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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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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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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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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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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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6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곳은 원장실.

강정운과 부원장이 나란히 독대를 하고 있었다.


부원장은 짜증이 깃든 표정으로 강정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이곳 무진소년원은 감사를 받는다고 통보를 받았다.

예비비를 함부로 사용해 교실을 증축한 건에 대해 해명을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그리고 감사와 관련된 모든 행정 실무는 부원장이 총괄해서 진행해야 했다.


부원장으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 따름이었다.


“원장님. 도대체 갑자기 왜 문학실 같은 걸 증축해서 이 소동이예요.”

“뭐, 일단 문학실이지만 특활실이라고 생각하세요.”


강정운의 표정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 표정이 부원장의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지금 그냥 그렇게 생각하라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감사까지 나온다니까요!”

“아, 우리가 가진 예비비 편성해서 자체 공사한 건데 무슨 문제가 있어요.”


강정운은 여전히 느긋한 표정이었다.

부원장은 오래 속에 품고 있던 한 마디를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원장님, 도대체 왜 자꾸 그러시는데요!?”


부원장의 불만은 하루, 이틀 쌓인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전국 어떤 소년원이 이렇게 장서를 많이 보유한단 말인가.


도서실이 아니라 거의 도서관 수준으로 늘려놓은 책 때문에 감사 때마다 은근한 눈총의 시선을 받았다.


무엇보다 부원장이 화가 나는 건 원장이 독단적으로 그 모든 일을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사적인 업무 처리 때문에 공적인 업무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부원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난데없이 문학실을 증축한단 말인가.

부원장도 사실 소년원에서 보고, 들은 소문이 다 있었다.


“그 유동주인가 뭔가 하는 애가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보죠?”


강정운과 유동주가 독대했단 사실은 소년원 안에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문학실 공사가 유동주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진행됐단 얘기까지 돌아다닐 정도였다.


강정운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부원장에게 답했다.


“동주가 내 마음에 들긴 했지. 그런데 왜 문학실 얘기하다가 그쪽으로 빠지는 거지?”


부원장은 강정운을 노려보았다.

역시 능구렁이였다.

부원장이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없단 사실을 강원장은 잘 알고 있었다.


소년원에 퍼지는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부원장의 심증도 심증일 뿐이었다.


특활을 위해 교실을 증축했고, 예산은 남는 예비비로 처리했다.

절차 상, 명분 상 문제는 없었다.


강정운은 부원장을 한 번 더 압박했다.


“나는 유동주가 마음에 들고 그 애가 문학을 계속 하면 좋겠어. 그런 진심도 있지. 하지만 말이야.”


잠시 머뭇거리던 강정운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유동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도 각자의 재능을 찾고, 펼치면 좋겠네. 하다못해 이 곳에서 검정고시라도 합격하고 나가면 좋겠어. 교과 공부 그렇게 시키지만 나가서 제대로 학교 공부 하는 놈들 있나?”


부원장은 꿀 먹은 오소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강정운의 말은 사실이었다.


소년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교화와 범죄 소년 교육에 있었다.


무진 소년원이 공식적으로는 소년원이 아닌 무진 고등학교인 것도 그 이유이다.


하지만 실제 이곳에선 오히려 교화가 아니라 범죄의 재생산, 범죄 조직 양산이 일어난다.


범죄를 저지른 또래들이 뭉쳐서 교화가 되고, 교육이 되는 것은 힘들다.

오히려 범죄 집단으로 탈바꿈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강정운은 부원장을 보며 말을 마무리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도서실에 책을 많이 갖다놓는다고 생각했지?”


부원장은 찔렸다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정운은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내가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니야. 지금 소년원 현실에서 아이들한테 하나라도 뭘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한 결과야. 난 단 한 사람이라도 여기서 뭘 얻어가길 바라.”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차분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책을 갖다놓는다고 애들이 찾아 읽지는 않겠지. 하지만 원장인 내가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부원장은 강정운을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정운이 그런 부원장을 일으켰다.


