라 이어질 수 없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로엔은 주저없이 말했다.


"그래도 이건 알아둬. 시그윈이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엘프의 본성을 사라지는 건 아니야."


"엘프의 본성이라면..."


쥬드는 시그윈에게 들었던 속담을 떠올렸다.


"···'엘프는 하나를 잃어도 가장 소중한 것부터 내려놓는다'는 속담과 관련이 있어?"


"시그윈이 말해줬나 보구나. 맞아."


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언제든 내려놓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엘프의 마음가짐을 뜻해. 엘프의 본성은 세계수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본능에 있거든."


"소중한 것을 언제든 내려놓는다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어."


"인간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더라."


로엔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만났던 인간 중에도 엘프와 이어지고자 하는 인간은 많았어. 엘프의 외모가 인간이 보기에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하더라고."


그 때문에 원정대만 꾸렸다 하면 엘프와 친해지는 방법을 묻는 인간이 매번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엘프와 친구가 된 인간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어."


"어째서?"


"자기만의 본능에 충실하고,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않으며, 언제든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엘프거든. 잠시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깊은 관계가 될 수는 없어."


쥬드가 아는 시그윈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나 로엔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아직 로엔만큼 시그윈을 잘 안다고 하긴 어려웠으니까.


그럼에도 쥬드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방법이 있다면 알려 줘. 난 시그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부탁이라니···?"


쥬드는 좋은 사람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로엔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시그윈이 너한테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상세한 표현은 달랐지만 쥬드는 대충 비슷한 의미라 여기고 그렇다고 답했다.


"별일이네. 이유가 뭔데?"


"듣기로는 좋은 엘프가 되고 싶은 것 같던데?"


"좋은 엘프? 그런 건 나한테 말하면 바로 알려줬을 텐데···"


어제 분통을 터뜨리던 모습을 보면 그리 녹록지 않을 것 같았으나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뭐, 됐어. 시그윈도 나름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


로엔은 찝찝한 얼굴로 귓가를 긁적였다.


"다시 돌아와서, 엘프와 깊은 관계를 맺는 법을 물었지?"


"응.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해볼게."


"그렇단 말이지···"


로엔은 어느새 더없이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해. 네가 인간의 본성을 포기하는 거야."


"···뭐?"


"어때? 너는 네 인간다움을 버릴 수 있어?"


"그건···"


"루나에르 엘프처럼 모든 감정을 버리고 영원히 순수한 아이로 남을 수 있겠어?"


쥬드는 자신이 쥬드라는 인간이었기에 시그윈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시그윈은 대하는 모든 방식은 다 쥬드가 평생 쌓아 올린 인간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과연 그러면 시그윈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쥬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어. 그저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방법으로 좋아하면 안 돼?"


"변할 각오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면 안 돼. 그건 욕심이야."


"원래 인간은 욕심쟁이인걸. 소중한 것이 생기면 꼭 붙들고 절대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곧 인간의 본성이야."


"그러면 네 본성과 시그윈, 둘 중 어느 것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말이야?"


"응. 그럴 수밖에 없어."


쥬드가 손을 꼭 쥐었다. 움켜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난 시그윈을 잃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시그윈을 잃지 않으려고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어. 이 두 가지는 나눌 수 없는 거야."


"어째서?"


"나는 인간으로서 시그윈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인간의 본성을 포기한다는 말은 시그윈을 생각하는 마음을 잃는다는 말과 똑같아."


쥬드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정원에 있는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슬퍼 보이는 얼굴이 비쳤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풀잎 끝에 걸친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조용한 파문이 일어나며 수면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쥬드는 연못을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구나..."


그때 로엔이 담담한 말투로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런 인간을 나는 좋아해."


"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드니 로엔이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네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유쾌한 인간이라 정말 다행이야."


쥬드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그, 그래? 그럼 시그윈과 친하게 지내도 괜찮은 거야?"


"말했잖아. 너희 둘 사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엘프는 거짓말 안 해."


"하지만 인간과 엘프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로엔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건 맞아. 지금도 나는 인간과 엘프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럼 결국···"


"하지만 인간과 인간은 이어질 수 있겠지."


