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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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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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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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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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7화

DUMMY

송주나와 10여 분간 차를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곧이어 단체로 제작진들이 들어왔다.

송주나와 대화를 멈추고 나는 그들과 대본과 큐시트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방송을 앞두고 숨을 좀 돌리고 싶었다.

가슴 떨림도 진정시키고.


그리고 마침내 방송 시간이 되었다.

큐 사인이 나기 전,


‘‘강소장님?’’

‘‘예.’’

‘‘지난번 우리 첫 미팅 때 이야기했던 그 컨셉 잊지 않고 계시죠?’’

‘‘예?’’

‘‘로맨틱 코미디 커플.’’

‘‘아! 예, 무, 물론 기억나죠.’’


첫 미팅 때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

여타 다른 시사 라디오 프로와 차별을 위해 서로 캐릭터를 잡자는 것.

그러면서 은근슬쩍 로맨틱 코미디 커플 컨셉을 이야기했더니,

송주나가 한 술 더 떠 사람들 고정관념을 부수자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본인을 플러팅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나에게 먼저 호의를 표하겠다고.


과연 이게 리얼리티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뭐 어쨌든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게 내 영혼과 육체의 주도권을 순순히 다 내 준 상태이니 뭐.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송주나의 굿모닝 뉴스쇼 토요일 방송인데요. 오늘 제 옆에는 예고해 드린 대로 요즘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계시는 시사평론가시죠? 중구난방과 시사팩폭쇼의 강대구 시사평론가님 모셨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말 영광이에요. 개인적으로 진짜 찐팬이거든요.’’


원래 방송에서 하는 말 상당수가 구라다.

특히나 예의상으로 하는 인사말들.

방송 전에 대본 다 가지고 입 다 맞추었으면서 아닌 척 정말로 오늘 처음 만나는 척.


‘‘실물로 오늘 처음 뵈니까 아! 외모도 은근히 훈남이시네요.’’

‘‘하하하, 하하하.’’


송주나가 나한테 플러팅하는 컨셉이다 보니 리얼리티를 위해서 초반부터 좀 낯간지러운 빌드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여러분들 잘 아시겠지만, 요즘 강대구 소장님이 한창 뜨고 있는 이유는 외모보다도 그 유니크한 캐릭터에 있죠. 어제 중구난방에서도 대박 치셨던데.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막상 방송에 들어가니 사석에서 송주나와 단 둘이 있을 때 울렁거림이 다소 가셔졌다.


‘‘예, 어제 방송에서 제가 또 큰 사고를 쳤었죠.’’

‘‘어떤 사고를 치셨죠?’’

‘‘러시아 푸린 쿠데타 기도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나서 정원택 김여중 두 분께서 반박하니까 당신들이 뭘 아냐 우기기까지 하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었죠.’’

‘‘근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러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이, 그럼요. 저희 프로는 모든 드립이 허용되는 방송입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이야기하려고 제가 이 라디오 프로도 런칭한 건데.’’

‘‘흠흠.’’


잠시 헛기침을 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시사평론가들 중에 은근히 이런 거 많거든요’’

‘‘이런 거라 하면?’’

‘‘확인 불가한 음모설 제기하는 거요.’’

‘‘아하!’’

‘‘제가 제기했던 푸린 쿠데타 고스톱설, 이게 어떻게 확인이 바로 가능하겠어요? 백번 양보해서 설령 이게 사실이라도 수십 년 후 관련자가 무슨 비망록 회고록 같은 데서나 밝힐 일이지.’’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래서 시사평론가들 중에 요런 것만 골라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좀 계세요. 어차피 확인 불가능한 거 심증과 정황증거가 있다 어쩐다 구라 까면서. 그러면 자기 신뢰도에 조금의 흠집도 없으면서 이름을 알릴 수 있으니까. 사실 저도 아직 중구난방에 완전히 정착을 못했다 보니까 순간 유혹을 못 이겨서 ...... 결국 그리고 나서 두 선생님께 참회를, 사과의 절을 ...... 하하하.’’


내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호호호. 시사평론가 분들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하시는 분이 계시군요. 근데 강소장님!’’

‘‘예.’’

‘‘저희 프로에서는 되도록 자제해 주심이 ......’’

‘‘아이, 그럼요. 제가 어디 감히 송앵커님 앞에서 ......’’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송주나가 순간, 정색을 하며 눈짓을 보내왔다.

아참! 우리 방송 캐릭터 이런 게 아니지.

그녀가 나한테 좀 있으면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해야지.


‘‘자! 오늘 토요일은 한 주 간 뉴스를 정리해서 저와 강소장님, 그리고 우리 동접자 여러분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인데요. 우선 러시아 푸린 쿠데타 기도 분쇄 뉴스가 나왔으니까 우리 다른 국제뉴스 이야기 좀 해볼까요? 현재 유럽에서 극우파가 엄청 득세를 하고 있는 현상, 이거 어떻게 보세요?’’


프롬프터가 생긴 이래로 내게 생긴 수많은 변화.

그 중에 하나가 공부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정치에 좀 관심 있는 일반 네티즌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아니 오히려 그것을 트레이드마크 삼아 시사평론가 생활을 연명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 시도 때도 없이 프롬프터가 나오다 보니 그걸 다 소화해 내려면 오히려 더 공부를 해야 한다.

프롬프터가 홈런 치기 딱 좋은 배팅 볼을 던져주고 있는데 타격 자세를 안 하고 있어서 못 치면 진짜 바보 아닌가.


‘‘예, 유럽 극우파 물결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죠. 왜냐하면 이전과 달리 젊은 층마저 극우파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젊은 층이라고 하면 전 세계 어디나 대개 진보 성향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죠.’’

‘‘그건 왜 그러죠?’’

