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소년이 재벌급 천재 감독이었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천해시
그림/삽화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50
최근연재일 :
2024.09.18 20:50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177,641
추천수 :
5,168
글자수 :
427,736

작성
24.05.29 22:30
조회
2,811
추천
74
글자
11쪽

18화. 방송반 천재 (1) 

DUMMY

천해중 방송반 담당 선생인 김정혁은 대학 시절에 국어교육과를 전공하면서 신문방송학과를 부전공했다. 본래 꿈이 방송국 PD였으니. 


하지만, 김정혁은 PD라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부모님이 김정혁도 선생님이 되길 바랐으니까. 


공부에 늘 진심이었던 김정혁은 20대 중후반에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첫 발령지가 섬마을 중학교였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남단 섬마을 중학교인 천해중에 부임한 김정혁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교내 방송실이었다. 시골 중학교 방송실이 대학교 방송국만큼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실습실보다 시설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이에 다들 기피하는 방송반 담당 선생님도 자진해서 맡았다. 그러나 담당 선생님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미 천해중 방송반에는 시스템이라는 게 갖춰져 있었다. 교감 선생님도 그 시스템으로 운영되길 원했고, 학생들도 새로운 것을 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방송반 담당 선생님으로서, 김정혁이 할 수 있는 것은 방송반 활동비를 정산해주거나 비품을 대신 구매해주는 역할이 다였다. 


간혹, 방송반이 찍은 영상을 보면서 격려를 해주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퀄리티가 부족한 것보다 방송반이 제작한 영상에는 교내 행사만 담겼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방송반에 찍은 영상은 기록물이었다.


그런데 방송반에 새로 뽑힌 1학년이 기획하고 제작했던 영상은, 이제 평범한 선생님이 된 김정혁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씨를 던졌다. 


‘저 영상을 1학년 학생이 만들었다고? 천재인가?’ 

 

***

 

내 책상 위에 빵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도 슈퍼에서 파는 제품이 아닌 무려 제과점에서 파는 크림빵이었다. 


‘크림빵?’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 앉아서 무심하게 교과서를 들여다보는 설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설지수가 말했다. 


“먹어···.”

“왜?”


입에서 꺼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물었다. 호의로 빵을 준 것일 텐데. 나도 모르게 ‘왜?’라는 단어를 꺼내버렸다.


하지만 똑똑한 설지수는 우문현답했다. 


“오늘 안 먹으면 유통기한 지나니까···.”

“고, 고마워. 아껴뒀다가 먹을게.”

“······.”

“내가 크림빵을 좋아해서 아껴 먹으려고. 유통기한이 내일까지니까, 괜찮겠지···?”


크림빵은 지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빵이다.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내가 제일 좋아했던 빵이 크림빵이었는데, 돌아가신 전날에도 어머니는 그 크림빵을 드시지 않고 내게 건넸다. 그 이후로 나는···.


“그래.”


교과서를 잡고 있는 설지수의 손가락 끝이 약간 떨리는 게 보였다. 샤프도 거꾸로 잡고 있었다. 


‘귀엽기는···.’


뒤돌아보니, 주호남에게 받은 빵과 우유를 이정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을 참고 있는지, 눈시울도 붉어졌다.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는 주호남은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있는 척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었다. 


‘귀여운 놈들.’


***


방과 후에 방송실에 갔더니. 방송반을 은퇴(?)한 3학년인 이강수와 지연미 선배를 포함해 2, 3학년 선배들이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우렁찬 내 인사에 다들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내 등 뒤에서도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송반 동료인 1학년 2반 백지혜였다. 


“그래, 어서들 와.”


이강수 선배가 웃으면서 우리 인사를 받았다. 옆에 있던 다른 선배님들도 손을 흔들면서 방송반 막내들을 맞이했다. 


“1학년들이 오니까, 어두컴컴한 방송실이 환해지네.”


백지혜와 나란히 스튜디오에 마련된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강수 선배가 내게 물었다. 


“정욱아, <천해중 몰래카메라> 그 영상 너무 재밌던데. 너 어디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온 것은 아니지?”

“하하하, 아닙니다.”


다른 선배들도 영상이 재밌었다면서 한 마디씩 칭찬했다. 백지혜에게도 방송 진행을 잘했다면서 격려하기도 했다. 


이윽고 담소가 끝나자, 방송반 전체 인원은 회식(?)하기 위해 근처 중화요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짜장면을 먹겠네.’


방송반의 특혜 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 회식을 하는 것이다. 방송반 활동비가 남으면, 월말이나 월초에 그 비용으로 같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부르게 먹었다. 짜장면 한 그릇도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없는 시기였으니. 먹을 수 있을 때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방송반 회식이 끝난 후, 각자 집으로 갔다.


내가 버스를 타고 무풍리 정거장에 내렸을 땐, 태양이 마을 동산 뒤로 뜨거운 빛을 숨기고 있었다. 


‘곧 해가 지겠네.’


