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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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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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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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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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8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곳은 무진 소년원의 원장실.

오늘은 뜻밖의 손님이 원장실에 찾아왔다.

강정운은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아니면, 차가 더 좋으세요?”

“뭐, 마시는 게 중요한가. 맹물 떠와도 돼.”


원장 자리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은 70대의 노인.

그 사람은 경덕관이었다.


와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해도 올까 말까, 한 경덕관이었다.

정운에겐 1년에 1번 특강 모시는 것도 겨우 부탁드리는 하늘 같은 스승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친히 이곳 무진까지 온 경덕관이었다.


강정운은 원장실에서 가장 비싼 차기를 내려놓으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이 오시는 줄 알았으면 대문 앞에서부터 마중을 갔을 텐데요.”

“에이, 그런 과잉 의전 필요 없어.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경덕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강정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그의 관심사가 강정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던 덕관이 정운에게 물었다.


“그 꼬맹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꼬맹이요? 저희 소년원에 있는 게 다 꼬맹이인데요?”

“에이, 이 사람이 나이 먹었다고 스승을 놀리고 있어!”

“하하핳. 동주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요.”


경덕관이 예리한 눈길을 보냈다.


“내가 지금 그 아이 건강 묻자고 왔나?”


잠시 입맛을 다시던 경덕관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계속 생각나더군. 서울에서도 말이야. 그래서 한 번 더 확인이란 걸 해보고 싶어졌어.”


강정운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원장실 한편으로 갔다.

그는 서랍 안에서 웬 원고지 뭉치를 꺼내 들었다.

경덕관의 두 눈이 그곳을 향했다.


“이봐, 정운이. 그 원고는 다 뭐인가?”

“동주가 수필만 잘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시도 제법 잘 씁니다. 소설도 제법 잘 쓰고요.”


소설, 시 양쪽을 둘 다 잘 쓴단 말에 경덕관의 얼굴에 실망감이 돌았다.

산문을 제법 잘 쓰기에 소설가로 키워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시까지 잘 쓴다니.

시 따위 잘 써서 뭐한단 말인가. 시인 나부랭이나 되겠지.

경덕관이 강정운을 노려보았다.


“지금 자네가 시를 쓴다고 그 아이에게도 시를 권한 건 아니지?”

“에이, 선생님. 제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시인입니까. 그 아이가 직접 쓴 겁니다. 그리고 시보단 소설에 더 열심입니다. 지금도 아마 소설 쓰고 있을걸요? 하루 종일 뭘 붙잡고 있던데요.”

“그래? 그 원고 혹시 가지고 있어? 설마 지금 들고 있는 게 그 소설이야?”


경덕관이 강정운이 들고 있는 원고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니요. 원고지에 본인이 직접 쓰고 있어서 제가 가진 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들고 있는 원고는 소설이 아니라 시야?”


정운이 끄덕거렸다. 경덕관은 아쉬운 눈빛으로 강정운을 노려보았다.

그는 정운에게서 원고지를 빼앗다시피 가져갔다.


“뭐 어디 읽어나 보지.”


그 원고는 일전에 동주가 정운 앞에서 즉석에서 쓴 시 작품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읽던 경덕관의 얼굴에 점점 희열이 돋아났다.


고양감이 가득 찬 얼굴이 강정운을 타일렀다.


“시, 시를 이렇게 잘 쓴다고? 자네가 가르쳤어?”

“저보다 잘 쓰는데 제가 어떻게 가르칩니까? 그냥 쓰라고 판만 갈아줬죠.”

“하긴 그건 그렇네.”


경덕관은 지나치게 솔직했다.

강정운의 자기 비하를 그냥 인정해 버렸다.

정운은 씁쓸한 얼굴로 덕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그 아이만 보려고 내려오신 겁니까? 서울에서 이 무진까지요?”

“뭐 겸사겸사지.”

“겸사겸사요?”

“문화재단 운영하는 일도 힘들어. 자꾸 문인한테 재단 이사장이니, 그룹 이사니, 자꾸 그런 걸 하라고 압박을 주지 않아.”


