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웨이 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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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2:18
최근연재일 :
2024.07.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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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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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윈 1장 (22)

DUMMY

시간이 흘러 더 늙기 전에 빨리 파훼법을 찾아야 했다.


당장 떠오르는 해결책은 석상을 멈춰 세워 시간의 흐름을 막는 방식이었다.


석상은 각각 해와 달의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었다. 방법을 찾아 석상을 멈춘다면 해와 달도 같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 가능한 방법은 여러 가지였으나 일단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두 석상은 모두 무거운 암석으로 이루어진 데다 받침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힘을 써도 그저 꿋꿋이 제 방향을 고수할 뿐, 회전을 멈출 수 없었다. 반대로 미는 것 역시 당연히 불가능했다.


이러면 이미 얻어낸 단서를 가지고 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시그윈은 석상이 멈췄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석상은 해 또는 달이 세계수 위로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만 멈췄다.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기도를 올리는 순간에는 눈을 뜨고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석상이 멈췄었다.


'혹시 강제로 눈을 뜨게 하면 석상이 멈추지 않을까?'


시그윈은 바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시그윈은 막 기도를 끝낸 남자아이 석상에 올라가서 얼굴을 바라보았다. 덮인 눈꺼풀 아래 돌로 된 속눈썹이 튀어나와 있었다.


시그윈은 바로 양 눈썹을 잡아 동시에 밀어 올렸다.


덜컥. 가려졌던 눈동자가 드러나며 석상이 멈췄다. 석상은 멈춘 위치에서 그대로 정면으로 손을 뻗어 기도를 올렸다.


다행히 예상대로였다.


"성공인가?"


이제 이러면 해와 달이 멈춰야 했다.


기도하는 석상을 뒤로 하고 시그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자마자 알았다.


이미 해와 달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만큼 빨라진 상황에서, 해는 멈추지 않고 지평선 아래로 잠겨 들었다.


다시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세계수가 말했다.


"안타깝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하늘에 닿을 수는 없는 법이야."


"이런···"


"다른 방법을 찾아 봐. 정해진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시그윈은 하는 수 없이 잡고 있던 눈썹을 놓았다. 그러자 석상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눈꺼풀에 덮였다.


그 순간 석상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앗!"


급격한 회전의 여파로 시그윈은 석상에서 튕겨 나갔다. 사냥꾼의 감각으로 간신히 착지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질 뻔했다.


착지하고 나서 일어서려니 무릎이 시큰거렸다. 쥬드의 할머니가 겪었다는 노화가 이런 것일까. 점점 몸이 피로에 찌들어 노쇠해지고 있었다.


시그윈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시 석상에 다가갔다.


내려와서 보니 남자아이 석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원래 속도로 해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약간의 피해를 입긴 했으나 실험을 통해 두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강제로 눈을 뜨게 만들면 석상을 멈출 수는 있지만 해는 멈추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눈이 감기면 석상은 빠르게 돌아 원래대로 해의 움직임을 쫓는다.


여자아이 석상도 보나 마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국 석상을 이용해 해와 달을 멈추는 방법은 불가능했다. 세계수의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끝이 다가오기 전에 주어진 단서 내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발견해야 했다.


시그윈은 확인한 정보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석상과 무관하게 움직이며 멈추지 않는 해와 달. 각각 해와 달을 따르며 시계 방향으로 도는 두 석상.


석상은 해 또는 달이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 멈춰서 손을 뻗으며 기도를 올린다.


눈을 뜨게 만들어서 석상의 움직임을 잠시 멈출 수 있으며 눈이 감기면 빠르게 돌아 원래대로 해 또는 달을 쫓는다.


기믹에서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 요소는 없다.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단서가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서 써먹어야 했다.


시그윈은 이미 시도했던 방법은 머릿속에서 지워나가며 조금씩 범위를 좁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문득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 요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석상은 멈출 때마다 손을 뻗어 기도를 했었지. 여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직 기도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했다. 해와 달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정작 그 둘은 석상과 완전히 별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실처럼 세계수와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석상이 손을 뻗어도 세계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석상은 강제로 눈을 뜨게 만들었을 때도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석상에게 기도란 꼭 필요한 행위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기도의 대상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설마 기도를 올리는 대상이 따로 있는 걸까? 그렇다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시그윈은 시야에 두 석상을 모두 담았다. 슬슬 눈이 침침해져 가까이 다가가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남자아이는 해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돈다.


여자아이도 달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돈다.


세계수는 손을 뻗어도 하늘에는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 손을 왜 뻗을까. 그저 의미 없이 허공을 휘저을 뿐인 걸까.


해와 달은 너무 높았고 세계수는 너무 멀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손을 뻗어서 닿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이라면···'


두 석상을 바라보던 시그윈은 문득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설마?'


