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종가에 감독으로 취업했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스포츠, 드라마

공모전참가작

저스트맨
작품등록일 :
2024.05.09 15:51
최근연재일 :
2024.06.16 16:43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10,754
추천수 :
171
글자수 :
192,163

작성
24.06.05 18:01
조회
120
추천
2
글자
11쪽

#29 - UEFA 유로 예선 7차전 vs 산마리노

DUMMY

# 산마리노, 올림피코 디 세라발레


7번째 예선이 끝났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관중과 선수들, 코치진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그라운드에 김성주만 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손에는 오늘 경기 기록지가 간략하게 들려있었다.


김성주는 가만히 생각했다. 텅 빈 운동장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모든 경기에 승리하는 것은 어렵겠지. 하지만 어떻게 하면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오늘 산마리노와의 경기는 쉽게 이길 수 있었어. 물론 선수들의 기본 기량과 능력 차이가 컸기 때문이겠지. 그들은 일반인이고 우리 선수들은 프로니까. 그렇다면 비슷한 기량을 가진 팀과의 경기는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걸까?’


‘저번에 슬로베니아와 경기도 한 수 아래 전력으로 평가했던 팀을 상대로 꽤 고전했었고 좀처럼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어. 슬로베니아 수비수들이 전체적으로 빠르고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명의 공격수를 쓰기보다는 한 명만 세우고 먼 거리에서 중거리 슛으로 찬스를 만들거나 두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세 방향으로 뛰면서 수비를 분산시키면 공간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전략이 통하지 않았어. 뭐가 문제였을까?’


‘요즘 들어서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 기분이야. 케빈만 해도 공중볼에서 강한 압박과 견제가 들어오니 경합이 떨어지는 상황이고 초반에 효율적이었던 공간 침투도 최근에는 오프사이드에 걸리는 일이 많아졌단 말이지. 중원을 차지해도 상대 선수들이 자리를 지키면서 수비적으로 가니까 공을 줄 데가 없는 상황도 많았어. 결국은 공을 뒤로 돌리거나 확률이 낮은 패스에 도박을 걸어야 했지. 상대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대비책을 준비한다는 건데.’


‘사실 짧은 패스로 일명 티키타카를 한다던가 좌우를 벌려서 크로스를 올린다던가 중거리 슛을 때리면서 수비를 끌어내는 게 정석적인 방법이긴 한데 무조건 그게 정답일까? 또 그게 우리 팀의 색깔과 맞을까? 아유. 모르겠다. 정말.’


‘축구, 정말 어렵다.’


김성주는 크게 한숨을 쉬며 가지고 있던 종이를 들여다봤다.


‘오늘 경기 기록이나 보자. 매번 오늘 같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겠지.’



□ UEFA 유로 예선 E조(2015년 9월 6일, 산마리노 올림피코 디 세라발레)


1. 결과 : 산마리도 0 - 6 잉글랜드


2. 득점 : 로하스 로이(13’), 파에타노(자책, 30’), 조지 에릭슨(46’), 데이비드 스콧(68’, 78’), 제이미 케빈(77’)


3. 상세기록

- 슈팅 : 잉글랜드 25, 산마리노 : 2

- 유효 슈팅 : 잉글랜드 8, 산마리노 0

- 점유율 : 잉글랜드 75%, 산마리노 25%

- 패스 횟수 : 잉글랜드 701, 산마리노 204

- 패스 성공률 : 잉글랜드 89%, 산마리노 58%

- 파울 : 잉글랜드 14, 산마리노 9

- 옐로카드 : 잉글랜드 0, 산마리노 2

- 레드카드 : 잉글랜드 0, 산마리노 0

- 오프사이드 : 잉글랜드 3, 산마리노 2

- 코너킥 : 잉글랜드 9, 산마리노 1


‘세부 지표는 조금 더 봐야겠지만, 완벽한 경기를 했구나. 25개의 슈팅이라니.’




‘경기 결과도 상대적인 게 아닐까. 이 기록을 보고 무조건 잘했다고만 할 수 있을까? 25개의 슈팅을 했는데 6골밖에 넣지 못했으면 잘했다고 해야 할까? 우리보다 한 수 아래 팀과 경기했는데 반칙은 왜 더 많았을까? 코너킥을 9번이나 찼는데 왜 한 골도 못 넣었을까?’


김성주는 머리가 복잡했다.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더 고민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휴, 깜짝이야. 여기서 뭐 하세요? 누구세요?”