정거장에서 집으로 가는 길.

저녁 식사를 하는 마을 집들이 내 오감을 자극했다. 텔레비전 소리, 고기를 굽는지 하얀 연기도 지붕 위로 피어올라 왔고,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음, 이건 삼겹살 굽는 냄새인가?’


그러고 보니, 삼겹살을 안 먹은 지도 참 오래됐다. 전생을 포함해 30년 가까이 삼겹살을 먹은 적이 없었다. 


‘이번 주말에는 정희랑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한 달 생활비가 빠듯했다. 정희의 급식비와 내 교통비, 준비물 비용 등을 빼면 식품을 살 비용도 부족했다. 


‘그래도 월말이니까, 삼겹살 한 근 정도는 사도 되겠지.’


나는 어둑해진 밤거리를 걸으면서 학교는 물론, 우리 가족의 경제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조금 더 지금의 삶에 더 적응하고 나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생 정희가 양은 냄비로 끓인 라면에 파김치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파김치에 라면 조합은 환상이지. 맛있겠는데.’


그런데 정희가 라면을 좋아했나? 라면은 늘 내가 끓여 먹었는데. 정희는 라면보다는 밥을 좋아했고···. 


“정희야, 너도 이제 라면의 참맛을 알게 됐구나?”

“응, 오빠. 왔어.”

“라면이 맛있어 보이는데. 한 입만 먹어도 되니?”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배가 불렀지만, 라면의 냄새에 내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응, 한 입만 먹어.”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가져와 라면을 집어서 먹었다. 역시, 남이 끓인 라면을 뺏어 먹는 게 제일 맛있다. 


“와 맛있네. 정희야 밥도 말아 먹어.”

“안 돼.”

“왜? 다이어트해? 넌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니까 걱정하지 마!”

“그, 그게 아니고. 집에 쌀이 없어.”


쌀이 없다고? 이게 무슨 말이지. 최근에 동생 정희가 밥 짓는 것을 담당했는데. 쌀이 다 떨어졌는지를 몰랐다. 


“그래? 미리 오빠한테 말하지. 걱정하지 마. 오빠가 바로 쌀가게 아저씨에게 가져달라고 할게.”

“응···.”


나는 쌀을 주문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려다가 잠깐 고민이 됐다. 지금 남아 있는 생활비로 쌀을 주문할 수가 없을 것 같았으니. 곧 동생 급식비를 내야 하고, 아직 들어갈 돈이 많다···.


전생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여름 방학이었는데.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에 들어오시지 못했고, 생활비는 다 떨어져 쌀값이 없었다.


그때 나는 3일 내내 동생 정희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심지어 라면이 다 떨어져 배가 고픈 주말, 딱딱한 미역을 깨서 먹기도 했다.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나 하지 못했던 바보가 전생의 나였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나약한 마음을 버려야 했다. 동생 정희를 위해서도, 그리고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전화기를 들고, 쌀 20kg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당당하게 동네 쌀가게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외상도 될까요? 아버지가 오시면 쌀값을 드린다고 하시네요.”

- 그래, 아버지가 오면 그때 돈을 주렴. 


이렇게 쉬운 것을, 지난 삶에서는 동생까지 굶기다니. 참 못난 오빠였다. 


***


동네 쌀 가게 아저씨는 전화한 지 5분 만에 오토바이에 쌀을 싣고 왔다. 


나는 곧바로 쌀을 씻어 밥솥이 아닌 솥에 밥을 지었다. 누룽지를 먹기 위해서 솥 밥을 했다. 밥이 고슬고슬 익어갔다.


밥 익어가는 냄새가 이렇게 향긋했던가?


이윽고 나는 다 익은 밥을 덜어 밥솥에 넣은 후 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넣고 끓였다. 


‘역시 솥 밥은 진리야. 갑자기 인생의 진리가 생각나네.’


고소한 향기가 나는 끓인 누룽지를 대접에 담고, 묵은지를 꺼내 상에 올렸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는 동생 정희를 불렀다. 


“정희야, 나와 봐? 누룽지 좀 먹어.”

“우와! 누룽지다. 오빠 고마워!”


동생 정희가 환하게 웃으면서 밥상 앞에 앉았다. 어릴 적부터 누룽지를 좋아했던 정희였다. 혼자 배부르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온 게 미안해서 누룽지를 끓였다. 


“우와, 오빠 맛있다.”


정희는 누룽지 위에 묵은지를 올려 맛있게 먹었다. 아무리 초등학생 소녀지만, 성장기 시절에 라면 한 봉지로 배가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한 입을 뺏어 먹기도 했고. 


“맛있게 먹어. 누룽지 많으니까.”


누룽지를 먹고 있는 정희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동생 정희였다. 어머니도 누룽지를 좋아했었고···.


“오빠, 울어?”

“아, 아니.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아서···.”

“큭, 바보 같기는. 이리 와봐. 내가 '후' 해줄게.”

“응.”


