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3 17:37
최근연재일 :
2024.08.21 23:2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74,008
추천수 :
2,845
글자수 :
373,400

작성
24.06.26 22:00
조회
2,304
추천
75
글자
12쪽

5화

DUMMY

5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는 호기롭게 펜을 들었다.

강정운이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참나, 이런 어린애한테 내가 무슨 기대를 한다고.”


그는 내 반대편으로 걸어가 한숨을 푹 쉬었다.


“문학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경덕관 선생님이 칭찬했다니까 벌써 글이 우스워보이겠지. 하지만 시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나는 강정운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권태와 피로가 쌓인 낯이었다.


강정운이 도서관 벽 한편을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수없이 많은 장서가 거기 있었다.


“문학은 절차탁마야. 재능 좀 있다고 그렇게 막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저기 꽂힌 수많은 작가 중 만만하게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그 남자의 눈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가 나를 멋대로 평가절하하는 게 재밌었다.


10대 청소년 모습에 맞게 건방 좀 떨었을 뿐인데, 내가 세상 모르는 천방지축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문학은 절차탁마다.

안다.

나 또한 전생엔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미숙한 작가였다. 고군분투의 나날이었다.

나는 강정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저도 제법 문학을 많이 쓰고 읽었어요.”

“그래?”


하지만 내 주장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듯 했다.

강정운은 나를 완전히 어린애 취급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라. 아주 많이 읽었겠지.”


강정운의 빈정거림엔 적당한 피로와 권태가 묻어있었다.


문학.

꿈은 사람을 흥분하게도 하지만 지치게도 만든다. 아마 강정운이란 남자는 평생 문인이 되기를 진지하게 소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꿈은 조금씩 그를 지치게 했겠지.

내가 이전 생에서 조금씩 지치고, 힘들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강정운이 나를 무시하는 것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자신이 아끼는 글을 함부로 대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도리어 나는 강정운이 몹시 피로한 중년의 문학도여서 마음에 들었다.


‘꿈 때문에 지쳤다. 그것은 아주 열심히 꿈을 추구했다는 반증이지.’


나는 내 스스로의 장난기를 힘껏 북돋워 그에게 다가갔다.

그게 소년인 내가 그에게 건넬 수 있는 재산이니까.


“저도 문학이 만만해서 시 쓰겠다는 거 아닌데요? 잘 쓰니까 써보겠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쓸 수 도 있어요.”

“허. 그래. 그래라. 얼마나 대단한 명시가 나올지 지켜보마.”


강정운은 대놓고 나를 얕잡아보는 표정이었다.

내 속에서 나도 모르는 치기가 끌어올려졌다.


‘그래, 어디 한 번 솜씨를 좀 보여줄까.’


나는 도서관 한편에 비치되어 있는 원고지를 꺼내왔다.

강정운은 내가 쓰는 모양새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한 마디 거들었다.


“흐음. 일단 원고지 쓰는 법은 아는구나. 그것만으로 뭐가 될까?”


나는 강정운을 쳐다보며 묵묵히 대꾸했다.


“시제는 뭘로 주실래요?”

“시제? 시제까지 필요해?”


강정운은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문득 천장을 쳐다보았다.

전등빛에 눈살을 찌푸리던 그가 한 마디를 뱉었다.


“시제는 빛이다. 빛으로 하지.”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빛.

빛이라는 시제라면 충분히 잘 쓸 수 있지.


추상적이고 모호한 시제라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생활감있는 감정을 담아내면 좋다.


그러니까.

모호한 이 시제에 내가 유동주로서 겪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했다.