나이가 꽤 든 남자가 조명 바깥에서 걸어오며 얘기했다. 백발에 멋진 수염을 기른 남자는 양손에 갈고리 같은 기구를 들고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데요. 아까 관리자분이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된다고 하셔서요. 뭐 좀 생각한다고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 나가야 하나요?”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정말 잉글랜드 감독이네요. 오늘 경기 잘 봤습니다. 저도 경기장에서 봤어요. 비록 우리 팀은 대패했지만, 열심히 싸웠죠. 잉글랜드는 역시나 엄청 잘하더군요.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여기 운동장을 청소하는 잭슨이라고 해요. 안 나가도 되고 마음껏 앉아 있다가 가도 됩니다. 허허”


“네,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가야죠. 내일 런던으로 돌아가기도 해야 하고요. 축구장이 조금 작긴 해도 아담하고 깨끗하던데 관리하시는 분들이 엄청 노력하셔서 그런가 보네요. 축구 많이 좋아하시나 봅니다.”


“암, 축구 좋아하죠. 그러니까 이런 일도 하는 거지. 잉글랜드 비하면 경기장이 작긴 하죠? 여기가 6,0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구장이에요. 예전에는 여기서 이탈리아 리그 경기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4부리그 작은 팀이 홈구장으로 쓰고 있고 이렇게 가끔 A매치를 하기도 하죠. 오늘은 잉글랜드 보러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가득 찼죠. 간만에 활기가 넘쳤어요.”


“오늘 관중분들이 저희도 많이 응원해 주셔서 힘이 많이 났습니다. 청소하셔야 하는데 제가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적적했는데 대화도 하고 좋죠. 내가 언제 잉글랜드 감독이랑 얘기를 해보겠소. 청소야 천천히 해도 되는 거고. 나도 젊었을 때는 공 차는 걸 아주 좋아했다오, 엄청 유명하진 않았지만, 동네에서는 꽤 잘 찼지. 다 멀고 먼 옛날 일이지만. 허허”


나이든 남자는 공을 차는 듯한 동작을 하며 껄껄 웃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무슨 고민이 있나 보군요? 이렇게 남아서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는걸 보니.”


“아. 축구가 참 어렵네요. 마음먹은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어려울 테지. 높은 곳에 있으니 더더욱 그럴 거요. 잘하고 싶고, 어쩌면 잘해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으니 고민이 많을 테지요. 나이 든 사람이 주제넘게 충고를 한마디 해준다면요. 음, 너무 잘하려고만 하지 마시오. 매번 이기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그저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 된다오. 그러면 결과는 따라올 거요.”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맘처럼 잘되지 않네요. 모든 판단은 결과로 하는 것이다 보니 마냥 노력한다고 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이고요.”


“나도 한때는 이기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오. 그저 1등을 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1등도 되지 못했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산마리노 선수들을 봐요. 8 대 0, 6 대 0으로 져도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뛰고 있잖아요. 너무 결과에만 연연하지 말고 주변을 좀 돌아보고 가끔은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은 도움도 받고 그렇게 살아요. 내가 살아보니 인생은 결과보다는 과정이야. 과정을 잘 만들다 보면 언젠가 결과는 꼭 따라올 겁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위로가 많이 됐습니다.”


“그래도 잉글랜드는 좋은 감독을 뒀구먼. 고민한다는 건 그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거요. 내가 이래 봬도 사람을 좀 보는데 보니까 잘 해낼 거요. 아이고, 늙은이가 바쁜 사람 잡아놓고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구먼. 여기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잘 정리하고 잘 가요. 늙은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또 언제 산마리노까지 올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어르신.”


“껄껄껄.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고맙구먼. 조심히 잘 가고 승승장구하시오. 그럼 이만.”


남자는 손을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성주는 다시 벤치에 앉아 손에 든 결과지를 흔들면서 생각했다.


‘그래.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건지도 몰라. 내 좌우명이 뭐야? 하고 싶은 것 하세요. 아니야? 결과보다는 과정을 챙기면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그 순간을 즐기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그는 일어서서 큰 한숨을 쉬고 결과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크게 기지개를 쭉 켰다.


“워!”


뒤에서 갑자기 누가 다가와 소리쳐서 성주를 놀라게 했다. 성주는 깜짝 놀라서 아연실색했다,


“아휴! 깜짝이야! 숙소에 들어가신 것 아니셨어요?”


조명에 비친 한서아의 얼굴을 보고 살짝 미소지으며 얘기했다.


“저 계속 저 위에 관중석에서 감독님 기다렸는데요? 어찌나 심각하시던지 거의 한 시간 동안 위에서 기다렸어요. 이제야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 내려왔어요. 그렇게 고민이 많으세요?”


“아? 그러셨어요? 전혀 몰랐네. 그냥 잠시 방황을 했습니다. 초심을 좀 잃은 것 같아서 혼자서 정신력 충전 좀 했어요. 하하하.”


“오늘 경기도 6 대 0으로 이기고 예선 7연승에 공식 A매치 10연승 중인 감독이 방황한다니, 남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걸요? 복에 겨웠다고 생각할걸요?”


