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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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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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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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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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1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머니, 후꾸오까형무소에 오게 된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도 저는 독방에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씁니다.


이마저도 젊은 간수의 아량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희미한 십 촉 불빛이 깜박거리는 방.


매일 저녁. 그는 저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히라누마상,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지내셨소?”


그의 선배 간수가 듣는다면 틀림없이 경을 치고 말 일입니다.

죄수로 잡혀온 반도인에게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다니요.


그러나 젊은 간수는 호기롭게 미소를 띠어 보입니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실 작정이오?”


어머니, 저는 요즘 젊은 간수에게 매일 한 가지씩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제는 제가 가장 흠모하는 시인 백석에 대해 알려주었고, 오늘은 셰익스피어에 대해 얘기해주려 합니다.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유럽 왕자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오.”


이렇게 운을 띄우자, 그가 귀를 쫑긋 세웁디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데 그가 귀 옴싹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디다.


“오호, 오호라. 죽은 아비가 나타나 그 모든 걸 알려주었다. 그 말이오?”


대작가의 이야기를 티끌만큼 들려주었을 뿐인데, 그는 감탄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히라누마상이 아니면 들어본 적이 없소. 대체 얼마나 공부를 했기에, 툭 건들면 쏟아지는 이야기 만물상이 되었소?”


그의 호들갑에 저는 가볍게 웃고 맙니다. 그는 몽규를 보면 아마 까무러칠겝니다.

몽규야말로 박식함의 대명사 아니겠습니까.


간수는 가끔 제게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히라누마상은 왜 하필 조선말로 글을 쓰셨소? 안타깝구려. 내지말로 글을 썼다면 잡혀 올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얘기를 들을 적이면 저는 씁쓸하게 웃을 따름입니다.

조선의 이름을 자기 식대로 고쳐 부르는 젊은 간수.


그와 저 사이엔 동해보다 깊은 수렁이 있지 않겠습니까.

간수를 설복시키려 하기보다 짧게 답할 따름입니다.


“사람은 나고 자란 땅의 흙과 공기로 살지 않소. 당연히 나도 그 땅의 말과 뜻으로 글을 썼을 뿐이오. 글은 곧 내가 사는 일이니.”


간수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저를 쳐다봅디다.

그는 마치 취조하는 사람인 양 또 한 번 묻습디다.


“히라누마상은 이곳을 나가면 무엇을 할 작정이오?”

“글쎄, 나간다면 더 많은 글을 쓰고 싶소이다. 연극을 얘기하면 연극을 쓰고 싶고, 소설을 이야기하면 소설을 쓰고 싶고, 시를 이야기하면 시를 쓰고 싶소. 이곳에 오니 글이 더 간절해지오.”


저는 이를 꽉 깨물고 다시 말했습니다.


“단 한 가지 한이 있다면, 더 많이 쓰지 못한 것이 오직 한이오.”


그는 수상한 눈초리로 저를 쳐다봅디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가 선배 간수에게 반도인의 불순 행위에 대해 낱낱이 보고하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십 촉 전등이 켜져 있는 독방.

아침과 낮의 고된 노역 끝.

사람이 찾아오는 소리는 얼마나 반가운가요.


간수가 칠흑 같은 속셈을 가졌더라도, 속아줘야 할 도리밖에 없는 겝니다.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머니, 후꾸오까형무소에 오게 된 것이 어느새 1년이 넘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어쩌면 이 편지 말고도, 어머니에게 닿지 않을 것이 하나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중늙은 간수가 저와 다른 사람들을 시약실로 데려갑니다.

(예전의 그 젊은 간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맞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입니다.

맞고 나면 온몸의 기력이 풀리고, 눈앞이 아득해집니다.


건장한 장정들이 몇 달 사이 겨울 잡초처럼 시들해진 것을 봅니다.


오늘은 전에 얘기했던 젊은 간수가 저를 시약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나뭇가지처럼 야윈 팔뚝을 그에게 내어주는 것이 민망합디다.