‘‘무엇보다도 일자리 문제가 제일 크죠. 글로벌화가 되면서 전 세계인이 경쟁 상대가 되는데다가 갈수록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더더욱 이 상황은 심화되겠죠. 반면 그러한 젊은이들 상실감을 유럽 극우파 정당들이 마치 어머니 손길처럼 따뜻하게 잘 보듬어주고 있죠. 이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나 무솔리니 망령 때문에 극우파들은 무슨 머리에 뿔 달린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 유럽 극우파 정당들은 일자리 문제나 물가 문제, 치안 문제 같은 민생 현안과 생활 밀착형 주제를 주로 신경 쓰면서 이미지를 갈수록 유하게 개선해가고 있죠.’’

‘‘예, 강소장님 긴 설명 잘 들었습니다. 설명 듣는 와중에 실시간 채팅창을 잠깐 봤는데요. 일목요연하게 설명 너무 잘 해주신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어? 내가 아는 강소장님은 이렇게 진지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런 의견들도 좀 있네요. 어떤 분은 위선의 가면을 벗어라 이런 댓글도 있고요, 호호호.’’


끄응.

대통령도 허니문 기간이라는 게 있어서 당선 전에 아무리 안티 쪽이던 언론도 당선 직후 한동안은 덕담만 해주는데.

방금 전에 위선의 가면 벗으라고 딴지 건 아이디 배꼽섹남 저 새끼는 같은 아이디로 시사팩폭쇼에서도 내게 수시로 악플 달던 놈임.

세상에 내세울 게 오죽 없다 해도 배꼽 섹시한 걸 내세우는 새끼가 어디 어련하겠냐마는.

아무리 그래도 새끼야 막 신장 개업을 했는데 그 앞에서 바로 소금을 뿌리고 있냐 쯧쯧.


‘‘흠흠. 송앵커님!’’

‘‘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시죠?’’

‘‘에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거기 남주가 여자들을 다루는 방식 아시죠?’’

‘‘예? 어떤 방식이죠?’’

‘‘싼티나고 비천하게 구는 여자는 최대한 싼티나고 비천하게. 반면 우아하고 품격 있는 여자는 최대한 우아하고 품격 있게.’’

‘‘어머머머머. 와! 나 클라크 게이블 진짜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내 로망이었는데.’’


송주나가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아! 그 사람 이름이 클라크 게이블인가.

난 그것도 몰랐는데.


- 송주나 눈빛 왜 저런데?

- 말 그대로 선망의 눈빛?

- 그럼 강대구가 클라크 게이블?

- 에이, 아무리 그래도 리즈 시절 여신 소리 듣던 송주나인데

- 강대구 검색해 봤는데 근본 졸라 없던데

- 맞아. 원래 맛집에서 테이블 부족해도 송주나랑 겸상하기도 힘든 스펙인데


미스코리아 출신 중에 연기자로 성공한 인물은 꽤 된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송주나는 연기를 제대로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스코리아 선정 이후 예능 프로 같은 데에서 꽁트 하는 경우도 한두 번 있을 법한데,

내 기억 속에 그녀는 그런 것도 한 번 없었던 것 같다.

1년 활동 종료 후 바로 언론고시 공부해서 앵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방금 나를 바라보는 눈빛 연기.

내가 봐도 좀 어설프다.

그리하여 급기야 내 스토커 배꼽섹남이 의혹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 이 상황 좀 개 웃기는 게 원래 강대구 불과 얼마 전까지 아무 여자한테 껄떡이는 걸로 유명한 색히인데 감히 송주나 앞에서 개폼 잡고 있는 거 존나 개웃김. 대체 이게 뭔 설정이지?


송주나도 그 댓글을 막 본 듯하다.

카메라 안 보이는 쪽 미간을 살짝 찌푸려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 만치 작가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 쯧쯧. 아해들 정말 뭘 모르네. 송주나 정도 나이 되고 사회적으로 이룰 거 다 이루어 봐라. 남자 외모, 스펙 다 필요 없다. 그냥 맘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남자가 최고야. 쯧쯧


실시간 채팅창을 보니 새로운 글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송주나가 바로 멘트를 이어갔다.


‘‘예, 채팅창 보고 있는 데요. 달빛조아님, 저랑 비슷한 나이 대 여성 분이 아닌가 싶네요. 맞는 말씀이세요. 저희 나이 대 되면 그저 속 털어놓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애인이든 친구든 인간관계에서 최고죠.’’


저 만치에서 송주나와 비슷한 나이 대인 여작가가 싱긋 미소와 함께 다시 또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자! 다음 주제는 국내 소식인데요. 최근 방송가에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 인기가 아주 대단하다고 하죠. 그래서 방송국이나 플랫폼 등에서 돈 많이 드는 드라마 제작보다 그냥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로 속된 말로 퉁, 치려는 풍조도 등장할 정도라고 하죠. 어떤 네티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한국 드라마 우주 비행 연구소 이야기를 다루어도 결국에 주요 내용은 연구소 젊은 남녀 직원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인데 그럴 바에 그냥 연애 리얼리티 프로 보는 게 훨씬 실감나고 흥미롭다고, 호호호. 은근히 맞는 말 같은데, 이에 대해서 우리 강소장님 의견을 또 청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아! 예. 뭐 물론 제작비 문제가 크기는 하지만요. 이렇게까지 연예 리얼리티 예능이 잘 나가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한 가지 더 있죠.’’

‘‘그게 뭐죠?’’

‘‘한 마디로 말해서 요즘 콘텐츠 키워드는 대리 만족이니까요.’’

‘‘대리 만족이요?’’


우아하고 품격 있는 방송에 출연한 만큼 평소 나 답지 않게 우아하고 품격 있게 또 멘트를 이어갔다.

그런데,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더라.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그 옛말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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