“하하하. 앞으로 더 잘해보려고 그러는 거죠. 했던 경기보다 할 경기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뭐 그거야 그렇죠. 그래도 오늘은 승리의 날인데 그냥 즐기세요. 그건 그렇고 아까 카필더 감독님이랑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하신 거에요?”


“네? 누구요? 카필더 감독님이요? 누구 말씀하시는 거죠? 아, 혹시 아까 그 어르신?”


“네, 8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A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도 하셨던 카필더 감독님이시잖아요. 여러 프로팀을 지도하시다가 이제 은퇴하시고 고향에 내려와 계신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아, 고향이 여기 산마리노 쪽인가 보더라고요. 여기 경기장 로비에 보시면 되게 크게 감독님 사진 걸려있던데 들어올 때 못 보셨어요?”


“네, 전혀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신지도 모르고. 그래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아휴. 왜 이렇게 어깨가 축 처져있어요? 갈 길이 아직 먼데, 벌써 이러면 어떡해요? 오늘은 근심, 걱정은 모두 다 잊고 승리의 기쁨을 즐기자고요. 배 안 고프세요? 오늘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서아가 성주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이제 배가 좀 고픈 게 느껴지네요. 가요. 맛있는 거 먹어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


여러모로 느끼는 게 많았던 산마리노 원정길이었다. 성주와 서아는 웃으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나가는 두 사람의 손이 조심스럽게 포개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에필로그 포함하면 딱 30번째 작품이네요.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축구종가에 감독으로 취업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업데이트 공지] 업데이트는 매일 매일 하겠습니다. 24.05.12 302 0 -
41 #40 - UEFA 유로 조별리그 3차전 vs 슬로바키아(2) +1 24.06.16 64 4 13쪽
40 #39 – UEFA 유로 조별리그 3차전 vs 슬로바키아(1) 24.06.15 62 1 12쪽
39 #38 – UEFA 유로 조별리그 2차전 vs 웨일스(2) 24.06.14 65 3 12쪽
38 #37 – UEFA 유로 조별리그 2차전 vs 웨일스(1) 24.06.13 87 2 12쪽
37 #36 – UEFA 유로 조별리그 1차전 vs 러시아(2) 24.06.12 94 3 14쪽
36 #35 - UEFA 유로 조별리그 1차전 vs 러시아(1) +1 24.06.11 102 4 12쪽
35 #34 – 유럽 강호와의 평가전(2) +1 24.06.10 108 3 10쪽
34 #33 - 유럽 강호와의 평가전(1) 24.06.09 102 4 12쪽
33 #32 - UEFA 유로 예선 10차전 vs 리투아니아 +1 24.06.08 100 3 12쪽
32 #31 - UEFA 유로 예선 9차전 vs 에스토니아 +1 24.06.07 105 3 11쪽
31 #30 - UEFA 유로 예선 8차전 vs 스위스 +1 24.06.06 142 4 12쪽
» #29 - UEFA 유로 예선 7차전 vs 산마리노 24.06.05 121 2 11쪽
29 #28 - UEFA 유로 예선 6차전 vs 슬로베니아 24.06.04 135 4 13쪽
28 #27 - 두 번의 친선경기 24.06.03 130 4 12쪽
27 #26 - 즐거운 휴가 그리고 깊은 밤 24.06.02 147 2 9쪽
26 #25 - UEFA 유로 예선 5차전 vs 리투아니아(2) 24.06.01 155 2 11쪽
25 #24 - UEFA 유로 예선 5차전 vs 리투아니아(1) 24.05.31 156 3 12쪽
24 #23 - UEFA 유로 예선 4차전 vs 슬로베니아 24.05.30 170 5 11쪽
23 #22 - UEFA 유로 예선 3차전 vs 에스토니아 24.05.29 185 5 11쪽
22 #21 - UEFA 유로 예선 2차전 vs 산마리노 +1 24.05.28 206 3 10쪽
21 #20 - UEFA 유로 예선 1차전 vs 스위스(2) 24.05.27 217 3 12쪽
20 #19 - UEFA 유로 예선 1차전 vs 스위스(1) 24.05.26 234 6 12쪽
19 #18 - 언론 플레이 24.05.25 241 5 10쪽
18 #17 - 첫 평가전, 잉글랜드 vs 일본 +2 24.05.24 261 4 12쪽
17 #16 - 대표팀 공식 일정, 첫 훈련 24.05.23 265 6 10쪽
16 #15 - 잉글랜드 리그컵 32강 24.05.22 290 3 9쪽
15 #14 - 잉글랜드의 새 주장 24.05.21 306 3 8쪽
14 #13 - 평가전 선수 명단 확정 24.05.20 332 5 10쪽
13 #12 - 우리에게는 아직 당신들이 필요합니다. 24.05.19 363 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