석상의 팔은 그다지 길지 않다. 뻗어 봤자 닿을 수 있는 곳은 없다.


하지만 두 석상이 마주 본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뻗는다면?


시그윈은 두 석상 간의 거리와, 뻗은 팔의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기도라는 요소의 활용. 적절한 거리와 길이.


단서가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 방법이 유일한 파훼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달이 높이 떠올랐다. 여자아이 석상은 기도를 올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상의 방향을 바꿀 수 없고 오직 멈추는 것만 가능하다면, 두 석상이 마주 보게 하는 방법은 단 하나.


두 석상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둘 다 눈을 뜨게 해서 멈추는 방법뿐이었다.


시그윈은 여자아이 석상의 받침대 위로 뛰어 올랐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으나 이 악물고 버텼다.


두 석상이 마주 보는 시간은 구조상 단 한순간 뿐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또 해와 달이 한번 순환하기 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몸이 더 약해질뿐더러 시간의 흐름도 더 빨라질 터였다. 튕겨 나갔을 때의 여파 정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면 석상이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 말은 석상을 멈춰 둘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이런 식이면 시간이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져 파훼법 자체를 시도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었다.


당장 시도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달이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여자아이 석상이 조금씩 남자아이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계수를 등지고 있던 남자아이 석상도 곧 떠오를 해를 따라 몸을 돌렸다.


두 석상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순간, 시그윈은 여자아이 석상의 속눈썹을 잡고 위로 밀어 올렸다.


덜컹. 석상이 멈췄다.


여자아이가 손을 뻗기 전에 그는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려 달렸다.


잠깐 움직였다고 벌써 숨이 찼다. 무릎은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고 눈앞이 흐릿했다. 밭은기침이 터져 나오며 목이 쑤셨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여자아이 석상의 기도가 끝나기 전에 빨리 남자아이 석상이 눈을 뜨게 해야 했다.


남자아이 석상 받침대에 손을 얹었을 때 여자아이는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 속에서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그윈에게 석상 위로 뛰어오를 힘은 이제 없었다. 앙상한 팔과 뼈만 남은 상체로 힘겹게 전신을 밀어 올려야 했다.


겨우 동그란 받침대 위에 올랐을 때는 제대로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돌아가는 조각상처럼 눈앞이 핑핑 돌았다. 시그윈은 기다시피 하며 조각상에 매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이 양 속눈썹에 닿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손끝이 겨우 눈썹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무른 손톱이 부러져 피가 나도, 이를 악물며 계속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경련에 가깝게 떨리는 두 손가락이 마침내 윗눈썹 끝에 닿았을 때, 시그윈은 찬란한 두 눈동자를 마주하며 흙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낙하의 충격에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전신의 뼈가 부러진 듯 격렬한 통증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일어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기믹 수행은 끝났다. 이제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시그윈은 그대로 드러누워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올려다본 하늘 가운데에는 남자아이가 손을 뻗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눈꺼풀이 거의 닫히기 직전, 내뻗은 손에 손끝이 서로 스쳤다.


그러자 여자아이 석상은 다시 눈을 뜨더니 살포시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을 남자아이 석상이 붙잡으며 두 석상은 서로 이어졌다.


서로 맞잡은 두 손 너머로, 시그윈은 하늘 저편을 바라보았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햇살이 두 석상과 시그윈을 따스하게 품어주었다.


위잉.


곧이어 두 석상이 맞잡은 손을 중심으로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시그윈은 보호막 속에서 바깥을 바라보았다.


점점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해와 달의 일주가 반복되며 순식간에 낮과 밤이 뒤바뀌었다. 시간이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보호막 안에 있는 시그윈은 멀쩡한 반면, 어린 나뭇가지는 점점 시들어갔다.


한없이 빨라지던 하루는 결국 나뭇가지가 쪼그라들어 축 처질 즈음에야 스르르 멈추었다.


일주하던 해와 달이 완전히 멈춰 서며 시그윈을 지켜주던 보호막도 점점 투명해지며 사라져 갔다.


기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두 석상이 조금씩 형태를 잃으며 주홍빛 입자로 변했다. 입자는 차례대로 시그윈에게 흘러들며 모든 상처를 치유했다.


젊음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쭈그러든 피부는 탱탱해졌고, 푸석푸석했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았다.


시그윈은 다시 제 모습을 되찾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직접 겪고 나니 알 수 있었다.


"제법이네."


세계수의 어린 가지는 파훼당한 대가를 치른 듯 많이 시들어 있었다. 매끈했던 표면은 울퉁불퉁해졌고 생기 없이 메말라 있었다.


시그윈은 세계수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이제 끝이야?"


"아니."


예상한 대답이었다. 벽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해와 달도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음 세계수의 발언은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의 다 왔어. 다음 기믹이 끝나면 알려줄게."


"뭘?"


"과거 네가 내려놓은 것과 현재 네가 알고 싶은 것. 둘 다."


