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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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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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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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30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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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DUMMY

사실 속으로는 좀 헷갈리고 있었다.

초반부와는 달리 고연아 손에 쥔 핸드폰과 그녀의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표정.


설마 그새 실시간 채팅창 반응을 확인해 본 것일까?

그래서 나와의 마냥 우호적인 듯 했던 대화 내용과는 달리 네티즌 반응은 비호감 그 자체인 걸 뒤늦게 눈치 채고 만 것은 아닐까?


‘‘저희가 자료가 없어서 그런데, 현재 고연아씨는 기혼자신가요?’’

‘‘아니요.’’


짤막한 단답.

기분이 상해 있다는 은연 중의 증거다.


‘‘그럼, 현재 사귀시는 분은 ......’’


그녀가 이번에는 아예 입도 열지 않고 고개만 저어 보였다.

방송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표현이다.


이전 같으면 상대의 이런 냉엄한 분위기에 깨갱 깨갱 하며 구석으로 찌그져 있기 일쑤였던 게 내 방송 현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 강대구는 누구란 말인가?


걍됐구라는 별칭은 어언 저 멀리 에베레스트 산 너머에 묻고 온 지 오래.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사 프로 중구난방에 고정 출연 중에 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앵커 송주나의 라디오 프로 첫 방송에 출연해 원 포인트 레슨을 좀 해 주고 온,

자타가 공인하는 현 시점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시사평론가 강대구, 아니 깡다구 아니던가.


게다가 설령 생각지도 않은 역공이 들어온다 해도 큰 걱정 없다.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 최후의 보루, 무적의 집행검, 토론의 원자폭탄이 있으니까, 푸하하하하.


‘‘그럼, 고연아씨, 혹시 비혼주의자신가요?’’

‘‘뭐, 글쎄요.’’


이 정도면 정말 이야기하기 싫다는 투다.

아마 사석이면 아무 핑계나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포스다.


자! 그러면 또 바람잡이에 나서 볼까나.

기존 바람잡이와는 차원이 다른 역풍을 유도하는 고단수 바람잡이.


‘‘아! 고연아씨, 그동안 연애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으셨나 보군요. 아니, 연애에 관심 없다기보다 아마도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미처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참! 그것보다 고연아씨의 경우, 워낙 모든 걸 다 갖춘 일등 신부감이다 보니 웬만한 남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겠죠. 설령 고연아씨 마음에 드는 남자라고 해도 부모님 양쪽이 교수분이시다 보니 또 부모님 허락 받기도 그렇게 쉽지 않을 테고요.’’

‘‘아니에요. 저희 집에 그런 거 없어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그렇게 ......’’


고연아가 이번에는 아예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아!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음, 그렇다면 ...... 아! 제가 또 요즘 한 예측 하는 걸로 유명하잖습니까? 거의 무슨 무당이니 점장이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 그래서 고연아씨도 딱 보니 바로 느낌이 오네요. 옆에 계신 배은정씨 저리 가라할 정도의 오매불상 순애보의 주인공이신 거죠. 맞죠?’’


나의 짧은 물음에 고연아가 대답은커녕 아예 시선을 회피하고 만다.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멘트를 이어간다.


‘‘단지 두 분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상대와 맺어졌다는 것과 다른 한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맺어지지 못했다는 차이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에도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가 있잖아요. 지난번에 어떤 방송에서 영화평론가 분이 말씀하시기를, 요즘은 워낙 하이브리드 시대라서 두 장르를 딱 경계선 그어서 분리시킬 수 없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굳이 분리하자면, 로맨틱 코미디는 대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 멜로는 아쉽게 이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어찌 배은정씨처럼 로맨틱 코미디스럽게만 흘러갈 수 있나요.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고연아씨처럼 멜로스럽게도 흘러갈 수 있는 게 인생이죠. 아무쪼록 이제 지나간 옛사랑은 깨끗이 다 잊으시고 ......’’


내가 스스로에 너무 도취되어 일장연설을 한참 하는 도중이었다.


끼이익.


갑자기 맞은편에서 의자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벌떡 일어서는 소리까지.


그녀였다.

