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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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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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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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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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4화

DUMMY

처음에는 언뜻 보니 그럭저럭 순항하는 듯보였다.

내가 정원택에게 질문을 던지면, 정원택이 김여중에게 시선 한 번 안 준 채 내게 대답을 해 주고

반대로 김여중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 역시 정원택에게는 눈길 한 번 안 보내고 내게 대답해 주는 식.

그러다 보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충돌도 없지만 재미도 없다는 점이었다.

아직 나는 정원택이나 김여중과 맞다이를 뜰 만한 구력이 못 된다.

여전히 그들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추며 프로그램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는 시기다.


그러다 보니 그들 말에 제대로 된 반박 한 번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주기 일쑤다.

김피디가 중간 중간 고개를 흔들며 시그널을 보내줬지만 막상 두 사람 면전에서 감히 항거할 용기가 아직은 나지 않았다.


잠시 쉬는 타임.

예상대로 김피디 불평이 터져 나왔다.


‘‘강소장님. 이렇게 계속 미지근하면 방송 못 내보내요. 잘 아시잖아요?’’

‘‘물론 저도 알죠.’’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근데 저기 보세요. 두 선생님들, 쉬는 타임에도 전혀 말을 안 섞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중간에서 제가 뭘 어떻게 더 ......’’

‘‘강소장님, 차라리 말이에요.’’

‘‘예.’’

‘‘그냥 정공법으로 가시죠.’’

‘‘어떤 정공법이요?’’

‘‘그냥 방송에다 두 분 사이 다 까발리는 거예요.’’

‘‘예에?’’


평소 사적으로는 젠틀하고 경우 밝기로 유명한 김피디.

하지만 그도 시청률 스트레스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요즘 타 방송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동 시간 대 드라마 하나가 꽤나 상승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보니 조바심이 나며 평소와 달리 무리수를 두려한다.


그러니까 김피디가 조용히 나에게 귓속말로 건네 온 전략은 이거였다.

다시 방송이 시작되면 오늘 방송이 너무 미지근하다며 아직도 지난 방송 때 두 선생님 감정이 안 풀렸느니 어쩌니 살살 약을 올리며 두 사람 리턴매치 싸움을 붙이라는 것.

다음 주제는 마침 재벌과 언론 유착 문제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맞부딪치기에 딱 좋은 주제라는 것.


결국, 그렇게 중구난방에 처음 섭외될 때부터 제일 우려했던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정원택과 김여중 두 사람한테 찍히지 않으면서 프로그램에 연착륙하고 녹아드는 게 내 지상과제인데,

그게 어디 현실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조금만 발을 잘못 내딛으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근데 또 김피디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게 어떤 의미에서 정원택 김여중보다 앞으로 내게 더 괜찮은 호박씨를 물어다 줄 수 있는 제비 같은 존재이니.


아! 이럴 때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자성어가 하나 있지.

진퇴양난.

특히 나같이 평소 임전무퇴 정신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한자성어이다.


어쨌든 휴식 시간이 끝났고 다시 큐사인이 들려왔다.


‘‘아! 앞 선 주제는 좀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주제지만, 이번 주제는 좀 패널 간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주제인데요. 다름 아닌 SY그룹 신동식 회장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탈세 혐의로 압수수색이 들어간 게 지난주인데 이번 주는 정반대로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인 기부 재단 창설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자!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저 방금 전 휴식시간에 우리 김피디님한테 끌려가서 대차게 조인트 까였거든요. 지금까지 방송이 너무 무미건조했다고요. 우리 두 선생님이 지난주에 한 판 좀 붙고 나시더니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신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김피디가 정공법을 쓰라고 하니 나는 정공법X2를 쓴다.

두 사람 싸움 붙이라는 김피디의 지령까지 방송에서 낱낱이 다 까발린다.


물론 김피디에게 반항하는 건 절대 아니다.

혹은 엿 먹이려는 것도 아니다.

아직 내 형편에 감히 무슨.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송 개시 이래로 거의 미소 한 번 짓지 않던 정원택과 김여중 입가에 마침내 희미한 미소가 그어졌다.