경덕관은 짜증을 부리며 차를 마셨다. 뜨거운 차를 원샷까지 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70이야! 젊은 시절 큰형님 따라서 회사 일 좀 도왔다고 지금까지 해야 하나? 이제 젊은 놈들이 알아서 해야지.”


경덕관은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난 이제 문학에만 집중할 거야. 차라리 제자 문인을 양성하면 했지. 그 빌어먹을 돈놀이엔 관심이 없어.”


빌어먹을 돈놀이.

그 말에 강정운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재계 서열 10위에 위치한 KJ그룹.


그 그룹의 창립자인 경덕철 회장이 바로 경덕관의 큰형이었다.

덕관 또한 교수를 하는 동시에 회사 일을 곧잘 돕곤 했다.


정교수도 회사 일을 겸임해서 하는 게 허락되던 시절엔 한 회사의 대표 자리까지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제일 큰 문화재단인 큰바다문화재단의 이사장이었다.


창립자 세대의 어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경덕관은 어느새 오너 일가의 맏어른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덕관의 관심은 오직 문학뿐이었다. 사실 그것만이 그가 가진 일생일대 단 하나의 목표였다.


강정운이 스승에게 장난치듯 물었다.


“그래서 은퇴하시려고 도망 온 겁니까?”

“그래. 태조 이성계라고 생각하면 좋네.”

“그러면 조카분이 이방원이고요?”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 앉아 폭소를 터뜨렸다.


“풉. 푸하하하. 그치. 아주 야심이 그득그득한 이방원이지!”

“하하. 회장님이 좀 그런 경향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하하하.”


한참 같이 웃던 강정운이 스승을 향해 다시 말했다.


“사실 저도 다시 시를 좀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선생님.”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네. 말년부터 대작가로 거듭나는 시인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에이, 저는 그런 자질은 못 돼요.”


그 얘기를 들은 경덕관이 강정운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많은 뜻이 함의된 눈빛이었다.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마. 누가 뭐래도 자네는 내 제자야. 내가 형편없는 제자를 이렇게 오래 만날 것 같아?”


강정운은 스승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유동주, 경덕관 둘 다 자신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지.


평생 형편없는 문학인이라 스스로를 자책한 자신보다 강정운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았다.

정운은 생각했다.


‘둘의 응원을 들으니 자꾸 더 써봐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구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언가 더 해보고자 하는 결심이 생긴다는 게 강정운 자신도 신기했다.


그때, 경덕관이 일어섰다.


“앞장서.”

“네?”

“아, 유동주한테 가보자고! 그리고 그놈이 틈틈이 쓴 소설 읽어봐야지! 내가 여기 무진까지 와서 자네 못 생긴 얼굴이나 보다 갈 생각인 줄 알았어!?”


경덕관은 정운에게 앞장서라고 시켜놓고 본인이 먼저 원장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한참이나 먼저 걸어가던 덕관이 문득 무엇이 생각이라도 난 듯 정운에게 외쳤다.


“그놈 시 쓴 거 더 있어?”

“아니요. 제가 갖고 있는 건 그게 다입니다.”

“그래?”


경덕관은 무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더 있으면 나한테 더 보내놔. 좀 챙겨놔야겠어.”



**



뭐, 늘 그렇듯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문학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소설의 큰 틀을 바꿀 것이기에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문장만 이어 나가면 되던 때랑은 조금 다른 흐름이었다.


한참이나 원고지에 고개를 묻고 고민하던 그때.


문학실 문이 벌컥 열리고 의외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 작가 선생님이 왜 여기에?”


문학실의 문을 연 건 대작가 경덕관이었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내게 걸어왔다.


“그래, 이제 소설을 쓰고 있다지?”

“아, 네. 그렇죠.”


경덕관은 내게 대뜸 손을 내밀었다. 뭐지, 악수하자는 건가.


“하, 하, 하. 저도 오랜만에 뵈니 반갑네요.”

“악수 말고 글! 네 소설 달라고!”


거참, 노인네.

성미도 더럽고, 건강도 좋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문학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 갑자기 무슨 소설을 드려요!”