방금 전 사석이면 아무 핑계나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포스를 엿보였던 그녀, 고연아였다.


고연아가 방송 중임에도 불구하고 실지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나를 향해 칼날처럼 날 선 시선을 날리더니 거친 걸음과 함께 스튜디오를 뛰쳐나가 버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타이밍을 조금 놓치기는 했지만 최웅이 재빨리 이 돌발상황을 정리하려 들었다.


‘‘야, 인마! 너 이 새끼 진짜!’’


물론 희생양은 나였다.


‘‘아이, 내가 뭘? 나 진짜 나쁜 의도 가지고 말한 거 아니었단 말이야.’’

‘‘미친놈! 의도가 어쨌든 간에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가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비유냐. 사람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맞아요. 실지로 고연아씨 최근 가슴 아프게 헤어진 이별 경험 있었는지 누가 알아요?’’


한소라가 한 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한소라와 상반된 반응들이었다.



- ㅅㅂ 저 년 저거 정신병자냐 뭐냐

- 존나 노처녀 히스테리 ㅎ ㄷ ㄷ

- 생긴 것부터 콤플렉스 가득하더만

- 아니 지금까지 강대구가 졸라 지 위주로 해줬는데 마지막에 좀 지 맘에 안 든다고 저 지랄이냐 ㅉㅉ

- 근데 저게 그렇게 기분 나쁜 비유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멜로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 그냥 지 인생에는 항상 희극이어야만 한다 뭐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는 년 같은데

- 진짜 강대구 존나 허탈하겠다. 내내 딸랑딸랑거려줬는데 막판 한 큐에 수 틀려서 ㅋㅋ



네티즌들은 자존심 센 고연아한테 현재 남자친구가 없는 부분은 엄청난 콤플렉스로 작용하는데, 나 강대구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 장르 비교를 하면서 장광설을 이어가니까, 순간 성질이 뻗쳐 뛰쳐나간 거라 짐작하고 있는 듯보였다.


하지만 네티즌들도 한소라도 모두 다 틀렸다.

나만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연아가 왜 느닷없이 저런 비이성적 행동을 한 것인지.


처음에는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방송이 진행 중인 줄 알았던 그녀.

그런데 막간에 지인 중 누군가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서 네티즌 반응을 알려준다.

본인 스스로 실시간 채팅창을 확인 해보니까 정말로 반응이 영 아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하기 시작한 그녀.

내가 역풍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바람 잡는 것까지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녀가 결국 자신의 다혈질 기질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볼 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을 저 높이 띄우고 대신 지난 토론에서 내게 망신살을 뻗치게 했던 그녀를 밞아 죽이겠다는 내 소기의 목적은 백 프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니까.


야!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정말 나 프롬프터 없어도 되겠는 걸.

이 정도면 나 강대구가 프롬프터다! 푸하하하하.



+++



방송이 끝이 났다.

대기실에서 최웅, 한소라, 배은정, 그리고 몇 몇 제작진과 함께 간단하게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야! 걍됐구 인마!’’

‘‘뭐? 걍됐구? 나 이제 깡다구라고!’’

‘‘요즘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겸손하게 좀 살아, 인마.’’

‘‘뭐야?’’

‘‘교만함에서 벗어나서 살라고, 인마.’’

‘‘당신 지금 나 질투하냐?’’

‘‘질투는 얼어죽을. 그동안 우리 수시로 방송사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중간에 게스트 화나게 해서 나간 적 있었냐?’’

‘‘웃기고 있네. 속으로는 오늘 또 기사거리 엄청 쏟아지겠네, 조회수 폭발이네. 이러고 있으면서.’’

‘‘뭐, 인마!’’

‘‘내 말 틀려? 사람들 있다고 괜히 억지로 굳은 표정 지으며 표정관리 하지 말고 솔직한 내면 드러내면서 킥킥거리며 말 걸어와, 이 양반아.’’

‘‘자식이 요즘 좀 잘 나가는 것 같더만, 역시나 근시안적인 사고에서는 못 벗어나고 있네.’’

‘‘뭐가 또 근시안적인 사고인데?’’