사실 내가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위트를 통해 분위기를 좀 풀게 하려는 의도.


‘‘자! 그래서 이번 파트에서만큼은 두 분이서 좀 맞부딪히셨으면 하는데. 아! 물론 그렇다고 지난주처럼 한 분이 스테이지를 박차고 뛰쳐나가든지 하시지는 마시고요, 하하하. 자! 어떤 분부터 한 말씀 하실까요?’’

‘‘어험, 어험.’’


헛기침을 한 번 내지르고 나더니 정원택이 입을 열었다.


‘‘거 참 그거에 대해서 뭘 더 말할 게 있겠어. 만약 진짜 탈세나 배임혐의가 있다면 압수수색했으니까 알아서 결과가 나오겠지. 그리고 기부재단 만드는 건 착한 일 하는 거니까 칭찬해 주면 되는 거고.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전혀 아닌 건데 대체 뭘 이런 걸 주제로까지 선정했나.’’


정원택은 여전히 김여중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휴식 전보다는 확실히 표정이 유순해져 있었다.


‘‘자! 좋습니다. 이에 맞서서 김여중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이왕이면 정선생님과는 1프로도 공통분모가 없는 의견이 되었으면 하는 데요, 하하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여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정선생님 의견에 1프로도 동의를 못 하겠네요. 잘 들여다보면 이게 단순한 문제가 절대 아닌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순간, 나는 생각했다.

찔렸다고.

보다 다혈질인 정원택만 경계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김여중 쪽에서 먼저 포문을 연 것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왜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내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김여중을 향해 말했다.

반면 김여중은 내가 아닌 정원택을 쳐다보며 따지듯이 이야기했다.


‘‘아니, 정선생님은 알면서 모른 척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서로 따로 떼어내서 봐요? 딱 봐도 이건 밀어내기 기사인데.’’

‘‘저기, 김선생님. 밀어내기 기사 설명 좀 .....’’


내가 끼어들어 질문했지만, 김여중은 여전히 정원택을 노려보듯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탈세 의혹 나와서 주가도 하락하고 그러니까 그 기사들 덮으려고 홍보실에서 재단 창설 프로젝트 기사들 수정 보완까지 하면서 계속 보도자료 내고 있는 거잖아요. 재벌 애들이 언론이랑 유착해서 이런 짓 하는 거 어디 한 두 번이에요? 그걸 뻔히 알만한 정선생이 이런 식으로 지록위마하시려고 하면 안 되죠. 시청자들을 진짜 바보로 보는 것도 아니고, 참나.’’

‘‘여보세요, 김선생!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해요, 증거를.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냥 심증만 가지고 이야기 하면 되겠어요? 평소 재벌에 대해 악감정이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거지. 저런 재단 창립 계획을 탈세 수사 들어왔다고 해서 며칠 만에 급조해 발표한다는 게 애초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사이에서 다시 불이 붙었다.

두 사람 공방이 오가는 사이, 나는 김피디를 바라보았다.

김피디가 이 정도 수위면 괜찮다는 시그널을 보내왔다.


‘‘저기, 두 분 말씀을 잠깐 제 정리하자면요 .....’’


서너 번의 랠리가 이어지고 난 후 잠시 막간이 생기자 내가 재빨리 치고 들어갔다.


‘‘그러니까 정선생님 말씀은 SY그룹 신회장의 탈세의혹과 별개로 기부재단 만드는 걸 칭찬해야 한다. 왜 맨날 진보 쪽은 재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뭐 이런 취지의 말씀인 거죠?’’

‘‘진보 쪽 사람들 말이야, 지 자식들 대기업 입사하면 버선발로 환영할 거면서. 꼭 뭐 하나 꼬투리 잡으면 그것만 물고 늘어지고 말이야.’’

‘‘예, 반면 김선생님 말씀은 기부재단 저 기사는 탈세의혹 기사들 더 나오는 거 막기 위한 완전 언플용 기사다. 실체도 없다. 뭐 이런 말씀인 거고요.’’