게다가 오른팔에 주사를 맞을 곳이 없어 왼팔로 바늘이 옮겨간 나날.


두 팔이 온통 구멍 투성이었습니다.



제 팔을 붙들고 시약실에 가던 젊은 간수는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그는 이내 눈보라처럼 몸을 떨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꾹 견디시오. 지켜보는 눈초리가 많소.”


젊은 간수는 저의 팔목을 큰 건물의 기둥인 양 꽉 그러쥐었습니다.

흠뻑 땀에 젖은 손에서 온기가 흘러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온기로 독방을 견딜 수 있을 겝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젊은 간수는 갑자기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합디다.


“히라누마상, 매일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 편지는 어차피 가지 못할 것인데.”


그는 대답을 들으려고 말을 꺼낸 것이 아닙니다.

독방 앞에 주저앉은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히라누마상, 내 어머니는 죽었소. 전쟁 때문에 말이야. 그뿐이 아니야. 아버지와 하나뿐인 남동생도 같이 죽어버렸소. 근데 웃긴 건 무엇인지 아시오?”

“무엇이오.”

“내 어머니를 죽인 폭탄은 우리 일본 제국이 떨어뜨린 것이오. 잘못 떨어진 폭탄이 그만 우리 가족을 몰살시킨 것이지.”

“그렇소?”

“그렇지. 우습게도 이 제국은 얼마 되지 않아 나보고 교도관 일을 맡아 하라 시키더군. 내지의 편안한 복무를 주는 것이니 감사하라고 이르면서.”


젊은 간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잠시 말을 멈춥디다.

오래 고민하던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집디다.


“윤상, 나는 윤상이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부럽소. 이런 내지인도 있다는 것 알아두시오.”


그는 처음으로 날 ‘윤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랫배 깊숙한 곳부터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태풍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큰 기침이었습니다.


“코, 콜록. 쿠, 쿠우울럭!”


콜록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망치처럼 두드렸습니다.

이내 저는 피를 토했습니다.


아, 어머니.

보고 싶은 어머니.


저는 이 말을 바로 그 젊은 간수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어, 얼마나 어머니가 보고 싶소?”


그는 말없이 고요를 지키다 이내 독방을 떠나버렸습니다.


십 촉 전등 희미한 불빛이 바닥에 쏟아진 붉은 피를 지키고 서있습디다.


*


어머니, 몇 달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모든 나날이 몽유도원 같습니다.


이 꿈이 지나가는 천장에는 희미한 벌레의 소리가 흐를 뿐입니다.

조그만 귀뚜라미 소리로 간신히 정신을 다잡습니다.

부끄러워도 아직 할 일이 남은 까닭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곳 후꾸오까형무소에서 보낸 나날을 원고지에 수놓습니다.


젊은 일본인 간수와 나눴던 우정. 이곳 장정들의 모습.

시약실로 맥없이 끌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까지.


어쩌면 이것이 제 마지막 소설이 될지 모릅니다.

다행히 젊은 간수는 여지껏 저의 편입니다. 원고지와 펜을 원하는 대로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그는 심려스러운 눈초리로 저를 힐난합디다.


“글쟁이란 미치광이구먼. 해골이 되어가는데 글을 붙잡고 있다니.”


그의 거친 걱정에도 저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제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머릿속에 종소리가 들립니다.


눈앞이 종종 아찔해집니다.


어제는 젊은 간수에게 부탁을 남겼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이 원고는 다 불태워 주시오. 들킨다면 자네가 호되게 일을 당할 것이오.”

“히라누마상! 내가 일을 당할 걱정일랑 하지 말고 자네 몸을 챙기시오!”


간수의 윽박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챙긴다고 달라질 것이 무어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음 날.

저는 지하에서 1층 독방으로 이감되었습니다.

젊은 간수는 저에게 들릴락 말락 한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1층으로 올라간다면 분명 별빛이 잘 비칠 것이오.”


