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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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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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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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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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4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나 유동주에겐 꿈이 생겼다.

생겼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 돌아왔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을 쓸 것이다. 전생에 쓰던 소설을 마저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은 내가 문학이란 꿈을 펼치기에 쉽지 않은 장소이다.


보아라.

오늘도 사나이의 용쟁호투가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야, 이 X새끼야! 네가 내 팬티를 왜 ㅊ입고 있는데!?”

“ㅈ같은 새끼야! 네 빤스라고 어디 쓰여 있냐!?”


나는 소란을 뒤로 하고 침대에 돌아누웠다. 이곳 무진소년원은 매일 이 모양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0대 중후반의 범죄 소년을 깡그리 모아 좁은 공간에 가둔다.


그건 거의 콜로세움에 맹수를 풀어놓고 싸우라는 격 아닌가.


-쾅! 콰과광!

-우다다타앙! 쿠쾅!


한바탕 몸싸움이 일어났다. 주변의 아이들은 재미난 구경이라도 났다는 듯 지켜만 봤다.


“엠창! 누가 이기든 ㅈ대봐라 그래!”


고개를 저었다.

내가 윤동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들, 내가 소년원에 있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최근, 도서실에 꽂힌 한 작가의 책을 읽었다. 이름이 장정일이라던가.


그는 이렇게 적었다.


‘소년원은 학교와 군대의 가장 X 같은 점만 모아놓은 곳이다.’


아직 군대는 가본 적이 없지만 그가 겪은 지옥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 작가는 소년원 출신의 초졸 작가라고 하던데, 역시 사람은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이 두 번째 감옥을 달갑게 받아들이려 했다.


나의 전생은 내가 택한 것이 아니다. 이번 삶 또한 내가 택한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진 길.

내가 내 문학과 삶에 녹여낼 체험 아니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하지만.


장정일 책의 야한 단락마다 묻어있는 이상한 자국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밤꽃 냄새 풍기는 요상한 얼룩덜룩이만큼은 제발.


‘이 X발롬들이 도서실에서 대체 뭘 ㅊ하는 거야.’


이 외침만큼은 온전한 유동주로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오, 제발 신이시여 나한테 왜 이러시나요.’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 찰나.

내 침대 쪽으로 ‘네가 내 팬티를 왜 ㅊ입고 있는데’라고 아우성 친 한 마리 짐승이 넘어졌다.


-우당타타다당!


그 탓에 내 몸이 그 자식의 몸에 짓눌리고 말았다.


“악! 야! 야, 인마! 나한테 왜 날아오는데!”


저절로 비명을 안 지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 선생들은 뭘 하는 거야.


자고로 문학이란 사유와 고민이 담길 혼자만의 방이 필요하다.

고독이 똬리 틀 나만의 독방이 필요하다 이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곳 무진소년원 어디에서 그런 독방을 발견한단 말인가.


잠깐.

독방이라고?

독방이라는 단어가 순간 내 머리에 불꽃을 일으켰다.


‘아니, 여기가 소년원인데 독방이 왜 없어.’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음흉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깔고 앉은 놈의 몸을 밀치면서 일어났다.


“덤벼. 이 새끼야. 네 빤스는 내가 입고 있으니까.”


소년원에서 독방에 가는 법.

그게 뭐가 어렵겠는가.

한 판 붙으면 되는 거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팬티 없는 놈의 눈깔이 뒤집혔다.


“지금 내 빤스를 ㅊ입고 뻔뻔하게 뒹굴고 있었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래서 정말 내가 녀석의 빤스를 훔쳐 입었냐고?


그건 말이야. 중요한 사실이 아니잖아.


하지만 내 원대한 계획은 고작 5시간 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이, 유동주. 나와라.”

“버, 버, 벌써요? 아, 아니. 선생님. 조, 조, 조금만 더 갇혀 있게 해주세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빨리 나와! 독방이 무슨 니네집 안방인 줄 알아!?”


선생의 불호령을 들으며 나는 독방에서 쫓겨났다. 그는 거의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누군 너 벌써 내보내고 싶은 줄 알아! 이게 방침이다. 요즘엔 독방에 오래 가둬놓고 싶어도 못 가둬.”

“아, 아니. 제, 제발 저 갇히게 해주세요!”

“얘가 왜 이래!? 뭘 잘못 먹었나. 요즘엔 인권 때문에 그렇게 못 해! 빨리 나와!”


인권이라니.

범죄자의 인권을 왜 보장해 준단 말인가. 제발 나를 함부로 대해줘. 제발.


5시간이라니. 고작 5시간이 최대라니. 그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전 생에 쓰던 소설의 반의 반도 제대로 이어 쓰지 못했단 말이다.


게다가 교도관은 내가 독방에 다시 돌아와선 안 되는 이유까지 말해주었다.


“자꾸 독방에 갇히다간 처분이 변경될 수도 있어! 6개월 뒤에 나갈 녀석이 왜 사고를 쳐!”


처분 변경.

나는 9호 처분을 받아 6개월이면 이곳 무진소년원을 나간다.


그러나 10호로 처분이 바뀐다면 2년은 족히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한다.


고민에 빠진 내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뭐야. 왜 독방 앞이 이렇게 소란한가?”


중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교도관과 나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 사람은 바로 이 무진교도소의 원장인 강정운이었다.