“공사가 어찌 진행되는지 보러 갈건데 부원장 자네도 같이 갈 건가?”


부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나는 문학실에 있다.

멘토링이 진행된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간 멘토링은 잘 진행됐냐고? 아니, 전혀.


그리고 그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아주 좋은 일이었다.


노반스는 멘토링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설 쓰기에만 집중해도 이걸 완성할까, 말까인데.’


그렇다.

나는 전생에 썼던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금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조속히 이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다.


일제의 감옥에서 내가 직접 겪고 들은 이 경험을 이생에서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전생이 떠오른 이후 가장 축복이었다. 가끔은 그 소설을 쓰기 위해 전생이 떠오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다시 한 번 문장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

그녀를 향한 나의 그리움.

간수와 나눴던 우정.

형무소에서 파초처럼 시들어가던 장정들에 대한 기억을.


멘토링 할 시간이 어딨는가.

내 소설 쓰기에만 집중해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작업이다.


‘족히 반 년은 걸리려나?’


내가 원고지에 펜을 꾹 눌러쓰던 그때.

문학실 저편에선 노반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설 ㅈㄴ 웃기네. 사람이 왜 갑자기 기린이 되고 난리냐. 낄낄끼낄.”


나는 녀석의 웃음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원고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래.

나는 소설을 쓰고 노반스는 이 문학실에 널린 책을 읽는다.

그게 우리가 합의한 멘토링 시간의 규칙이었다.


노반스는 교과 공부 시간에 문학실에서 딴짓을 해서 좋고.

나는 교과 공부 시간에 문학실에서 소설을 써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소년원 나가기 전에 소설 써서 좋고.


나는 다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글을 이어나갔다.


“아,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러나 내 귓전으로 자꾸만 노반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끄, 끄끄하하하하”


경박한 웃음 소리가 내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아, 어머니.

오늘 제가 한 놈 별로 만들어야 할까요.


나는 참으려 했다.

정말.

진심으로.

조용히 참고 글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다시 노반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끼, 끼야야야하하학!!!”

“야, 노반스 이 새끼야! 입 좀 다물고 책 읽어!”


나는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 그에게 던졌다.


-푹!


그리고 몹시 불길한 소리와 함께 노반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 X발!!! 뭐하는 거야!!!”


노반스의 팔에 샤프가 표창처럼 꽂혀있었다.

녀석은 눈을 희번뜩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유동주, 조용히 서로 딴짓 하자고 했는데 먼저 시비 턴 건 너다.”


그 말을 끝으로 노반스가 내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녀석을 쏘아붙였다.


“책 조용히 읽으라고. 나 지금 소설 쓰는 거 안 보이냐.”

“야, 그렇다고 샤프로 사람을 찔러?”


녀석의 팔에선 피까지 고이고 있었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미안하다.”

“미, 미안? 유동주 이 새끼 사람 죽이고나서도 미안으로 퉁 칠 새끼네!”


노반스가 내 멱살을 잡아쥐었다.

조용히 끝내려고 했는데 기어이 유혈사태를 부르는구나.


“그래! 노반스! 어디 한 번 죽어보자!”

“왜 자꾸 노빤스라고 불러 유동주 이 ㅁㅊ새끼가!”

“빤스도 안 입고 다니는 새끼가 시끄럽기까지 하네!”


나는 녀석과 서로 멱살을 붙든 채 한참을 낑낑댔다.

누구도 주먹은 날리지 못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이 교실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즉시 멘토링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이 즐거운 자유 시간도 끝이겠지.


조용히 서로에게 양보를 하는 게 우리의 최선이다.

하지만.

하지만.


‘노반스, 이 새끼는 너무 시끄럽다고!’


잡기 싸움에서 먼저 지친 쪽은 노반스였다.

녀석은 씩씩거리며 나를 밀쳐버렸다. 그러고선 문학실 한편에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제기랄!”


녀석이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제법 험상궃은 인상이었다.