그의 마음 씀씀이에 저는 고맙다 고개를 끄덕일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저의 앞날을 예감함에 틀림없었습니다.


“히라누마상, 우리 일본인은 사람이 무한히 다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렇소? 나는 천국을 믿소.”

“아니오. 난 그대가 다시 태어나면 좋겠소.”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윤상, 새로운 날, 새로운 땅에서 만나면 우리도 벗이 될 수 있지 않겠소?”


그는 몇 달 만에 저를 ‘윤상’이라 다시 불렀습니다.


전 그의 손목을 그러쥐고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는 붕우요.”


그날 밤, 정말이지 원고지에 별빛이 비쳤습니다. 은하수가 종이에 가만히 흘렀습니다.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멀리 있는 이름을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일주, 혜원, 몽규, 익환, 그리고 어머니, 아, 어머니.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내들은 아슬히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제 가슴 속에, 영혼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저는 원고지에 마지막으로 손을 옮깁니다. 별빛이 글씨를 골똘히 들여다봐주고.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숨이 멎어갑니다.


턱,


하고 숨이 막히기 직전입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저는 마침내 몸을 찬 바닥에 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펼쳐집니다.

눈앞으로 아득히 먼 풍경이 쏟아집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보는 이 풍경이 바로 제 나라의 미래라는 걸.


수없이 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 조선이 독립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사람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이내, 제 시선은 그곳을 순식간에 초월합니다.


황폐해진 땅 위로 도시가 다시 지어지기 시작합니다.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광화문과 남대문 사이는 몰라볼 정도로 바뀌고.


경복궁을 가리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폭파당하고.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코리아’를 외치며 서로 부둥켜 축구를 응원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흐릅니다.

이순신 장군님과 세종대왕님이 돌보는 광화문의 어느 광장.


큰 강물 같은 대로엔 수없이 많은 차가 있고, 부티 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닙니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전통 복장을 흉내 내며 관광을 다닙니다.


‘이것이 미래의 내 조국이라니?’


이런 땅에서 글을 쓰며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저는 다시 차디찬 감옥에 처박힙니다.


숨이 다시

턱,

막히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평온합니다.

잠시나마 내 나라의 미래를 엿보았으니.

그것이 제게 주어진 유일한 행운인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죽기 직전, 저는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해서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일본어가 아닌 틀림없는 조선말로.


이윽고 제 눈앞에 희디흰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야,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네가 쓴 소설의 첫 대목이라고?”


올해로 일흔을 바라보는 소설가 경덕관은 가볍게 감탄을 뱉었다.


“윤동주가 죽기 직전에 무어라 중얼거리며 탄성을 뱉었다고는 하지.”


경덕관이 기함을 벌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정보 하나에 이만큼 살을 붙인 게냐?”


윤동주가 죽기 직전에 무어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질렀다는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조선말로 무어라 중얼거려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말을 교도관이 유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 사실은 이제 대중에게도 널리 퍼진 정설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뼈와 살을 붙이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이건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쓴 것만 같잖아?’


경덕관은 몇 번이고 눈을 끔벅거렸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 경덕관이었다.


국내 유수의 문학상 심사에서도 ‘탈락 3초 컷’을 시전한다고 하여 삼초 경덕관이란 별칭으로 호명되는 그였다.


고작 열여덟 짜리가 쓴 글이 이렇게 덕관을 놀래키다니.


그런데 대문호에게 돌아온 대답은 영 엉뚱한 소리였다.


“감옥을 벗어나도 감옥이로다.”


경덕관은 그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는 흉내를 냈다.


“떼끼, 아무리 동명이인이어도 헷갈릴 게 따로 있지! 넌 윤동주가 아니라 유동주잖아!”


소년은 노인의 꿀밤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유동주는 무심한 얼굴을 바닥에 처박을 뿐이었다.


이곳은 무진소년원.

전국에서 가장 죄질이 안 좋은 소년범이 모이는 공간.


이 감옥에서 천재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쓰여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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