쥬드가 눈을 굴리며 의문을 표했다.


"무슨 뜻이야?"


"늦기 전에 엘프를 인간으로 만들라는 말이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쥬드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다.


"응원해 주는 거야?"


"응. 오직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걸 나는 알거든. 게다가···"


로엔은 아스라한 미소로 먼 곳을 응시했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잠시 후 속삭임 같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 편이 최선이니까."


"그게 무슨···?"


"아, 신경 쓰지 마. 그냥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간 어떤 사람이 생각났을 뿐이야."


로엔은 이만 가보겠다며 일어섰다. 쥬드는 집 문 앞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따라갔다. 그녀는 정원을 빠져나가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마워. 로엔."


"무슨. 어차피 시그윈이 원한다면 난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인걸. 들어줘서 고마워."


"사실 조금 놀랐어. 너랑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줄은 몰랐거든."


"그냥 인간 앞에서는 인간이 되었다가 엘프 앞에서는 엘프로 돌아갈 뿐이야. 인간과 깊게 사귀다 보니 이렇게 되더라고."


로엔은 뒤를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 표정과 몸짓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인간과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럼 잘 있어. 네가 아무것도 잃지 않기를 기도할게."


로엔은 마지막에 그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쥬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은 길이 만들어지며, 모든 길은 언젠가 만난다. 울창한 숲속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시그윈은 각각 루나에르, 솔라니아, 던케일로 이어지는 세 갈래길에 서 있었다.


각각의 목적지까지 거리가 비슷하기에 사는 곳이 다를 경우, 약속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시그윈은 조만간 로엔에게 여기 근방에 벤치를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까 고민했다. 가로등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으나 마석도 필요하고 건축가에, 마법사까지 고용해야 하니 그만두었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잠겨 있으니, 뒤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던케일 쪽이었다.


"시그!"


돌아보니 쥬드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로 말을 건넸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왔네?"


시그윈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널 빨리 보고 싶었으니까."


"···너 만나자마자 갑자기 그런 말 하기야?"


"응? 내가 뭐 이상한 말 했어?"


쥬드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아냐, 됐어. 정말 엘프 앞에서는 방심할 수가 없네."


시그윈은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보다 네가 아는 명소가 있다며? 빨리 가보자."


쥬드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채근하자 시그윈은 떨떠름한 얼굴로 발걸음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시그윈이 아는 명소는 갈림길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제법 찾기 힘든 곳에 있었다.


일단 평평한 길을 벗어나 인적 드문 숲으로 들어간 긴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면 울창한 삼림이 나오고 그 안에 감춰진 평야를 찾아야 했다.


그래도 길이 험하지 않았고 많이 가 봤기에 오래지 않아 삼림 속에서 명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자, 도착했어. 여기야."


시그윈은 상록수 사이로 보이는 드넓은 들판을 가리켰다.


"우와···"


우거진 숲 사이 오롯이 해바라기만이 가득한 꽃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꽃잎은 햇빛에 하얗게 부서지며 반짝였다. 활짝 핀 꽃이 바람에 넘실거리며 들판 위에 금빛으로 물결이 쳤다.


내내 푸르렀던 세상 속에 선명한 노란 빛이 배어들고 있었다.


마치 도화지 위에 찍은 노란 점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머나먼 바다 위에 펼쳐진 신기루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그 풍경은 마치 낙원의 한 조각을 떼어 온 듯이 아름다웠다.


쥬드는 해바라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꽃들 사이를 걸으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마 소녀였다.


"이노릴 숲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니···"


"마음에 들어?"


"응! 살면서 이렇게 멋진 풍경은 처음 봐."


"지금까지 느낀 감정을 떠올리며 네가 뭘 좋아할지 생각해 봤어. 그랬더니 여길 데려가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시그윈은 손을 가슴에 대며 덧붙였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말하다 보니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어렴풋하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방금은 꽤 표정이 자연스러웠다고.


"정말 고마워, 시그. 나 너무 기뻐···."