---


어제의 일


친구의 아버지를 때린 날은 화창했습니다


따사로운 햇빛

은행나무 잎맥 끝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버지에게 맞던 친구의 기도를 들어주던 연갈색 나목


매일 외우던 소망이

청녹색 잎으로 피어나던 온가지


봄은 소년의 기도 덕분에 찾아오고


소년원에도 빛은 있습니다

전구가 뻗은 창백한 빛


죄를 지은 아이들은 왁자지껄한 표정과 낯빛


죄에도 색깔이 있다면

무슨 색일까요

햇빛은 그 색을 어떤 색으로 결정짓나요


옷 소매를 들어 바라봅니다

갈색도

회색도 아닌 그 어딘가 어정쩡한 잿빛


그건 죄수복의 빛


내 삶에 다정해질수록 나는 더 죄스러워요

차가운 철창과 달라진 삶



내 엄마의 눈물에 맺히던 빛

면회 온 가족의

흔들리던 등


그 등에 흔들리던 소년원 전등 불빛


어머니,

나는 나의 자랑이 되어야 하지요

조금 더 잘 살아봐야 하지요



쫓아오던 햇빛이

이번 생에도 여전하지만


지금 두 눈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두 개의 호롱불빛


---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호기롭게 시를 쓰고자 했다. 그저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눈앞에 쓰여진 글은 내가 생각한 글이 아니었다.


‘왜 내 머릿 속으로 엄마가 스쳐지나갔을까.’


내 머리를 총알처럼 관통한 건 어머니였다.


그것도 두 명의 어머니.


전생, 북간도의 내 어머니.

현생, 달바다촌의 나의 엄마.


철창 안에 갇힌 아들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 나의 어머니들.


‘그러고보니 전생의 어머니는 어떻게 사셨을까. 유동주의 기억으로도 그 사실은 알 수가 없구나.’


나는 원고지를 힘없이 바라보았다. 실력을 뽐내려던 글쓰기가 나자신을 더없이 슬프게 만들었다.


그때.

강정운이 가벼운 웃음과 함께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시를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어디 줘봐라. 그래도 한 편을 쓰지 않았냐.”


강정운은 나의 시를 거의 뺏어가다시피 했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내 시를 한 자씩 읽어나갔다.

그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기가 달아났다.


-꿀꺽!


그가 괜히 침을 삼키는 소리가 도서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사내 둘이 만든 적막이 방 전체의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원고지에서 시선을 뗐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내게 물었다.


“유동주.”

“네?”

“너 어디서 시를 배운 적이 있냐?”


그는 어쩐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를 배운 적이 있냐고.


윤동주로 대답을 한다면 ‘그렇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나에게 ‘유동주’라고 불렀으니.


“아니요. 그냥 학교에서 국어 교과서 읽은 게 다예요.”


물론 유동주라면 추가할 대답이 한 트럭이다.


그 학교 공부도 중학교 때 거의 폐업을 했다.

사실 국어 과목은 30점 겨우 넘는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강정운은 원고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글을 아무한테도 배운 적이 없다 이거지?”


강정운은 입맛을 다셨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내게 말했다.


“너도 이미 알겠지만 나는 시인이기도 하다. 뭐, 이름난 작가는 아니지만 말이야.”

“네. 알고 있어요.”


강정운이 작가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니까.

그런데 강정운이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가끔 내게 글을 들고 오면 봐줄 수 있다. 이곳에서 조언을 구할 사람을 찾기가 쉽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강정운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원장 강정운.

중년의 늙수그레한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저 사람은 이곳의 원장이었다.


원생과 그가 단독으로 대면할 일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기관을 대표하는 대장 아닌가.


하지만 그의 안목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서있다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저 이제 글 못 써요.”


나의 당돌한 선언에 강정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평온한 척 목소리를 깔았지만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글을 왜 못 쓰는데?”


봐라. 말까지 조금 더듬지 않는가.


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일종의 침묵 시위라고나 할까.

그가 나를 채근했다.


“글을 왜 못 쓰냐니까. 벌써 질렸어?”

“아니요. 쓸 시간도 쓸 공간도 없어요. 방은 다 같이 쓰지. 침대도 이층 침대지. 일과 시간은 빽빽하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시간이 나서 계속 글을 써요.”


그가 황당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그렇지만 이후 벌어진 사태는 내가 기대한 바와 조금 달랐다.


아, 세상은 도무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이, 이게 다 뭐예요?”

“보면 모르냐. 공사 중인 거지.”


강정운은 도서실을 공사하기 시작했다. 그냥 놔둬도 괜찮은 공간 아닌가. 우리집보다 큰데?

강정운이 내게 말했다.


“여기가 이제부터 네가 써야 할 공간이지.”