‘‘야! 고연아 씨네 정당에서 편파적으로 진행했다고 컴플레인 걸어오면 어쩔 건데? 총선 앞두고 그런 꼬투리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만약 그쪽 진영 내에서 구독취소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니가 다 책임 질 거야?’’

‘‘뭔 구독취소 운동이 벌어져? 게시판 안 봤냐. 다들 그 여자 성질머리만 욕하더만. 나보고는 그렇게 방송 내내 알랑방귀 뀌었는데 막판 뒤통수 맞았다고 동정여론만 가득하고.’’

‘‘아휴, 아무튼 컨텐츠는 없으면서 입만 살아가지고, 쯧쯧.’’

‘‘아휴, 혹시나 이번 거 조회수 폭발해서 내가 출연료 또 올려달라고 할까 봐 미리 할리우드 액션으로 작업치고 있는 거면서, 쯧쯧.’’


내가 최웅과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이는 동안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은 작가 한 사람과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 보면 볼수록 볼매인 스타일이다.


물론 외모는 내 이상형이 아니고, 또 이미 남의 여자가 된 여자이니, 이성적으로 볼매인 스타일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같은 인간으로서 참 볼매인 스타일 같다.

이런 진국 스타일이 이번 총선에 꼭 국회 들어가서 국민의 진심 어린 종복이 되어야지.

그리고 오늘 방송에서 내가 그렇게 되는데 어느 정도 공헌한 듯해 뿌듯함이 절절이 느껴졌다.


‘‘선배님! 차 드세요.’’


그녀가 공손하게 찻잔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아휴, 감사합니다. 손님으로 오신 분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이 프로 제작진들은 맨 윗대가리부터 해서 왜 이렇게 다들 주인의식이 부족한지. 참! 은정씨!’’

‘‘호호호, 예.’’

‘‘혹시나 은정씨도 아까 전 고연아씨처럼 오늘 방송에서 기분 나쁘고 그런 건 없었어요? 사실 이 코너 총선 앞두고 떳다방 식으로 만든 코너라 사전 자료도 미비하고 컨셉도 흐릿하고 해서요.’’

‘‘아니에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기회 되시면 꼭 또 불러주세요.’’


그녀가 예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혹시 내 질문 중 불편한 질문은 정말 없었고요? 자라난 환경 뭐 그런 거 이야기할 때 내가 질문하면서도 좀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채팅창에서도 나 욕하는 글 꽤나 보였고.’’

‘‘전혀요.’’

‘‘정말요?’’

‘‘예. 저 보좌관 생활 했었잖아요. 그때 저희 의원님이 저희 보고 항상 하시던 말씀 있었거든요.’’

‘‘그게 뭔데요?’’

‘‘니들 훗날 본격적으로 정치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꼭 이런 테스트 해보고 시작하라고.’’

‘‘무슨 테스트요?’’

‘‘면전에서 유권자가 너희한테 삿대질하고 쌍욕하고 심지어 때리는 시늉을 해도 참을 수 있는 지 테스트 해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투신하라고.’’

‘‘아하!’’

‘‘사실 제가 보좌관 생활 할 때만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근데 갈수록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요즘에는 정말 면전에서 쌍욕하고 폭행하고 심지어 테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렇죠. 이게 울 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기도 하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 이번 선거에 혹시 공천 받게 되면 충분히 그런 상황 맞닥트릴 마음의 준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거에 비하면 오늘 이 정도 질문은 ......’’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최웅 한소라를 비롯해 옆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가 바로 내 후배야! 자랑하고 싶다는 듯 말이다.


‘‘와! 정말 마인드가 대단하시다!’’


마치 나와 마음이라도 통한 듯 한소라도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을 향해 엄지 척을 해보였다.


‘‘아휴, 별 말씀을요.’’


그런데 내 아끼는 후배 배은정이 멋쩍은 표정으로 한소라를 향해 손사래까지 치며 대답하는 그 순간이었다.


‘‘어어어어! 이, 이게 뭐야?’’

‘‘야! 뭐 접신 왔냐? 갑자기 왜 그래, 인마?’’


최웅이 내게 물어왔지만 그에게 시선을 줄 수 없었다.

눈앞에 또 예고도 없이 프롬프터가 나타났으니 그걸 읽어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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