눈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동생에게 눈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동생이 후, 하고 눈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뚝.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 괜찮네. 눈물이 나서 먼지가 없어졌어.”


***


설거지하기 위해 책가방에 있는 도시락통을 꺼내니. 설지수가 줬던 크림빵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정희야, 후식으로 오빠가 뭐 가지고 왔는데.”

“응? 후식?”


나는 크림빵을 등 뒤로 숨겼다. 동생 정희는 궁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귀여운 토끼처럼. 


두근거렸다. 정희도 크림빵을 좋아하는데. 그 크림빵을 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마도 그동안 정희가 크림빵을 먹는 일이 일 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했을 것이다. 


‘이 크림빵이 뭐라고?’


크림빵을 동생 정희에게 건넸다. 그 크림빵을 본 정희가 토끼 눈처럼 뜨고 내 손을 잡았다. 


“오, 오빠. 이건··· 제과점 크림빵··· 훔친 거야?”

“아, 아니야. 친구가 준 거야. 오빠가 안 먹고 너 주려고 가지고 왔어.”

“그, 그래. 고마워, 오빠. 대신에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오빠는 얼른 씻어.”


제과점 크림빵 효과가 세긴 셌다. 이번 주는 내가 설거지 당번인데. 오늘 저녁은 특별히 면제됐다. 가방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정희가 내 팔을 잡았다.


“잠, 잠깐···.”

“응?”


동생 정희가 내 가방 안에 손을 넣더니. 비디오테이프를 꺼냈다. 


“오빠, 이거 뭐야? 혹시? 야··· 그거 아니야?”

“뭐? 아, 아니야.”






감사합니다. ^^ 오늘이 늘 찬란했던 그 시절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섬마을 소년이 재벌급 천재 감독이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40화. 마린 보이 (6) - 다리에 쥐가 난 건가? +11 24.07.13 2,260 75 14쪽
39 39화. 마린 보이 (5) - 네가 록키야? +8 24.07.10 2,299 71 14쪽
38 ​38화. 마린 보이 (4) - 이 신발 어디에서 주워 왔어? +6 24.07.09 2,332 69 14쪽
37 37화. 마린 보이 (3) - 그 신발 신고 싶었는데 +5 24.07.06 2,375 68 13쪽
36 36화. 마린 보이 (2) - 맛있게 먹어 vs 많이 먹어 +2 24.07.03 2,426 63 14쪽
35 ​35화. 마린 보이 (1) - 바다 소년 선발 대회 +4 24.07.02 2,514 69 15쪽
34  34화. 뜻밖의 제안 (2) - 사장님, 이 비디오 뭐예요? +3 24.06.29 2,607 74 17쪽
33 33화. 뜻밖의 제안 (1) - 팔아도 되겠던데 +3 24.06.26 2,640 77 14쪽
32 32화. 그놈이었다 +16 24.06.25 2,739 83 17쪽
31 31화. 섬마을 춤꾼 (4) - 이번 영상은 진짜 미쳤다 +4 24.06.22 2,642 82 14쪽
30 30화. 섬마을 춤꾼 (3) - 다구리해버려? +1 24.06.19 2,513 66 13쪽
29  29화. 섬마을 춤꾼 (2) - 너 우리 동생 만나러 갈래? +5 24.06.18 2,567 73 14쪽
28 28화. 섬마을 춤꾼 (1) - 난 힙합 바지 싫어해  +7 24.06.14 2,620 74 13쪽
27 27화. 우리랑 조인할래? +2 24.06.12 2,596 68 12쪽
26 26화. 뭐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1 24.06.11 2,672 73 13쪽
25 25화. 소녀의 횃불 (6) +3 24.06.10 2,648 81 13쪽
24 24화. 소녀의 횃불 (5) +1 24.06.07 2,626 79 13쪽
23  23화. 소녀의 횃불 (4) +3 24.06.06 2,623 82 13쪽
22 22화. 소녀의 횃불 (3) +1 24.06.05 2,648 79 13쪽
21 21화. 소녀의 횃불 (2) +4 24.06.03 2,672 84 12쪽
20 20화. 소녀의 횃불 (1) +1 24.05.31 2,732 75 16쪽
19 19화. 방송반 천재 (2)  +2 24.05.30 2,770 78 16쪽
» 18화. 방송반 천재 (1)  +1 24.05.29 2,812 74 11쪽
17 17화. 빵셔틀은 없다 (3) +1 24.05.28 2,773 68 12쪽
16 16화. 빵셔틀은 없다 (2)  +1 24.05.27 2,803 70 14쪽
15 15화. 빵셔틀은 없다 (1) +4 24.05.24 2,933 65 14쪽
14 14화. 방송반 모집 (2) +1 24.05.23 2,996 70 14쪽
13 13화. 방송반 모집 (1) +4 24.05.22 3,060 67 13쪽
12 12화. 축구 시합 (3) +5 24.05.21 3,113 66 16쪽
11 11화. 축구 시합 (2)  +3 24.05.20 3,194 65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