“여, 여기 전부를 저 혼자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작은 방 하나를 원했을 뿐인데. 갑자기 이렇게 큰 부담을?


강정운은 놀란 나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이, 이것은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삶의 무게에 대한 은유!?’


나의 헛생각과 무관하게 눈앞엔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했고, 인부들은 먼지 한복판을 정신없이 오다녔다.


정운은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권태 가득하던 눈안에 어느새 기대감이 가득 들이차 있었다.


“너는 반드시 너의 재주를 키워야 된다. 그렇게 훌륭한 글재를 썩히는 일이 있어선 안 돼.”


아, 아니.

내 재주는 내가 알아서 하면 안 될까.


그냥 난 골방에서 조용히 작업을 하고 싶은데.

강정운은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이 문학실을 만드느라 무리를 좀 했다. 예산보다도 명분을 만드는 게 힘들었지.”


강정운은 회한에 잠겨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무리를 하지 말고 나를 그냥 조용한 독방에 처넣으라고!’


그는 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원생 한 명을 따로 빼서 특별 공부를 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원장이라도 말이다.”


강정운의 말은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주장이긴 했다.

하긴 시선에 따라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고 한들 나는 지금 죄를 짓고 소년원에 수감된 처지니까.

나는 강정운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명분이 뭔데요?”

“멘토링.”


멘토링이라니.

이 아저씨가 자꾸 뭔 일을 벌이는 거야.


“멘토링이요?”

“나는 글재주가 뛰어난 너를 가르치고, 너는 문해력이 약한 다른 원생들을 가르치는 거다. 교과 수업을 대체하는 특활인 거지.”


이 말은 나보고 지금 이 소년원의 천방지축 망아지들을 가르치라는 얘기인가.


“제가 멘토예요? 원장 선생님이 아니라?”

“응.”

“진짜요? 제가 왜요?”

“너 글 쓸 시간도, 공간도 없다며.”

“아, 진짜. 원장이 되어서 이래도 되는 거예요?”


강정운은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그때, 복도 저편에서 한 소년이 걸어왔다. 불평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이다.


“아, 제가 왜 갑자기 글을 쓰는데요!”


교도관 옆에서 불평을 터뜨리는 소년. 그 자식은 나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그, 그런데 저놈이 누구였지?’


교도관이 그 소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어차피 수업하면 잠만 자잖아! 일과 시간엔 딴짓만 하고, 방에 들어가면 다른 애들이랑 싸우기만 하고!”


소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때, 그 소년이 나를 쳐다보며 삿대질했다.


“아씨, 그건 내 빤스나 훔쳐가는 도둑 새끼들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 아니예요! 바로 저런 새끼!”


빤스나 훔쳐입는 도둑놈들?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은데?

소년은 급기야 성질을 내면서 내게 달려왔다.


“야, 이 빤스나 훔쳐입는 도둑놈 새끼야. 내가 너랑 특활을 같이 왜 해야 되는데?”


아, 기억났다.

내 빤스 누가 훔쳐 입었냐고 싸우다가 나를 독방으로 보낸 그놈.

그래. 그놈이었구나.

나는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 그런데 이름이 뭐였지?”

“뭐 이새끼야? 우리가 그래도 같은 방을 쓴 게 지금 몇 주가 지났는데 뭐라는 거야? 이 빤스도 없는 새끼가!”

“아 거참 시끄럽네. 네 이름이 노빤스는 아닐 거 아니야! 이름이 뭐냐고!”

“닥쳐! 이 빤스 훔쳐간 새끼야!”


나는 멱살이 붙들린 채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래.

이 놈 이름은 앞으로 노반스다.



작가의말

5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 8화 +3 24.06.29 1,858 72 12쪽
7 7화 +4 24.06.28 1,967 70 11쪽
6 6화 +5 24.06.27 2,146 70 13쪽
» 5화 +6 24.06.26 2,305 75 12쪽
4 4화 +4 24.06.25 2,449 78 11쪽
3 3화 +9 24.06.24 2,606 107 12쪽
2 2화 +4 24.06.23 3,023 78 11쪽
1 1화 +10 24.06.23 3,965 10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