“쓴다며! 나한테 소설 보여주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나 알아!?”


아.

어머니.


북간도에 계신 우리 어머니.

이번 생에서도 문인들은 여전히 다 괴팍합니다.


나는 한숨을 푹 쉰 채 물었다.


“아직 완성이 안 된 원고라 보여드리기가 뭐해요. 게다가 소설의 큰 틀도 바꿀 거란 말이에요.”

“그냥 내놔봐. 내가 여기 소년원에 또 언제 온단 말이냐!”


정말이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할아버지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원고를 내밀었다.


“아직 미완성이니까 감안해서 읽으세요.”


경덕관은 대답도 하지 않고 내 원고를 빠르게 읽어나갔다.

정말 읽는 게 맞긴 한가.

그의 눈은 점점 휘둥그레졌다.


“너 지금 이거 윤동주에 관해 쓴 게냐?”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확히는 내 삶에 관해서 쓴 거지.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터였다.

덕관이 말을 이었다.


“이야,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네가 쓴 소설의 첫대목이라고? 윤동주가 일제의 감옥에 있을 때를 이렇게 쓴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득 현타가 왔다.


전생에서도 감옥에 있었는데 현생에서도 감옥에 있다니.

전생에도 감옥에서 글 쓰고.

현생에도 감옥에서 글 쓰고.


누가 짜놓은 설정이라면 그놈 멱살을 틀어쥐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경덕관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혼잣말을 계속했다.


“윤동주가 죽기 직전에 무어라 중얼거리며 탄성을 뱉었다고는 하지. 근데 그 정보 하나에 이만큼 살을 붙인 게냐?”


나는 대답 대신에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경덕관의 질문에 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감옥을 벗어나도 감옥이로다.”


근데 이 망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떼끼, 아무리 동명이인이어도 헷갈릴 게 따로 있지! 넌 윤동주가 아니라 유동주잖아”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이어졌다.


전생에 대해.

그리고 이번 삶에 대해.


뭐, 사실 별거 아니라면 아니긴 하다. 전생이 떠오른 이후 계속 떠오르는 회한 같은 거다.


그런데, 경덕관이 생각에 잠긴 나를 계속 다그쳤다.


“이 좋은 소설의 설정을 바꿀 거라고? 뭘 어떻게 바꿀 참인데?”


아, 이제 이 할아버지가 좀 귀찮아졌다.

나는 무심한 투로 대꾸했다.


“아무래도 인물이 너무 적어요. 교도소에서 나누는 우정을 조금 더 강조하기 위해 장정들 몇을 더 구체적인 인물로 만들 거예요. 그리고 독립 이후도 추가해서 교도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더 쓸 거예요.”


경덕관이 고민에 잠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내게 말했다.


“이것은 윤동주의 실화이니만큼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지 않을까?”

“그래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영 내키진 않았다.


경덕관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그저 나의 삶이다.

삶과 픽션의 비중 중 진짜 리얼한 삶의 비중이 지나치게 많이 담겨있다.


그 탓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쓰긴 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심함이 짙게 반영되었단 생각이 든다.


일전에 강정운과 얘기하며 깨달았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세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구나.


특히나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나는 그래서 이 소설에 당시 감옥에 있던 다양한 사람을 인물로 더 등장시켜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당시든, 지금이든.

내가 내 주변에 눈길을 더 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기도 했다.


내가 전생을 떠올린 후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 중 하나.

내가 가장 돌아보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사람.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을 경덕관에게 물었다.

도무지 이 교도소 안에선 뭘 어떻게 해도 찾을 수 없는 정보였다.


“윤동주 시인의 가족들은 그 뒤로 어떻게 살았나요? 어머니는요? 송몽규는 어떻게 됐어요?”


경덕관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것도 안 찾아보고 이 소설을 뚝딱 썼단 말이야?”

“여긴 감옥이니까 뭘 어떻게 찾을 수가 없잖아요. 컴퓨터도, 핸드폰도 못 쓰는데.”


경덕관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작가의말

8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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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5 24.06.27 2,144 7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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