교도관이 원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별거 아닙니다. 평소에 얌전하던 놈인데 오늘따라 이러네요.”

“어, 그래?”


원장은 기분 나쁜 눈으로 나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시선은 이상하리만큼 집요했다.


‘왜 이래?’


하지만 그 시선 덕에 제법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원장이 분명 어디에서 등단한 시인이라고 했었지?’


**


원장 강정운.

무진소년원의 원장인 강정운에겐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못다 이룬 문학도로서의 열망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한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그러나 신춘문예 도전에서 연이어 고배를 삼키고, 먹고 살기 위해 보호직 공무원이란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교화시키겠다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마저도 사법고시를 패스하지 못해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그렇게 삼십 년이 흘렀다. 그는 유명 작가의 꿈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잡지에서 돈을 주고 등단했다.


하지만 그는 문학도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꿈을 말이다.


지나간 옛스승 경덕관에게 연락을 거듭해 특강을 부탁한 것도 사실 제 문학적 열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동주가 노리는 것은 바로 강정운의 그 순수한 열망이었다.


근무 도중 강정운은 종종 사무실을 비우고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도서실에 틀어박혀 있다는 건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유동주는 독방에서 쫓겨난 다음 날부터 틈나는 대로 도서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런데 원래 소년원 도서실이란 게 이렇게 큰가.”


유동주는 의아한 얼굴로 서가를 누볐다. 당연히 소년원 도서실이 원래 그렇게 클 리 없다.


순전히 강정운 개인의 사심 때문에 장서량이 무지막지해진 무진소년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유동주에게 엄청난 기회로 작용했다.


“나는 현대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일정 때 지식이 멈추고 말았으니······”


동주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벌레’였다.


“갑자기 눈을 떠보니 벌레가 된 이 남자와 나의 신세가 그리 다르지가 않구나.”


유동주는 정신없이 책 속에 빨려 들어갔다.

사실 아직 윤동주와 유동주 사이의 정체성 고민이 다 정리되지 않은 그였다.


타인과 섞여 있을 때는 유동주로서의 천방지축이 튀어나왔지만, 혼자 있을 때는 윤동주로서의 진지함이 더 튀어나왔다.

그건 유동주 자신으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변화였다.


혼자 남은 유동주는 윤동주이던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책 속에 침잠해 들어갔다.

이불 속에서 천천히 벌레가 된 그 남자처럼.


원장을 포섭하기 위해 도서실에 온 동주였지만, 책에 빨려들어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만 것이다.


“결국 모두가 그를 외면하고 끝이 나는구나.”


유동주는 씁쓸함과 함께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뒤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장 강정운이었다.


“카프카의 책이 재밌나?”


사실 강정운은 이미 유동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 경덕관이 특강이 끝나고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 재밌는 녀석이 하나 있더라. 이름이 유동주라던데? 이름만 웃긴 게 아니라 글도 아주 재밌어. 뭐, 재능만 갖고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은 강정운의 머리를 세게 강타하는 한마디였다.

그는 단 한 번도 제 스승 경덕관에게 재능을 칭찬받은 적이 없었다.


아니, 한국대를 거쳐 간 내로라하는 작가 중 그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국 문학의 대들보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글공부 한 번 안 해 본 소년원생을 경덕관 선생님이 인정한다고?’


오랫동안 갈구했던 스승의 인정.

그 인정을 자신이 아닌 유동주가 받았다는 사실이 강정운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이 나이에 10대 남자놈을 질투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강정운은 짐짓 목소리를 낮춰 깔며 유동주에게 재차 물었다.


“그 경덕관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네가 산문을 제법 잘 쓴다고 하던데?”


유동주는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의 계획 중 1단계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유동주의 계획은 간단했다.


1. 원장의 눈에 든다.

2. 원장에게 호감을 산다.

3. 원장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받는다.


이곳 무진 소년원에서 개인의 공간과 시간을 통솔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는 바로 원장이었다.


그의 마음에 든다면 유동주가 바라던 것처럼, 자신의 문학을 위한 골방과 일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유동주는 강정운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제가 사실 산문만 잘 쓰는 건 아니라서요.”


유동주의 당돌한 말에 정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산문만 잘 쓰는 게 아니라니.


원래라면 10대 소년의 멋 모르는 호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유동주는 무언가 달랐다.


그 느낌이 경덕관이란 대문호의 칭찬에서 기인했는지, 정말 무언가 아우라가 있어서인지는 강정운 자신도 몰랐지만 말이다.


유동주는 잠시 숨을 들이켜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시인이시죠? 사실 저는 시를 가장 잘 쓰는데 한번 읽어주실래요?”


시.

그것은 강정운의 마음, 아니 영혼 깊숙한 곳을 사로잡은 악마 그 자체였다.


평생 이루지 못한 그 꿈 때문에 강정운은 재산, 직업, 가족 그 모든 것을 다 이루고도 불행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 구멍 하나가 뚫린 느낌. 삼류 잡지에 돈을 주고 시인이란 명성을 샀지만 그 갈증이 채워지진 않았다.


눈앞의 소년이 ‘시’를 읽어달라고 했을 때, 강정운의 심장은 마구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주는 정운을 놀리듯이 펜을 들어올렸다.


“지금 당장 써드리죠.”





작가의말

4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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