세계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시그윈은 세계수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상대는 막대한 권능을 품은 성배였다. 어차피 이길 수는 없었다.


힘들게 기믹을 파훼해도 가지 하나가 시들었을 뿐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권능을 가지고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시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엘프를 낳은 세계수라면 거짓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해 줘."


과거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몰라도 현재 알고 싶은 것은 확고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하루빨리 쥬드를 찾고 싶었다.


"좋아."


세계수가 맥동하기 시작했다. 하늘로 뻗은 가지와 땅을 파고든 뿌리에서 각각 주홍빛과 은빛 기운이 나와 한점으로 몰려들었다.


시든 가지에 다시금 힘이 흘러들고 있었다.


"마지막 아이야. 네 현재를 나에게 줘."


어린 가지가 다시금 반짝이며 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졌던 이전 기믹과 달리 이번에는 비교적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믹이 시작되면서 영역 내에 주홍빛 물방울이 여러 군데 형성되었다. 땅과 맞닿은 반구형의 물방울은 엘프 한 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마치 보호막을 연상케 하는 형태였다.


기믹에서 수행자에게 유해한 요소들은 대체로 불길한 색상 또는 형상으로 단서를 준다. 물론 주관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사항이지만, 시그윈은 적어도 세계수가 그런 유치한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시그윈은 가까이 생성된 물방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물방울의 표면은 매끈할 뿐 특별한 점은 없었다.


바로 물방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아무런 저항감 없이 손이 내부로 쑥 들어갔다. 뒤이어 몸 전체를 집어넣자 내부로 완전히 들어갈 수 있었다.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는 건가?'


시그윈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물방울 표면이 걸은 만큼 똑같이 이동하며 멀어졌다.


'이건?'


시그윈은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러자 물방울이 걷는 속도에 맞춰 계속해서 움직였다.


아무래도 한 번 들어오고 나면 계속해서 물방울이 따라다니는 모양이었다.


이 상태로 다른 물방울과 접촉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시그윈은 남은 물방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세계수 주변에 흩뿌려진, 나머지 물방울은 총 5개. 세계수에게서 멀리 떨어진 것도 있어서 꽤 많이 걸어야 했다.


시그윈은 걸어가면서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하늘 위로 해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수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다니는 물방울의 형태로 보아 외부에서 무언가 위협이 닥쳐올 듯한데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시그윈은 세계수에게서 무언가 변화를 알아차렸다.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있네?'


시그윈이 있는 쪽으로 나뭇가지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가지가 뻗는 방향은 시그윈이 있는 땅이 아닌 해가 있는 하늘 쪽이었다.


속도도 크게 빠른 편은 아니었고 각도도 종잡을 수 없는 방향이었다.


시그윈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슬슬 가까워진 보호막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엇?"


펑 하고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따라다니던 물방울이 터졌다. 동시에 오른쪽 팔에 힘이 쭉 빠졌다.


마치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듯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시그윈은 팔을 쓸어 만지며 물방울의 폭발이 시작되었던 지점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들판 위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마치 찔렀다가 뽑아낸 칼처럼 세계수에게 되돌아가고 있었다.


시그윈은 그림자를 눈으로 따라가 세계수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뻗어 나왔던 나뭇가지가 다시 세계수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자취를 감추는 나뭇가지 너머로 천천히 일주하고 있는 해가 보였다.


'뭐지? 방금 설마 그림자에 찔린 건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 시그윈은 물방울에 집중하느라 놓친 단서들을 떠올리며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해. 나뭇가지의 수상한 움직임. 물방울이 터진 지점. 마침 그림자가 다가온 방향과 맞닿아 있던 오른팔.


하늘로 뻗어 나가던 나뭇가지의 기이한 각도는 다 해에 비치는 그림자를 고려한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그림자가 물방울에 닿게끔 자라나다 보니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라면?


확신을 갖기 위해 한 번 더 제대로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다른 나뭇가지가 또다시 뻗어 나왔다.


시그윈은 이번에는 나뭇가지에 집중하지 않고 땅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길쭉한 가시 모양의 그림자가 들판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림자는 정확히 시그윈이 서 있는 지점을 찌르고 들어왔다. 몸을 틀어 그림자를 피한 후, 시그윈은 확신에 차 결론을 내렸다.


그림자는 곧 외부의 위협이며 이를 반드시 피해야 했다. 그림자에 닿으면 보호막이 깨지고 찔린 부위의 감각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잠깐만. 그렇다면···'


시그윈은 뒷머리가 쭈뼛이 서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들판 저편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세계수의 줄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그늘이 성벽 끝까지 닿아 있었다. 움직이는 해를 따라 그림자가 한 치의 틈새도 없이 땅을 까맣게 물들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파도와 같은 형상이었다.


기막힌 광경에 시그윈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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