쥬드는 웃고 있었다. 반면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흑··· 나···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쥬드가 눈물을 흘리는 건 처음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분노만큼이나 강렬한 감정으로 보였다.


시그윈은 쥬드가 마음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인간은 기쁘면 눈물을 흘려?"


시그윈의 물음에 쥬드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훌쩍거렸다.


"너무 기뻐서 그랬어. 보통은 슬플 때 눈물이 나와."


"슬프다고? 그것도 인간의 감정 중 하나 아냐?"


"맞아. 내가 알려주지 않은 마지막 감정이지."


"그럼 가르쳐 줘. 난 널 좀 더 이해하고 싶어."


"그래···?"


쥬드는 눈물을 그치며 잠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엘프를 인간으로 만들라고 했었지···"


쥬드는 고뇌에 찬 눈동자로 시그윈을 바라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민이 깊어 보였다.


시그윈은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눈을 맞췄다. 꽃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만이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잠시 내려앉은 그늘이 물러가고 다시 햇빛이 내릴 때쯤이었다.


그녀는 표정을 풀며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아냐. 몰라도 괜찮아."


완전히 마음을 정한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슬픔은 그리 좋은 감정이 아니거든."


시그윈은 과거 쥬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반문했다.


"정말? 슬픔도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이라며. 몰라도 돼?"


"응. 가능하면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어."


"그런가···"


"정 궁금하면 내가 슬픈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응!"


쥬드는 결심한 듯 손을 쥐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는 이야기해도 괜찮겠지."


그녀 뒤로 노란 꽃잎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시그윈. 그때 기억해? 우리 처음 만났던 날 말이야."


"당연하지. 너 혼자서 벌벌 떨고 있었잖아."


포로롱. 꽃잎 위에 앉아 있던 나비가 날아 올랐다. 쥬드는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그날 나 자살하려 했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헥사웨이 시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화수목금 오후 8시 40분에 연재하겠습니다. 24.05.10 27 0 -
53 아이라 1장 (3) 24.07.18 4 0 18쪽
52 아이라 1장 (2) 24.07.17 6 0 11쪽
51 아이라 1장 (1) 24.07.16 8 0 15쪽
50 시그윈 1장 (29) 24.07.15 5 0 15쪽
49 시그윈 1장 (28) 24.07.12 5 0 11쪽
48 시그윈 1장 (27) 24.07.11 6 0 11쪽
47 시그윈 1장 (26) 24.07.10 9 0 16쪽
46 시그윈 1장 (25) 24.07.09 7 0 20쪽
45 시그윈 1장 (24) 24.07.08 7 0 15쪽
44 시그윈 1장 (23) 24.07.05 8 1 19쪽
43 시그윈 1장 (22) 24.07.04 9 1 16쪽
42 시그윈 1장 (21) 24.07.03 7 1 15쪽
41 시그윈 1장 (20) 24.07.02 7 1 13쪽
40 시그윈 1장 (19) 24.07.01 8 1 11쪽
39 시그윈 1장 (18) 24.06.28 8 1 12쪽
38 시그윈 1장 (17) 24.06.27 8 1 14쪽
37 시그윈 1장 (16) 24.06.26 9 1 11쪽
36 시그윈 1장 (15) 24.06.25 10 1 20쪽
35 시그윈 1장 (14) 24.06.24 8 1 13쪽
34 시그윈 1장 (13) 24.06.21 9 1 20쪽
33 시그윈 1장 (12) 24.06.20 6 1 14쪽
32 시그윈 1장 (11) 24.06.19 8 1 13쪽
31 시그윈 1장 (10) 24.06.18 9 1 19쪽
» 시그윈 1장 (9) 24.06.17 9 1 16쪽
29 시그윈 1장 (8) 24.06.14 9 1 17쪽
28 시그윈 1장 (7) 24.06.13 9 1 20쪽
27 시그윈 1장 (6) 24.06.12 9 1 14쪽
26 시그윈 1장 (5) 24.06.11 9 1 16쪽
25 시그윈 1장 (4) 24.06.10 9 1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