키는 작고, 체격은 왜소했지만 그 낯은 도깨비처럼 사나웠다.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니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노반스 저 새끼 사람을 죽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소년원의 소문 중 팔 할 이상은 뜬 소문이다.

본인이 스스로 죄를 과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곳에서 할 일이라고는 남 얘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반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소문이 영 거짓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원장이 따로 멘토링을 챙겨줄 만큼 성실한 녀석이었고 (교과 시간에 대놓고 자지만 않으면 이곳에선 우등생이긴 하지만.)


특별히 남을 괴롭히거나, 비방하고 다니지도 않았으며 (물론 팬티를 찾기 위해 나를 공격하긴 했지만.)


평소 별 탈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절도, 강도, 폭행 등 잡범으로 온 느낌은 아니랄까.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던 그때, 노반스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뭔데 꼴아봐. 진짜로 한 판 하고 싶어?”

“아, 아니. 그냥 네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나 싶어서. 평소에 하는 거 보면 특별히 잡스런 죄는 안 지을 것 같은데.”

“그래. 내가 유동주 너처럼 잡스럽게 빤스나 훔쳐입는 사람은 아니지.”


녀석이 나를 빈정거렸다.

대답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던 노반스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옷을 빼앗아갔지. 내 패딩을 빌려달라고 하더라?”

“응?”


노반스는 나의 대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 다음에는 빵을 사달라고 하고, 그 다음엔 돈을 달라고 하고, 급기야 나중엔 우리집에 처들어와서 살왔어. 그렇게 한 1년을 시달렸지.”

“그러니까 노반스 네가 여기 들어온 사연을 말하는 거지?”

“그래.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니야?”


노반스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찔렀어. 샤프로 뒷목을 푹!”


노반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장난기 밑에 무거운 그늘이 서려있다는 것을.


노반스는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떨리는 몸으로 내게 말했다.


“죽을 줄은 몰랐어. 그렇잖아. 사람이 샤프로 찔렸는데 즉사할 거라곤 생각 못 하잖아.”


노반스는 낮은 목소리로 사연을 마무리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거 생각보다 못 할 짓이더라.”


노반스는 씩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뭐, 다행히 학폭 피해자란 게 인정받아서 9호 처분으로 끝났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유동주 너도 조심해. 샤프 같은 거 함부로 날리지 말고. 잘못 맞은 샤프는 사람을 죽인다.”


노반스가 웃으며 내가 던진 샤프를 들어보였다.

아, 새끼가.

사람 진짜 미안하게 만드네.


“미안하다. 내 기분만 생각했네.”

“아니야. 나도 조용히 할게. 나도 너 글쓴다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두 사내의 사과가 지나간 문학실엔 낮고 무거운 고요가 깔렸다.

차라리 싸우는 게 편하지.

사과 이후의 침묵이 오히려 껄끄러웠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노반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노반스.”

“응?”

“네 빤스 사실 내가 아니라 건너편 침대의 걔가 가져간 거다.”

“진짜로?”

“응.”

“근데 왜 유동주 네가 가져갔다고 했어.”

“잠깐 독방에 혼자 갇혀보고 싶어서?”


노반스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애가 검지를 머리에 대고 빙빙 돌렸다.


“아무리 봐도 너 정상이 아니야.”


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상이라.

유동주와 윤동주 사이의 두 인격을 오가는 내가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멋진 시대에 다시 되살아나서도 계속 문학이나 하려는 내가 정상일까.


노반스의 말은 빈정거림이었지만 거기엔 사실이 분명 묻어있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이름이 송송태였나?”


녀석이 뭔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름 알았냐?”

“알았지.”

“그러면 송송태라고 불러. 송태라고 부르든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녀석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까 읽던 소설 재밌었냐?”

“재밌던데.”

“너도 소설 써볼래?”


녀석은 웬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돌변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글을 쓰다보면 자기 자신이 위로받는 순간이 있거든. 그게 너한테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송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기사 갑자기 글을 쓰라니 의아하겠지.


잠시 고민하던 송송태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작가의말

6화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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