‘‘기사 봤겠지만 뭐 제대로 구체적인 플랜도 하나 없잖아요. 그냥 5년 동안 400억 가까이 조성하겠다. 저래놓고 뻥카 치는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에요.’’

‘‘예, 알겠습니다. 뭐 이 주제는 결국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

‘‘아니! 그만 둘 일이 아니지.’’


정원택이 손사래를 치며 끼어들었다.


‘‘예? 그럼요?’’

‘‘강소장도 의견 발표 해야지. 왜 매번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려 들어?’’

‘’그것도 맞는 말이네. 강소장님은 가만 보면 손에 피 안 묻히려는 경향이 있어요.’’


가끔 싸움 중에 이런 경우가 있기는 있다.

싸우던 당사자들끼리 갑자기 태세전환해 서로 손을 잡고 중간에서 말리고 있던 제 3자를 협공하는 경우.


‘‘예, 제 입장은 ......’’


사실 이 주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SY 기업이 밀어내기 기사를 하던 말던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하하. 밀어내기는 보통 아침에 해야 하는데, 제가 오늘 아침에 그만 못 밀고 나왔네요, 하하하.’’


그렇게 농담치고 넘어가려는데


‘‘어, 어!’’


프롬프터가 또 내 눈앞에 펼쳐졌다.


‘‘왜 그래, 강소장?’’

‘‘아! ...... 예.’’

‘‘뭐가, 아! 예야?’’

‘‘음 ...... 제 의견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래서 물어봤잖아.’’

‘‘예. 이건 뭐 빼박 밀어내기 기사인데요.’’

‘‘으잉? 뭔 근거로? 탈세 건 아직 결론 나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검찰이 SY그룹 압수수색해 가지고 간 자료에 탈세 건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뭐, 뭐야?’’

‘‘탈세보다 횡령 배임 건이 액수가 훨씬 더 커요. 근데 검찰 쪽에서 탈세로 뭉뚱그려 발표한 거고요.’’

‘‘그걸 강소장 당신이 어떻게 알아?’’


하마터면 아무 생각 없이


‘‘프롬프터에 그렇게 써 있으니까요.’’


라고 말할 뻔 했다.


‘‘뭐 검찰 쪽에 빨대라도 있는 거야?’’


다행히도 그 전에 성질 급한 정원택이 추궁하듯 물었다.


‘‘아이, 제가 감히 어떻게 검찰 쪽에 ......’’


검찰이라는 말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프롬프터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검찰 같은 사정기관에 대적할 만한 자신은 없었다.


‘‘ ...... 그냥 SY 그룹 쪽 홍보실과 관계된 기자한테 주워 들은 거죠.’’


자신이 아닌 김여중 편을 든 것에 정원택은 화가 난 듯하다.


‘‘주워 듣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강소장 당신 말은 뭐야, SY그룹이 언론에 이미 나온 탈세 의혹 덮으려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나올 횡령 배임 건에 관한 물타기 용으로 지금 기부재단 만드는 걸 기사화하고 있다는 거 아니야. 이거 SY그룹에서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룹 차원에서 명예훼손 소송 들어갈 수도 있어? 강소장 돈 좀 있어?’’


기시감이 드는 상황이었다.

지난주 방송 때 그러했듯이 정원택은 김여중과의 언쟁 후 갑자기 나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일개 그룹 비리 건이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저리 오버를 하는 건지.

혹시 SY그룹 주식을 엄청 가지고 있는 걸까?


그건 그렇고 방송에서 이 정도 멘트도 그룹 차원에서 명예훼손 소송 들어올까?

인터넷 방송에서야 당연히 문제가 없지만 공중파는 또 모르겠다.

어쨌든 우선 위기 탈출부터 해야겠다.


‘‘예, 뭐 이 주제는 이 정도에서 끝내죠, 하하하. 아무래도 밀어내기는 뭐니뭐니해도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에 담배 한 개비 하고 나서 밀어내는 게 제일 ......’’


이렇게 내가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야, 이 새끼야! 방송이 장난이야, 새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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